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49. 고슴도치 사랑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49. 고슴도치 사랑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02.15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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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상처가 너무 많아

온몸에 털을 창처럼 세워 산다

그래도 배고픈 여우가

툭툭 건드려 배를 드러내면 죽은 목숨

온몸에 가시투성이 고슴도치도

사랑을 한다네

세웠던 창을 양탄자처럼 누이고

상처투성이 마음을 열면

피로 물들 것 같던 일은 없지

그래도 마음에도 없는 놈에겐

온몸에 창을 세워 상처를 내지.


#작가의 변
세상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1도 없는데 나만 홀로 세상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다. 지하철에서도 일하는 직장에서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면 내 말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굳은살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자꾸 칼질을 한다. 손이 아파 온다. 손가락도 저려 온다. 그래도 먹고 살려니 할 수 없이 일은 계속하고, 손가락엔 물집이 잡힌다. 잡힌 물집이 아프지만 그래도 일을 쉴 수는 없으니 계속 일한다.
그러다 보면 물집은 터지고 쓰리고 아리지만, 상처는 나아지고 또 물집이 생기고를 반복해서 굳은살이 생긴다.
날개가 있는 오리와 캐나다 거위가 뒤뚱뒤뚱 걸어가는 것이 우스꽝스럽다. 날개가 있는데 그냥 날면 될 것을, 뒤뚱거리며 맴도는 것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나에겐 날개가 없지만, 날개 대신 양팔을 움직여서 균형을 잡고 뒤뚱대는 오리나 캐나다 거위보다 잘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푸드득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 버리는 오리와 거위가 부러운 순간. 오리와 캐나다 거위는 팔로 쓰는 대신 날개로 쓰고 순간적으로 날아올라 버린 것이다. 지구상에 없는 용과 대한민국엔 동물원에 밖에 없는 호랑이는 왕실의 위용을 나타내기도 하고 용맹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올해는 호랑이의 해이다. 어릴 적 울보였던 내가 자주 듣는 말이 울면 호랑이가 잡가 간다는 말이었다. 이미 그 당시에도 대한민국엔 호랑이가 살지 않고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마을 뒷산 홍골에서 불빛이 빛나면 호랑이 눈에서 나오는 빛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막걸리 심부름하러 아랫마을에 갔다 오다가 뒷산에서 광채가 나는 빛을 보면 등골이 오싹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다 거짓말인데 믿었다. 서낭당(성황당)을 지날 때마다 서낭당에 귀신이 산다고 하도 들어서 서낭당의 금줄과 펄럭이는 비닐 조각이나 천 조각에도 놀라게 되었다.
반복되는 상처에 익숙해지면 굳은살이 되지만 마음에 상처가 계속 나면 마음은 피폐해지고 황량해진다. 요즘은 웰빙으로 마음의 근육을 키우자는 운동이 일고 있지만, 마음에 근육이 그렇게 쉽게 생길 것 같으면 현대인들이 우울증과 정신건강이 황폐해지는 현상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슴도치의 사랑처럼 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창 같은 털을 세우고 살다가 정작 사랑을 하기 위해 중요한 때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만 위하고 나의 자식만 위하고, 내 가족만을 위하여 살다 보면 정작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 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가 하는 역할 중 하나가 마음에 상처 입은 중생들의 마음 근육을 만들어 주고 상처를 입고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그 역할에서 너무도 일상적으로 흘려버려 놓치고 마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에서조차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닐지. 교회에 믿음으로 가는 게 아니고 어떤 목사님의 말씀이 좋아서 가던지, 사찰에 갈 때 어떤 스님의 법문이 정말 좋아 간다는 등의 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나를 위한, 내 가족을 위한, 우리 회사를 위한, 테두리와 고슴도치 창과 같은 뾰족한 날을 세우고 사는 한 사회는 늘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정작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 열지 못하고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봄이 온다고 매화가 핀다. 땅은 어김없이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도와준다. 마치 어머니 같은 손길로. 고슴도치와 같이 나를 지키기에만 급급한 세상에서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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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상처가 너무 많아

온몸에 털을 창처럼 세워 산다

그래도 배고픈 여우가

툭툭 건드려 배를 드러내면 죽은 목숨

온몸에 가시투성이 고슴도치도

사랑을 한다네

세웠던 창을 양탄자처럼 누이고

상처투성이 마음을 열면

피로 물들 것 같던 일은 없지

그래도 마음에도 없는 놈에겐

온몸에 창을 세워 상처를 내지.

