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에서 본 승려대회의 문제
공론장에서 본 승려대회의 문제
  • 이도흠 한양대 교수
  • 승인 2022.01.20 11:34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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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 국가와 종교, 시민사회 사이의 상호견제가 필요하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 등을 종합하면, 페스트에 대한 성찰, 르네상스 이후의 과학혁명과 계몽사상, 산업화와 도시화, 보통교육, 금속인쇄와 출판의 대중화, 대중 언론의 출현 등이 어우러지면서 의식의 각성을 한 시민들이 ‘주술의 정원’에서 탈출하여 교회 바깥에 시민사회를 구성하였다. 시민들은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살롱 등에 모여 모든 사람들이 원칙적으로 동등한 기회와 권력을 갖고서 과학과 이성에 근거하여 의견을 피력하고 토론을 하고 여론(public opinion)을 형성하고 때로는 합의(consensus)에 이르며 부르주아의 공론장(public sphere)을 형성하였다. 공중(public)은 공론장에서 합리적으로 토론을 하며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흑사병, 연금술, 면죄부로 대표되는 어두운 주술의 정원에서 탈출하여 계몽의 빛이 환하게 비추는 세계로 나아갔으며, 이것이 종교적 상징과 교리에서 초월성과 신비성을 박탈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계의 문을 열었으며, 민주주의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종교와 정치의 완전 분리는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종교와 공론장 사이의 변증법적 종합, 국가와 종교, 시민사회 사이의 상호견제다. 종교는 교당 안에 공론장을 설정하여 교리 가운데 과학과 어긋나는 것은 수정하고, 이웃 종교의 진리도 인정하고, 신비로 포장하여 비밀화한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종교인의 부패와 비리를 견제받을 수 있는 장치를 내외에 모두 수립하고, 종교인들은 권력을 내려놓고 절/성당/교회를 민주화하여야 한다. 대신, 종교인들은 주어진 권위를 가지고 각 종교가 추구하는 정의에 어긋나는 국가를 비판하고 인류의 공존공영과 평화를 추구하면서 가장 약한 생명과 사람에 대해 편애적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시민 사회는 종교의 초월성과 신비화, 절대화와 종교인의 부패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되, 종교인과 함께 교회/성당/절을 자본주의 체제나 세속의 탐욕과 경쟁심, 이기심을 씻어내고 진리나 깨달음/거룩함/무한을 추구하는 장으로 지켜내야 한다. 국가는 종교를 이용하여 권력을 강화하는 유혹에서 벗어나 종교와 정치를 철저히 분리하되 종교인의 타락과 부패를 견제해야 한다.”(이도흠,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2권 - 4차 산업혁명과 간헐적 팬데믹 시대>)

2. 문화재 관람료 폐지 선언은 가르침의 상속자로의 복원 선언이다.

하지만, 한국 불교계로 한정할 때 국가와 불교, 공론장 사이의 균형은 깨졌다. ‘자본-국가-종교권력층-보수언론-사법부-전문가집단과 어용지식인’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동맹이 더욱 공고해지면서 부패와 타락, 수탈과 착취는 극대화하고, 권승들이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치와 종교의 유착관계가 형성되었다. 불교계는 전통사찰지원법을 비롯한 관련법과 제도를 불교계에 유리하게 개정하고 템플스테이와 불교문화재 지원을 더 많이 받고 몇몇 권승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정치권의 권력이 필요했다. 정치권은 불교신자의 표와 설득적 동의가 필요했다. 선거 국면에서는 이를 한꺼번에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주고받을 수 있기에 더욱 치열하게 종교와 정치의 유착이 강화하였다. 최근의 승려대회 사태도 이의 일환이다.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는 수십 년 동안 문화재 관람료 폐지의 합의가 있었다. 시민들은 교회나 성당에 갈 때 입장료를 내지 않는데 사찰을 예외로 함을 납득하지 못하였다. 절에는 전혀 들릴 생각이 없는 국립공원 방문자들이 그 안에 절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문화재 관람료를 지불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이 사용가치를 지닌 상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소비자는 이에 대해 일정한 교환가치를 갖는 화폐를 주고 구입하여 사용가치를 누린다. 해인사처럼 사찰로부터 3천여 미터 떨어져 있거나 신흥사처럼 가깝더라도 들릴 생각이 전혀 없는 등반객이나 국립공원 탐방객에게 입장료를 받는 것은 ‘산적’이라는 시민사회의 조롱이 그리 과장이 아니다. 불상이나 불탑을 보며 종교적 감동, 미적 쾌(快), 의미의 해석과 공유의 사용가치를 느끼지 못하는데 시민들이 교환가치를 지불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지속적으로 불만과 비판을 드러냈고 이에 범어사, 천은사 등이 문화재 관람료를 폐지했다. 실제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관람료를 받을 수 있는 사찰 가운데 현재 이를 징수하고 있는 사찰은 13%정도라고 한다. 문화재 관람료 폐지가 시민사회의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다.

