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55. 속 보이고 싶지 않아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55. 속 보이고 싶지 않아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04.04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신발이다

내 발과 함께였던

그런 신발 속이 훤히 보였다

왠지 발 가 벗겨진 내 자신처럼

창피해졌다.

 

#작가의 변
세상엔 내 것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 정말로 많다. 내 방, 내 컴퓨터, 내 컵, 내 도시락, 내 책, 내 사진…. 나와 함께 하는 소품들이거나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이다. 내 방에 누가 무단으로 침입을 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내 시간을 나의 시간을 누군가 방해하면 정말 기분이 나빠진다. 나의 컴퓨터가 작동을 잘 하지 않게 누군가 인터넷을 끊어 놓거나 내 도시락을 누군가 먹어 버렸다면 정말 기분이 언짢을 것이다. 누군가 나의 글을 도용하였다면 화가 날 것이고 내 사진을 누군가 마음대로 사용해도 무척 화가 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나의 것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꽃을 내 땅에 심었다고 그것이 나의 노력만으로 잘 클까? 내 땅에 내가 꽃을 심고 옥수수를 심었다고 해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고, 또는 날마다 비가 내려 잘 크지 않을 수 있다. 나의 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방도 사실 나의 방이 아닐 수 있다. 아니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하고 내가 자취하던 방에서 이사하고 얼마나 많은 공간과 시간을 나와 함께 하던 곳에서 멀어져 갔을까? 그럼에도 늘 내 것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화가 먼저 치밀어 오르게 된다.
큰마음 먹고 등산화를 4년 전쯤에 샀다. 하지만 사고 나서 처음엔 발에 잘 안 맞는 것처럼 불편하고 복숭아뼈 있는 곳이 자꾸만 아파서 사용하지 못하고 집에 모셔 놓은 기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병마와 싸우느라 아예 산행하지 못한 기간이 2년이 넘었다. 그래서 겉모양은 아직도 새것과도 같은 등산화는 바닥도 새것과 같다. 그런데 어제 산행을 하다가 느낌이 이상했다.
하지만 신발 위에 게이츠를 착용해서 신발에 이상이 있는 줄을 모르고 산행이 끝나고 게이츠를 벗고 나니 등산화 밑창이 입을 크게 벌리듯 쩍 벌어졌다. 하도 어이가 없기도 하고 다른 산우회 회원들이 볼까 봐 창피해서 얼른 가방에 넣고 집으로 와서, 접착제를 어떻게 붙였길래 떨어지나 하고 보니 모래같이 부서지는 신발의 내용물에 경악하여 신발 회사에 사진과 이럴 수 있느냐고 메일을 보냈더니 2년 이내에 교환할 수 있고 ‘네가 물이나 비, 눈에 너무 노출된 신발을 잘 말리지 않고 창고에 처박아 두면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답장이 왔다.
처음에 사고 나서 한 달도 안 돼 반품하려고 산 가게에 신발 반품을 해야겠다고 많이 불편하다고 했더니 좀 더 신으면 발에 익숙해질 거라면서 반품을 받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때 반품하지 않은 것이 이런 결과가 온 것 아닌가 싶다. 요즘은 방수로 된 등산화가 얼마나 많은데 물을 머금는 우레탄을 사용해서 모래처럼 부서지게 만들어 놓고 손님 탓으로 돌리나 싶다. 이태리 브랜드라 믿을만 하겠지 했는데, 어제 자세히 보니 ‘메이드 인 폴란드’다.
어찌 되었든 반품 안 된다니 쓰레기와 같은 등산화가 아직 바닥이 깨끗한 것이 더욱 속상하게 만든다. 아들이 옆에서 속 끓이는 나를 보고 미련 두지 말고 버리고 새로 사라고 한다. 정신 건강으로 따지만 그게 맞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혹시 구두 수선하는 곳에서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보관하고 있으면서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사실 이제야 발에 신발이 편해졌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것이 이제야 길이 들었는데 버려야 한다니.
살다 보면 나의 것, 내 것에 집착하다 보면 가슴에 화가 치솟아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이 느껴진다. 집착을 끊어 내야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지만, 그것은 단지 이론일 뿐 생활 속에선 한 발짝 옮기는 것도 쉽지 않다. 내 것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해방되고 자유와 진리의 길에 들어선다고 머리에선 말을 하지만 가슴엔 화가 치미는 날에.

