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불교교류 비망록:이제, 다시 본다] 25. 2005년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남북불교교류 비망록:이제, 다시 본다] 25. 2005년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 승인 2022.04.1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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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서 금강산을 부르다”

‘세상을 향해 열린 수도’란 이름의 개경(開京)은 해양 교역을 통해 ‘KOREA’의 국명을 얻고, “모든 길은 개경으로”란 닉네임을 얻었다. 기원전 640년 고대 로마인들이 모라 인근 바닷가에 대규모로 건설한 인공 해안염전을 통해 티베르 강의 ‘소금길’을 기원전 4세기에 개척하면서 소금 유통의 중심지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유래에서 덧붙여진 말이다.

개경은 북한 제3의 도시 개성(開城)을 말한다. 555년 신라에 의해 송악산 자락의 송악으로 불리었다가 고려의 태조 왕건이 919년 송악현과 개성현 일부를 통합해 개주(開州)라 하고, 철원에서 이곳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고려 4대 광종은 950년 황제국을 선포하고, 다음 해 개경을 ‘황도’라 칭했다. 천경(天京) 또는 제경(帝京)으로도 불렀다. 성종은 995년에 개주를 개성부로 승격시키고, 왕경과 경기로 행정지역을 구분했다.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고종 때 몽고와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개경은 1392년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를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1393년부터 다시 ‘개성’이라 불렸다. 1949년에 개성시가 되었고, 1955년 개성직할시로 승격되었으며, 2004년 1월 개성특급시로 명칭을 바꿨다.

서울에서 70km 거리에 있는 개성은 송악・송도・송경 등으로 많이 불렸으나, 개경과 중경 등 몇 가지 이름으로도 불렸다. 오늘날까지 개성사람들은 자신을 ‘개경’사람이라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고려 광종 때 10만 호에 약 50만 명의 인구가 살았던 개경에는 황제국의 원칙에 따라 황성에 다섯 개의 문을 거쳐 입조토록 했다. 제후국이던 조선의 경복궁에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까지 세 개의 문을 지났던 것과도 차이가 난다.

이처럼 분단 후에도 개성으로 가는 문은 역시 높고 좁았다. 분단 60년 만에 처음 간 개성 방문 때에는 북녘 불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남북한 불자들은 개성에서 금강산을 잇는 통일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지금, 모두 막혀버린 개경으로 갔던 그 길과 금강산에서 가졌던 첫 통일법회를 찾아본다.

고려왕조 오백 년의 상징 개성 만월대 터(2007년 촬영). /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





개성 남북불교 신도대표자회의(2005.7.1. 개성 자남산려관) 좌측 앞부터 리현숙 조불련 전국신도회 부회장, 라영식 회장,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 류인명 책임부원, 리광일 책임부원. 우측 앞부터 최연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 김규범 부회장, 김의정 회장, 손안식 상임부회장, 이상근 사무처장. 사진=이지범



개성 자남산에서의 축배

해방 후에도 전쟁으로 우리는 갈라졌다. 그리고 60년 만에 남북 불자들은 단독으로 옛 개경, 송악산의 아들로 불린 자남산 기슭에서 만났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조불련 전국신도회의 대표단은 2005년 7월 1일 금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 개성 자남산려관(호텔)에서 ‘금강산 신계사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대표자회의’를 처음 가졌다.

이날 남북불교 신도대표자 회의는 2003년 12월 26일 결성된 조불련 전국신도회의 첫 대외행사였다. 북측은 운무(雲舞) 라영식 전국신도회 초대회장과 안심행(安心行) 리현숙 부회장・리광일 평양시 신도회 상무위원(책임부원)이 함께하고, 조불련 중앙위원회 정서정 서기장・류인명 책임부원이 동석했다. 남측에서는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권한대행과 손안식 상임부회장・김규범 부회장・최연 사무총장 등 8명이 참가했다.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은 분단 후, 남측의 민간단체 대표로 개성을 방문한 첫 여성 인사로 기록됐다.

