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멸(生滅)의 과정과 배설, 감관의 수호(2)
생멸(生滅)의 과정과 배설, 감관의 수호(2)
  • 박병기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승인 2022.01.2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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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똥에 관한 불교적 독해”

#3. 배설 과정과 감관(感官)의 수호로서 수행(修行)

“딴하와 아라띠와 라가를 보고 성적 접촉에 대한 욕망이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똥과 오줌으로 가득 찬 존재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두 발로 조차 그것을 건드리길 원하지 않습니다.” ...... 관찰하면서 견해에 집착하지 않고 성찰하면서 나는 내면의 적멸을 본 것입니다.

이 인용에서 우리는 불교 수행의 핵심을 붓다의 음성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수행은 관찰과 성찰이라는 두 차원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관찰할 때는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실천적 지혜가 요청되고, 성찰할 때는 내면의 붓다를 통해 적멸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그런데 성적 매력이 있는 한 여자를 관찰할 때, 그 배 안에 있는 ‘똥과 오줌’을 볼 수 있으면 두 발로도 건드리고 싶지 않을 만큼 욕구를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한 사람의 뱃속에 있는 똥과 오줌을 떠올리는 것으로 성적 욕구를 다스릴 수 있는지와 관련된 논란은 일단 접어두고, 이 지점에서 붓다가 그 똥과 오줌을 어떻게 관찰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볼 필요가 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사실적 차원의 관찰로 그냥 인간의 주된 구성요소 중 하나가 똥과 오줌이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똥과 오줌이 더럽고 피해야 할 것이라는 세상의 견해에 집착하지 않고 그냥 성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의 뱃속에 있는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지만, 만약 그 똥과 오줌이 더럽고 피해야 할 것이라는 판단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성적인 욕구가 다스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그런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두 번째 해석은 붓다 스스로도 똥과 오줌은 더럽고 피해야 할 것이라는 세상의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세상의 견해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충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또 다른 문제를 감수해야 하지만, 맥락 상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성욕이 다스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는 그 다음 문장, 즉 성찰로 내면의 적멸을 볼 수 있다는 문장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전체적인 맥락이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 위로 솟아 가시줄기에 핀 연꽃이 물이나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듯, 성자의 삶을 사는 님은 적멸에 관해 말할 뿐 탐욕을 여의어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도 세상에도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여러 지각에서 떠나면 속박이 없고, 지혜로써 해탈하면 미혹이 없습니다,”

곳곳에 등장하는 연꽃의 비유를 통해 여기서도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나 세상에 더럽혀지지 않는 감관의 수호를 적멸에 이르는 수행의 핵심적 실천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배고픔의 욕구에 기반한 음식물 섭취와 그 결과로서 똥과 오줌의 배설이라는 행위에 대한 붓다의 견해는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은 먹고 싸야만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고, 그 과정은 배고픔과 배설 욕구라는 감각적 욕망을 토대로 해서 가능하다. 이 엄연한 사실은 우리가 모든 생명체와 공유하고 있는 연속적 지점에 속한다. 먹는 것만 소중하고 싸는 것은 더럽고 피해야 할 것이라는 세상의 견해는 이 자연 질서에 어긋나는 잘못된 견해일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한 붓다의 입장은 올바른 관찰을 통해 내면의 적멸을 보는 수행에 맞춰져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수행에 관한 설법은 듣는 사람의 근기(根機)에 따라 다른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는 사실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가르침을 설하는 붓다의 방식은 개별화 교육의 방식의 뿌리를 이루기도 한다. 평준화를 전제로 하는 학급 안에서 다른 학습능력과 여건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들이 꼭 지니고 있어야 하는 관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감관의 수호는 생멸의 과정에 대한 여여(如如)함의 자세를 전제로 한다. 우리는 먹는 것과 싸는 것이 순환을 이루는 생멸의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자이고, 그 과정은 배고픔과 뇨기(尿氣) 같은 신체적 욕구를 통해 전개된다.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오줌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런 삶을 이룬다. 다른 생명체들과 차이가 있다면 이 과정을 의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식과 같은 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단식도 일정한 시간 안에서만 할 수 있을 뿐 그 시간이 지나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작은 차이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다움의 원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 뜨면 일하다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선사(禪師)의 일상에는 ‘똥과 오줌이 마려우면 바지를 내린다.’는 과정이 당연히 포함된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특정한 장소를 마련할 수도 있고, 사람이 없는 산중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할 수도 있다. 그 과정들을 의식하면서도 걸림이 없을 수 있다면, 이미 그는 경지에 오른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걸림없음[無碍]의 미학은 그런 점에서 화엄과 선이 공유하는 수행의 목표 지점이 되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 걸림없음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이다.

순환의 과정을 거부해버린 도회적 삶의 양식에서 먹는 일과 싸는 일은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세식 화장실이 그 상징이다. 오줌만 누어도 그보다 몇 배 되는 물을 동원해 내려 보내면서 우리는 그 철저한 분리에 성공한 것이라는 만족감을 느끼는데 익숙하다. 그렇게 내려 보낸 하수는 처리장에서 약품을 동원해 처리되어 다시 우리 수돗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꺼림칙하여 플라스틱병에 담긴 ‘생수’를 사먹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악순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지를 충분한 정도 이상으로 알게 되었음에도, 그 일상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 실천에 옮기는 일에는 대부분 실패하고 있는 중이다.

감관의 수호는 일차적으로 생멸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내 몸의 흐름을 관찰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한편으로는 그 흐름을 충실히 관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흐름이 지니는 우주적 의미를 음미하는 성찰의 과정이 곧 감관수호의 과정이다. 그렇게 보면 감관의 수호는 수행 자체라고 할 수도 있다.

자연과의 거리가 멀지 않았던 붓다 시대와 비교해서 그 자연과의 격리를 전제로 영위되고 있는 우리 시대에는 그런 의미의 감관 수호에 구조적 차원이 추가되어야만 한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를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 속에서 먹는 것과 싸는 것 또한 상품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대형 가게의 유기농 매장이나 백화점의 수입 화장실 용품점 같은 것들이 그 상징이다. 그런 가운데 매끄럽고 고급스런 것만을 살 수 있는 삶이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라는 광고성 명제가 우리 문화 전반에 스며들게 되었다. 이 문화 속에서는 똥은 물론 음식까지도 인간을 소외시키는 매개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그런 삶의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생긴다. 생과 멸이 분리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는 것과 같이, 먹는 것과 싸는 것이 분리될 수 없다. 그 둘 사이의 분리를 전제로 삼아 영위되는 우리의 일상이 위태롭고 자기파멸적일 수밖에 없는 근원적 이유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지속적으로 그 분리를 문화 또는 소비의 이름으로 강화시키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다. 감관의 수호가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해서 사회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그래야만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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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교수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윤리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했고,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철학과 계율을 공부했다.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생명윤리교육평가전문위원회 위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회장으로 2015 초· 중·고 도덕과 교육과정 개정 연구를 총괄했다. 주요 저서로 《윤리학과 도덕교육 1·2》(공저)《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윤리》, 《직업과 윤리》. 《아동인격교육론》, 《도덕심리학의 전통과 새로운 동향》,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문광부우수학술도서),《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딸과 함께 철학자의 길을 걷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등이 있다. 역서로 《철학의 과업》(공역),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공역), 《보살의 뇌》(공역), 《윤리적 자연주의》(공역), 《도덕적 감정과 직관》(공역) 등이 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이자 종합교육연수원장을 맡고 있으며,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정의평화불교연대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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