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열사 42주기 추모문화제 거행
김동수 열사 42주기 추모문화제 거행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2.05.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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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조선대 서석홀서…구술영상 최초 공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최후까지 항거하다가 산화한 김동수(조선대 전자공학과 3학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전남지부장)를 추모하는 ‘5‧18민주화운동 42주년, 김동수열사 추모 문화제’가 21일 오후 3시 조선대학교 서석홀 4층에서 거행된다. 이번 추모문화제에서는 김동수 역사 찾기 프로젝트 구술 영상이 최초 공개된다.

추모문화제는 조선대학교(총장 민영돈)가 주최하고 김동수기념사업회와 조선대학교 민주평화연구원(원장 김형중)이 주관한다. 문화제는 이날 2시 30분 조선대학교 민주공원 내 김동수 열사 추모비 앞에서 식전 헌화로 행사를 연다.

추모문화제 1부는 김동수기념사업회 오도선 조직교육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다. 개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 민중의례, 민영돈 조선대학교 총장 인사말, 이남 김동수기념사업회 회장의 배빈소개, 송호찬 조선대학교총학생회 회장의 김동수 열사의 삶 낭독, 기념공연으로 진행된다. 진도국악고등학교 이병채, 서주원, 권기홍선생님의 추모 노래 ‘꽃아 꽃아’로 1부를 마무리 한다.

2부에서는 추모문화제 2부에서는 ‘김동수열사 역사찾기 프로젝트’의 중간보고 형식의 23분 43초의 구술영상이 상영된다.

배훤희(전남대 불교학생회, 78학번), 송형순(열사의 고종사촌 누나, 당시 열사와 거주), 열사의 친구였던 이장국, 이남, 열사의 후배였던 오원재의 구술영상이 소개된다. 열사의 고종사촌 누나로 함께 거주했던 송형순의 구술을 통해 평소 말이 없었고 과묵했으며 소박했던 열사의 품성을 들을 수 있다.

아울러 시민회관에서 열렸던 법정 스님 초청강연회 사회를 보았던 당시의 장면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열사의 친구이자 조선대불교학생회 회장이었던 이남 씨의 증언을 통해 80년 당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용솟음쳤던 불교학생회와 조선대학교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열사의 후배였던 오원재 씨는 “말을 안 하니까 사람들이 누가 물어보면 ‘내가 그렇다고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라고 평소 자주” 말했다는 것과 늘 투쟁의 현장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했던 열사의 모습을 증언한다. 열사의 친구 이장국 씨의 증언을 통해 평소 학교생활과 사회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계기로 이장국 씨의 형인 이흥국 씨와 인연, 민주주의에 대한 현실 인식과 참여의 계기 등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왜 총을 들었나?’에서는 당시 조선대 전자공학과 4학년 선배인 위성삼 씨의 증언을 통해서 당시 항쟁에 참여했을 당시 자신의 존재를 보증해주면서 곤란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김동수열사가 항쟁의 현장에서 도청 상황실에서 학생수습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생생히 밝혀준다.

당시 기동타격대원 마삼훈 씨의 증언을 통해 5월 27일 항쟁의 마지막에 전남도청 민원실 2층에서 김동수 열사의 최후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낼 수 있다. 80년 광주시 봉축행사 진행위원장이었던 이순규 씨는 망월동 묘역에서 대불련 뱃지와 염주, 김동수라는 이름이 적힌 수강신청서를 통해 열사의 시신을 확인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당시 장성군 서삼면 부면장 김용대 씨는 열사의 죽음을 열사의 부친 고 김영석 씨에게 전할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에서 열사의 고종사촌 동생 변미자 씨가 열사의 할아버지가 6·25 전쟁 때 한마을에서 국군의 총탄에 의해 열두 명이 희생될 때 돌아가신 가슴 아픈 가족사와 열사와 가족들의 고통과 회한 등 애틋함을 밝힌다.

열사의 어머니 김병순 여사는 “그 이후 한 10년간은 돈도 없이 차를 타고 오려나 해서, 집 앞으로 버스가 지나가면 담박질을 치고 가서 혹시나 차에서 내리는가 하고 하루에 몇 번씩은 지켜봤었어. 미친 사람처럼”이라고 자식을 잃은 가슴 찢어지는 사연을 밝힌다.

열사의 동생 김동채 씨는 집안에 늘 소주와 안주를 마련해 놓고 동네 사람들에게 대접하면서 술에 의지해서 아픈 세월을 견디어 냈던 아버님의 모습을 그려낸다. 열사의 동생 김동룡 씨는 당국에 의해 감시와 탄압을 받았던 사연을 소개한다. 전남대 불교학생회 76학번 조강철 씨는 당시 계엄군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했던 사연과 열사에 대한 마음을 전한다. 전남대 불교학생회 78학번 오정우 씨는 자신이 군대 가고 김동수 열사가 대신 대불련 전남지부장을 맡게 되었다는 부채 의식과 짐을 짊어진 무거운 심정을 밝히고, 전남대 불교학생회 78학번 김정효 씨는 민주주의를 향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김희송 교수는 김동수 열사의 군검찰과 경찰의 검시조서에 사진이 없는 부분 의문점을 밝히고, “적어도 살아남은 자들은 5월 27일 사망자들의 개별 스토리는 한 분 한 분 다 이야기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책무다”라고 힘주어 말할 예정이다.

사업회는 “이러한 구술기록은 앞으로 김동수 열사와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조선대 민주화투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우정 씨는 80년대 당시 조선대 학생운동에 대해서 생생히 증언한다.

김동수 열사의 정신계승을 위한 방향을 민영돈 조선대학교 총장, 송호찬 조선대학교총학생회 회장, 조석주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장, 변대용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총동문회장, 장성시민연대 대표가 발언한다.

마지막으로 이병채, 서주원, 권기홍의 노래 “절망하지 말자”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모든 참가자들의 염원을 담아 추모문화제를 마무리한다.

김동수기념사업회는 ‘김동수 역사찾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구술작업을 수행해왔다. 구술작업팀(팀장 오도선)을 꾸려 김 열사의 가족, 동료 선후배 등 18명을 만나 구술작업을 촬영했다 대불련 출신 진영모 감독(기념사업회 기획분과장, 다뮤 감독)이 촬영을 맡았다.

사업회는 이번 추모문화제에서 공개되는 구술작업은 중간보고인 셈“이라고 했다.

김동수 열사는 1980년 당시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 3학년으로 조선대학교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민주투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5‧18민주화운동에 전남도청 항쟁지도부에서 학생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5월 27일 새벽 4시 30분경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 총탄에 의해 산화해, 현재 국립5·18민주묘지(묘지번호 2-27)에 안장됐다. 작년에 열린 <노먼 소프 기증자료 특별전>에 전남도청 김동수 열사의 최후의 사진이 최초로 공개됐었다.

김동수 열사는 80년 당시에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전남지부장으로 광주지역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 진행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봉축행사로 도청 앞 점등식과 5월 17일 법정 스님 초청 강연회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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