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서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께
[공개서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께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2.04.19 0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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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8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

심한 일교차에도 봄은 꾸역꾸역 겨울을 밀어냅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봄도 이렇게 와야 할 텐데요. 어디서 막혀있는 걸까요? 박홍근 원내대표님, 저는 인권활동가 미류입니다. 4월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요구하며 단식농성 시작한 지 여드레가 됐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의는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꿈꾸는 사회에 차별금지법이 빠질 수 없겠지요. 그런데 혹시 차별금지법을 장식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자꾸 ‘나중에’ 한다고 해서요.

차별금지법은 생존의 요구입니다. 일 구하기 어렵고 임금 덜 받고 먼저 짤리고 대출 못 받고 집 못 구할 때 우리가 듣는 말은, 여자라서 장애인이라서 고졸이라서 이주민이라서 성소수자라서… 입니다. 차별을 그대로 두고 민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죠? 게다가 존재하는 자체에도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 한국 사회니, 생존의 요구라는 말을 흘려듣진 마십시오.

지금은 더욱 긴요해졌습니다. 국회 밖에서는 모두 다가올 혐오공화국을 걱정하거든요. 혐오가 공기처럼 우리 주위를 떠돈 지는 오래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대통령이 오고,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돌을 던지라고 선동하는 사람이 여당을 이끌게 된답니다. 차별당했다는 주장마저 비난받을 이유가 되는 세상이 옵니다. 지금 무엇이 필요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차별금지법입니다. 차별당했다고 주장하면 국가가 듣고 살피고 시정할 방법을 찾게 하는 법 말입니다. 평등의 가치를 위해, 민생의 실질을 위해, 시민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이렇게 긴요하고 절실한 법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지난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소식은 전혀 달랐습니다. 4월 국회에서 검찰 수사권 박탈에 명운을 걸기로 총의를 모으셨다고요. 의아했습니다. 반대 여론이 높은 줄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그 절박함은 무엇일까, 국회 밖에서는 잘 알기 어렵거든요.

4월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얼마전 인터뷰에서 ‘검수완박’은 “정치적 유불리로 판단하기보다 민주주의 원칙의 실현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가끔은 정치적 유불리를 판단하세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선택하세요. 거대양당이 얼마나 다른지 회의적인 시민들에게 분별의 기회라도 주셔야죠.

사실 15년 전의 일부터 따지고 싶습니다. 2007년 ‘차별금지사유 삭제’ 사건은 ‘차별해도 되는 사유’들을 승인하면서 혐오를 번식시킨 계기가 되었거든요. 이제 매듭을 지을 때가 됐습니다.

국민의힘이 협의에 응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만 하셔도 될 듯합니다. 의지를 먼저 세우십시오. 반대가 거세도 어떤 것들은 한다는 걸, 시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앞두고 교회가 무서운 의원님들도 많으신 듯한데, 교회를 무서워하지 마세요. 많은 개신교인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고 있으며, 사랑과 평화의 정신 아래 우리는 충분히 평등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혐오를 선동하며 반대하는 세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사라진 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건, 차별이 없어졌으니 차별금지법 만들겠다는 농담일 뿐입니다.

여성이라서, 장애인이라서, 성소수자라서, 이주민이라서, 학력이 낮아서... 우리는 이런 이유로 약자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동등한 존엄을 지닌 시민입니다. 차별이 있기 때문에 약자가 될 뿐입니다. 누구도 약자가 되지 않도록,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약속, 이제 국회도 하십시다. 차별금지법 제정, 하십시다.

박홍근 원내대표님이 평등법 제정 의지가 높다고 들었습니다. 그 의지를 4월에 보여주십시오. 농성장에서 뵙고 싶습니다.

차별금지법 법사위 논의를 박광온 위원장이 신속하게 결단하여 마무리 하십시오.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님 보십시오. 저는 지금 차별금지법 4월 제정 쟁취를 위해 단식투쟁을 시작한 이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15년째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 총 11개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법사위에서 논의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 법은 법사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드러냈던 일부 보수 개신교 세력의 목소리가 정치권을 압박한 것이 국회의원들의 주된 변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세력들의 영향은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인권·성평등·학생인권·노동인권·문화다양성·민주주의교육 등과 관련한 지자체 인권조례들이 보수개신교의 반대로 철회되거나 개악되었고, 인권 및 평등권과 관련한 국가 정책의 후퇴에도 계속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를 비롯하여 이주민, 난민, 여성, 장애인, 빈민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혐오선동과 차별조장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가 이어오고자 하는 인권의 가치를 오히려 후퇴시켰습니다.

시민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평등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차별금지의 원칙을 지키기위해 싸워왔습니다. 15년의 시간 사이 차별에 대한 시민의식은 더 깊어졌고, 코로나19를 계기로 차별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민감성 역시 높아졌습니다. 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은 작년 6월 10만 국민동의청원 달성, 평등길 도보행진, 연내제정 농성을 이어가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현실화 하는 단계까지 이루었습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가 대선보다 먼저라고 한겨울에 외치며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이제 국회는 누군가를 차별하게 해달라고 조직적으로 외치는 일부 세력에 대한 주장을 단호하게 끊어내고, 평등을 외치는 절박한 시민들의 요구에 화답해야 합니다. 해외 입법례는 쌓여있고, 15년의 시간 동안 법안에 대한 세부 논의는 더욱 충실해졌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핑계됐던 시간 속에 더 많은 소수자들의 일상은 위협받고 있습니다.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님께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노무현 정부 국정과제로 20년. 첫 법안 발의 후 15년. 그리고 10만 국민 청원 후 10개월이 지났습니다. 일상의 차별이 공고해지는 지금 더 이상 제정 논의를 미룰 수 없습니다. 새 정부 출범 전 4월 제정을 위해 신속 단호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법사위 논의를 지금 당장 시작 하십시오. 거대 양당 합의 핑계는 핑계가 아닌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법제사법위원장은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방호가 아닌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를 견뎌내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존엄에 서야합니다.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 위원장님의 합당한 명분입니다.

평등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지금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곡기입니다. 혐오에서 비롯된 차별의 현실을 더 이상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시민들이 홀로 막아설수는 없습니다. 신속 단호하게 차별의 정치를 끊어내고, 평등에 합류하십시오. 위원장님이 직접 논의 물꼬를 트고, 4월 본회의 상정까지 책임지십시오. 좀 더 고민을 나누고 싶으시다면 농성장으로 찾아와 주십시오. 24시간 열린 농성장입니다. 일정이 안된다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단식하는 저로서는 15년 동안 들어온 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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