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51. 아버지와 소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51. 아버지와 소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02.2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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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매서 외양간에 가둔 소
똥오줌에 질펀해진 외양간
지푸라기만 넣어 주고
똥 밭에 뒹군 소를 보고
이눔에 소가
이눔에 소가 되새기는 아버지
말 못하는 짐승하고 아침부터 싸움이나 하고 잘하는 짓이다 라던 엄마

소가 송아지를 나으면
소를 팔고 송아지를 길렀다
목동처럼 소를 끌고 들로 산허리로 옮겨 다니며 묶어 놓고
꼴 베고 소 죽 끓이는 일상이던 날들
밭을 갈고 논에 써래질 할 때마다
아버지와 소는 부부 싸움하듯 싸운다
고래고래 지르는 아버지 육두문자
마스크 같은 멍애까지 하고 숨을 헐떡이던 소는
목이 말랐던 걸까
배가 고팠던 걸까
송아지가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자유는 짧고
마취도 안 하고 생살을 찢는 코두레 아픔처럼
코 꿰어 살아가는 삶처럼
실컷 일하고 욕먹던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육두문자 세례받던 소처럼
내가 마신 커피도 물도 차도 질펀한 외양간처럼 지구 귀퉁이를 적시고
뱀처럼 마신 물이 독이 되지도 못하는 물은
귀로 들은 말만 독이 되어 가슴을 친다.


#작가의 변
세상엔 사람 사이에도 말이 잘 안 통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동물과의 대화라면 더욱 힘든 것이 당연하다. 흔히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말한다. 애완견과 대화를 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사람한테 심지어 가족한테도 반응이 두려워 말 못하고 가슴에 쌓아 두었던 말들을 애완견에게 하기도 한다. 또는 나무에게 말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다들 할 말은 많은데 들어 주는 것이 힘들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버스에서, 아니면 모임에서 이런저런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다. 그럴 때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끝까지 다 들어 보지도 않고 바보처럼 왜 그랬어, 확 패주지. 확 싸워주지. 확 욕이나 퍼주지. 마음은 그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가슴앓이하다 가족에게 말을 하면, 아 나도 스트레스를 받아 나한테 이야기 하지마, 하는 반응이 나오면 정말이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이나 나무에게 라도 말을 걸고 싶은 것이다. 캐나다에선 정신과 상담이 비싸다. 그래서 우울증이나 정신적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소리를 치거나 욕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많이 된다. 아니 잠시 혼자 있는 시간도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어렸을 적엔 동네 아이들과 서리도 하고 땅에 돼지 불알, 오징어 등을 그려 놓고 놀거나 자치기, 아니면 수숫대를 끌고 다니는 놀이, 딱지치기, 말타기, 닥나무로 만든 활쏘기, 삼태기로 새 잡기 놀이 등을 했었다. 물론 술래잡기와 대보름날 망우리 돌리기 등을 했다. 지금의 나의 아들, 딸 세대처럼 컴퓨터 게임에 빠질 수 없었던 시대였던 것은 어찌 보면 행운이기도 하다. 해서 나에겐 어릴 적 놀이가 추억이 되고 글의 소재가 되고 감정을 만드는 소재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수숫대를 끌고 다닌 것은 아마다 굴리기의 변형된 놀이 같다. 굴렁쇠가 없으니 그냥 수숫대를 끌고 다닌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낮으로 비스듬히 벤 수숫대를 끌고 다니다 손바닥을 많이도 베었던 기억이 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 5센티가 넘는 선명한 상처 상흔은 손금처럼 운명의 순간처럼 손바닥에 기록처럼 남아 있다.

난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랐다. 우리 아이들은 분유와 생우유를 먹고 자랐다. 내가 어릴 때는 새참 먹는 시간에도,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가슴을 드러내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던 엄마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엄마의 젖이 모자라 미음을 먹기도 하고 멀겋게 죽을 끓여서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유식을 먹을 때가 되어서 먹은 것이 아니고 반강제적 이유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요즘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의 성격은 더 소를 닮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태어나면서 금수저 들고 태어난 아이들이 예전이라고 왜 없었겠는가, 그땐 금수저라 하여도 고만고만해서 티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결혼 중매에도 한우 등급 매기듯 등급을 매기는 시대. 상류층은 상류층대로 하층민은 하층민대로 끼리끼리 살아가는 신 신분 사회가 형성되어 가는 신세계가 현실이다. 밥을 굶는 노년층이 있고 명품으로만 결혼 예물을 하다 보니 명품이 가장 잘나가는 나라가 된 나라. 술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자살 공화국. 그래도 첨단을 달리는 각종 전자 제품과 지하철 등 여러 시설도 세계 최고인 나라. 마음이 부자인 나라이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살지 좋아지면 좋겠지만 국민소득이 높다고 국민이 모두 다 잘사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의 아버지가 나의 기억에 남은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이 나의 아이들에게 남아 있을 또 다른 세상에선 모두가 행복한 세상, 아픔을 보듬어 주는 세상이 되길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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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매서 외양간에 가둔 소
똥오줌에 질펀해진 외양간
지푸라기만 넣어 주고
똥 밭에 뒹군 소를 보고
이눔에 소가
이눔에 소가 되새기는 아버지
말 못하는 짐승하고 아침부터 싸움이나 하고 잘하는 짓이다 라던 엄마

