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43. 새해엔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43. 새해엔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01.05 0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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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오늘도 같은 날이지만
어제는 지난해 오늘은 새해

시계는 같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지만
다른 동그라미처럼 제깍제깍 소리를 낸다

살아 가는 일이
살아 내는 일이
때론 힘들고 힘들어도
그래도 살아 내야 한다고

빛나는 날이 아니어도
따뜻한 날이 아니어도
춥고 어두운 날에도 희망이란 촛불을 켜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듯이
하루 하루를 살아 가야한다고

건강하라고 행복하라고 덕담을 주고 받아도
밥은 먹었냐 물어 주는 이 있어 행복한 날이라고 전하고 싶어.








#작가의 변
어제 한국에서 대학을 같이 다닌 친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가끔씩 전화해 안부를 전하는, 같은 대학을 나왔지만 다른 길을 오랫동안 걸은 친구다. “형 어떻게 지냈냐, 일은 갔다 왔나, 바쁘지는 않냐”고 물어 보는 동생에게 일은 지난주부터 쉬고 있고 하나도 안 바쁘다고 말했다.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지방에 내려갔다가 밴쿠버로 다시 와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고 학교 방학이라 전체적으로 쉬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그러는 곳도 있구나” 하면서 신기해했다.

둘째가 소위 스카이라고 부르는 대학의 경영과에 입학했는데 졸업 후의 취업이 걱정된다고 해서 캐나다도 별반 낫지 않다고 했다. “아들도 이번에 회계학과 졸업하지만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다”고 하니, “캐나다도 대학 졸업 후 취업이 힘드냐”고 했다. “여기도 자기 전공에 맞게 취업하는 일은 쉽지 않지”라고 말하면서, “그래도 의료업계, 간호사나 약사등과 방사선과 등은 취업이 잘된다”고 했다. 그러니 “약사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하면서 “간호사는 한국에서도 취업이 잘되지만 일이 많이 힘든 것 같더라.”고 말했다. “10시간 이상 근무하고 교대근무를 하니 당연히 힘든 일이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그래도 고생한 만큼 연봉을 받고 취업도 잘되니 적성에만 맞는다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실 그 동생도 같은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조리하고 안 맞는 것 같다는 내 조언을 받아들인 것인지, 공무원 공부를 해서 공무원이 된 케이스다. 30년이 넘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당시에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인생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끼게 된다. 30년 넘게 한 직장 한 호텔을 다닌 친구도 지금은 총주방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남들과 비교를 하면 왠지 초라해지는 나를 보게 된다. 하지만 세상엔 이익이나 돈만 쫓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광주에 해 뜨는 식당(천원백반식당}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단돈 천원에 백반을 파는 식당이다. 팔면 팔수록 적자인 식당운영을 위해 투잡을 뛰고 많은 시민들이 제공한 도움의 손길로 운영되고 있다. 어머니에 이어 2대가 같은 식당을 운영하는 선한 일을 하고 있다. 그냥 밥을 주면 체면에 쭈뼛쭈뼛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당히 먹으라고 천원을 받고 무한 리필을 해주는 이 식당은 쌀을 제공해주고, 두부를 제공해주고, 반찬을, 김치를 제공해 주는 많은 손길이 함께 해서 운영되고 있다. 아직도 세상엔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배고파하지 않게 돌보는 해 뜨는 식당이 존재한다. 추운 날엔 잠잘 곳이 필요하지만 사시사철 배고픈 사람들에겐 배고픔의 해결이 우선이다.

나라는 늘 수출이 늘어나고 국민소득은 늘어 부자나라가 됐다지만 가난하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 넘쳐난다. 게다가 코로나 정국이라 아픈 사람 전염병에 걸린 가족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생각해보면 긴 터널에서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어둠인 것만 같은 날들이다. 농촌에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은 꿈에 부풀어 귀농을 해도 고추 값이 폭락해서 근당 5천원밖에 안하고 무값이 폭락하여 갈아엎는 농민이 생기고 있다. 도시빈민들은 늘어만 가고 한 끼에 십만 원이 넘는 식사를 파는 고급식당도 있다. 가난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수렁에 빠진 듯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메타버스가 발달하고 가상세계가 발달하여 점점 자동화 정보화가 되고, 로봇이 사람의 손을 대신하면 할수록,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신하면 할수록, 실업자는 늘어나고 숨 쉬고 사는 일조차 힘들어 진다. 결국 농민도, 어민도 도시 빈민도 기본 소득이 없다면 미래가 없다. 모든 국민이 사람으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려면 기본소득으로 소득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해 줄어든 일자리 등은 개선해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새해엔 올 해 보다 나은 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젠 대한민국에서 자취를 감춘 호랑이해 호랑이도 부활해 포효하듯 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터널의 끝을 지나 행복 가득한 세상이 되길 소원한다. 지난 한 해 함께한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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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오늘도 같은 날이지만
어제는 지난해 오늘은 새해

