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스님 성전] 제주의 바람
[미소스님 성전] 제주의 바람
  • 김영태
  • 승인 2006.03.13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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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나는 바람을 찾아 제주를 갔었다. 성산의 바람, 성산 앞바다는 언제나 취해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바람에 취한 바다의 모습이었다. 성산 앞 바다에서 나는 바람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본 바람과 내가 느낀 바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손은 무디었다. 나의 눈조차 바람을 그리기에는 너무 흐렸다. 바람을 표현하고 바람을 그리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하기만 했다. 누군가 바람을 그릴 수 있다면 그는 대단한 화가나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서야 제주에 자리한 도반의 암자에서 비로소 바람을 표현하는 사진작가의 한 작품을 보았다. 「은은한 황홀」이라는 그의 사진집에는 바람의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나무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갈대숲을 울리고 지나는 바람의 모습을 작가는 순간적으로 포착하고 있었다. 그의 사진집을 보는 순간 나는 성산의 바람을 떠 올렸다. 그리고 바람을 그리고 싶어하던 내 부질없는 바램까지도 떠올랐다. 누군가 내 바램의 끝에서 그토록 그리기 원했던 바람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내 젊은 날의 소망과의 만남이기도 했다.

도반스님의 암자에서 나는 함께 밤늦도록 그의 사진집을 보았다. 도반스님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밤에 듣는 사진작가에 관한 이야기는 도량을 가득 메운 안개보다도 슬픈 이야기였다. 이십여 년 전 제주에 들어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그는 이제 더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했다. 루게릭병에 걸린 그는 죽을 날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제주의 바람과 빛을 그보다 잘 표현한 이가 없다는 스님의 목소리에는 어떤 아쉬움이 짙게 묻어 났다. 나는 문득 그를 찾아가 보고 싶었다. 그의 작품과 죽음을 마주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를 찾아가는 아침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그것은 내 가슴속에 있는 제주의 모습이었다. 추억에 젖어 찾아간 그의 전시실은 폐교를 개조한 곳이었다. 돌들이 외곽을 이룬 길을 걸으며 우리는 그의 전시실에 들어섰다. 전시실에서 만난 그의 작품들은 책으로 보던 것 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그를 잠시 보았다. 의자에 앉아 창 밖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에는 어떤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기한 자가 만날 수 있는 달관이었다. 바람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가 이제는 바람이 되어 떠나려는 것이다. 그는 내 도반스님을 향해 미소지으며 힘겹게 목례했다.

전시실을 나서며 나는 수선화를 보았다. 그것은 그의 힘없는 미소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하지만 꽃잎 속에 금잔 하나를 품은 수선화는 그의 삶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삶이 아름다운 자만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돌아오는 길 내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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