소가 송아지를 나으면
소를 팔고 송아지를 길렀다
목동처럼 소를 끌고 들로 산허리로 옮겨 다니며 묶어 놓고
꼴 베고 소 죽 끓이는 일상이던 날들
밭을 갈고 논에 써래질 할 때마다
아버지와 소는 부부 싸움하듯 싸운다
고래고래 지르는 아버지 육두문자
마스크 같은 멍애까지 하고 숨을 헐떡이던 소는
목이 말랐던 걸까
배가 고팠던 걸까
송아지가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자유는 짧고
마취도 안 하고 생살을 찢는 코두레 아픔처럼
코 꿰어 살아가는 삶처럼
실컷 일하고 욕먹던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육두문자 세례받던 소처럼
내가 마신 커피도 물도 차도 질펀한 외양간처럼 지구 귀퉁이를 적시고
뱀처럼 마신 물이 독이 되지도 못하는 물은
귀로 들은 말만 독이 되어 가슴을 친다.

#작가의 변
세상엔 사람 사이에도 말이 잘 안 통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동물과의 대화라면 더욱 힘든 것이 당연하다. 흔히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말한다. 애완견과 대화를 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사람한테 심지어 가족한테도 반응이 두려워 말 못하고 가슴에 쌓아 두었던 말들을 애완견에게 하기도 한다. 또는 나무에게 말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다들 할 말은 많은데 들어 주는 것이 힘들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버스에서, 아니면 모임에서 이런저런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다. 그럴 때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끝까지 다 들어 보지도 않고 바보처럼 왜 그랬어, 확 패주지. 확 싸워주지. 확 욕이나 퍼주지. 마음은 그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가슴앓이하다 가족에게 말을 하면, 아 나도 스트레스를 받아 나한테 이야기 하지마, 하는 반응이 나오면 정말이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이나 나무에게 라도 말을 걸고 싶은 것이다. 캐나다에선 정신과 상담이 비싸다. 그래서 우울증이나 정신적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소리를 치거나 욕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많이 된다. 아니 잠시 혼자 있는 시간도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어렸을 적엔 동네 아이들과 서리도 하고 땅에 돼지 불알, 오징어 등을 그려 놓고 놀거나 자치기, 아니면 수숫대를 끌고 다니는 놀이, 딱지치기, 말타기, 닥나무로 만든 활쏘기, 삼태기로 새 잡기 놀이 등을 했었다. 물론 술래잡기와 대보름날 망우리 돌리기 등을 했다. 지금의 나의 아들, 딸 세대처럼 컴퓨터 게임에 빠질 수 없었던 시대였던 것은 어찌 보면 행운이기도 하다. 해서 나에겐 어릴 적 놀이가 추억이 되고 글의 소재가 되고 감정을 만드는 소재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수숫대를 끌고 다닌 것은 아마다 굴리기의 변형된 놀이 같다. 굴렁쇠가 없으니 그냥 수숫대를 끌고 다닌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낮으로 비스듬히 벤 수숫대를 끌고 다니다 손바닥을 많이도 베었던 기억이 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 5센티가 넘는 선명한 상처 상흔은 손금처럼 운명의 순간처럼 손바닥에 기록처럼 남아 있다.

난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랐다. 우리 아이들은 분유와 생우유를 먹고 자랐다. 내가 어릴 때는 새참 먹는 시간에도,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가슴을 드러내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던 엄마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엄마의 젖이 모자라 미음을 먹기도 하고 멀겋게 죽을 끓여서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유식을 먹을 때가 되어서 먹은 것이 아니고 반강제적 이유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요즘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의 성격은 더 소를 닮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태어나면서 금수저 들고 태어난 아이들이 예전이라고 왜 없었겠는가, 그땐 금수저라 하여도 고만고만해서 티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결혼 중매에도 한우 등급 매기듯 등급을 매기는 시대. 상류층은 상류층대로 하층민은 하층민대로 끼리끼리 살아가는 신 신분 사회가 형성되어 가는 신세계가 현실이다. 밥을 굶는 노년층이 있고 명품으로만 결혼 예물을 하다 보니 명품이 가장 잘나가는 나라가 된 나라. 술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자살 공화국. 그래도 첨단을 달리는 각종 전자 제품과 지하철 등 여러 시설도 세계 최고인 나라. 마음이 부자인 나라이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살지 좋아지면 좋겠지만 국민소득이 높다고 국민이 모두 다 잘사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의 아버지가 나의 기억에 남은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이 나의 아이들에게 남아 있을 또 다른 세상에선 모두가 행복한 세상, 아픔을 보듬어 주는 세상이 되길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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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매서 외양간에 가둔 소
똥오줌에 질펀해진 외양간
지푸라기만 넣어 주고
똥 밭에 뒹군 소를 보고
이눔에 소가
이눔에 소가 되새기는 아버지
말 못하는 짐승하고 아침부터 싸움이나 하고 잘하는 짓이다 라던 엄마