시계는 같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지만
다른 동그라미처럼 제깍제깍 소리를 낸다

살아 가는 일이
살아 내는 일이
때론 힘들고 힘들어도
그래도 살아 내야 한다고

빛나는 날이 아니어도
따뜻한 날이 아니어도
춥고 어두운 날에도 희망이란 촛불을 켜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듯이
하루 하루를 살아 가야한다고

건강하라고 행복하라고 덕담을 주고 받아도
밥은 먹었냐 물어 주는 이 있어 행복한 날이라고 전하고 싶어.





어제도 오늘도 같은 날이지만
어제는 지난해 오늘은 새해

시계는 같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지만
다른 동그라미처럼 제깍제깍 소리를 낸다

살아 가는 일이
살아 내는 일이
때론 힘들고 힘들어도
그래도 살아 내야 한다고

빛나는 날이 아니어도
따뜻한 날이 아니어도
춥고 어두운 날에도 희망이란 촛불을 켜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듯이
하루 하루를 살아 가야한다고

건강하라고 행복하라고 덕담을 주고 받아도
밥은 먹었냐 물어 주는 이 있어 행복한 날이라고 전하고 싶어.








#작가의 변
어제 한국에서 대학을 같이 다닌 친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가끔씩 전화해 안부를 전하는, 같은 대학을 나왔지만 다른 길을 오랫동안 걸은 친구다. “형 어떻게 지냈냐, 일은 갔다 왔나, 바쁘지는 않냐”고 물어 보는 동생에게 일은 지난주부터 쉬고 있고 하나도 안 바쁘다고 말했다.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지방에 내려갔다가 밴쿠버로 다시 와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고 학교 방학이라 전체적으로 쉬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그러는 곳도 있구나” 하면서 신기해했다.

둘째가 소위 스카이라고 부르는 대학의 경영과에 입학했는데 졸업 후의 취업이 걱정된다고 해서 캐나다도 별반 낫지 않다고 했다. “아들도 이번에 회계학과 졸업하지만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다”고 하니, “캐나다도 대학 졸업 후 취업이 힘드냐”고 했다. “여기도 자기 전공에 맞게 취업하는 일은 쉽지 않지”라고 말하면서, “그래도 의료업계, 간호사나 약사등과 방사선과 등은 취업이 잘된다”고 했다. 그러니 “약사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하면서 “간호사는 한국에서도 취업이 잘되지만 일이 많이 힘든 것 같더라.”고 말했다. “10시간 이상 근무하고 교대근무를 하니 당연히 힘든 일이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그래도 고생한 만큼 연봉을 받고 취업도 잘되니 적성에만 맞는다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실 그 동생도 같은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조리하고 안 맞는 것 같다는 내 조언을 받아들인 것인지, 공무원 공부를 해서 공무원이 된 케이스다. 30년이 넘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당시에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인생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끼게 된다. 30년 넘게 한 직장 한 호텔을 다닌 친구도 지금은 총주방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남들과 비교를 하면 왠지 초라해지는 나를 보게 된다. 하지만 세상엔 이익이나 돈만 쫓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광주에 해 뜨는 식당(천원백반식당}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단돈 천원에 백반을 파는 식당이다. 팔면 팔수록 적자인 식당운영을 위해 투잡을 뛰고 많은 시민들이 제공한 도움의 손길로 운영되고 있다. 어머니에 이어 2대가 같은 식당을 운영하는 선한 일을 하고 있다. 그냥 밥을 주면 체면에 쭈뼛쭈뼛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당히 먹으라고 천원을 받고 무한 리필을 해주는 이 식당은 쌀을 제공해주고, 두부를 제공해주고, 반찬을, 김치를 제공해 주는 많은 손길이 함께 해서 운영되고 있다. 아직도 세상엔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배고파하지 않게 돌보는 해 뜨는 식당이 존재한다. 추운 날엔 잠잘 곳이 필요하지만 사시사철 배고픈 사람들에겐 배고픔의 해결이 우선이다.