#작가의 변
세상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1도 없는데 나만 홀로 세상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다. 지하철에서도 일하는 직장에서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면 내 말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굳은살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자꾸 칼질을 한다. 손이 아파 온다. 손가락도 저려 온다. 그래도 먹고 살려니 할 수 없이 일은 계속하고, 손가락엔 물집이 잡힌다. 잡힌 물집이 아프지만 그래도 일을 쉴 수는 없으니 계속 일한다.
그러다 보면 물집은 터지고 쓰리고 아리지만, 상처는 나아지고 또 물집이 생기고를 반복해서 굳은살이 생긴다.
날개가 있는 오리와 캐나다 거위가 뒤뚱뒤뚱 걸어가는 것이 우스꽝스럽다. 날개가 있는데 그냥 날면 될 것을, 뒤뚱거리며 맴도는 것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나에겐 날개가 없지만, 날개 대신 양팔을 움직여서 균형을 잡고 뒤뚱대는 오리나 캐나다 거위보다 잘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푸드득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 버리는 오리와 거위가 부러운 순간. 오리와 캐나다 거위는 팔로 쓰는 대신 날개로 쓰고 순간적으로 날아올라 버린 것이다. 지구상에 없는 용과 대한민국엔 동물원에 밖에 없는 호랑이는 왕실의 위용을 나타내기도 하고 용맹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올해는 호랑이의 해이다. 어릴 적 울보였던 내가 자주 듣는 말이 울면 호랑이가 잡가 간다는 말이었다. 이미 그 당시에도 대한민국엔 호랑이가 살지 않고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마을 뒷산 홍골에서 불빛이 빛나면 호랑이 눈에서 나오는 빛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막걸리 심부름하러 아랫마을에 갔다 오다가 뒷산에서 광채가 나는 빛을 보면 등골이 오싹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다 거짓말인데 믿었다. 서낭당(성황당)을 지날 때마다 서낭당에 귀신이 산다고 하도 들어서 서낭당의 금줄과 펄럭이는 비닐 조각이나 천 조각에도 놀라게 되었다.
반복되는 상처에 익숙해지면 굳은살이 되지만 마음에 상처가 계속 나면 마음은 피폐해지고 황량해진다. 요즘은 웰빙으로 마음의 근육을 키우자는 운동이 일고 있지만, 마음에 근육이 그렇게 쉽게 생길 것 같으면 현대인들이 우울증과 정신건강이 황폐해지는 현상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슴도치의 사랑처럼 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창 같은 털을 세우고 살다가 정작 사랑을 하기 위해 중요한 때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만 위하고 나의 자식만 위하고, 내 가족만을 위하여 살다 보면 정작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 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가 하는 역할 중 하나가 마음에 상처 입은 중생들의 마음 근육을 만들어 주고 상처를 입고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그 역할에서 너무도 일상적으로 흘려버려 놓치고 마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에서조차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닐지. 교회에 믿음으로 가는 게 아니고 어떤 목사님의 말씀이 좋아서 가던지, 사찰에 갈 때 어떤 스님의 법문이 정말 좋아 간다는 등의 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나를 위한, 내 가족을 위한, 우리 회사를 위한, 테두리와 고슴도치 창과 같은 뾰족한 날을 세우고 사는 한 사회는 늘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정작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 열지 못하고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봄이 온다고 매화가 핀다. 땅은 어김없이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도와준다. 마치 어머니 같은 손길로. 고슴도치와 같이 나를 지키기에만 급급한 세상에서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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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상처가 너무 많아

온몸에 털을 창처럼 세워 산다

그래도 배고픈 여우가

툭툭 건드려 배를 드러내면 죽은 목숨

온몸에 가시투성이 고슴도치도

사랑을 한다네

세웠던 창을 양탄자처럼 누이고

상처투성이 마음을 열면

피로 물들 것 같던 일은 없지

그래도 마음에도 없는 놈에겐

온몸에 창을 세워 상처를 내지.


