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의숙’ 계승 ‘만해학당’ 현판 걸었다
‘만해의숙’ 계승 ‘만해학당’ 현판 걸었다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2.04.19 16:3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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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선학원 “새로운 패러다임 대승불교운동 전개 토대”
법진 스님 “만해학 중심지 및 전통문화체험 시설 병행”
재단법인 선학원이 19일 만해의숙을 계승한 '만해학당'을 낙성했다.



재단법인 선학원 설립조사 만해 한용운 선사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하는 ‘만해학당(萬海學堂)’이 현판을 걸고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

선학원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 76번지에 구옥을 철거하고 한옥 건물로 ‘만해학당’ 설립을 발원한 지 3년여 만인 19일 현판식 및 낙성식을 봉행했다.

만해학당은 불교사상과 불교학을 배우는 도십 전법도량이다. 만해 스님의 각종 저술과 문학작품을 통해 스님의 사상과 업적을 계승하기 위해 3년여 간 불사 끝에 완공했다.

만해학당은 만해 스님 입적 후인 1945년 설립된 ‘만해의숙(萬海義塾)’의 역사적 의미를 계승한다. 만해의숙이 75년여 만에 만해학당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만해의숙(萬海義塾)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광복을 보지 못하고 입적한 1년 후인 1945년 서울 종로 견지정(堅志町, 견지동의 일제강점기 명칭)에 설립된 기숙형 사립교육기관이다. 만해 스님의 사상과 유지를 바탕으로 외세 문화 이전에 우리 민족 문화를 먼저 탐구해 민족정신을 발양(發揚)하고 정립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설립 취지문에 따르면 “고 만해 한용운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선생의 신념, 사상, 생활을 범(範)으로 하여 이 뜻을 널리 펼 인재를 기름으로써 건국의 대업에 이바지하려 한다.”고 밝혔다.

또 “민족문화의 발양과 민족정신의 고취를 통하여 만방협조(萬邦協調)의 인류문화에 공헌하고, 시사여생(視死如生, 죽음을 삶같이 여기고 두려워하지 않음)의 구국이념을 실천할 유위(有爲)한 인재의 육성을 목표로 한다.”고 설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만해학당 현판식.



만해의숙은 1년을 4기로 나누고, 1기를 3개월로 해 기초, 일반, 특수, 강의(講義) 과정을 밟도록 했다. 기초 과정은 국어, 국사, 영어, 지리, 세계사, 공민, 정치상식, 작문을, 일반과정은 정치, 경제, 종교, 사회, 윤리, 예술, 동서사상사를, 특수과정은 조선문화사, 사회사업, 수양강화, 학술강화, 예술강화, 시사강화 등 과목을 가르쳤다.

입학대상은 초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자 중 계몽운동에 종사하거나 하고자 하는 이었으며, 급비생(장학생)과 사비생으로 나누어 선발했다. 학칙 중에는 졸업생 중 성적이 뛰어난 이를 선발해 상급학교 입학이나 취직을 알선한다는 규정도 마련하고 있었다.

만해의숙은 1945년 말 첫 학생을 모집해 교육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1946년 3월 18일 자 ‘만해의숙 2기생 모집’ 기사와 같은 해 6월 16일 ‘만해 의숙 제3회 개강’ 기사로 미루어볼 때 광복 직후 학교를 설립해 3기생까지 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만해의숙이 선발한 급비생(장학생)은 ‘청년동원동맹’의 각 지방연맹에서 추천된 학생들로 구성하도록 했다. 여기서 ‘청년동원동맹’의 성격은 불명확하다. 광복 직후 당시 사회에는 우익과 좌익이 모두 ‘청년동맹’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구성해 활동했었다. 다만 만해의숙은 만해 스님의 법명으로 학명을 삼고, 학칙에 ‘민족문화의 발양과 민족정신의 고취’를 통해 인류문화에 공헌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어, 만해 스님의 애국애족과 민족문화에 긍지, 그리고 그의 사상과 이념을 학생들이 잇는 사립교육기관이었던 분명해 보인다. 또 교육과목에 조선문화사, 동서사상사, 종교, 예술 등 과목을 개설했던 것은 만해의숙의 운영목표가 민족문화의 발양과 민족정신 고취라는 학교 설립목적을 구체화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만해학당 낙성 및 현판식.