그해 7월 1일 새벽, 평양에서 내려온 조불련 일행과 같은 시각 남측 조계종 중앙신도회 대표단은 당일 오전 7시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 집결, 8시 30분경 2대 차량으로 남측출입사무소와 비무장지대를 통과하고, 북측 CIQ에서 입경 순서를 마친 다음, 조불련에서 제공한 차량 1대(봉고)로 개성공단을 통과했다. 북측 판문각-개성 구간의 진입도로가 장맛비로 일부 유실되어 우회 비상도로를 통해 도심으로 들어가 오전 10시경, 개성시 자남동의 자남산려관에 도착했을 만큼 험난한 방북 길이었다. 소요 시간 15분 거리에 한 시간 반이 걸린 셈이었다.

개성 자남산려관 2층 회의실에서 열린 신도대표자 회의는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과 김의정 회장 권한대행의 인사말에 이어 최연 사무총장의 제안사항을 주제로 토의했다. 첫째 양측 신도단체간 공동행사 개최에 관한 협의사항으로 ① ‘6·15공동선언 이행과 실천을 위한 남북불교도 조국통일기원법회 2005’ 금강산 개최에 관한 협의, ② 조불련 신도회 밀가루 1차 지원사업(금년 7월 중, 중국산 밀가루 60톤), ③ 어린이 학용품 1차 전달사업(파라미타청소년협회 후원품), ④ 북한사찰 불교용품(향로・향, 촛대・양초 등) 후원사업, ⑤ 혹한기 방한복・화 또는 일상 생필품 또는 연고・구충제 등 상비약품 전달사업, ⑥ 북한사찰 주변 소나무 방제사업, ⑦ 기타 남북불교간 현안 논의사항과 둘째 안건으로 남측의 파라미타청소년협회・조계사・교수불자연합회의 전달사항을 토의했다. 이처럼 조계종 중앙신도회 제안사항과 각 단체의 전달사항은 양측 수용 의사로 잘 마무리됐다.

이때 협의 사항은 금강산 신계사 합동법회를 같은 해 7월 21일~22일에 개최하기로 했다. 또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같은 해 7월 25일 조불련 산하의 조선불련무역회사(총경리 정서정)를 통해 중국 심양-단둥을 경유해서 평양의 조불련 전국신도회에 밀가루 60톤을 1차 지원하고, 파라미타청소년협회는 7월 22일 금강산 합동법회에서 학용품 20톤 상당을 지원하며 양측의 신뢰를 쌓았다. 2차 지원사업은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사)날마다 좋은날 명의로 2006년 2월 24일 중국 단둥을 경유해서 방한복 2,000벌과 온풍기 3대, 냉동・냉장고 1대를 지원하고, 그해 9월 25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물품운반용 차량 트럭 1대를 조불련에 기증했다. 그 당시 협의한 사찰림 병해충 방제사업과 북측 조선불련무역회사를 통한 고사리 등 특산품의 국내 유통사업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면서 향후, 추진사업으로 분류됐다.

한편, 북측은 2005년 7월 1일을 기해 평양직할시의 락랑구역과 만경대구역에서 농산물 시장을 처음 개장하며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기했다. 또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현대아산 측과 2005년 8월 개성 시범관광사업에 합의하고, 같은 해 8월 26일부터 9월 7일 사이에 3차례 시범관광을 실시했다. 그 후 2007년 12월 5일 본격적으로 시작한 개성관광은 북측의 조치로 2008년 11월 29일 중단될 때까지 총 11만 549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이처럼 서쪽(西鮮)의 막힌 그 길은 개성관광사업이 열리기도 전, 2005년 7월 1일 남북한의 불자들이 먼저 조용하게 물꼬를 텄다. 분단 이후, 개성에서 처음 가진 남북불교 합동회의는 양측 신도대표자 회의라는 측면 이외에도 개성관광 이전에 첫 길을 낸 순수 민간교류의 시발점이었다. 그날, 개성 자남산려관에서의 축배는 곧, 금강산 신계사에서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라는 첫 결실을 낳았다.