-------------------------------------------------------------------------------------

내 신발이다

내 발과 함께였던

그런 신발 속이 훤히 보였다

왠지 발 가 벗겨진 내 자신처럼

창피해졌다.

 

#작가의 변
세상엔 내 것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 정말로 많다. 내 방, 내 컴퓨터, 내 컵, 내 도시락, 내 책, 내 사진…. 나와 함께 하는 소품들이거나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이다. 내 방에 누가 무단으로 침입을 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내 시간을 나의 시간을 누군가 방해하면 정말 기분이 나빠진다. 나의 컴퓨터가 작동을 잘 하지 않게 누군가 인터넷을 끊어 놓거나 내 도시락을 누군가 먹어 버렸다면 정말 기분이 언짢을 것이다. 누군가 나의 글을 도용하였다면 화가 날 것이고 내 사진을 누군가 마음대로 사용해도 무척 화가 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나의 것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꽃을 내 땅에 심었다고 그것이 나의 노력만으로 잘 클까? 내 땅에 내가 꽃을 심고 옥수수를 심었다고 해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고, 또는 날마다 비가 내려 잘 크지 않을 수 있다. 나의 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방도 사실 나의 방이 아닐 수 있다. 아니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하고 내가 자취하던 방에서 이사하고 얼마나 많은 공간과 시간을 나와 함께 하던 곳에서 멀어져 갔을까? 그럼에도 늘 내 것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화가 먼저 치밀어 오르게 된다.
큰마음 먹고 등산화를 4년 전쯤에 샀다. 하지만 사고 나서 처음엔 발에 잘 안 맞는 것처럼 불편하고 복숭아뼈 있는 곳이 자꾸만 아파서 사용하지 못하고 집에 모셔 놓은 기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병마와 싸우느라 아예 산행하지 못한 기간이 2년이 넘었다. 그래서 겉모양은 아직도 새것과도 같은 등산화는 바닥도 새것과 같다. 그런데 어제 산행을 하다가 느낌이 이상했다.
하지만 신발 위에 게이츠를 착용해서 신발에 이상이 있는 줄을 모르고 산행이 끝나고 게이츠를 벗고 나니 등산화 밑창이 입을 크게 벌리듯 쩍 벌어졌다. 하도 어이가 없기도 하고 다른 산우회 회원들이 볼까 봐 창피해서 얼른 가방에 넣고 집으로 와서, 접착제를 어떻게 붙였길래 떨어지나 하고 보니 모래같이 부서지는 신발의 내용물에 경악하여 신발 회사에 사진과 이럴 수 있느냐고 메일을 보냈더니 2년 이내에 교환할 수 있고 ‘네가 물이나 비, 눈에 너무 노출된 신발을 잘 말리지 않고 창고에 처박아 두면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답장이 왔다.
처음에 사고 나서 한 달도 안 돼 반품하려고 산 가게에 신발 반품을 해야겠다고 많이 불편하다고 했더니 좀 더 신으면 발에 익숙해질 거라면서 반품을 받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때 반품하지 않은 것이 이런 결과가 온 것 아닌가 싶다. 요즘은 방수로 된 등산화가 얼마나 많은데 물을 머금는 우레탄을 사용해서 모래처럼 부서지게 만들어 놓고 손님 탓으로 돌리나 싶다. 이태리 브랜드라 믿을만 하겠지 했는데, 어제 자세히 보니 ‘메이드 인 폴란드’다.
어찌 되었든 반품 안 된다니 쓰레기와 같은 등산화가 아직 바닥이 깨끗한 것이 더욱 속상하게 만든다. 아들이 옆에서 속 끓이는 나를 보고 미련 두지 말고 버리고 새로 사라고 한다. 정신 건강으로 따지만 그게 맞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혹시 구두 수선하는 곳에서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보관하고 있으면서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사실 이제야 발에 신발이 편해졌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것이 이제야 길이 들었는데 버려야 한다니.
살다 보면 나의 것, 내 것에 집착하다 보면 가슴에 화가 치솟아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이 느껴진다. 집착을 끊어 내야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지만, 그것은 단지 이론일 뿐 생활 속에선 한 발짝 옮기는 것도 쉽지 않다. 내 것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해방되고 자유와 진리의 길에 들어선다고 머리에선 말을 하지만 가슴엔 화가 치미는 날에.