1954년 9월 27일 대한민국 대법원(판사 이성욱)은 판결문을 통해 “강도봉康道峰·김남전金南泉·김석두金石頭 등은 기미독립운동 당시 33인 중의 1인이며 이판계理判系의 선종의 지도자인 한용운이 (감옥에서)복역하다가 단기 4254년도(1921)에 출옥하게 되자 동인同人(한용운)을 중심으로 한 사판계事判系에 대응하여 이판계理判系의 수도원(을) 창립하고자 신도 최창훈崔昌勳 외 다수인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서울특별시 안국동 40번지 대지190평을 매입한 후 동 대지상에 목조기와집을 건축, 그 당시 범어사에서 인사동포교당을 폐지철거하고 옛 목재와 기와 약간을 (선학원)건축에 기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판결문은 선학원이 1934년 재단법인 인가 이후 1921년 최초 설립된 직후 당시 일제의 경제적 탄압을 피하고자 범어사에 신탁했던 재산을 환원하고자 제기한 소송 최종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는 선학원과 만해 스님의 직접적 관계를 증명하는 매우 구체적인 근거자료로 판단된다. 만공 스님이 보살계 계단을 개최하면서 “사찰령과는 관계가 없는 순전히 조선 사람끼리만 운영하는 선방(禪房)을 꾸려 불조 정맥(佛祖 正脈)을 계승하자”고 천명한 점도 이판계의 지도자인 한용운을 중심으로 한 수도원을 만들려 했다는 법원 판결과도 연결된다. 여기에 설립조사 중 한 명인 만해 스님 선양사업을 차근차근 벌여온 선학원이 광복 후 만해 스님의 유지를 잇기 위해 설립된 만해의숙을 현대적 이름이 ‘만해학당’으로 명명해 복원하려는 작업은 선학원의 설립 목적에도 부합해 매우 의미가 있다.



경과보고를 하는 총무이사 지광 스님.



선학원 총무이사 지광 스님의 경과보고에 따르면, 만해학당은 선학원이 2016년 설립 부지로 안국동 76번지 외 2필지의 건물과 토지를 매입했고, 2019년 6월 이사회에서 건립 예산을 편성했다. 이어 2019년 2월 설계계약과 설계를 시작하고, 기존 안국동 76번지 건물을 철거했다. 2020년 11월 신축부지 내 시굴 조사와 정밀 발굴 조사를 시행했고, 발굴 완료 후인 2021년 4월 착공했다. 만해 스님 입적 77주기인 2021년 6월 29일 ‘만해학당(전통문화체험관) 상량식’을 봉행했고, 이날 낙성했다.

만해학당은 토지 구입비 24억원, 건축비 9억여 원이 투입됐다. 대지면적 159.20㎡(48평), 연면적 191.04㎡(58평)으로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의 팔작지붕 목조 한옥 건물로 지어졌다. 지하에 강의실과 지상에 연구실 및 전통문화체험 공간 및 숙소가 마련됐다. 더불어 만해학당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만해학당 낙성 인사말과 발기문을 낭독하는 이사장 법진 스님.



이사장 법진 스님은 낙성 인사말 및 만해학당 발기문을 통해 “만해의숙은 만해 스님의 사상과 유지를 계승하고 외세에 맞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정립하고, 청년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뜻깊은 단체”라며 “만해학당은 만해의숙을 계승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유지를 받들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승불교운동을 전개하고자 설립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진 스님은 “만해학당에서는 만해 스님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통해 만해 정신을 선양하고, 나아가 만해 스님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고 실천하는 만해학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다양한 한국불교의 전통을 널리 알리는 전통문화체험관으로서 역할도 병행해 선학원 사부대중과 불자들의 교육과 수행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했다.
재단법인 선학원이 19일 만해의숙을 계승한 '만해학당'을 낙성했다.

재단법인 선학원 설립조사 만해 한용운 선사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하는 ‘만해학당(萬海學堂)’이 현판을 걸고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

선학원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 76번지에 구옥을 철거하고 한옥 건물로 ‘만해학당’ 설립을 발원한 지 3년여 만인 19일 현판식 및 낙성식을 봉행했다.

