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마애삼존불 안내판 ‘유감’
서산 마애삼존불 안내판 ‘유감’
  • 허정 스님/전 천장사 주지
  • 승인 2022.04.14 20:56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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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허정 스님 전 천장사 주지
서산 마애삼존불입상/자료사진



어제 오후 오랜만에 서산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像)을 참배했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연등, 사각등 등 각종 봉축등이 걸려있다. 진입로 주변의 바위에서 돌조각이 떨어지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울타리를 치고 바위틈 돌조각을 제거하는 공사를 하는 중이다. “낙석 제거한다고 해서 안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진입로를 다른 곳으로 내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해봤다. 삼존불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엉겨있는데 갈라진 데가 많아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15년 전 논객 법응 스님이 “중생 고통 짊어진 마애삼존불 고통으로 신음”이라는 기고문으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한 바가 있다.

오후 3시, 삼존불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서 있었다. 눈 부신 햇살로 인해 부처님의 얼굴에서 자비로운 미소를 발견하기 어렵다. 왜 ‘백제의 미소를’ 보려면 오전에 와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참배하는 분들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그들도 선명하지 않은 삼존불의 표정에 실망을 느꼈는지 사진을 찍고는 금방 내려갔다. 나는 따가운 햇살을 피하여 바위 근처로 갔다. 그늘 속에서 비스듬히 보이는 삼존불과 주변 자연환경을 살펴보다가 예전에 보았던 삼존불의 미소를 기억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사람들이 금방 내려가는 것이 삼존불의 표정을 명확하게 볼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근처에는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없기에 방문객은 햇살 속에서 무조건 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주변에 의자가 있다면 주변을 경관을 감상할 수도 있고, 조용히 보살의 미소를 보며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삼존불 앞에 사각형 모양으로 설치된 밧줄도 방문객을 불편하게 한다. 삼존불을 마주 보며 중앙과 오른쪽에서는 삼존불을 감상할 수 있으나 왼쪽에서는 밧줄 때문에 감상할 수가 없다. 왼쪽에서 관찰하기 위해서는 밧줄 위로 넘어가야 하는데 불법(不法)을 저지르는 마음이 들게 한다. 밧줄을 타원형으로 설치하면 어느 방향에서도 삼존불을 감상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서산시는 방문객 입장으로, 방문객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삼존불을 감상하도록 하는 방법을 숙고하고 점검해 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삼존불 앞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방 내려가는 것은 삼존불에 대한 안내판의 설명이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기 때문일 것이다. 2016년 <불교신문>은 서산마애삼존불의 안내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삼존불은 언제 누가 무엇 때문에 조성했는지 알 수 없다. 삼존불의 명칭도 확인되지 않는다. 주존을 석가모니불이라 추정하고, 좌측은 관음보살이란 견해를 밝힌 학자가 여럿이다. 그럼에도 안내판에는 주존을 석가모니불로, 좌우 협시를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로 단정 짓고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입상 /자료사진
서산 마애삼존불입상/자료사진

어제 오후 오랜만에 서산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像)을 참배했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연등, 사각등 등 각종 봉축등이 걸려있다. 진입로 주변의 바위에서 돌조각이 떨어지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울타리를 치고 바위틈 돌조각을 제거하는 공사를 하는 중이다. “낙석 제거한다고 해서 안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진입로를 다른 곳으로 내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해봤다. 삼존불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엉겨있는데 갈라진 데가 많아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15년 전 논객 법응 스님이 “중생 고통 짊어진 마애삼존불 고통으로 신음”이라는 기고문으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한 바가 있다.

