[미소스님 성전] 추석이면 달을 본다
[미소스님 성전] 추석이면 달을 본다
  • 김영태
  • 승인 2006.10.02 11: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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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면 나는 언제나 달을 본다. 그리운 얼굴들과 내 생의 행복했던 어느 한순간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 이 세상에 없는 얼굴들이고 이제는 과거가 되어 만날 수 없는 시간들이지만 기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떠났지만 내 기억 속에 이렇게 아름답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헤어짐의 슬픔을 넘어서게 한다.

내 부모님들은 세상을 떠나신지 이미 오래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 나는 그들이 떠났다는 사실 보다 그들이 내게 남긴 행복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울었다. 헤어짐 보다 추억이 더 슬프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추석이면 새 옷과 신발을 사주기 위해서 옷집과 신발가게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던 어머니의 모습과 새 옷을 입고 차렷 자세로 서있으면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아버님의 그 조용한 웃음을 잊을 수가 없을 것만 같다. 밤 새워 음식을 장만하고 아침이면 차례를 모시던 부모님들의 그 경건하고 조용한 모습들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세상의 추석이 다하는 그날까지 나는 그 모습들을 기억하고 그리워 할 것이다.

추석이면 어머니는 밤 새워 차례음식을 장만 하고 새벽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차례상을 차리셨다. 그 날 아버지는 꼭 양복을 입으셨다. 아버지는 일년에 두번 양복을 입으셨는데 추석과 설이 바로 그날이었다. 양복을 입고 차례를 모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신성해 보였다.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하고 차를 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조상님들이 우리와는 다른 어느 세상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복을 입은 아버지의 표정과 몸가짐이 그렇게 겸손하고 진지했던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형제들이 차례를 모실때 나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양복을 입고 차례를 모시고는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아버지 어머니께 아뢰고는 했다. “아버지, 어머니 오늘은 추석입니다. 세상의 맛난 오곡백과의 맛을 아직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우리들가 함께 했던 시간들의 행복했던 모습도 기억하시나요. 다 기억해 주세요. 우리 이 다음 시간에는 또 만나야 하니까요. 그리고 보아주세요. 우리 다시 만나 화목하게 살기위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추석이 가까운 오늘, 산 중의 달이 밝다. 한가위 보름이 되면 달빛을 타고 부모님들이 환하게 오실 것만 같다. 이제는 양복 대신 승복을 입고 부모님께 차례를 올리게 되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실 내 부모님의 표정이 나는 궁금하다. 나중에 만나면 내 모습에 대해서 묻고만 싶다.

아, 추석 얼마나 좋은 날인가. 이제는 곁에 없지만 그들의 사랑과 세상의 고마움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서로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귀성길에 오르는 사람들의 물결이 문득 아름답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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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심자 2006-10-13 18:29:47
올추석보름달은 유난히 밝고 맑게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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