소가 송아지를 나으면
소를 팔고 송아지를 길렀다
목동처럼 소를 끌고 들로 산허리로 옮겨 다니며 묶어 놓고
꼴 베고 소 죽 끓이는 일상이던 날들
밭을 갈고 논에 써래질 할 때마다
아버지와 소는 부부 싸움하듯 싸운다
고래고래 지르는 아버지 육두문자
마스크 같은 멍애까지 하고 숨을 헐떡이던 소는
목이 말랐던 걸까
배가 고팠던 걸까
송아지가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자유는 짧고
마취도 안 하고 생살을 찢는 코두레 아픔처럼
코 꿰어 살아가는 삶처럼
실컷 일하고 욕먹던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육두문자 세례받던 소처럼
내가 마신 커피도 물도 차도 질펀한 외양간처럼 지구 귀퉁이를 적시고
뱀처럼 마신 물이 독이 되지도 못하는 물은
귀로 들은 말만 독이 되어 가슴을 친다.


#작가의 변
세상엔 사람 사이에도 말이 잘 안 통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동물과의 대화라면 더욱 힘든 것이 당연하다. 흔히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말한다. 애완견과 대화를 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사람한테 심지어 가족한테도 반응이 두려워 말 못하고 가슴에 쌓아 두었던 말들을 애완견에게 하기도 한다. 또는 나무에게 말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다들 할 말은 많은데 들어 주는 것이 힘들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버스에서, 아니면 모임에서 이런저런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다. 그럴 때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끝까지 다 들어 보지도 않고 바보처럼 왜 그랬어, 확 패주지. 확 싸워주지. 확 욕이나 퍼주지. 마음은 그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가슴앓이하다 가족에게 말을 하면, 아 나도 스트레스를 받아 나한테 이야기 하지마, 하는 반응이 나오면 정말이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이나 나무에게 라도 말을 걸고 싶은 것이다. 캐나다에선 정신과 상담이 비싸다. 그래서 우울증이나 정신적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소리를 치거나 욕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많이 된다. 아니 잠시 혼자 있는 시간도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어렸을 적엔 동네 아이들과 서리도 하고 땅에 돼지 불알, 오징어 등을 그려 놓고 놀거나 자치기, 아니면 수숫대를 끌고 다니는 놀이, 딱지치기, 말타기, 닥나무로 만든 활쏘기, 삼태기로 새 잡기 놀이 등을 했었다. 물론 술래잡기와 대보름날 망우리 돌리기 등을 했다. 지금의 나의 아들, 딸 세대처럼 컴퓨터 게임에 빠질 수 없었던 시대였던 것은 어찌 보면 행운이기도 하다. 해서 나에겐 어릴 적 놀이가 추억이 되고 글의 소재가 되고 감정을 만드는 소재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수숫대를 끌고 다닌 것은 아마다 굴리기의 변형된 놀이 같다. 굴렁쇠가 없으니 그냥 수숫대를 끌고 다닌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낮으로 비스듬히 벤 수숫대를 끌고 다니다 손바닥을 많이도 베었던 기억이 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 5센티가 넘는 선명한 상처 상흔은 손금처럼 운명의 순간처럼 손바닥에 기록처럼 남아 있다.

난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랐다. 우리 아이들은 분유와 생우유를 먹고 자랐다. 내가 어릴 때는 새참 먹는 시간에도,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가슴을 드러내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던 엄마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엄마의 젖이 모자라 미음을 먹기도 하고 멀겋게 죽을 끓여서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유식을 먹을 때가 되어서 먹은 것이 아니고 반강제적 이유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요즘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의 성격은 더 소를 닮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태어나면서 금수저 들고 태어난 아이들이 예전이라고 왜 없었겠는가, 그땐 금수저라 하여도 고만고만해서 티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결혼 중매에도 한우 등급 매기듯 등급을 매기는 시대. 상류층은 상류층대로 하층민은 하층민대로 끼리끼리 살아가는 신 신분 사회가 형성되어 가는 신세계가 현실이다. 밥을 굶는 노년층이 있고 명품으로만 결혼 예물을 하다 보니 명품이 가장 잘나가는 나라가 된 나라. 술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자살 공화국. 그래도 첨단을 달리는 각종 전자 제품과 지하철 등 여러 시설도 세계 최고인 나라. 마음이 부자인 나라이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살지 좋아지면 좋겠지만 국민소득이 높다고 국민이 모두 다 잘사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의 아버지가 나의 기억에 남은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이 나의 아이들에게 남아 있을 또 다른 세상에선 모두가 행복한 세상, 아픔을 보듬어 주는 세상이 되길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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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을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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