만해학당은 불교사상과 불교학을 배우는 도십 전법도량이다. 만해 스님의 각종 저술과 문학작품을 통해 스님의 사상과 업적을 계승하기 위해 3년여 간 불사 끝에 완공했다.

만해학당은 만해 스님 입적 후인 1945년 설립된 ‘만해의숙(萬海義塾)’의 역사적 의미를 계승한다. 만해의숙이 75년여 만에 만해학당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만해의숙(萬海義塾)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광복을 보지 못하고 입적한 1년 후인 1945년 서울 종로 견지정(堅志町, 견지동의 일제강점기 명칭)에 설립된 기숙형 사립교육기관이다. 만해 스님의 사상과 유지를 바탕으로 외세 문화 이전에 우리 민족 문화를 먼저 탐구해 민족정신을 발양(發揚)하고 정립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설립 취지문에 따르면 “고 만해 한용운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선생의 신념, 사상, 생활을 범(範)으로 하여 이 뜻을 널리 펼 인재를 기름으로써 건국의 대업에 이바지하려 한다.”고 밝혔다.

또 “민족문화의 발양과 민족정신의 고취를 통하여 만방협조(萬邦協調)의 인류문화에 공헌하고, 시사여생(視死如生, 죽음을 삶같이 여기고 두려워하지 않음)의 구국이념을 실천할 유위(有爲)한 인재의 육성을 목표로 한다.”고 설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만해학당 현판식.

만해의숙은 1년을 4기로 나누고, 1기를 3개월로 해 기초, 일반, 특수, 강의(講義) 과정을 밟도록 했다. 기초 과정은 국어, 국사, 영어, 지리, 세계사, 공민, 정치상식, 작문을, 일반과정은 정치, 경제, 종교, 사회, 윤리, 예술, 동서사상사를, 특수과정은 조선문화사, 사회사업, 수양강화, 학술강화, 예술강화, 시사강화 등 과목을 가르쳤다.

입학대상은 초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자 중 계몽운동에 종사하거나 하고자 하는 이었으며, 급비생(장학생)과 사비생으로 나누어 선발했다. 학칙 중에는 졸업생 중 성적이 뛰어난 이를 선발해 상급학교 입학이나 취직을 알선한다는 규정도 마련하고 있었다.

만해의숙은 1945년 말 첫 학생을 모집해 교육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1946년 3월 18일 자 ‘만해의숙 2기생 모집’ 기사와 같은 해 6월 16일 ‘만해 의숙 제3회 개강’ 기사로 미루어볼 때 광복 직후 학교를 설립해 3기생까지 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만해의숙이 선발한 급비생(장학생)은 ‘청년동원동맹’의 각 지방연맹에서 추천된 학생들로 구성하도록 했다. 여기서 ‘청년동원동맹’의 성격은 불명확하다. 광복 직후 당시 사회에는 우익과 좌익이 모두 ‘청년동맹’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구성해 활동했었다. 다만 만해의숙은 만해 스님의 법명으로 학명을 삼고, 학칙에 ‘민족문화의 발양과 민족정신의 고취’를 통해 인류문화에 공헌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어, 만해 스님의 애국애족과 민족문화에 긍지, 그리고 그의 사상과 이념을 학생들이 잇는 사립교육기관이었던 분명해 보인다. 또 교육과목에 조선문화사, 동서사상사, 종교, 예술 등 과목을 개설했던 것은 만해의숙의 운영목표가 민족문화의 발양과 민족정신 고취라는 학교 설립목적을 구체화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만해학당 낙성 및 현판식.
만해학당 낙성 및 현판식.