개성 남북불교 신도대표자회의 만찬(2005.7.1. 개성 자남산려관).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회장,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 손안식 조계종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 사진=이지범





복원된 외금강산 신계사 전경(2007.10.13.). 사진=통일부 남북이산가족찾기 홈페이지 참조





금강산 신계사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기념촬영(2005.7.22.). 사진=이지범



금강산 신계사의 통일아리랑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조선불교도련맹 전국신도회는 2005년 7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오후 1시, 금강산 신계사에서 ‘제1차 6·15공동선언실천 조국통일기원 북남(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공동 개최했다. 해방 이후, 60년 만의 금강산에서 처음 열린 남북공동 합동법회에서 남북한 불자들은 통일아리랑을 힘껏 불렀다.

2005년 7월 1일 개성 남북불교 신도대표자 회의 합의에 따라 열린 남북공동 합동법회는 최대 인원의 북측 불교도가 참석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법봉(法峰) 심상진 조불련 부위원장을 비롯한 조불련 중앙위원회 주요 임원들과 운무 라영식 회장을 중심으로 조불련 전국신도회 소속의 불자 60여 명이 대거 참가했다. 남측에서는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권한대행 등 300여 명의 각계각층 불자를 비롯한 언론 기자들이 참가했다.

그해 7월 21일~23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합동법회는 조불련과 전국신도회 임원들은 7월 20일 평양에서 내려왔으며, 남측에서도 정인악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회장을 단장으로 김성림 수석부회장, 김규범 부회장, 최연 사무총장 등 10명은 선발대로 외금강산 온정리 금강산호텔에 도착했다. 양측 실무대표단은 그해 7월 21일 정오부터 금강원 식당에서 합동법회 실무회의를 개최하고, 식순과 발원문・의전 등 세부사항에 대해 합의했다. 당일 오전 10시부터 신계사에서 이지범 조계종 중앙신도회 기획실장, 정순영 정보실장, 류승철 중앙기획 실장 등은 미리 준비한 펼침막과 오색천, 의자, 음향시설 등을 제정 신계사 도감의 협조를 받아 설치하는 등 행사장 준비를 완료했다. 신계사 법회장 단상은 금강산호텔 1층 로비 식당의 음식메뉴 입간판을 빌려 사용하는 헤프닝도 있었다.

남측 방문단의 신계사 도착 일정을 고려하여 오전 11시에 시작한 남북공동 합동법회는 식전행사로 통일기원 등 달기로부터 막이 올랐다. 본행사는 최연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과 성죽 김명희 조불련 전국신도회 상무위원의 공동사회로 주요내빈 입장과 소개로 시작했다. 먼저,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의 “온 겨레 앞에 북남 불자들의 한결같은 통일 의지를 알리는 뜻깊은 법회로 확신하면서 지금부터”라는 개회선언을 필두로, 조불련 전국신도회 고동대의 손풍금 반주로 찬불가요 연주가 진행됐다. 이어 남측 명원문화재단의 육법공양 의식이 진행된 다음, 양측 대표 20명씩 헌화를 했다. 그다음 혜안 리영호 조불련 책임부원의 목탁 집전에 맞춰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다 같이 봉독했다.

합동법회 대회사는 양측을 대표하여 라영식 조불련 전국신도회장과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이 말했다. 라영식 회장은 “… 지금 남녘의 동포 형제들과 불교도들이 민족의 명산으로 이름난 금강산에서 관광도 하고, 북남불교도들이 힘을 합쳐 신계사도 복원하면서 합동법회를 봉행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6.15 공동선언의 덕분입니다. 6.15 공동선언이 있음으로 하여 근 반세기 이상 북남 사이에 계속되고 있던 반목과 대결의 력사가 끝장나고, 화해와 단합, 협력과 교류의 력사가 시작되였습니다. … 나는 오늘의 합동법회 인연과 공덕으로 우리 두 신도조직과 신도님들의 단합하여 조국통일이 하루빨리 성취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했으며, 김의정 회장은 ‘남북한 불자들이 발원하고 노력하여 평화통일을 속히 이루자.”고 경축했다.