오후 3시, 삼존불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서 있었다. 눈 부신 햇살로 인해 부처님의 얼굴에서 자비로운 미소를 발견하기 어렵다. 왜 ‘백제의 미소를’ 보려면 오전에 와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참배하는 분들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그들도 선명하지 않은 삼존불의 표정에 실망을 느꼈는지 사진을 찍고는 금방 내려갔다. 나는 따가운 햇살을 피하여 바위 근처로 갔다. 그늘 속에서 비스듬히 보이는 삼존불과 주변 자연환경을 살펴보다가 예전에 보았던 삼존불의 미소를 기억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사람들이 금방 내려가는 것이 삼존불의 표정을 명확하게 볼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근처에는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없기에 방문객은 햇살 속에서 무조건 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주변에 의자가 있다면 주변을 경관을 감상할 수도 있고, 조용히 보살의 미소를 보며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삼존불 앞에 사각형 모양으로 설치된 밧줄도 방문객을 불편하게 한다. 삼존불을 마주 보며 중앙과 오른쪽에서는 삼존불을 감상할 수 있으나 왼쪽에서는 밧줄 때문에 감상할 수가 없다. 왼쪽에서 관찰하기 위해서는 밧줄 위로 넘어가야 하는데 불법(不法)을 저지르는 마음이 들게 한다. 밧줄을 타원형으로 설치하면 어느 방향에서도 삼존불을 감상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서산시는 방문객 입장으로, 방문객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삼존불을 감상하도록 하는 방법을 숙고하고 점검해 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삼존불 앞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방 내려가는 것은 삼존불에 대한 안내판의 설명이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기 때문일 것이다. 2016년 <불교신문>은 서산마애삼존불의 안내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삼존불은 언제 누가 무엇 때문에 조성했는지 알 수 없다. 삼존불의 명칭도 확인되지 않는다. 주존을 석가모니불이라 추정하고, 좌측은 관음보살이란 견해를 밝힌 학자가 여럿이다. 그럼에도 안내판에는 주존을 석가모니불로, 좌우 협시를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로 단정 짓고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입상 /자료사진

지금도 그때와 같은 내용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설명문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제화갈라보살의 미소를 묘사하면서도 그분이 어떤 보살인지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제화갈라는 연등불(Dipankara Buddha)의 음역인데 정광불(定光佛), 등광불(燈光佛), 보광불(普光佛) 등으로 의역되었다. 연등불은 석가모니불이 선혜 선인이었을 때 미래세에 석가모니라는 이름의 부처가 되리라고 수기(예언)를 하신 분이다. 그런데 안내문의 설명대로 이분이 제화갈라보살이 맞을까? 나는 이분이 제화갈라(연등)보살이 아니고 관세음보살이라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보살의 머리 위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고, 양손에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약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연등불은 수억 겁 전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붓다(佛)로 불리는 분이다. 이렇게 부처가 되신 분을 다시 보살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연등보살로 호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깨닫기 이전 보살이었을 때 수많은 모습으로 윤회하면서 선행(善行) 고행(苦行)을 하였다. 우리는 부처님의 547가지 ‘전생담’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된 후에는 석가모니불이 석가모니 보살로 불리지 않았고 석가모니 보살상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미 붓다가 되신 연등불을 연등보살이라고 부르고 연등보살을 만드는 것은 마치 아들의 이름을 아버지 이름으로 삼는 것과 같이 매우 어색하다. 삼존불의 오른쪽 반가사유상을 미륵보살이라고 파악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중앙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왼쪽은 과거세의 연등불로 추측한 것이다. 과거불이므로 마땅히 연등불이어야 하는데, 삼존불의 조각에서는 보살상으로 나타나므로 연등(제화갈라)보살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구도에 얽매이지 않으면 보살 입상을 관세음보살로 보는데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

안내문은 부처님의 손 모양을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으로 설명한다. 부처님의 손 모양(手印)에 이름을 붙인 것은 부처님이 생전에 취하셨던 모습에서 연유한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을 보여주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은 부처님을 죽이려고 데와닷따가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 놓은 것에서 비롯된다. 부처님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코끼리를 향해 자비로운 마음으로 손을 들어 보임으로 술 취한 코끼리가 얌전히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도록 만들었다. 이 손동작이 나중에 모든 두려움을 없애 주는 상징인 시무외인(施無畏印)이 된 것이다. 선정인은 부처님이 삼매를 닦을 때 취하신 손 모양이고, 항마촉지인은 보리수 아래서 마라(악마)에게 자신이 복덕을 닦은 것을 증명하려고 오른손가락을 들어 땅을 가리킨 것에서 유래한다. 설법인은 오(五)비구에게 설법하실 때 손 모양을 취한 것이다. 그런데 여원인(與願印)을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손 모양이라고 설명하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 불자들이 ‘스스로 원력(願力)을 내어’라고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부처님은 자등명 법등명 그리고 자업자득(自業自得)을 가르치신 분이지 어느 특정한 손 모양을 취해서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존불이 새겨진 지리적인 위치가 백제 사람들이 중국으로 무역을 하는 교통로였으므로 “상인들이 바다에 나갈 때 두려움을 갖지 말라는 의미에서 부처님이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라는 정도로 설명하면 상황에 맞는 설명이 될 것이다. 미륵반가사유상도 “부처님도 유년기에 사유를 좋아하셨고 미륵보살도 부처가 되기 위해 사유하는 모습으로 수행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불교에서 바른 사유가 곧 수행임을 반가사유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도로 설명해주면 젊은이들에게 불교가 쉽고 명확하게 다가갈 것이다.

