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과 노스님] 호랭이 스님과 조폭
[젊은 시인과 노스님] 호랭이 스님과 조폭
  • 이홍섭
  • 승인 2006.02.06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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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절간에 호랑이처럼 무서운 노스님 한 분과 노스님을 시봉하는 겁 많은 젊은 스님 한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절에 짧은 머리를 하고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한 떼의 청년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조용하고, 청명했던 절은 이들에 의해 갑자기 어두컴컴해졌습니다. 젊은 스님과 공양주보살은 그 자리에 서서 한발짝도 옮기지 못했습니다.

하나같이 마구 썰어 놓은 깍두기처럼 생긴 청년들은 호랑이 스님 방 앞에 서서 노스님을 불렀습니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노스님과 깍두기들 사이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깍두기들은 금방이라도 문짝을 부수고 들어갈 태세였습니다. 젊은 스님과 공양주보살은 법당 뒤에 숨어서 숨을 죽였습니다. 그때 스님 방에서 침묵을 깨고 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방이 좁으니까 대장 한 놈만 들어오너라”

일순 깍두기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당황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아들 우물쭈물 서 있자 대장으로 보이는 깍두기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너그들은 바깥에 서 있그라. 내 오늘은 저 영감탱이에게서 반드시 도장을 받아낼 테니까.”

젊은 스님은 은사스님을 늙은 영감탱이라 부르는 깍두기들에게 울화가 터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이 저 아래 마을에 있는 절땅을 빼앗으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 때였습니다. 며칠 전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찾아와 절땅에 주차장을 만들겠다며 노스님에게 허락을 받아 내려 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관광객이 늘어나자 마을 사람들의 눈빛은 사납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스님을 존경심으로 대하던 마을 사람들의 눈빛도 이 때부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스님은 호랑이 같은 은사스님이 제발 성질을 죽여 옥체보전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깍두기들의 대장이 노스님의 방문을 여느 순간 뜻밖에도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스님을 만나면 삼배를 해야 한다는 법도를 모르나, 일단 절을 하고 난 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해라.”

순간, 대장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노인네를 협박해 도장을 받으려고 온 것인데 졸지에 절부터 해야 할 판이 되어 버렸으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님한테 절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른한테 절한다고 생각해라. 너는 부모님께 절도 안 하나. 절에 왔으니 절의 법도를 따라야지. 부처님께서는 법도를 안 지키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했다.”
대장은 복잡한 머릿속 계산을 접고 일단 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노인네한테 절한다고 해서 대장으로서의 위신이 깎일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대장은 어정쩡한 자세로 절을 했습니다.
“스님에게 절할 때는 세 번을 해야 한다. 한 번 하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니 두 번 하도록 해라.”
대장은 속이 부글부글 끊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한 번 절을 한 이상 물릴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절, 세 번째 절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자세가 나왔습니다.

“니는 중 해도 되겠다. 절 한 번 잘하네.”
대장은 스님의 갑작스런 칭찬을 듣고 나니 쑥스러워졌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보고 절을 잘한다고 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장이 마지막으로 절을 해 본 것은 사춘기 시절 고향집을 도망쳐 나오기 전 집안 제사 때였습니다. 그날 이후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절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대장은 이상스레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삼배를 하고 나자 귀가 열리면서 열리면서 노스님 말이 귀에 쏙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자네는 호랭이가 사냥을 다닐 때 무리지어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대장은 스님의 뜬금없는 호랑이 얘기에 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장은 일전에 청탁을 받아 동물원을 접수하러 갔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우리 안에 있던 늙은 호랑이 한 마리를 보며 자신도 호랑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가 초원을 어떻게 다니는지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금방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네는 티브이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도 안보나. 거기에 보면 호랭이가 자주 나오는데 절대 무리지어 다니는 법이 없다. 알겠제. 대장이면 호랭이 아닌가.”

대장은 스님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동물원에서 만난 호랑이에게서 받은 느낌도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무리지어 다닐 것 같지 않았습니다. 대장은 한마디 대꾸도 못 하고 그저 가만히 앉아 스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너가 호랭이하고 생각하고 한마디 더 하겠다. 호랭이는 동물 중에 왕이지만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 니는 호랭이가 토끼를 잡을 때를 못 봤제. 한 번 봐라. 온 근육이 긴장으로 꿈틀대고, 털이 곧추선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을 하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랭이라고 놀고 먹으면 쓰겠나.”

그날 대장은 다시 삼배를 올리고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대장의 몸짓과 행동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부하들은 대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장이 갑자기 무리를 벗어나 홀로 다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저러다 사고 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한 부하가 용기를 내 자신들의 걱정을 담아 직언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대장이 갑자기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안면근육을 팽팽하게 만들면서 말했습니다.

“느그들은 호랭이가 무리지어 다니는 걸 봤나?”
부하들은 겁에 질린 토끼처럼 웅크리며 대답했습니다.
“못 봤는데요……”
깍두기들이 다녀간 며칠 뒤 스님은 노스님께 조심스레 여쭈었습니다.
“조폭들이 다시 올라오지 않을까요. 스님?”
노스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동물의 왕국 나올 시간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티브이나 켜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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