축사(연설)는 심상진 조불련 부위원장이 “불법을 받들어 행하는 북과 남의 전체 불교도들은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으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 밑에 민족공조를 실현하는 길만이 삼천리 조국 강토 우에 발고여락의 리념이 꽃펴난 현세의 지상정토, 통일조국을 하루빨리 안아올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제 더는 외세의 지배와 예속, 랭전과 대결 정책의 희생물이 되지 말고, 나라와 민족의 안정과 평화, 통일과 번영의 길로 나가야 합니다. 6.15 공동선언은 오랫동안 불신과 대결로 얼룩졌던 북남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켰으며, 우리 민족이 함께 번영할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주었습니다.” 남측 선진규 중앙신도회 고문은 ‘남북 평화통일에 함께 일심단결하여 앞장서 나서자.’라고 했다.

신계사 합동법회에서 체결한 성명서는 성각 정영호 평양시 신도회장과 남측 김성림 수석부회장이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를 귀중히 여기는 북과 남의 전체 불교도들은 불심 화합의 힘으로 일본이 군국주의 야망을 버릴 때까지 반일, 반외세 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할 것”이라고 힘차게 낭독했다. 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3대 공조를 실현하며, 6.15 공동선언을 철저히 고수 리행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겨 나가려는 우리들의 앞날에 언제나 무량한 가호와 가피를 내려주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라는 공동발원문은 자혜 신정애 조불련 전국신도회 상무위원과 남측 김규범 부회장이 낭독했다. 이어 조불련 전국신도회 고동대가 통일의 손풍금 연주를 하고, 목탁에 맞춰 사홍서원을 함께 부른 다음, 정인악 중앙신도회 부회장의 폐회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합동법회 기념촬영 후에는 조불련 임원들과 전국신도회가 신계사 입구에서 도열 환송과 손잡고 인사를 나누며 통일아리랑을 같이 부르며 헤어진 후, 남측 방문단은 해금강으로 이동해 입석대 관람관에서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하고, 해금강 구경에 나섰다. 북측은 7월 22일 평양으로 이동하고, 남측 참관단은 이튿날에 금강산 구룡연을 단체 관람하고, 남측으로 귀환했다.

그때 금강산의 헤어짐은 곧, 2005년 10월 평양 릉라도경기장의 ‘아리랑 공연’ 관람을 위해 평양에 가면서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해 8.15와 10.3 개천절 공동행사는 북측의 대홍수와 남측 정부의 참가 거부로 무산됐다. 그동안 북녘에 보내는 남녘 불자들의 말 없는 편지는 답장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매일 전국 사찰 법당에서 한 사람, 열 사람의 염원으로 쓰여지고 있을 뿐. 다시 만남의 그 날을 기약해 본다.

# 다음 편은 ‘2006년 북관대첩비 인도인수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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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조 오백 년의 상징 개성 만월대 터(2007년 촬영). /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
개성 남북불교 신도대표자회의(2005.7.1. 개성 자남산려관) 좌측 앞부터 리현숙 조불련 전국신도회 부회장, 라영식 회장,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 류인명 책임부원, 리광일 책임부원. 우측 앞부터 최연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 김규범 부회장, 김의정 회장, 손안식 상임부회장, 이상근 사무처장. 사진=이지범
개성 남북불교 신도대표자회의(2005.7.1. 개성 자남산려관) 좌측 앞부터 리현숙 조불련 전국신도회 부회장, 라영식 회장,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 류인명 책임부원, 리광일 책임부원. 우측 앞부터 최연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 김규범 부회장, 김의정 회장, 손안식 상임부회장, 이상근 사무처장. 사진=이지범

개성 자남산에서의 축배

해방 후에도 전쟁으로 우리는 갈라졌다. 그리고 60년 만에 남북 불자들은 단독으로 옛 개경, 송악산의 아들로 불린 자남산 기슭에서 만났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조불련 전국신도회의 대표단은 2005년 7월 1일 금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 개성 자남산려관(호텔)에서 ‘금강산 신계사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대표자회의’를 처음 가졌다.

