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지식] 백파의 혜안과 추사의 흠모
[한국의 선지식] 백파의 혜안과 추사의 흠모
  • 이기창
  • 승인 2006.07.0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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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은 출가전 이름이다. 법호인 영호(映湖), 법명인 정호(鼎鎬)보다 속명이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한영의 시호 석전은 절집이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후기의 선객 백파(白坡ㆍ1767~1852)와 동시대의 석학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깊은 우정에서 그 시호가 탄생한 것이다.
스물 다섯의 한영은 스승 설유의 부름을 받았다. “그대에게 법을 전하니 법호를 영호라 할 것이니라. 그대는 백파스님의 육대손이니 부끄러움이 없도록 용맹정진해야 하느니라.” 스승은 간곡한 부탁과 더불어 소중하게 간직해 두었던 오동나무 상자를 열었다. 스승이 꺼낸 빛 바랜 종이에는 ‘石顚’의 두 글자가 씌어 있었다.

추사는 석전과 만암(曼庵)의 시호를 써 백파에게 보냈다. 마음에 들면 가져도 좋고 아니면 제자에게 주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백파는 스스로 가질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제자 중에서도 합당한 재목이 없었다. 백파는 후세에 시호에 걸맞은 그릇이 있으면 전하라고 이른 뒤 열반에 들었다.

그의 생전에는 시호가 주인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유언을 전해들은 추사는 흠모의 정을 감추지 못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백파의 혜안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 것이다. 부모의 비문조차 쓰지 않았던 추사는 백파의 비문을 손수 지었다. 그리고 “백파는 화엄종주이자 율사이며 대기대용(大機大用ㆍ대선사의 보살행)의 격외선사(格外禪師)”라고 추앙했다. 격외선사는 달마와 대등한 경지의 깨달음을 얻은 선지식을 일컫는다.

시호 석전의 전(顚)자에는 ‘구르다’ 는 뜻 외에도 ‘이마’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돌처럼 단단한 이마, 즉 명석한 두뇌와 불퇴전의 정신까지 상징한 시호라고 할 수 있다. 만암의 시호는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송만암(宋曼庵ㆍ1876~1957)에게 전해졌다. 송만암은 한영을 사사한 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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