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인과 노스님]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
[젊은시인과 노스님]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
  • 이홍섭
  • 승인 2006.06.21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 몸의 기억 중에 아마도 가장 오래되고 절절한 것이 밥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물을 떠나서, 공기를 떠나서 인간이 생존할 수 없듯이 밥을 떠나서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물과 공기와는 달리 밥은 단순한 생존 조건 이상의 의미를 지낼 때가 많다. 거기에는 인생의 파노라마처럼 희로애락이 담겨 있고, 연민과 비애가 배어 있다. 삶은 밥과 혈연을 맺고 있고, 밥과 동고동락한다.

욕망을 절제하고 살아가야 하는 불가의 선승들에게는 식食부족, 의衣부족, 수睡부족 등 삼부족三不足이 늘 따라다닌다. 이 중 화두 다음으로 가장 끈질기게 붙어 다니는 것이 식사食思, 즉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이라고 한다.

1970년대 선승들의 선방 생활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책 <<선방일기>>(여시아문)를 펼쳐 보면, 좀 더 맛있는 밥, 좀 더 풍성한 밥을 향한 스님들의 들끊는 욕망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선승은 이를 두고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본능이 바로 식본능이라고 알려 준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절망적인 공포가 바로 기아에서 오는 공포라고 결론지어 준다'라고 묘파하고 있다. 수행자들이 이러할진데, 하물며 일반인들의 밥에 대한 추억과 욕망은 어떻겠는가.

얼마전 느닷없이 몸과 마음의 공황이 찾아와 여러 날을 시름시름 보낸 적이 있다. 세상일이 덧없어지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니 하루종일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당연히 입맛이 떨어졌다. 정신은 몽롱해지고, 입술은 부르텄다.

곰곰히 자가진단을 해 보니 '서울병', 아니 '고향병'이 그 원인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매년 한두 번씩 치르는 병이 또 도진 것이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고향 강릉에 대한 편애가 심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태어나 청춘 시절까지 몽땅 고향에서 보낸 나에게 있어 고향은 오롯한 한 인격체로 남아 있다. 거기에는 살과 피가 있고, 정신과 마음이 살아 움직인다. 나는 고향에서 한 아름다운 인간을 보고 있는 것이다.

병이 막바지에 이르러 거의 탈진 상태까지 갔던 날 밤, 누워 있는데 불현듯 무엇이 불쑥 솟아올랐다. 느닷없는 일이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것이 하얀 사발에 담긴 밥이었다는 사실이다. 수북이 담긴 하얀 밥은 방금 퍼낸 듯 먹음직스럽게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밥은 내가 언젠가 먹어 본 듯 했다. 나는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입맛을 다시며, 마치 허공 위에 떠 있는 듯한 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느닷없는 밥의 정체를 곰곰히 추적했다.

놀랍게도 그 밥의 주소지는 작은할아버지 댁이었다. 나는 삼십대 초반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대신 집안의 유일한 할아버지셨던 작은할아버지를 친할아버지처럼 따랐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는 평생을 농사꾼으로 사셨다. 그것도 평생 남의 땅만 부치다 가신 가난한 농사꾼으로, 그러나 작은할아버지는 내가 아는 가장 정직하고, 가장 성실한 농사꾼이셨다.

지금도 작은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제사 때 절하는 모습이다. 발끝을 모으고 온몸에 정성을 다하는 작은할아버지의 절하시는 모습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모습 앞에서는 배운 자, 가진 자의 만용과 거들먹거림이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나는 뒷줄에 서서 작은할아버지의 절하시는 모습을 보며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곤 했다. 언젠가 나의 후손이 내 절하는 모습을 뒤에서 훔쳐보며 지금의 나처럼 참 아름답다고 감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작은할아버지를 따라 논에 나가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키 작은 작은할아버지가 언제 저 논농사를 다 지으시려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벼가 다 자라면 파묻힐 듯 논 속으로 사라지시던 뒷모습이 지금도 아련하다.

뒷산을 넘으면 경포호수가 나오고, 그 산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유명한 경포바다가 나오는 곳에 자리잡은 작은할아버지 댁은 오랫동안 초가집이었다. 집 뒤에는 대나무 밭이 있었고, 마당에는 깨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었다. 그렇지만 작은할아버지가 사시는 그 집은 나에게 있어 가장 따뜻하고, 안온한 공간이었다.

나는 작은할아버지 댁을 무시로 찾아갔다. 작은할아버지가 나무하시러 갈 때도 따라가고, 논에 나가실 때도 따라가고, 들에 나가실 때도 따라갔다. 그 때의 모습은 아마도 꼬리르 흔들며 주인을 따라다니는 강아지와 같았을 것이다.

그러고는 돌아와 작은할아버지와 먹는 밥은 세상천지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꿀맛이었다. 그렇게 자주 밥을 먹었는데도 기억 속에 떠오르는 반찬이 딱 두 가지일 정도로 작은할아버지와 함께 한 밥상은 소박했다. 두 가지 반찬 중 하나는 직접 기른 채소로 담근 싱싱한 총각김치였고, 다른 하나는 경포호수에서 나는 부새우로 만든 조림이었다. 나는 특히 이 부새우조림을 좋아했다. 경포호수에서 나는 작은 새우들에다 양념을 해 뚝배기에 졸인 부새우조림은 그것만으로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을 만큼 절묘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내가 좋아한 것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쌀밥이었다. 그 밥은 작은할아버지가 직접 농사 지은 쌀로 만든 것이었다. 갓 지은 밥이 풍기는 냄새와 윤기, 그리고 보드라운 찰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잡곡주의자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섞지 않은 하얀 쌀밥을 좋아한다. 하얀 쌀밥에는 이상하게도 신성함이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작은할아버지 앞에서 이 밥을 두 공기, 세 공기 해치웠다. 작은할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곤 했다.

병중에 느닷없이 불쑥 솟아오른 밥은 바로 그 밥이었다. 작은할아버지와 겸상을 하여 먹었던, 김이 모락모락 나던 어린 시절의 그 밥. 그 밥 속에는 이 세상에서 절을 가장 잘 하시던 작은할아버지의 모습과 오롯하게 인간의 모습을 한 고향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밥과 함께 작은할아버지의 미소가 떠오르자 비로소 군침이 돌았다. 밥을 한 공기, 또 한 공기 해치울 때마다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작은할아버지의 미소가 식욕을 돋군 것이다. 나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밥이란 그런 것이다. 세상살이에 대한 겸손과 정성을 생각하면서 한 숟가락씩 떠올려야 하며,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생각하며 넘겨야 한다. 이 세상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만큼 신성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작은할아버지는 이 세상 그 어떤 선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선사해 주고 가신 것이다.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