이날 남북불교 신도대표자 회의는 2003년 12월 26일 결성된 조불련 전국신도회의 첫 대외행사였다. 북측은 운무(雲舞) 라영식 전국신도회 초대회장과 안심행(安心行) 리현숙 부회장・리광일 평양시 신도회 상무위원(책임부원)이 함께하고, 조불련 중앙위원회 정서정 서기장・류인명 책임부원이 동석했다. 남측에서는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권한대행과 손안식 상임부회장・김규범 부회장・최연 사무총장 등 8명이 참가했다.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은 분단 후, 남측의 민간단체 대표로 개성을 방문한 첫 여성 인사로 기록됐다.

그해 7월 1일 새벽, 평양에서 내려온 조불련 일행과 같은 시각 남측 조계종 중앙신도회 대표단은 당일 오전 7시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 집결, 8시 30분경 2대 차량으로 남측출입사무소와 비무장지대를 통과하고, 북측 CIQ에서 입경 순서를 마친 다음, 조불련에서 제공한 차량 1대(봉고)로 개성공단을 통과했다. 북측 판문각-개성 구간의 진입도로가 장맛비로 일부 유실되어 우회 비상도로를 통해 도심으로 들어가 오전 10시경, 개성시 자남동의 자남산려관에 도착했을 만큼 험난한 방북 길이었다. 소요 시간 15분 거리에 한 시간 반이 걸린 셈이었다.

개성 자남산려관 2층 회의실에서 열린 신도대표자 회의는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과 김의정 회장 권한대행의 인사말에 이어 최연 사무총장의 제안사항을 주제로 토의했다. 첫째 양측 신도단체간 공동행사 개최에 관한 협의사항으로 ① ‘6·15공동선언 이행과 실천을 위한 남북불교도 조국통일기원법회 2005’ 금강산 개최에 관한 협의, ② 조불련 신도회 밀가루 1차 지원사업(금년 7월 중, 중국산 밀가루 60톤), ③ 어린이 학용품 1차 전달사업(파라미타청소년협회 후원품), ④ 북한사찰 불교용품(향로・향, 촛대・양초 등) 후원사업, ⑤ 혹한기 방한복・화 또는 일상 생필품 또는 연고・구충제 등 상비약품 전달사업, ⑥ 북한사찰 주변 소나무 방제사업, ⑦ 기타 남북불교간 현안 논의사항과 둘째 안건으로 남측의 파라미타청소년협회・조계사・교수불자연합회의 전달사항을 토의했다. 이처럼 조계종 중앙신도회 제안사항과 각 단체의 전달사항은 양측 수용 의사로 잘 마무리됐다.

이때 협의 사항은 금강산 신계사 합동법회를 같은 해 7월 21일~22일에 개최하기로 했다. 또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같은 해 7월 25일 조불련 산하의 조선불련무역회사(총경리 정서정)를 통해 중국 심양-단둥을 경유해서 평양의 조불련 전국신도회에 밀가루 60톤을 1차 지원하고, 파라미타청소년협회는 7월 22일 금강산 합동법회에서 학용품 20톤 상당을 지원하며 양측의 신뢰를 쌓았다. 2차 지원사업은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사)날마다 좋은날 명의로 2006년 2월 24일 중국 단둥을 경유해서 방한복 2,000벌과 온풍기 3대, 냉동・냉장고 1대를 지원하고, 그해 9월 25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물품운반용 차량 트럭 1대를 조불련에 기증했다. 그 당시 협의한 사찰림 병해충 방제사업과 북측 조선불련무역회사를 통한 고사리 등 특산품의 국내 유통사업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면서 향후, 추진사업으로 분류됐다.

