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과 노스님] 노파의 소암과 황진이
[젊은 시인과 노스님] 노파의 소암과 황진이
  • 이홍섭
  • 승인 2006.04.25 13: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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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는 화두 중에 '노파소암老婆燒庵'이라는 화두가 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꺼내 놓고 장난스레 거량을 해 보는 화두이기도 하다. 얘기인즉슨 이렇다.

옛날에 신심이 두터운 노파가 있었다. 이 노파는 조그만 암자 하나를 지어 한 젊은 선객을 열심히 뒷바라지했다. 오로지 큰스님이 되기를 바라며 온갖 공양을 다했다. 그렇게 하길 이십여 년, 어느 날 노파는 선객의 공부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리라 생각하고 시험을 해 보기로 했다. 노파에게는 매일 스님에게 음식을 날라 주던 묘령이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절세의 미인이었다. 노파가 딸에게 말했다.

"얘야, 오늘은 스님을 한번 껴안아 보고 수행의 정도를 시험해 보거라."
딸은 음식을 들고 절에 올라가 선객이 공양을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선객을 껴안았다. 그러나 선객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러나 딸은 다시 스님의 품에 안기며 갖은 교태를 부렸다.

"스님, 기분이 어떠세요."
선객은 태연한 표정으로 잘라 말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고목나무가 언동설한에 차디찬 바위를 기대고 선 것과 같지요. 불씨 꺼진 재처럼 따스한 기운이 전혀 없습니다."

딸은 마지막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스님, 저는 오래 전부터 스님을 사모하여 왔습니다. 저를 한 번만 안아 주시지요. 제발 저의 정을 뿌리치지 말아 주세요."
그러자 선객은 흔들림 없이 말하였다.
"나는 수도를 하는 스님이오. 내게 있어 여자는 사마외도邪魔外道일 뿐이오. 썩 물러가시오."

노파의 딸은 더 이상의 유혹을 포기하고 암자를 내려와 어머니에게 낱낱이 고하며 말했다.
"어머니, 스님의 공부가 이제 성도에 이르셨나 봐요. 저 같은 처녀가 아무리 교태를 부려도 소용없어요."
딸의 얘기를 다 들은 노파는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고 이십 년이나 맹추 같은 날속한俗漢을 공양했구나. 흑산귀굴黑山鬼窟 속에 앉은 사마를 더 받들다가는 나도 그놈과 함께 지옥에 떨어지겠구나."
노파는 이내 암자로 달려가 그 선객을 쫓아내고 암자를 불질러 버렸다.

이 화두의 배경 이야기에는 죽은 선(死禪)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선(活禪)을 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 선객에 자기 수행에는 철저하였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자비심은 전혀 익히지 못했다. 노파는 자신이 이십 년 동안 정성스럽게 공양한 스님이 고목枯木처럼 인정머리 없고, 규율과 율법이나 따지는 죽은 선을 하였음을 깨닫고 암자를 불태워 버린 것이다. 이후 이 젊은 선객의 수행을 일러 고목선枯木禪이라 하였다.

물론 이 이야기는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라는 것이 아니다. 이 화두는 설령 타인이 자신을 유혹하려는 여인이라 해도 끝까지 따뜻한 마음과 자비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는 여인에게 빠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도 이 같은 가르침을 담고 있는 얘기가 전한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두 친구 스님 이야기이다. 골자는 이렇다.

어느 날 해가 저물어 가는데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 달달박박의 절로 찾아와서 하룻밤 머물러 가기를 청했다. 그러나 달달박박은 단호하게 이를 거절하며 말했다.
"절간은 청정한 곳이어서 여자를 가까이할 수 없으니 지체 말고 이곳에서 빨리 떠나시오."

쫓겨난 여인은 노힐부득의 절을 찾아가 똑같이 하룻밤을 청했다. 노힐부득은 잠시 고민한 뒤 말했다.
"여기는 여자가 머무를 곳은 아니나, 중생의 뜻에 순종하는 것 또한 보살행의 하나이거늘 어찌 깊은 골짜기 어두운 밤에 홀대할 수 있으리요."

노힐부득은 등불 아래서 쉬지 않고 염불을 외웠다. 날이 밝을 무렵 여인은 스님을 불렀다.
"내가 불행하여 마침 해산의 기미를 보이니, 원컨대 짚자리를 깔아 주길 바랍니다."
노힐부득은 이 말을 듣자 여인이 '슬프고 불쌍히 여겨져' 그래도 따라 하였다. 여인은 해산한 뒤 이번에는 목욕을 시켜 달라고 했다. 노힐부득은 '부끄럽고도 두려운 마음이 착잡하였으나, 슬프고도 민망한 정은 한층 더 간절하여' 더운물로 목욕을 시켜 주었는데, 놀랍게도 그 물이 금물로 변하였다. 노힐부득이 놀라자 여인은 말했다.
"스님도 이 욕조에 목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노힐부득이 그 말을 따랐더니 별안간 정신이 맑아지고, 피부가 황금빛으로 변하였으며, 돌연히 옆에 연대蓮臺가 놓였다. 여인이 스님에게 그 위에 올라앉기를 권하며 "나는 관세음보살인데, 이에 와서 스님을 도와 대보살을 이루게 하였노라"라고 말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런 일이 벌어진 사실도 까맣게 모르고 있는 달달박박은 '얹저녁에 노힐부득이 반드시 계를 어겼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노힐부득을 찾아갔다. 그런데 노힐부득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그가 연대 위에 앉아 미륵존상 자세를 취하며 온몸에서 광명한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힐부득의 몸은 모두 금빛이었다. 달달박박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린 뒤 절을 했다. 노힐부득은 자비충만한 목소리로 친구에게 "욕조에 남은 금물이 있으니 목욕을 하라"고 권했다.

나는 위의 두 화두를 생각할 때마다 황진이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당대의 유명한 고승이었던 지족 선사를 하룻밤 만에 파계승으로 만들고, 서화담을 최고의 성인 반열에 올려놓은 그 유명한 전설 말이다. 혹시 지족 선사는 자신을 격파(?)하러 온 황진이의 속셈을 알고 자비심을 이기지 못해 태연히 활선을 한 것은 아닐까. 반면 서화담은 황진이의 속셈을 단숨에 눈치채고 고목선枯木禪을 행한 것은 아닐까. 유교 사회였던 당대에 고목선을 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반면 당시만 해도 천민 취급을 받던 스님에게 고목선의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영리했던 황진이는 유교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시 거꾸로 예기한 것은 아닐까. 나 같은 날속한한테는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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婆子燒庵 2006-04-26 18:44:26
선문염송의 파자소암(婆子燒庵) 화두를 소개 하셨습니다.
훗날 그 스님이 암자로 돌아와 문득 한생각 개달으고 읊은 구절이 있으니
불성무선악 佛性無善惡
불성무남녀 佛性無男女
불성무장단 佛性無長短
불성무염정 佛性無染淨

노파의 딸을 품었어도 불을 질렀을 것입니다.어찌 해야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