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향엄상수(香嚴上樹)
신무문관: 향엄상수(香嚴上樹)
  • 박영재 명예교수(서강대)
  • 승인 2022.03.29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53.

성찰배경: 이번 글에서는 순서에 따라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의 법을 이은 향엄지한(香嚴智閑, ?-898) 선사의 오도(悟道) 기연(機緣) 일화를 포함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담긴 그의 선풍(禪風)들을 두루 엿본 다음, 그를 대표하는 핵심 공안인 <무문관(無門關)> 제5칙 ‘향엄상수(香嚴上樹)’를 제창하고자 합니다. 

◇ 향엄분서(香嚴焚書) 

향엄 선사의 깨침에 관한 일화는 <경덕전등록> 제11권에 다음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향엄은 청주(靑州) 사람이다. 속세에 염증(厭症)을 느껴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천하를 떠돌면서 구도여정을 이어가다가 위산 선사의 문하로 입문했다. 위산 선사는 그가 법을 이을 만한 재목임을 꿰뚫어 보고 지혜의 광명을 격발시켜 주고자 하였다. 
어느 날 위산 선사는 향엄에게, ‘나는 그대가 평생 익힌 견해와 불경이나 조사어록 등에서 얻은 것에 관해 묻지 않겠다. 다만 그대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아 동서를 구분하지 못할 때의 본분사(本分事), 즉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그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父母未生前 本來面目]’란 화두(話頭)를 참구하고 이에 대해서 한마디[一句] 일러 보아라. 만일 제대로 제시한다면 내가 그대를 인가(印可)해 주겠다.’ 향엄이 어리둥절해하면서 대답하지 못하다가 숙고(熟考) 끝에 몇몇 견해를 제시했으나, 위산 선사께서 모두 긍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향엄은 ‘부디 선사께서 설해 주십시오.’라고 가르침을 간청했다. 이에 위산 선사께서 ‘내가 설해주면 이는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가 안목을 넓히는데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결국 향엄은 거처로 돌아가 지금까지 모아 놓은 천하 스승들의 어록들을 다시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한마디도 응수(應酬)해 제시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향엄은 탄식하며 ‘그림의 떡으로는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구나.[畫餅不可充飢.]’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모두 태워 버리면서, ‘이번 생에 불법을 익히지 못할 바에는 멀리 떠나 밥이나 축내는 승려가 되어 다만 마음의 괴로움이라도 면하리라.’라고 다짐했다. 

마침내 향엄은 눈물을 흘리면서 위산 선사께 하직을 고한 후, 남양 땅에 이르러 혜충(慧忠, ?-775) 국사(國師)의 발자취를 살피다가 그곳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였다. 하루는 산중에서 잡초를 베다가 기와 파편( 또는 돌멩이)을 던진 것이 대나무에 부딪혀 소리가 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며 확연히 깨달았다. 급히 거처로 돌아와서 목욕재계하고 향을 사르고 멀리 위산 선사께서 계신 곳을 향해 절을 올리면서, ‘선사의 대자대비하신 은혜는 부모의 은혜보다 높습니다. 만일 당시 저에게 본분사를 설해주셨다면, 어찌 오늘 같은 깨침이 있겠습니까?’라고 찬탄했다.” 

군더더기: 위 일화는 깨침의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향엄격죽(香嚴擊竹)’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틈날 때마다 언급합니다만, 선가에서는 스승과 사제의 인연을 맺을 때 중생에서 부처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스승의 ‘한마디[一轉語]’가 매우 중요합니다. 즉 ‘본분사’를 제시하라는 위산 선사의 한마디가, 마침내 향엄으로 하여금 책을 불사르고 철저히 하심(下心)하게 하였기에 소제목을 ‘향엄분서(香嚴焚書)’로 새롭게 잡아보았습니다. 즉 향엄은 그동안 경전과 조사어록을 두루 섭렵하면서 머릿속은 박학다식했지만 본문사를 온몸으로 체득하는 일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에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소장했던 책들을 몽땅 불태우며 후학들로 하여금 경계로 삼게 했다고 사료됩니다. 