불교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경전 어느 문장, 어느 문구에도 부처님을 보러 올 때 돈을 내라고 기술한 부분은 없다. 부처님은 가난한 자, 병자, 장애를 겪는 자를 몸소 찾으셔서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셨다. <삼국유사>를 보면 부처님께서 거지와 빈자, 범인의 모습으로 나투셨는데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여럿 나온다.

사찰이 문화재 관람료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한 마디로 돈 때문이다. 이 돈의 일부가 문화재 관리, 사찰의 운영, 승려 교육, 포교 등 좋은 방향으로 사용된 것도 사실이지만, 주지를 비롯한 몇몇 권승들의 쌈짓돈으로 사용된 경우도 많았다. 세속의 표현대로 스님들이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을 가지면서 승려들이 타락하고 종단의 위상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순간 절은 시장에 포섭되고 불상과 불탑은 상품으로 변한다. <법의 상속경>에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 가르침(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M3)”라고 말씀하셨듯이, 승려는 재물의 상속자로 전락하고 종단은 시민사회의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정부가 불교를 폄훼하고 차별한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스스로 그럴 만한 빌미를 만들어준 것은 아닌가 자성과 참회부터 하는 것이 부처님 제자다운 태도다. 이번 기회에 종단 차원에서 문화재 관람료 폐지 선언을 하는 것이 종단의 당간을 다시 세우고, 승려들을 ‘가르침의 상속자’로 되돌리고, 절을 수행도량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길이다. 이럴 때 문화재 관람료 수입이 없으면 실제로 문화재 관리가 어려운 절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절들은 범어사처럼 문화재 관람료를 폐지하는 대신에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문화재 관리 지원금을 더 받으면 된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매표소를 절 입구로 옮겨서 받는 것은 시민사회로부터 용인될 수 있는 사안일 것이다.

3. 승려대회 개최는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정청래 의원이 10월 5일의 국정감사장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라 지칭하는 등 이를 반대하는 발언을 하였고, 이에 대해 종단은 그의 사퇴를 주장하며 21일에 승려대회를 열겠다고 한다. 그동안 정부가 기독교에 편향적인 태도를 유지한 것이나 정청래 의원의 표현에 다소 문제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이를 빌미로 승려대회를 여는 것은 비법적(非法的)이자 비상식적이다.

불가에서 승려대회는 한 마디로 말하여 최고의 권위를 갖는 공론장이다. 승려대회는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승려들이 한 곳에 모여 논의하는 산중공사이며, 종헌 종법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힘과 의미를 갖는다. “승려대회란 ① 모든 승려들이 한 곳에 모여현안을 논의하는 토론의 장으로 … ② 초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며)…③ 만장일치가 도출될 때까지 무기한 산중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전통이다.”(김순석, <1994년 대한불교조계종 개혁종단의 성립과 의의>)

우리는 신라시대부터 산중공사의 전통이 있으며 이것이 근현대사에서 승려대회로 바뀌어 승려의 공론을 모으고 불교 혁신과 중흥을 꾀하는 장이 되었다. 특히, 86년 해인사, 94년 서울 조계사 승려대회는 불교계는 물론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았으며 불교 혁신의 지평을 열었다. 해인사 승려대회는 중세의 호국 어용 불교에서 벗어나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는 불교, 중세 봉건적 잔재를 탈피하고 근대화한 불교로 거듭나는 기점이 되었다. 94년 승려대회는 정치권과 유착, 종단 운영의 부패, 낡은 행정제도를 쇄신함과 아울러 부패하고 타락한 승려들을 몰아낸 근현대불교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정부의 종교 편향과 차별은 당연히 시정되어야 할 사항이지만, 핵심은 정청래 의원의 발언이다. 종교 편향과 차별이 저변의 분노로 자리하긴 했지만, 종단에서 취한 그동안의 과정이나 발언을 보면 이는 승려대회를 열기 위한 명분 쌓기용일 뿐이다. 국회의원이 사찰 관람료를 받지 말라고 한 발언이 종단의 당간을 무너트릴 만큼 비상사태도 아니며, 그 문제가 종헌 종법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행동을 필요로 하기는커녕 너무도 사소한 사안이다. 이는 벼룩을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자 동안거 중이다. 코로나 시국에 수많은 스님이 모이게 되면, 그동안 잘 지켜온 덕에 시민사회로부터 박수를 받았던 방역수칙을 어김은 물론 스님들을 범법자로 내몰 수 있다. 동안거 중에 승려대회를 여는 것은 수행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승가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 오늘에라도 당장 취소함이 여법(如法)한 결정이다.

그럼에도 종단이 이를 강행하여 수천 명의 승려가 모이고 종단이 이를 ‘전국승려대회’로 명명한다 하더라도 이를 승려대회를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이 승려대회의 개념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정의한 대로, 승려대회는 모든 승려들이 한 곳에 모여 현안을 논의하여야 하는데 일부만 참석할 것이며, 만장일치가 도출될 때까지 무기한 산중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권승들이 제안한 안건을 추인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스님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1월 20일 9시 현재 64.7%인 588명이 반대했고, 32.3%인 294명이 찬성했으며 기권한 승려는 36명(4%)이었다. 더구나 종정이 반대했기에 더욱 정당성이 없다. 아무리 권승들이 승려대회라고 우기고 그렇게 표제를 단다고 하더라도 21일의 대회는 ‘권승이 주도한 일부 승려들의 모임’일 뿐이다.

