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스님 성전] 자기와 이별하기
[미소스님 성전] 자기와 이별하기
  • 김영태
  • 승인 2006.03.28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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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가 보다. 꽃이 피기 시작한다. 겨울이 끝나고서야 봄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겨울과 이별을 하고 온 시간의 모습은 여리고 맑고 따뜻하다. 무겁고 어둡고 깊었던 시간을 벗어난 봄의 모습은 새롭다. 시간은 스스로 계절 마다 이별을 하며 새롭게 태어난다.

산길을 걸으며 아직은 시린 봄의 가벼운 바람과 맑은 햇살을 만난다. 상큼하다. 길 모롱이를 돌다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한참을 있었다. 태양이 내게로 오는 것만 같다.

내 몸의 전부가 흩어져 버리고 태양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만 같다. 태양도 붉고 나 역시 붉다.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고 태양 아래 서있는 나 또한 없어지고 오직 붉은 기운만이 대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다. 겨울을 떠난 봄의 모습처럼 나를 잊은 자리에서 나는 새롭다.

산길을 걸으며 내게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았다. 중년의 나이, 나빠진 시력, 소유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가보지 않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과 아직 남아있는 세속적인 삶의 잔해들. 문득 나는 내가 무거웠다. 그것들을 다 껴안고는 이 시간의 능선을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 때 내가 사랑했고 한 때 내가 멋이라고 부르던 모든 것들과 이별을 하고만 싶었다. 단순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유롭게 먼 시간의 길을 걸어가고 싶었다.

명나라 때 진계유는 이렇게 말했다고 정민은 그의 저서 ‘책읽는 소리’에 적고 있다.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경박했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되돌아 본 뒤에야 전날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예전에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다.”

자기를 돌아본다는 것은 기존의 자기와의 이별을 의미한다. 성찰은 경박했고 조급했고 지나쳤던 자기의 모습과 헤어지라 말한다. 버림으로 가벼워진다는 것이 성찰의 가르침이다. 우리가 멋이라 부르던 것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애착했던 것들이 모두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버리고 떠나는 자유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면 삶은 언제나 욕망을 쫓아가게 되어 있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유와 만날 기약이 없다. 그는 욕망이라는 무거운 자기를 껴안고 일생을 살기 때문이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와 이별할줄 아는 사람만이 자유롭게 시간의 길을 걸어 가는 행복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봄볕은 가벼운 데 그 아래를 걷는 나는 무겁다. 마음을 열고 돌아보면 나의 모습은 언제나 실망이다. 그것은 어둡고 무겁고 우울하다. 그런 나와 나는 이제 이별 하고 싶다. 꽃을 물고 오는 봄처럼 나도 나와 이별하고 가볍고 자유롭게 길을 가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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