◇ 항엄 선사의 가풍 엿보기 

사구백비(四句百非)의 계승

한편 앞 칼럼에서 언급했던 마조 선사의 ‘사구백비’ 가풍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멋진 문답을 통해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기에 거듭 함께 살피고자 소개를 드립니다.
“한 승려가 ‘네 구절(四句)을 여의고 백 가지 부정(百非)을 끊은 경지를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향엄 선사께서 ‘(생계를 위한) 사냥의 달인(達人) 앞에서는 본사(本師)의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말하지 않는다.’라고 응대하셨다.”

십오일전후화(十五日前後話) 제창

또한 향엄 선사께서 ‘지수득파(志守得破)’란 게송을 다음과 같이 읊으셨는데, ‘십오일전후화(十五日前後話)’는 훗날 운문종을 창종한 운문문언 선사에 의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로 새롭게 제창되어 오늘날까지도 참구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15일 이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말라. 15일 이후에는 여기에 머물지 말라. 떠나면 그대의 머리를 때려 부술 것이요 머물러도 또한 그렇게 할 것이다. 떠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는 그 뜻은 무엇인가? 견해가 옳다면 (누구에게 따로 물어볼 필요도 없이) 즉시 옳은 것이나, 만일 헤아리며 머뭇거린다면 즉시 어긋나느니라.[是即是 擬即差.]” 

두 학인에게 준 게송

석가세존이 설하신 경전을 제대로 온몸으로 체득하지 않았을 경우, 함부로 입을 열어 잡소리 내지 말라는 향엄 선사의 준엄한 경계(警戒)의 일침을 두 학인, 종교(宗教)와 종여(宗如)에게 주신 다음과 같은 게송을 통해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절 안 가득한 석가세존의 불제자들/ 세존의 경전을 제대로 알지 못하네./ 불러 함께 이야기 나누며 점검해보면/ 한결같이 입을 열 때마다 잡소리만 하는구나.[滿寺釋迦子 未詳釋迦經. 喚來試共語 開口雜音聲.]” 

불자(拂子) 세우기 계승

한편 앞 칼럼에서 언급했던 마조-대매-천룡 선사로 이어진 ‘불자(拂子)세우기’ 가풍도 향엄 선사께서 잘 이어가고 있음을 다음과 같은 문답을 통해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향엄 선사께서 낙보(樂普) 스님과 함께 동행을 했는데, 헤어지기 직전에 낙보 스님이 ‘동행께서는 어디로 가시렵니까?’라고 여쭈었다. 이에 향엄 선사께서 ‘동경(東京)으로 가련다.’라고 답하셨다. 낙보 스님이 ‘거기는 무엇 하러 가십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향엄 선사께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네거리에 암자를 지으려 하네.’라고 답하셨다. 이에 낙보 스님이 ‘암자는 지어서 무엇 하시렵니까?’라고 여쭈었다. 향엄 선사께서 ‘사람들을 위하려 하오.’라고 답하셨다. 그러자 낙보 스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위하시렵니까?’라고 여쭈었다. 향엄 선사께서 즉시 불자(拂子)를 들어 세웠다. 낙보 스님이 다시 ‘불자를 들어 세우는 것이 어떻게 사람들을 위하는 것입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선사께서 불자를 내던졌다. 이에 낙보 스님이 ‘황폐(荒廢)한 곳도 지나왔으면서 깨끗한 곳에서 어찌하여 사람을 미혹하려 하십니까?’ 그러자 선사께서 ‘이를 괴이(怪異)하게 여겨 무엇을 하려는가?’라고 응대하셨다.”

