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스님들이 법문할 때 종종 인용하는 문구 가운데 “張大敎網漉人天之魚(장대교망녹인천지어)”가 있다. “부처님의 큰 가르침을 펼쳐서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라는 의미를 가진 글귀로 동산 스님께서 소장하던 옥도장에 새겨져 있다.(불교닷컴2021년 6월 9일자 ‘불교와 바다와 그물’ 참고)
그동안 범어사의 주지를 역임한 스님들께서 중생제도의 뜻을 품은 제대로 된 그물을 부산과 경상권을 향해 던졌다면, 과거 ‘불도(佛都)’라 불린 부산 지역의 불교가 오늘날과 같은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산의 불자 수 감소에 대하여 역대 주지스님 중 자유로운 분이 있을까? 문도화합으로 내부 조직 및 포교 역량을 강화하는 일은 외면하고 엉뚱한 일에 천착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
2013년에 범어사가 주체가 되어 ‘한국전쟁 정전60주년 한반도평화대회’가 열렸다. 당시 범어사 주지는 수불 스님이었다. 그해 2월 20일 대회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시발로 9월 27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자비구현 인류화합 한반도 평화대법회’로 대미를 장식하기까지 8개월에 걸쳐서 대소 행사가 봉행되었다.
필자가 전체 행사의 기획안을 가지고 처음 범어사 주지 접견실에서 대중들에게 설명을 했을 때 참석자 대부분의 스님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 큰 행사를 어찌 감당해 내겠느냐며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지스님의 결단으로 행사는 8개월 간 진행됐다. 다만 이 행사의 의미와 저력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오늘날까지 지속해 왔다면 범어사의 위상은 고양되었을 것이고 한반도 평화담론 형성에도 큰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적지 않다.
대규모 행사에 대한 주지스님의 결단력은 뛰어났으나 행사 후에도 범어사가 그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끌고 가며 활성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필자가 이렇게 지난 일을 거론하는 것은 주지를 중심으로 하는 범어사 지도부와 총림 대중이 마음만 먹으면 포교는 물론 불교문화의 대사회화에 크게 기여할 심도 깊고 광폭적인 다양한 일들을 무한하게 실행시켜 갈 수 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큰 도량의 책임자인 승려가 아집과 편견에 빠져서 교세 확장은 뒷전으로 하고 인사권이며 재정권을 휘두르고 자기세력 확장에나 매몰되어 있으니 온갖 문제가 파생되고 총림은 분란에 휩싸이며 교세는 쪼그라든다.
오는 30일 금정총림 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범어문도 총회’를 개최한다. 어떠한 결과가 도출되고 그 진행의 향배는 알 수 없으나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불조와 동산혜일 대종사 전에 진실한 참회를 올리는 일이다.
방장과 주지가 바뀌고, 설사 과거 선지식이 환생해서 온다 해도 문도 대중이 구태와 안일과 아집과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범어사가 동산스님의 정신을 계승하여 교구로서의 제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자진해서 내면의 탐심과 치암부터 소멸시킬 때만이 동산스님의 유훈인 중생교화의 장대한 황금그물을 온 세상을 향해 자신 있고 힘차게 던질 수 있다.
끝으로 종단의 여러 대덕들은 범어사의 이번 사태의 발단이 무엇이며 현실적으로 누구의 책임이 큰지, 일련의 진행과정은 과연 승가답고 여법했는지, 어찌 회향되는 것이 지혜로운지 등에 대해 관심과 조언을 아끼지 말 것을 부탁드린다. 나와 남, 우리 절과 남의 절 일이 따로 있음이 아니다.
/ 法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