나라는 늘 수출이 늘어나고 국민소득은 늘어 부자나라가 됐다지만 가난하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 넘쳐난다. 게다가 코로나 정국이라 아픈 사람 전염병에 걸린 가족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생각해보면 긴 터널에서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어둠인 것만 같은 날들이다. 농촌에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은 꿈에 부풀어 귀농을 해도 고추 값이 폭락해서 근당 5천원밖에 안하고 무값이 폭락하여 갈아엎는 농민이 생기고 있다. 도시빈민들은 늘어만 가고 한 끼에 십만 원이 넘는 식사를 파는 고급식당도 있다. 가난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수렁에 빠진 듯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메타버스가 발달하고 가상세계가 발달하여 점점 자동화 정보화가 되고, 로봇이 사람의 손을 대신하면 할수록,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신하면 할수록, 실업자는 늘어나고 숨 쉬고 사는 일조차 힘들어 진다. 결국 농민도, 어민도 도시 빈민도 기본 소득이 없다면 미래가 없다. 모든 국민이 사람으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려면 기본소득으로 소득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해 줄어든 일자리 등은 개선해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새해엔 올 해 보다 나은 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젠 대한민국에서 자취를 감춘 호랑이해 호랑이도 부활해 포효하듯 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터널의 끝을 지나 행복 가득한 세상이 되길 소원한다. 지난 한 해 함께한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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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어제 한국에서 대학을 같이 다닌 친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가끔씩 전화해 안부를 전하는, 같은 대학을 나왔지만 다른 길을 오랫동안 걸은 친구다. “형 어떻게 지냈냐, 일은 갔다 왔나, 바쁘지는 않냐”고 물어 보는 동생에게 일은 지난주부터 쉬고 있고 하나도 안 바쁘다고 말했다.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지방에 내려갔다가 밴쿠버로 다시 와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고 학교 방학이라 전체적으로 쉬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그러는 곳도 있구나” 하면서 신기해했다.

둘째가 소위 스카이라고 부르는 대학의 경영과에 입학했는데 졸업 후의 취업이 걱정된다고 해서 캐나다도 별반 낫지 않다고 했다. “아들도 이번에 회계학과 졸업하지만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다”고 하니, “캐나다도 대학 졸업 후 취업이 힘드냐”고 했다. “여기도 자기 전공에 맞게 취업하는 일은 쉽지 않지”라고 말하면서, “그래도 의료업계, 간호사나 약사등과 방사선과 등은 취업이 잘된다”고 했다. 그러니 “약사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하면서 “간호사는 한국에서도 취업이 잘되지만 일이 많이 힘든 것 같더라.”고 말했다. “10시간 이상 근무하고 교대근무를 하니 당연히 힘든 일이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그래도 고생한 만큼 연봉을 받고 취업도 잘되니 적성에만 맞는다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실 그 동생도 같은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조리하고 안 맞는 것 같다는 내 조언을 받아들인 것인지, 공무원 공부를 해서 공무원이 된 케이스다. 30년이 넘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당시에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인생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끼게 된다. 30년 넘게 한 직장 한 호텔을 다닌 친구도 지금은 총주방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남들과 비교를 하면 왠지 초라해지는 나를 보게 된다. 하지만 세상엔 이익이나 돈만 쫓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광주에 해 뜨는 식당(천원백반식당}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단돈 천원에 백반을 파는 식당이다. 팔면 팔수록 적자인 식당운영을 위해 투잡을 뛰고 많은 시민들이 제공한 도움의 손길로 운영되고 있다. 어머니에 이어 2대가 같은 식당을 운영하는 선한 일을 하고 있다. 그냥 밥을 주면 체면에 쭈뼛쭈뼛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당히 먹으라고 천원을 받고 무한 리필을 해주는 이 식당은 쌀을 제공해주고, 두부를 제공해주고, 반찬을, 김치를 제공해 주는 많은 손길이 함께 해서 운영되고 있다. 아직도 세상엔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배고파하지 않게 돌보는 해 뜨는 식당이 존재한다. 추운 날엔 잠잘 곳이 필요하지만 사시사철 배고픈 사람들에겐 배고픔의 해결이 우선이다.

나라는 늘 수출이 늘어나고 국민소득은 늘어 부자나라가 됐다지만 가난하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 넘쳐난다. 게다가 코로나 정국이라 아픈 사람 전염병에 걸린 가족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생각해보면 긴 터널에서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어둠인 것만 같은 날들이다. 농촌에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은 꿈에 부풀어 귀농을 해도 고추 값이 폭락해서 근당 5천원밖에 안하고 무값이 폭락하여 갈아엎는 농민이 생기고 있다. 도시빈민들은 늘어만 가고 한 끼에 십만 원이 넘는 식사를 파는 고급식당도 있다. 가난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수렁에 빠진 듯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메타버스가 발달하고 가상세계가 발달하여 점점 자동화 정보화가 되고, 로봇이 사람의 손을 대신하면 할수록,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신하면 할수록, 실업자는 늘어나고 숨 쉬고 사는 일조차 힘들어 진다. 결국 농민도, 어민도 도시 빈민도 기본 소득이 없다면 미래가 없다. 모든 국민이 사람으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려면 기본소득으로 소득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해 줄어든 일자리 등은 개선해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새해엔 올 해 보다 나은 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젠 대한민국에서 자취를 감춘 호랑이해 호랑이도 부활해 포효하듯 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터널의 끝을 지나 행복 가득한 세상이 되길 소원한다. 지난 한 해 함께한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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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오늘도 같은 날이지만
어제는 지난해 오늘은 새해

