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의 웰빙한방] 어혈
[황치혁의 웰빙한방] 어혈
  • 황치혁
  • 승인 2006.03.20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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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혈로 인한 생리통입니다.”
20대 중반의 미혼여성을 진료한 후 생리통의 원인을 말해주자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후 “어혈은 타박상 등의 외상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해 온다. 어혈이란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어혈이 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니 나오는 당연한 질문이다. 이렇게 되면 진료가 아무리 바빠도 어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밖에 없다.

“00님의 생리통은 몸이 차서 생긴 어혈이 원인”이라고 말을 꺼낸 뒤에 “몸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찬 기운에 상하게 되면 혈액 순환에 장애가 발생될 수 있는데 자궁쪽에 문제가 생긴다면 생리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심하면 불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어혈의 원인은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그 순간 “어혈의 다른 원인은 어떤 게 있어요”라고 물어온다. 진료는 이미 끝났는데 어혈에 대한 강의를 시작해야 할 판이다. 잠시 고민 끝에 “빠른 시일 내에 어혈에 대한 칼럼을 쓰고 그 원고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진료를 끝냈다.

실제로 한의원에 가면 ‘어혈’이란 말을 자주 듣지만 어혈이 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충 나쁜 피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만다. 타박상 등의 외상으로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생리통도 만들고, 두통도 생기게 하는 어혈이 뭘까. 한의사들은 어혈로 인해 현기증, 이명, 수족냉증, 가슴 두근거림도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다양한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은 어떤 것이고, 어혈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먼저 어혈이 있으면 나타나는 증상을 알아보자. 한의사들의 어혈진단법을 참고한다면 비교적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좀 경력이 쌓인 한의사들은 ‘척보면 압니다’는 정도의 수준이 된다. 얼굴만 봐도 어혈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표시가 나기 때문이다.

먼저 어혈이 있으면 얼굴색이 검거나 창백하다. 창백한 사람은 몸이 차갑기 때문. 보통사람의 안색보다 유난히 희고 심할 경우 푸른빛을 띤다. 한마디로 핏기가 없는 얼굴이다. 반대로 몸에 열이 있어 안색이 검붉은 색을 띠는 분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입술은 마르고 거칠어 보인다. 안색 이외에 얼굴의 기미나 점도 어혈을 진단하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기미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잘 생기거나 점이 많아도 어혈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상의 특징에 환자의 피부까지 거칠고 건조한 편인데다 입술이 진한 보라색을 띤다면, “아하~ 어혈이 확실하군”이라며 확진할 수 있다.

이들의 잇몸을 살펴보면 선홍색을 띠지 못하고 어두운 밤색을 보인다. 혀 아래의 정맥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더 검은 편이다. 손톱 부위가 약간 검은 색으로 나타나고, 다리에 피부의 혈관이 툭툭 불거져 올라오는 것도 어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만 참고해도 어혈의 유무는 확인할 수 있다. 간혹 “살짝만 부딪쳐도 멍이 잘 들어요. 어혈이 있는 게 아닌가요”라고 묻는 분들도 있다. 이 경우엔 어혈의 가능성도 있지만, 그 보단 비장의 기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한의사들은 이외에도 어혈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있다. 우선 맥을 보면 어혈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맥을 집으면 삽맥(澁脈)이 나타나는데 혈관의 박동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약간 꺼끌거리고 느리게 느껴난다. 복진시에도 어혈을 확인할 수 있다. 배꼽의 왼쪽 아래 부위가 누르면 아프고, 평상시에도 그 부위에 팽만감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면 어혈은 왜 나타날까. 가장 흔한 원인은 타박상이다. 교통사고 등의 큰 사고도 있지만 가벼운 염좌, 타박상도 어혈을 만든다. 외부의 타격 등으로 혈관에 문제가 생겨 피부조직으로 혈액이 나온 상태. 간단히 말하면 멍이 든 것이다. 한의원에서 이 같은 외상성 어혈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치료법은 부항이다. 삔 부위가 붓고 멍이 든다면 혈관의 손상으로 인한 내출혈이 있다고 보아도 된다. 내부의 출혈이 멈춘 후에 보통 ‘죽은 피’라고 표현하는 어혈을 부항으로 빼낸다. 그 다음에 남은 어혈을 잘 배출시킬 수 있게 침과 약을 병행, 치료한다. 한의학에선 타박상으로 어혈이 생기는 곳도 구별해 치료하는 것이 원칙이다. 혈관 손상이 심한 것으로 판단되면 수질, 망충 등의 동물성 약을 사용하고, 조직의 손상이 심하면 도인, 홍화, 소목 등의 식물성 약재를 사용한다.

부인과 질환 때문에 나타나는 어혈도 있다. 여성의 생리나 자궁의 혈액순환 문제로 생기는 어혈이다. 이 때는 하복부의 혈액 순환을 촉진하기 위해 따뜻한 성품의 소회향, 육계 등의 약재를 쓰고 혈액대사 전반을 활성화하는 사물탕을 같이 쓰며 치료한다. 이외에도 혈액순환이 원활치 않아서 나타나는 어혈도 있고, 빈혈로 인한 어혈도 있다.

정리하면 여러 원인에 의해 혈관을 벗어나 조직에 고여있는 혈액을 어혈이라고 볼 수 있다. 어혈의 범위를 좀 더 확대한다면 혈관내의 혈액이나 기름 덩어리도 어혈로 볼 수 있고, 혈관이 충혈 또는 울혈되어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긴 상태도 어혈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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