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지식]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우다
[한국의 선지식]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우다
  • 이기창
  • 승인 2006.03.0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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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월은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운 보기 드문 선사이기도 하다. 절집에는 일반인의 귀에도 익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ㆍ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의 전통이 있다.

그 유명한 백장청규(百丈淸規)를 만든 중국 당나라 백장(720~814)의 가르침이다. 이 책은 선문의 직책에서부터 식사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선종종단의 제도와 규칙을 담고 있다.

백장은 일도 수행의 연장, 더 나아가 일과 참선을 동일하게 보았다. 백장이 일을 중요하게 여긴 까닭은 노동은 무시한 채 앉아있기만 하면 참선이 되는 것으로 여긴 수행자들에 대한 경고였던 셈이다.

특히 육체노동에는 보청(普請ㆍ널리 청함)의 규칙이 적용된다. 보청은 절집 구성원 모두가 골고루 힘을 내어 노동에 힘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선어다.

혜월이 내원사에서 납자들을 지도할 때 였다. 그는 누구보다 소를 사랑했고 밭에 나가 일하기를 즐겨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중은 혜월의 눈치를 살펴 일하는 시늉만 냈고 소 때문에 혹사당한다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혜월은 대중이 소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대중이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었다. 혜월은 장 날이 되자 소를 팔았다. 소 판 돈으로 음식을 듬뿍 사와서 대중공양을 시켰다.

절의 살림살이를 맡아보는 원주(院主)가 외출에서 돌아와 텅 빈 외양간을 보고 소를 찾아나섰다. 혜월보다 더 소를 아끼고 사랑했던 그는 물어도 대답을 않는 대중의 분위기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혜월의 방 앞에서 그는 “큰 스님”하고 불렀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큰 스님 소가 없어졌습니다.” 원주는 이 말과 함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옷을 다 벗은 혜월이 “음매” “음매” 소 울음소리를 내며 방안을 기어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주는 이윽고 혜월이 갑자기 소가 된 연유를 알았다. 혜월은 이미 백장청규마저 초월한 경지에 다달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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