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지식] 精·肉 '두번의 열반'
[한국의 선지식] 精·肉 '두번의 열반'
  • 이기창
  • 승인 2006.05.2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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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은 두 번의 열반을 맞이한 선사다. 적어도 한국 불교계에서는 그렇게 평가한다. 그렇다고 한암이 부활의 이적을 보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육체적 소멸에 앞선 첫번째 열반은 상징적이고 정신적인 의미를 지닌다. 두 차례 열반은 모두 한국전쟁의 극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

1951년 1.4 후퇴가 진행될 무렵이었다. 적의 은신처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국군의 판단에 따라오대산 일대의 사암(寺庵)도 작전상 소개와 소각의 대상이 되었다. 국군 소위가 소대원을 이끌고 한밤중에 월정사를 불태운 뒤 상원사로 올라왔다. 한암과 시자 몇 명이 절을 지키고 있었다.

시자들은 한암의 고집에 묶여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소위는 작전명령을 한암에게 설명했다. 한암은 잠시 기다리라고 이른다. 가사와 장삼을 다시 차려 입고 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상 앞에 정좌하고 합장을 한 한암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이제 불을 지르게나.”

“뭐라고 하셨습니까.” 깜짝 놀란 소위가 되물었다.

“이제 불을 지르라는 말이오.”

“스님,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그대가 장군의 부하라면 나는 불제자, 곧 부처님의 제자이거늘 어찌 깨닫지 못하는가. 그대가 장군의 명령을 따르듯이 나는 부처님의 명령에 따라야 된다는 사실을.”

한암은 순교를 결심한 것이다. 군대의 명령, 특히 전시의 명령은 거부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지시다. 피해갈 길이 없는 절대적 의미를 내포한다. 스스로를 죽일지언정 남을 해칠 수 없다는 한암의 무위심은 소위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소위는 법당의 문짝만을 떼어내 불태우도록 명령한다. 한암의 무위심이 상원사를 보존케 한 것이다. 당시 상황은 선우휘(鮮于輝)의 단편 ‘상원사’에 잘 묘사돼 있다.

시자들은 이후에도 피란을 거듭 간청하지만 한암은 이를 외면한다. 25년 전 오대산에 발을 들여놓을 때 종신을 발원한 터였다. 3월초 미질의 증세를 보인 한암은 일주일간 눕지도 마시지도 않고 앉아서 병마를 항복 받았다.

7일째 되던 날 아침 죽 한 그릇과 차 한잔을 들었다. 손가락을 꼽으며 “오늘이 신묘 2월14일이로다” 라는 말과 함께 반고씨 이전의 궁극의 세계로 돌아간 것이다. 양력으로 3월22일 오전 10시 좌탈(坐脫)의 자세로 열반에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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