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인과 노스님] 불교인문주의자의 죽음
[젊은시인과 노스님] 불교인문주의자의 죽음
  • 이홍섭
  • 승인 2006.08.14 11: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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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난 것은 낙산사에 머물 때였다. 우연히 그의 저서를 읽다가 낙산사 교무소임을 지냈다는 이력을 보게 되었다. 며칠 뒤 낙산사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보살에게 그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 보살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예민한 스님이었어요. 성격이 급해서 마음에 안 들면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공부하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누가 공부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한 불교출판사에 일이 있어 들렸더니 벽에 걸려 있는 달력에 '일지 스님 입적'이라는 빨간 글씨가 적혀 있었다. 결국 나는 스님을 한 번도 뵙지 못하고 만 것이다. 자신을 '불교인문주의자'로 규정하며, 진정한 인문주의자가 드문 황량한 불교계를 바람처럼 가로지르던 일지 스님은 그렇게 갔다. 나는 스님이 입적하기 전 스님과 교류가 있었던 출판사의 편집장에게 스님의 마지막을 물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스님의 입적도 바람같았다. 지병이 있었던 스님은 인적 드문 어느 암자로 들어가 삶을 마감했다. 그의 육신의 죽음이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그는 늘 젊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젊음이란 뜻 모를 설렘과 방황과 번민의 다른 이름이다. 그의 저서를 처음 만났을 때 느겼던 젊음의 풋풋한 내음은 그의 모든 저서에서 언제나 계속 풍겨 나왔다. 나에게 있어 그는 늘 젊은 스님이었고, 방황하는 스님의 대명사였다.

"나는 지금부터 20년도 훨씬 전의 어느 가을, 감옥 같던 집과 학교를 모두 거부한 더벅머리 소년으로 해남 대흥사 진불암(眞佛庵)의 뜰을 쓸고 있었다. 두륜산의 저녁노을이 점점 더 붉어지는 가을이 오면 진불암의 선객(禪客)들은 두륜산을 넘고 남창면을 지나서 완도로 가서 겨울 안거를 준비하기 위한 탁발을 떠났다. ...(중략)... 지금은 그곳도 다 매립되어 버리고 한 장의 빛 바랜 사진으로 남아 있지만 그 자유로운 여행과 풍광(風光)의 아름다움이 나의 뇌리에는 영영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각인되어, 서서히 소면되어 가기 시작한 나를 때로는 평화롭게 때로는 슬프게 한다. 우리는 그때 가진 것은 없어도 그 무엇의 노예도 되지 않는 인간의 자유와 무욕의 평화를 최대한 체험했던 것이다. ...(중략)... 이 책은 그때 이미 누더기를 걸치고 저 상공포구의 선착장에 파리한 얼굴로 서 있던 한 소년의 가슴 속에서 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 <<선불교강좌 백문백답>> 서문

아마도 그의 이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남아 있는 듯 보이는 초기 선객 시절을 회억하고 있는 이 글은 그가 꿈꿈던 삶과 이루지 못한 삶에 대한 쓸쓸함이 교차되고 있다. 그는 일세의 선객을 꿈꾸었으나, 그 꿈을 끝까지 쫓아가지 못하고 '불교인문주의자'로 머문 자신의 삶을 쓸쓸해 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나의 이십대는 지금 세상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동년배들의 다수가 그렇듯이 얼마간은 흥분하고 적대적인 분노에 찬 극적인 나날들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 모두는 자신들의 시대에 대한 테러리스트였던 것이다. 올깎이중 주제에 나는 왜 그렇게 우리의 사회적 현실과 제도의 논리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교단의 정체현상에 대한 현실인식 앞에서 끝없이 절망했던가. 그 풋내기 혁명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마음의 삶이 이룬 고독을 이해하면서 이 세상을 불교적인 사유방법으로밖에 바라볼 줄 모르는 비장한 호흡을 가진 삼십대의 불교인문주의자로 나는 여기에 서 있다."
- <<월정사의 전나무숲길>> 서문

그의 서문들은 이렇듯 늘 설렘과 방황, 그리고 번민으로 흔들리고 있다. 그 흔들림은 때로 그를 설익은 낭만주의자나 앳된 회색주의자로 보이게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설익고 앳된 모습이야말로 그를 영원히 젊게 하고, 인문주의자로서의 열정을 잃지 않게 해준 알파요, 오메가였다고 생각한다.

그의 마지막 저서는 '새로운 경허 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경허 스님의 평전(<<삼수갑산으로 떠난 부처>>, 민족사, 2001)이었다. 황량한 벌판을 바람처럼 통과해 간 한 젊은 불교인문주의자의 마지막 저서가 경허 평전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경허 스님은 한국 선불교를 중흥시킨 거목이었지만, 숱한 소문 속에 진면목이 가려진 고독한 선구자였다. 그는 '경허의 영광과 비극을 오늘의 언어로 복원'해 왜 그가 '북방고원의 방랑자로서 쓸쓸히 소멸할 수밖에 없었는지 변호하고자'했다. 그는 어쩌면 이 변호를 통해 비승비속으로 떠돈 자신의 행로에 대한 위안을 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입적하기 얼마 전,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에게 현주소를 물었더니 '비승비속'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입적을 알리는 빨간 글씨를 보았을 때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말고 '한 비승비속의 쓸쓸한 죽음'이었다. 한 뛰어난 불교인문주의자가 승僧도 아니고 속俗도 아닌 비승비속의 삶을 마쳤다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나는 그 쓸쓸함을 경허 평전의 서문을 읽으며 달랜다.

"이 책은 현대 한국선의 달마, 경허에 관한 나의 오랜 그리고 절실한 사랑의 기록이다. 나는 이 평전을 쓰기 위해서 수년간에 걸쳐 인간 경허, 시인 경허, 선승 경허의 체류지를 답사했다. ...(중략)... 이제 나는 그의 실종을, 그가 소멸한 길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는 왜 스스로 이단자라는 운명을 감수하고 저 북방고원의 방랑자로서 쓸쓸히 소멸할 수밖에 없었는지 변호하고자 한다."
- <<삼수갑산으로 떠난 부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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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숙 2006-08-20 00:57:49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모든것이 깨달아야 부처인가요 . 물론 내 마음속에 있듯이 한순간 비&#50911;다가 그것을 채우지 못한 우리네 인간사...........
한순간은 부처가 되기도 하지만 사악한 삶을 살는 인생이겟죠.
누가 누구를 평할수 있으려만은.........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탈을 쓴 인간들이 많다는것 ...이런글을 올리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저는 얼마전 정말 법만 없다면 살인이라는 건 순간이란걸 느꼇답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믿기에 그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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