1954년 9월 27일 대한민국 대법원(판사 이성욱)은 판결문을 통해 “강도봉康道峰·김남전金南泉·김석두金石頭 등은 기미독립운동 당시 33인 중의 1인이며 이판계理判系의 선종의 지도자인 한용운이 (감옥에서)복역하다가 단기 4254년도(1921)에 출옥하게 되자 동인同人(한용운)을 중심으로 한 사판계事判系에 대응하여 이판계理判系의 수도원(을) 창립하고자 신도 최창훈崔昌勳 외 다수인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서울특별시 안국동 40번지 대지190평을 매입한 후 동 대지상에 목조기와집을 건축, 그 당시 범어사에서 인사동포교당을 폐지철거하고 옛 목재와 기와 약간을 (선학원)건축에 기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판결문은 선학원이 1934년 재단법인 인가 이후 1921년 최초 설립된 직후 당시 일제의 경제적 탄압을 피하고자 범어사에 신탁했던 재산을 환원하고자 제기한 소송 최종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는 선학원과 만해 스님의 직접적 관계를 증명하는 매우 구체적인 근거자료로 판단된다. 만공 스님이 보살계 계단을 개최하면서 “사찰령과는 관계가 없는 순전히 조선 사람끼리만 운영하는 선방(禪房)을 꾸려 불조 정맥(佛祖 正脈)을 계승하자”고 천명한 점도 이판계의 지도자인 한용운을 중심으로 한 수도원을 만들려 했다는 법원 판결과도 연결된다. 여기에 설립조사 중 한 명인 만해 스님 선양사업을 차근차근 벌여온 선학원이 광복 후 만해 스님의 유지를 잇기 위해 설립된 만해의숙을 현대적 이름이 ‘만해학당’으로 명명해 복원하려는 작업은 선학원의 설립 목적에도 부합해 매우 의미가 있다.

경과보고를 하는 총무이사 지광 스님.
경과보고를 하는 총무이사 지광 스님.

선학원 총무이사 지광 스님의 경과보고에 따르면, 만해학당은 선학원이 2016년 설립 부지로 안국동 76번지 외 2필지의 건물과 토지를 매입했고, 2019년 6월 이사회에서 건립 예산을 편성했다. 이어 2019년 2월 설계계약과 설계를 시작하고, 기존 안국동 76번지 건물을 철거했다. 2020년 11월 신축부지 내 시굴 조사와 정밀 발굴 조사를 시행했고, 발굴 완료 후인 2021년 4월 착공했다. 만해 스님 입적 77주기인 2021년 6월 29일 ‘만해학당(전통문화체험관) 상량식’을 봉행했고, 이날 낙성했다.

만해학당은 토지 구입비 24억원, 건축비 9억여 원이 투입됐다. 대지면적 159.20㎡(48평), 연면적 191.04㎡(58평)으로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의 팔작지붕 목조 한옥 건물로 지어졌다. 지하에 강의실과 지상에 연구실 및 전통문화체험 공간 및 숙소가 마련됐다. 더불어 만해학당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만해학당 낙성 인사말과 발기문을 낭독하는 이사장 법진 스님.
만해학당 낙성 인사말과 발기문을 낭독하는 이사장 법진 스님.

이사장 법진 스님은 낙성 인사말 및 만해학당 발기문을 통해 “만해의숙은 만해 스님의 사상과 유지를 계승하고 외세에 맞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정립하고, 청년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뜻깊은 단체”라며 “만해학당은 만해의숙을 계승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유지를 받들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승불교운동을 전개하고자 설립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진 스님은 “만해학당에서는 만해 스님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통해 만해 정신을 선양하고, 나아가 만해 스님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고 실천하는 만해학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다양한 한국불교의 전통을 널리 알리는 전통문화체험관으로서 역할도 병행해 선학원 사부대중과 불자들의 교육과 수행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낙성 및 현판식에는 이사장 법진 스님, 총무이사 지광 스님, 교무이사 제선 스님, 재무이사 정덕 스님, 이사 영주·종근 스님, 감사 도흥 스님, 대전 심광사 주지 영은 스님 등 사부대중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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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2022-04-20 19:18:46
선학원 행사에 조계종 중들 뿐이군 법진이. 혼자 가사가. 딸랑이군

불교의 밝은 미래 2022-04-19 17:17:14
이제 만해큰스님의 불교개혁 원력을 이어받을 수많은 불자들이 나올 것이라 기대가 큽니다. ^^

이시대 필요한 불사 2022-04-19 17:15:45
만해 큰스님의 크신 원력 이어받아
만해 큰스님이 못다 이루신 꿈을 실천해나갈
훌륭한 불교인재를 키우는 이시대 정말 필요한 불사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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