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수월이 사제 만공과 한담을 나누다가 갑자기 숭늉그릇을 들어보이며 질문을 던졌다.
“여보게 만공, 이 숭늉그릇을 숭늉그릇이라고도 하지 말고, 숭늉그릇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고 한 마디로 똑바로 일러 보게.”
만공이 숭늉그릇을 들어 문 밖으로 집어 던지고는 말없이 앉아 있자 수월이 말했다.
“잘 혔어, 참 잘 혔어!”
만공이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든 이는 한갓 형상에 얽매인 대답에 지나지 않는다. 이 법거량(法擧揚)은 두 사람 모두 집착에서 벗어나 지혜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경지에 들어갔음을 말해준다. 깨달음의 심지를 시험해보는 법거량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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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과는 전생에서부터 운명의 끈으로 연결된 듯 싶은 관세음에 얽힌 화두를 보자. 중국 당시대의 선객 도오(道吾ㆍ769~835)와 운암(雲巖ㆍ780~841)의 이 법거량은 ‘운암대비천안(雲巖大悲千眼)’의 화두로 전해진다.
운암이 사형 도오에게 법담을 건넸다.
“관세음보살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갖고 있는데 그 걸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밤에 자다가 베개를 놓쳤을 때 더듬어 찾으려고.”
“알았습니다.”
이런 건방진 놈이 있느냐는 듯이 도오가 소리쳤다. “알긴 무엇을 알아!”
눈 하나 깜짝 않고 운암이 말했다. “온 몸이 다 손이며 눈입니다.”
도오는 제법이다 싶었다. “열에 여덟까지는 갔다만 아직 멀었다.”
운암은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다. “그럼 사형께서 한 번 말해 주십시오.”
도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온 몸이 손이고 눈이지.”
운암의 대답은 우주의 법계가 다 관세음의 손이고 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답을 내놓고도 “아직 멀었다”는 도오의 덫에 걸려 “그럼 사형께서…”의 사족을 달았다. 선의 세계는 이처럼 한 순간을 놓치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안과 밖에 머물지도 않고 가고 옴이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이 저절로 사라져야 삶과 죽음이 서로 다름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아무튼 이 법담을 나누고 헤어진 수월과 만공은 이승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수월은 이후 법은을 베풀어준 스승 경허의 행적을 찾아 북방으로 유랑의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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