한편, 북측은 2005년 7월 1일을 기해 평양직할시의 락랑구역과 만경대구역에서 농산물 시장을 처음 개장하며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기했다. 또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현대아산 측과 2005년 8월 개성 시범관광사업에 합의하고, 같은 해 8월 26일부터 9월 7일 사이에 3차례 시범관광을 실시했다. 그 후 2007년 12월 5일 본격적으로 시작한 개성관광은 북측의 조치로 2008년 11월 29일 중단될 때까지 총 11만 549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이처럼 서쪽(西鮮)의 막힌 그 길은 개성관광사업이 열리기도 전, 2005년 7월 1일 남북한의 불자들이 먼저 조용하게 물꼬를 텄다. 분단 이후, 개성에서 처음 가진 남북불교 합동회의는 양측 신도대표자 회의라는 측면 이외에도 개성관광 이전에 첫 길을 낸 순수 민간교류의 시발점이었다. 그날, 개성 자남산려관에서의 축배는 곧, 금강산 신계사에서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라는 첫 결실을 낳았다.

개성 남북불교 신도대표자회의 만찬(2005.7.1. 개성 자남산려관).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회장,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 손안식 조계종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 사진=이지범
개성 남북불교 신도대표자회의 만찬(2005.7.1. 개성 자남산려관).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회장,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 손안식 조계종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 사진=이지범
복원된 외금강산 신계사 전경(2007.10.13.). 사진=통일부 남북이산가족찾기 홈페이지 참조
복원된 외금강산 신계사 전경(2007.10.13.). 사진=통일부 남북이산가족찾기 홈페이지 참조
금강산 신계사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기념촬영(2005.7.22.). 사진=이지범
금강산 신계사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기념촬영(2005.7.22.). 사진=이지범

금강산 신계사의 통일아리랑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조선불교도련맹 전국신도회는 2005년 7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오후 1시, 금강산 신계사에서 ‘제1차 6·15공동선언실천 조국통일기원 북남(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공동 개최했다. 해방 이후, 60년 만의 금강산에서 처음 열린 남북공동 합동법회에서 남북한 불자들은 통일아리랑을 힘껏 불렀다.

2005년 7월 1일 개성 남북불교 신도대표자 회의 합의에 따라 열린 남북공동 합동법회는 최대 인원의 북측 불교도가 참석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법봉(法峰) 심상진 조불련 부위원장을 비롯한 조불련 중앙위원회 주요 임원들과 운무 라영식 회장을 중심으로 조불련 전국신도회 소속의 불자 60여 명이 대거 참가했다. 남측에서는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권한대행 등 300여 명의 각계각층 불자를 비롯한 언론 기자들이 참가했다.

그해 7월 21일~23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합동법회는 조불련과 전국신도회 임원들은 7월 20일 평양에서 내려왔으며, 남측에서도 정인악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회장을 단장으로 김성림 수석부회장, 김규범 부회장, 최연 사무총장 등 10명은 선발대로 외금강산 온정리 금강산호텔에 도착했다. 양측 실무대표단은 그해 7월 21일 정오부터 금강원 식당에서 합동법회 실무회의를 개최하고, 식순과 발원문・의전 등 세부사항에 대해 합의했다. 당일 오전 10시부터 신계사에서 이지범 조계종 중앙신도회 기획실장, 정순영 정보실장, 류승철 중앙기획 실장 등은 미리 준비한 펼침막과 오색천, 의자, 음향시설 등을 제정 신계사 도감의 협조를 받아 설치하는 등 행사장 준비를 완료했다. 신계사 법회장 단상은 금강산호텔 1층 로비 식당의 음식메뉴 입간판을 빌려 사용하는 헤프닝도 있었다.

남측 방문단의 신계사 도착 일정을 고려하여 오전 11시에 시작한 남북공동 합동법회는 식전행사로 통일기원 등 달기로부터 막이 올랐다. 본행사는 최연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과 성죽 김명희 조불련 전국신도회 상무위원의 공동사회로 주요내빈 입장과 소개로 시작했다. 먼저,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의 “온 겨레 앞에 북남 불자들의 한결같은 통일 의지를 알리는 뜻깊은 법회로 확신하면서 지금부터”라는 개회선언을 필두로, 조불련 전국신도회 고동대의 손풍금 반주로 찬불가요 연주가 진행됐다. 이어 남측 명원문화재단의 육법공양 의식이 진행된 다음, 양측 대표 20명씩 헌화를 했다. 그다음 혜안 리영호 조불련 책임부원의 목탁 집전에 맞춰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다 같이 봉독했다.