-------------------------------------------------------------------------------------





내 신발이다

내 발과 함께였던

그런 신발 속이 훤히 보였다

왠지 발 가 벗겨진 내 자신처럼

창피해졌다.

 

#작가의 변
세상엔 내 것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 정말로 많다. 내 방, 내 컴퓨터, 내 컵, 내 도시락, 내 책, 내 사진…. 나와 함께 하는 소품들이거나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이다. 내 방에 누가 무단으로 침입을 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내 시간을 나의 시간을 누군가 방해하면 정말 기분이 나빠진다. 나의 컴퓨터가 작동을 잘 하지 않게 누군가 인터넷을 끊어 놓거나 내 도시락을 누군가 먹어 버렸다면 정말 기분이 언짢을 것이다. 누군가 나의 글을 도용하였다면 화가 날 것이고 내 사진을 누군가 마음대로 사용해도 무척 화가 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나의 것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꽃을 내 땅에 심었다고 그것이 나의 노력만으로 잘 클까? 내 땅에 내가 꽃을 심고 옥수수를 심었다고 해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고, 또는 날마다 비가 내려 잘 크지 않을 수 있다. 나의 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방도 사실 나의 방이 아닐 수 있다. 아니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하고 내가 자취하던 방에서 이사하고 얼마나 많은 공간과 시간을 나와 함께 하던 곳에서 멀어져 갔을까? 그럼에도 늘 내 것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화가 먼저 치밀어 오르게 된다.
큰마음 먹고 등산화를 4년 전쯤에 샀다. 하지만 사고 나서 처음엔 발에 잘 안 맞는 것처럼 불편하고 복숭아뼈 있는 곳이 자꾸만 아파서 사용하지 못하고 집에 모셔 놓은 기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병마와 싸우느라 아예 산행하지 못한 기간이 2년이 넘었다. 그래서 겉모양은 아직도 새것과도 같은 등산화는 바닥도 새것과 같다. 그런데 어제 산행을 하다가 느낌이 이상했다.
하지만 신발 위에 게이츠를 착용해서 신발에 이상이 있는 줄을 모르고 산행이 끝나고 게이츠를 벗고 나니 등산화 밑창이 입을 크게 벌리듯 쩍 벌어졌다. 하도 어이가 없기도 하고 다른 산우회 회원들이 볼까 봐 창피해서 얼른 가방에 넣고 집으로 와서, 접착제를 어떻게 붙였길래 떨어지나 하고 보니 모래같이 부서지는 신발의 내용물에 경악하여 신발 회사에 사진과 이럴 수 있느냐고 메일을 보냈더니 2년 이내에 교환할 수 있고 ‘네가 물이나 비, 눈에 너무 노출된 신발을 잘 말리지 않고 창고에 처박아 두면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답장이 왔다.
처음에 사고 나서 한 달도 안 돼 반품하려고 산 가게에 신발 반품을 해야겠다고 많이 불편하다고 했더니 좀 더 신으면 발에 익숙해질 거라면서 반품을 받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때 반품하지 않은 것이 이런 결과가 온 것 아닌가 싶다. 요즘은 방수로 된 등산화가 얼마나 많은데 물을 머금는 우레탄을 사용해서 모래처럼 부서지게 만들어 놓고 손님 탓으로 돌리나 싶다. 이태리 브랜드라 믿을만 하겠지 했는데, 어제 자세히 보니 ‘메이드 인 폴란드’다.
어찌 되었든 반품 안 된다니 쓰레기와 같은 등산화가 아직 바닥이 깨끗한 것이 더욱 속상하게 만든다. 아들이 옆에서 속 끓이는 나를 보고 미련 두지 말고 버리고 새로 사라고 한다. 정신 건강으로 따지만 그게 맞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혹시 구두 수선하는 곳에서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보관하고 있으면서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사실 이제야 발에 신발이 편해졌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것이 이제야 길이 들었는데 버려야 한다니.
살다 보면 나의 것, 내 것에 집착하다 보면 가슴에 화가 치솟아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이 느껴진다. 집착을 끊어 내야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지만, 그것은 단지 이론일 뿐 생활 속에선 한 발짝 옮기는 것도 쉽지 않다. 내 것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해방되고 자유와 진리의 길에 들어선다고 머리에선 말을 하지만 가슴엔 화가 치미는 날에.

-------------------------------------------------------------------------------------

#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