더불어, ‘세몰이’가 곧 여법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에 익숙한 우리는 다수의 선택에 따르는 상황에 익숙하지만, 율장에서는 결코 ‘다수’를 ‘여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법은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며, 문제제기에 대한 공감대와 다수의 지지, 그에 대한 정확한 확인 절차와 원칙에 따른 해결,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구성원의 설득 내지 동의가 동반되어야 한다.”(이자랑, <개혁종단의 징계에 대한 율장적 검토>)

한 의원의 발언을 가지고 승려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즉각 승려대회를 취소함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강행한다면 역사는 승려대회의 지위를 박탈할 것이며 두고두고 시민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3. 실세 권승의 상왕정치는 멈추어야 한다

시민사회의 상식에도 어긋나고 비법(非法)임에도 승려대회를 강행하려는 것은 실세 권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국민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선출한 국회의원을 종교집단의 일부 세력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내쫓으려 하거나 겁박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폭거다. 실세 권승이 총무원을 무력화하면서까지 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종교와 정치의 유착보다 더한 종정농단(宗政壟斷)이다. 정부의 종교편향과 차별에 대해서는 대화와 정치적인 해결이 우선이다.

지금 한국 불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은처, 도박, 공금횡령, 폭행, 성폭력 승려들의 범계 및 비리 행위가 임계점을 넘어섰음에도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의 가장 큰 이유는 권승 카르텔이 과도하게 권력과 재정을 독점한 채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사찰 안과 밖의 장치를 무력화하거나 포섭하였기 때문이다.

실세 권승은 적광 스님 폭행, 용주사와 마곡사 사태, 올바른 언론에 대한 해종언론의 지정과 탄압, 명진스님 제적, 정교유착 등 조계종 적폐를 쌓은 장본인으로서, 설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를 단행한 종단의 수장으로서 무한 책임이 있다. 실세 권승은 필자 등이 서면으로 요청하거나 고발하였던 은처, 억대 도박, 신밧드 룸쌀롱 출입 및 상습 성매매, 국고횡령 등의 의혹에 대해 아직 해명하지 않고 있다.

그는 포섭과 배제의 전략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정치인이다. 그는 불교광장으로 통합하여 종회를 장악하고 호법부, 호계원을 무력화하고 원로와 정부와 언론을 포섭하였다. 이용할 가치가 있는 스님과 재가불자, 언론인, 정치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편으로 포섭하였으며, 자기 편은 무조건 두둔하고 자신에게 해가 되는 자는 단호하게 내쳤다. 그는 그와 가까운 동국대 총장, 용주사 주지, 마곡사 주지는 죄가 드러났음에도 비호하여 조계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종헌과 종법을 무력화하였으며, 종회와 호계원은 물론 교구본사를 자신의 의지 관철기관으로 전락시켰다. 총무원장을 물러난 이후에도 ‘강남 원장’으로 불리며 상왕정치를 자행하고 있으며, 시민사회에서는 승려대회도 그가 세몰이를 통하여 권력을 과시하고 대선정국에서 정치적으로 개입하려는 일환으로 파악하고 있다.

권력을 누리고도 족함을 모르는가. 지면을 통하여 지난날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깊이 참회하며 이제라도 상왕의 권좌에서 물러나실 것을 정중히 요청을 드린다. 그럼에도 계속 자리에 연연하고 권력의 단물에 도취한다면, 뜻있는 승려들은 분연히 일어나 진정한 승려대회를 열어야 한다. 강제로 물러나게 하거나 최소한 직선제를 관철시켜서 다음 총무원장이 그로부터 자유롭게 제2의 개혁을 하도록 자리를 깔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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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교수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 화쟁사상을 통한 형식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종합>,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을 썼고, 틱낫한의 <엄마>를 번역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한국기호학회 회장과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을 지냈고, 한국시가학회 회장을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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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인 2022-01-20 16:05:45
권력과 금력앞에 비민주적인 종단운영을 보고도 침묵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개탄스럽습니다()()()

짧은 소견이지만 2022-01-29 23:47:58
제생각엔 선생님의 말씀도 일 리가 있어요
하지만 상왕 이 물러날 사람이라면 진작 순순히 물 러났겄죠?
개과천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상월선원. 천 리순 례 등등
앞으로는 조금식 나아질것입니다
불사는 물 론이고 스님들 복지에도 신경많이 쓸것입니다
믿고 지켜보며 그들에게 스스로 참회할수 있는 시간을 주는것도 좋을것 같아요

혜의 2022-01-20 19:59:41
승려대회 성공을 기원합니다.

2022-01-21 07:10:42
이번 승려대회로 안타깝지만 조계종은 몰락할거에요
오히려 그래서 권승들이 몰락할거 같지만
그 권승들은 현 총무원 체제를 비난하며
그 몰락의 자리를 다시 자기들로 채워나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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