합동법회 대회사는 양측을 대표하여 라영식 조불련 전국신도회장과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이 말했다. 라영식 회장은 “… 지금 남녘의 동포 형제들과 불교도들이 민족의 명산으로 이름난 금강산에서 관광도 하고, 북남불교도들이 힘을 합쳐 신계사도 복원하면서 합동법회를 봉행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6.15 공동선언의 덕분입니다. 6.15 공동선언이 있음으로 하여 근 반세기 이상 북남 사이에 계속되고 있던 반목과 대결의 력사가 끝장나고, 화해와 단합, 협력과 교류의 력사가 시작되였습니다. … 나는 오늘의 합동법회 인연과 공덕으로 우리 두 신도조직과 신도님들의 단합하여 조국통일이 하루빨리 성취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했으며, 김의정 회장은 ‘남북한 불자들이 발원하고 노력하여 평화통일을 속히 이루자.”고 경축했다.

축사(연설)는 심상진 조불련 부위원장이 “불법을 받들어 행하는 북과 남의 전체 불교도들은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으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 밑에 민족공조를 실현하는 길만이 삼천리 조국 강토 우에 발고여락의 리념이 꽃펴난 현세의 지상정토, 통일조국을 하루빨리 안아올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제 더는 외세의 지배와 예속, 랭전과 대결 정책의 희생물이 되지 말고, 나라와 민족의 안정과 평화, 통일과 번영의 길로 나가야 합니다. 6.15 공동선언은 오랫동안 불신과 대결로 얼룩졌던 북남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켰으며, 우리 민족이 함께 번영할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주었습니다.” 남측 선진규 중앙신도회 고문은 ‘남북 평화통일에 함께 일심단결하여 앞장서 나서자.’라고 했다.

신계사 합동법회에서 체결한 성명서는 성각 정영호 평양시 신도회장과 남측 김성림 수석부회장이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를 귀중히 여기는 북과 남의 전체 불교도들은 불심 화합의 힘으로 일본이 군국주의 야망을 버릴 때까지 반일, 반외세 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할 것”이라고 힘차게 낭독했다. 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3대 공조를 실현하며, 6.15 공동선언을 철저히 고수 리행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겨 나가려는 우리들의 앞날에 언제나 무량한 가호와 가피를 내려주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라는 공동발원문은 자혜 신정애 조불련 전국신도회 상무위원과 남측 김규범 부회장이 낭독했다. 이어 조불련 전국신도회 고동대가 통일의 손풍금 연주를 하고, 목탁에 맞춰 사홍서원을 함께 부른 다음, 정인악 중앙신도회 부회장의 폐회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합동법회 기념촬영 후에는 조불련 임원들과 전국신도회가 신계사 입구에서 도열 환송과 손잡고 인사를 나누며 통일아리랑을 같이 부르며 헤어진 후, 남측 방문단은 해금강으로 이동해 입석대 관람관에서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하고, 해금강 구경에 나섰다. 북측은 7월 22일 평양으로 이동하고, 남측 참관단은 이튿날에 금강산 구룡연을 단체 관람하고, 남측으로 귀환했다.

그때 금강산의 헤어짐은 곧, 2005년 10월 평양 릉라도경기장의 ‘아리랑 공연’ 관람을 위해 평양에 가면서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해 8.15와 10.3 개천절 공동행사는 북측의 대홍수와 남측 정부의 참가 거부로 무산됐다. 그동안 북녘에 보내는 남녘 불자들의 말 없는 편지는 답장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매일 전국 사찰 법당에서 한 사람, 열 사람의 염원으로 쓰여지고 있을 뿐. 다시 만남의 그 날을 기약해 본다.

# 다음 편은 ‘2006년 북관대첩비 인도인수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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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범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북불교 교류 60년사’ 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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