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과 노스님] 파랑새는 있다
[젊은 시인과 노스님] 파랑새는 있다
  • 이홍섭
  • 승인 2006.03.13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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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밥을 축낸지 2년여, 비승비속의 삶에 서서히 지쳐갈 때 그 새는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났다.

파랑새......

머리깎은 자, 머리 기른자 구분 없이 누구나 일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꿈의 새이자 희망의 상징.

그날 홍련암을 찾은 것은 파랑새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니 나는 파랑새 전설 따위는 아예 믿지 않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 그 아득한 시절에 의상대사가 이곳 홍련암에서 만났다는 그 신비한 새를 어떻게 믿으란 마인가. 설령 당시 파랑새가 있었다 하더라도 현재까지 계속 살고 있으리라는 것은 내 상상의 한계를 넘는 일이었다.

낙산사 요사체에 있는 내방을 떠나 추적추적 홍련암을 찾은 것은 파랑새가 아니라 한 할머니를 뵙기 위해서였다. 홍련암에서 '할머니 보살'로 통하는 이 할머니는 내후년이면 여든이 되는 분으로 30여년을 오로지 홍련암에서만 살았다. 할머니의 일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스님들과 신자들에게 밥을 해 주는 것. 절집 말로 공양주보살이다.

할머니는 열아홉에 시집가 서른 되던 해에 남편을 병으로 잃었다. 언젠가 할머니는 "딱 십 년간 남편과 살아 밨어"라고 말했는데, 이 '딱 십 년'이라는 표현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애뜻함이 배어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할머니는 사과장수, 생선장수 등 안 해 본 장사가 없이 모진 역경을 겪으며 두 아들을 키워 냈다. 그리고 이들이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미련 없이 절로 들어왔다. 절이 마냥 편해서였다. 몇 군데 절을 돌다 정착한 곳이 홍련암이었다.

이곳에서 할머니는 숱한 스님들과 신도들을 위해 밥을 지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 두 시 반에 지친 몸을 일으켜 관음보살전에 기도를 올렸다. 할머니의 기도는 단순명료했다. 두 아들이 남편처럼 병으로 가지 않고 무병장수하게 해 달라는 게 기도의 전부였다. 할머니는 기도 덕택에 자식들이 먼저 간 남편보다 훨씬 오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할머니는 사람들이 절에 와서 잘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할머니는 파도치는 날이면 기둥이 뽑혀 나갈 듯 요동치는 이 바다동굴 위 암자에서 밥 짓는 일과 기도하는 일로 내 나이만큼의 세월을 지켰다. 나는 쪼르겨 앉아 또 물었다.

"자식들하고 살고 싶지 않으세요."
할머니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여길 떠나. 정든 서방님이 여기 계신데."
나는 그 서방님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수줍음 많은 할머니가 법당 부처님을 서방님이라 대답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낙산사 내 방에서 홍련암까지는 채 십 분도 걸리지 않는다. 나는 심신이 피로할 때면 할머니를 찾아가 뵙곤 했다. 뵙는 날도 있지만, 시장에 다니러 가신 날은 뵙지 못하고 돌아온다. 하지만 나는 늘 할머니를 뵙고 왔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때마침 홍련암에는 붉은 해당화가 멀리까지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나는 향기가 싸한 법당 입구의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휘 둘러보고 있었다. 바다에는 여러 척의 배가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 중 해안 근처에 떠 있는 조그만 배 한 척에는 단 한 사람의 어부만 타고 있었다. 어부는 열심히 그물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나는 또 철없이 중얼거렸다.
"누군가 내 삶을 내려다보고 있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이겠지."
나는 고해의 바다에서 쩔쩔매는 삼십대였다. 철저한 구도행각을 펼쳐 본 적도, 목숨을 건 믿음을 마음에 새겨 본 적도 없었다.

파랑새를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처음 그 새가 나타났을 때 나는 그 새가 바로 전설 속의 파랑새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단 한순간에 천 년 전의 새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새는 영락없는 파랑새였다. 그 새는 암자의 바다 쪽 처마에서 나왔다가 바다 위 허공을 한 바퀴 휘 돌고는 다시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파랑새는 관세음보사이 상주하고 있다는 이곳 낙산사와 홍련암을 상징하는 새이다. 관세음보살은 고통받고 있는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진심으로 부르기만 하면 곧바로 그 음성을 관하여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해서 중생들과 가장 친근해진 보살이다. 파랑새는 바로 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일명 관음조라고 불리기도 한다.

의상대사는 이곳 홍련암에 와 파랑새를 보았고, 파랑새가 동굴속으로 자취를 감춘 자리에서 목숨을 건 기도를 올린 끝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그 이후 파랑새는 진실한 구도자에게만 나타나는 믿음의 새,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새가 사라진 곳을 멍한 눈으로 한참 동안 더듬거렸지만 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홍련암에 파랑새가 산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절에 머무는 사람들에게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할머니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 나이만큼의 세월을 이곳에서 보낸 할머니는 의심 많은 내 눈을 비벼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계신 공양간 쪽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할머니에게 그것을 질문하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는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서 할머니의 대답을 상상해 보았다.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았다.

"응, 그 파랑새는 나랑 같이 살고 있지. 내가 매일 밥을 해 주는데.......이제야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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