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과 노스님] 성당에서의 법문
[젊은 시인과 노스님] 성당에서의 법문
  • 이홍섭
  • 승인 2006.04.10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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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은 신부님이나 수녀님들하고 친하다. 절에 있다 보면 이들이 서로 만나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잿빛 승복을 입은 스님들과 같은 잿빛 옷을 입은 수녀님들이 햇빛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청초하고 담백하게 다가온다. 수행자들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날 노스님이 속초시내에 있는 성당에 가자고 했다. 신부님께 성당에서 법문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좀체 법문을 하지 않으시는 터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성당이라니.

성당에 도착하자 이미 교인들이 성당 안을 꽉 메운 채 설법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 앞에서 설법을 시작하셨다.

"여기 계신 분들은 세계에서 가장 팔리는 책인 성경과 신부님의 좋은 말씀에 젖어 사시는 분들인 만큼 저는 그저 산에 살면서 들은 얘기와 생각을 조금만 할까 합니다."

교인들은 귀를 모으고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은 고려장 일화를 통해 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아들이 지게에 어머니를 지고 산에 버리러 가는데 어머니가 지게 위에서 솔잎가지를 하니씩 떨구며 가더랍니다. 아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이 길이 너무 험해서 네가 내려갈 때 길을 잃어버릴까 봐 그런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부모 마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스님은 세상사의 보편적인 진리로 종파를 뛰어넘고 계셨다. 또한 테레사 수녀님의 삶에서 감동받은 얘기를 하신 뒤 이를 유마사상, 즉 남이 아프면 내가 아프고 죽은 사람을 보면 나의 죽음을 보아야 한다는 가르침과 연결지으셨다. 한마디 어려운 말, 한마디 심각한 경구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끌어냈다. 마지막 설법은 웃음으로 마무리지었다.

"제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저희 절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관에 이곳 신자들이 많이 찾아주신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불자들보다 여러분께서 더 자주 다녀가신다는 얘기를 듣고 저는 먼저 제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집이 크다고 큰집이 아니겠지요. 애국지사가 살면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큰집이라고 합니다. 여기 이 성당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게으른 제가 큰집 한 번 구경하러 왔습니다."

스님은 큰 박수를 받고 단상을 내려왔다. 신부님은 스님에게 성경을 선물했다. 그리고 스님은 신부님을 절로 초대하며 설법을 부탁하셨고, 신부님은 꼭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얼마 뒤 신부님은 절에서 강연을 했다. 신무님의 뒤에서는 탱화속 부처님이 그윽하게 미소짓고 계셨다. 나는 강연이 끝난 뒤 손을 마주잡고 가는 스님과 신부님을 따르며 참으로 아름다운 길 위를 걷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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