이 불상을 발견한 나무꾼이 말했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안내판에 넣으면 좋을 것이다.

“바위 위에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 작은마누라가 다리 꼬고 앉아 손가락으로 볼을 찌르며 '용용 죽겠지' 놀리니까 왼쪽 본마누라가 짱돌을 쥐고 집어던지려 하고 있슈!.” 불교를 모르는 나무꾼이 삼존불을 이렇게 묘사했다는 것이 얼마나 발랄하고 유쾌한가? 이 말을 듣고 마애삼존불을 관람한다면 나무꾼의 시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보살상의 미소를 처음 보았을 때 감동을 잊지 못한다. 조그만 꼬마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실제로 들려오는 듯한 경험을 했었다. 그 때문인지 삼존불의 사진을 보면 지금도 그 꼬마 보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마애삼존불에 대한 설명이 지금보다 더 감성적이고 친절할 필요가 있겠다. 그 보살님들의 미소는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고 생각만 하면 행복해지는 웃음이다. 각 사찰의 안내판이 딱딱하고 학문적이라고 지적받아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는 서산시에 ‘미소의 도시’라는 슬로건을 제안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서산시는 금빛 서산, 떠오르는 서산, 생생 서산 등의 안을 놓고 토론을 벌인 끝에 ‘해 뜨는 서산’으로 확정했다. 2014년 교황이 해미읍성을 다녀간 뒤에는 서산시에서 ‘교황 방문 도시’로 슬로건을 정하는 바람에 불교계의 거센 반발을 받은 적이 있다. 서산을 ‘미소의 도시’ 혹은 ‘천진 미소의 도시’로 소개한다면 전 세계인들이 이 보살의 천진 미소를 더 쉽게 가슴에 담아 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삼존불의 미소는 국경을 넘어가고 세대를 뛰어넘고 종교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허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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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스님 질문 있어요 2022-04-29 12:31:20
불교방송에서 어떤 유명한 스님 이 입적했는데 돌아가신후 웬 이쁜 아낙 이 찾아와
실은 죽은 스님의 영혼이 구렁 이가 되어 자꾸 자기 침소에 들어와 고민이라 하며 도움을 청해서
그구렁이를 얼 른 천도시켜 갈곳으로 보냈다는 이야기 발교방송에서 들었는데 ㆍㆍ
허정스님 질문할게요
육십평생을 음지로 다니며 계율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 블 로그에다가 본인은 빠알 리어 게송을 다외웠다
다 외우고 나니 천신이 내게송 암송소리 듣고 감흥 하는것 같다는데 저는요 참 어이가 없어요
이제는 거짓말도 밥먹듯이 하구. 이중생활에 완전 이골이 난 이런사람은 분명히 다음생

자기 몸을 보시한 토끼 2022-04-25 18:42:06
어떤 수행자가 산속에서 지냈는데 그곳엔 원숭이 .여우 .수달. 토끼 네 마리 짐승이 있었다
그들은 날마다 그 수행자에게서 정진과 계율의 법을 들었다
이렇게 여러날 지내자 많은 먹을거리가 부족해졌다
해서 수행자는 다른곳으로 옮기려 하였다
그러자 네마리 짐승은 큰 시름에 빠져 서로 의논하였다
이분을 위하여 각자 공양할것을 구해오자 원숭이는 다른 산으로 가서 맛있는 과일을 따와 수행자에게
바쳤고 여우는 한포대의 밥과 미숫가루를 구해와서 바쳤으며 수달은 물에 들어가 큰 물고기를 잡아와서
수행자에게 바쳤다
그때 토끼는 나뭇가지를 주워와

불자 2022-04-15 11:05:49
보살입상이 제화갈라보살인가? 관세음보살인가?

불자 2022-04-15 07:33:32
허정 큰스님 가르침대로 승가 의미가 바로 서고 승가 정신이 바로 서고 율장을 바로 실천하였더라면 오늘날 출가자 신도급감이라는 불교위기는 커넝 오히려 매 사찰마다 불자들이 줄을 서고 유튜브 불교채널마다 조회수 수백만 수퍼챗 수천만 이상 됐을 겁니다.

허정 큰스님~~ 2022-04-15 07:27:27
허정 큰스님의 크신 가르침이야말로 이시대 불자들이 반드시 수지하고 독송하여 실천해야할 위없이 높고 크신 가르침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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