#작가의 변
세상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1도 없는데 나만 홀로 세상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다. 지하철에서도 일하는 직장에서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면 내 말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굳은살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자꾸 칼질을 한다. 손이 아파 온다. 손가락도 저려 온다. 그래도 먹고 살려니 할 수 없이 일은 계속하고, 손가락엔 물집이 잡힌다. 잡힌 물집이 아프지만 그래도 일을 쉴 수는 없으니 계속 일한다.
그러다 보면 물집은 터지고 쓰리고 아리지만, 상처는 나아지고 또 물집이 생기고를 반복해서 굳은살이 생긴다.
날개가 있는 오리와 캐나다 거위가 뒤뚱뒤뚱 걸어가는 것이 우스꽝스럽다. 날개가 있는데 그냥 날면 될 것을, 뒤뚱거리며 맴도는 것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나에겐 날개가 없지만, 날개 대신 양팔을 움직여서 균형을 잡고 뒤뚱대는 오리나 캐나다 거위보다 잘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푸드득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 버리는 오리와 거위가 부러운 순간. 오리와 캐나다 거위는 팔로 쓰는 대신 날개로 쓰고 순간적으로 날아올라 버린 것이다. 지구상에 없는 용과 대한민국엔 동물원에 밖에 없는 호랑이는 왕실의 위용을 나타내기도 하고 용맹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올해는 호랑이의 해이다. 어릴 적 울보였던 내가 자주 듣는 말이 울면 호랑이가 잡가 간다는 말이었다. 이미 그 당시에도 대한민국엔 호랑이가 살지 않고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마을 뒷산 홍골에서 불빛이 빛나면 호랑이 눈에서 나오는 빛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막걸리 심부름하러 아랫마을에 갔다 오다가 뒷산에서 광채가 나는 빛을 보면 등골이 오싹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다 거짓말인데 믿었다. 서낭당(성황당)을 지날 때마다 서낭당에 귀신이 산다고 하도 들어서 서낭당의 금줄과 펄럭이는 비닐 조각이나 천 조각에도 놀라게 되었다.
반복되는 상처에 익숙해지면 굳은살이 되지만 마음에 상처가 계속 나면 마음은 피폐해지고 황량해진다. 요즘은 웰빙으로 마음의 근육을 키우자는 운동이 일고 있지만, 마음에 근육이 그렇게 쉽게 생길 것 같으면 현대인들이 우울증과 정신건강이 황폐해지는 현상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슴도치의 사랑처럼 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창 같은 털을 세우고 살다가 정작 사랑을 하기 위해 중요한 때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만 위하고 나의 자식만 위하고, 내 가족만을 위하여 살다 보면 정작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 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가 하는 역할 중 하나가 마음에 상처 입은 중생들의 마음 근육을 만들어 주고 상처를 입고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그 역할에서 너무도 일상적으로 흘려버려 놓치고 마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에서조차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닐지. 교회에 믿음으로 가는 게 아니고 어떤 목사님의 말씀이 좋아서 가던지, 사찰에 갈 때 어떤 스님의 법문이 정말 좋아 간다는 등의 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나를 위한, 내 가족을 위한, 우리 회사를 위한, 테두리와 고슴도치 창과 같은 뾰족한 날을 세우고 사는 한 사회는 늘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정작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 열지 못하고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봄이 온다고 매화가 핀다. 땅은 어김없이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도와준다. 마치 어머니 같은 손길로. 고슴도치와 같이 나를 지키기에만 급급한 세상에서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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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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