군더더기: 향엄 선사께서 하심(下心), 즉 마음을 철저히 비우며 깨달음에 대한 조급증을 완전히 버리고 지내던 어느 날, 기와 파편이 근처 대나무에 부딪혀 낸 ‘딱’ 하는 소리를 듣고 마침내 ‘본래면목’ 화두를 분명하게 타파했던 일화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 무슨 일이든 조급하게 처리하려 한다고 빨리 처리될 일도 아니니, 틈날 때마다 각자 코드가 맞는 수식관(數息觀)이나 화두 참구 등을 병행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면, 마음공부가 깊어지면서 어느 때인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해 뜻한 바도 저절로 이루어지리라 확신합니다. 
한편 우리는 향엄 선사의 ‘네거리에 암자를 지으려 하네.’란 발원(發願)을 통해, 선수행자의 궁극적 목표로 널리 알려진 <십우도(十牛圖)>의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鄽垂手)를 실천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 향엄상수(香嚴上樹) 

본칙(本則): 향엄 선사께서 “사람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입으로만 가지를 물고, 손으로는 가지를 붙잡지 않고, 다리로도 가지를 밟고 있지 않다. 이때 나무 밑으로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에게, 달마[祖師] 선사께서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었다. 이때 대답하지 않으면 묻는 이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이 되며, 만일 입을 열어 대답을 한다면 목숨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만일 그대라면 이와 같은 때에 어떻게 응대하겠는가?”라고 제자들을 다그치셨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설사 팔만대장경을 모두 다 막힘없이 설할 수 있다 하더라도 역시 부질없는 짓이다. 만약 이 속을 향해서 참된 견해를 얻을 수 있다면 죽은 사람을 살리고 산 사람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자유자재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바른 견해를 아직 얻지 못했다면 미륵보살이 나타나길 기다려 그에게 물어보아라.”라고 제창하셨다.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향엄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 악독함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네./ 수행승들의 말문을 막아버리니/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꼴!) 온몸이 흐리멍덩한 귀신의 눈깔과 같구나. [香嚴眞杜撰 惡毒無盡限 啞却衲僧口 通身是鬼眼]

군더더기: <경덕전등록>에는 본칙 뒤에 다음 대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때 초(招) 상좌(上座)가 나서서 ‘나무에 올랐을 때는 묻지 않겠지만, 나무에 오르지 않았을 때에는 어떠합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향엄 선사께서 다만 웃기만 하셨다. 만일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초 상좌의 물음에 어떻게 응대하시겠습니까?

참고로 <무문관> 유포본에는 ‘통신병귀안(通身迸鬼眼)’으로 되어 있으나 1175년 송(宋) 나라의 법응(法應) 스님이 편찬하고 원(元) 나라의 보회(普會) 스님이 증보해 편찬한 <선종송고련주통집(禪宗頌古聯珠通集)>에 보면 ‘통신시귀안(通身是鬼眼)’으로 되어 있고 그 경계가 분명해 바꾸어 넣었습니다.

한편 필자는 1990년 6월 종달(宗達, 1905-1990) 선사님 입적 이후 뒤를 이어 선도회 지도법사 직을 수행하다가,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문득 다른 스승의 점검을 받아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 즉시 숭산(崇山, 1927-2004) 선사님께 편지를 드렸는데, 6개월 후 마침 화계사에 계시다는 편지를 받고 1991년 8월 숭산 선사님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시자였던 무심(無心) 스님의 안내로 조실방에서 숭산 선사님과 독대를 하였습니다. 이때 수십 개의 공안을 점검받았는데, 2/3는 종달 선사님께 점검받았던 경계와 즉시 계합(契合)했고, 나머지 1/3은 두세 차례 문답 후 필자의 경계를 인정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소개한 ‘향엄상수’는 즉시 계합했던 공안에 속합니다. 

참고로 열여섯 번째 칼럼 ‘일기이회(一期二會): 대진당 무심 선사님을 추모하며’에서 밝혔습니다만 계간지인 <선과 문화>의 2011년 봄 창간호 특집으로 ‘한국간화선 수행의 시대 어떻게 열 것인가?’를 주제로 특별좌담회(사회: 미산 스님)가 2011년 초에 열렸었는데, 이때 무심 스님은 ‘향엄상수’를 투과하는데 약 6년이 걸렸다고 술회하셨습니다. 

끝으로 이 지면을 빌어 형편없는 마마보이였던 필자로 하여금 종교를 넘어 뜻을 같이하는 길벗[道伴]들과 함께 더불어, 더이상 물러섬 없이 향상(向上)의 여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던 종달 선사님과 숭산 선사님의 법은(法恩)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 차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이 있다.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