시계는 같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지만
다른 동그라미처럼 제깍제깍 소리를 낸다

살아 가는 일이
살아 내는 일이
때론 힘들고 힘들어도
그래도 살아 내야 한다고

빛나는 날이 아니어도
따뜻한 날이 아니어도
춥고 어두운 날에도 희망이란 촛불을 켜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듯이
하루 하루를 살아 가야한다고

건강하라고 행복하라고 덕담을 주고 받아도
밥은 먹었냐 물어 주는 이 있어 행복한 날이라고 전하고 싶어.








#작가의 변
어제 한국에서 대학을 같이 다닌 친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가끔씩 전화해 안부를 전하는, 같은 대학을 나왔지만 다른 길을 오랫동안 걸은 친구다. “형 어떻게 지냈냐, 일은 갔다 왔나, 바쁘지는 않냐”고 물어 보는 동생에게 일은 지난주부터 쉬고 있고 하나도 안 바쁘다고 말했다.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지방에 내려갔다가 밴쿠버로 다시 와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고 학교 방학이라 전체적으로 쉬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그러는 곳도 있구나” 하면서 신기해했다.

둘째가 소위 스카이라고 부르는 대학의 경영과에 입학했는데 졸업 후의 취업이 걱정된다고 해서 캐나다도 별반 낫지 않다고 했다. “아들도 이번에 회계학과 졸업하지만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다”고 하니, “캐나다도 대학 졸업 후 취업이 힘드냐”고 했다. “여기도 자기 전공에 맞게 취업하는 일은 쉽지 않지”라고 말하면서, “그래도 의료업계, 간호사나 약사등과 방사선과 등은 취업이 잘된다”고 했다. 그러니 “약사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하면서 “간호사는 한국에서도 취업이 잘되지만 일이 많이 힘든 것 같더라.”고 말했다. “10시간 이상 근무하고 교대근무를 하니 당연히 힘든 일이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그래도 고생한 만큼 연봉을 받고 취업도 잘되니 적성에만 맞는다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실 그 동생도 같은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조리하고 안 맞는 것 같다는 내 조언을 받아들인 것인지, 공무원 공부를 해서 공무원이 된 케이스다. 30년이 넘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당시에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인생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끼게 된다. 30년 넘게 한 직장 한 호텔을 다닌 친구도 지금은 총주방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남들과 비교를 하면 왠지 초라해지는 나를 보게 된다. 하지만 세상엔 이익이나 돈만 쫓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광주에 해 뜨는 식당(천원백반식당}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단돈 천원에 백반을 파는 식당이다. 팔면 팔수록 적자인 식당운영을 위해 투잡을 뛰고 많은 시민들이 제공한 도움의 손길로 운영되고 있다. 어머니에 이어 2대가 같은 식당을 운영하는 선한 일을 하고 있다. 그냥 밥을 주면 체면에 쭈뼛쭈뼛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당히 먹으라고 천원을 받고 무한 리필을 해주는 이 식당은 쌀을 제공해주고, 두부를 제공해주고, 반찬을, 김치를 제공해 주는 많은 손길이 함께 해서 운영되고 있다. 아직도 세상엔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배고파하지 않게 돌보는 해 뜨는 식당이 존재한다. 추운 날엔 잠잘 곳이 필요하지만 사시사철 배고픈 사람들에겐 배고픔의 해결이 우선이다.

나라는 늘 수출이 늘어나고 국민소득은 늘어 부자나라가 됐다지만 가난하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 넘쳐난다. 게다가 코로나 정국이라 아픈 사람 전염병에 걸린 가족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생각해보면 긴 터널에서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어둠인 것만 같은 날들이다. 농촌에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은 꿈에 부풀어 귀농을 해도 고추 값이 폭락해서 근당 5천원밖에 안하고 무값이 폭락하여 갈아엎는 농민이 생기고 있다. 도시빈민들은 늘어만 가고 한 끼에 십만 원이 넘는 식사를 파는 고급식당도 있다. 가난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수렁에 빠진 듯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메타버스가 발달하고 가상세계가 발달하여 점점 자동화 정보화가 되고, 로봇이 사람의 손을 대신하면 할수록,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신하면 할수록, 실업자는 늘어나고 숨 쉬고 사는 일조차 힘들어 진다. 결국 농민도, 어민도 도시 빈민도 기본 소득이 없다면 미래가 없다. 모든 국민이 사람으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려면 기본소득으로 소득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해 줄어든 일자리 등은 개선해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새해엔 올 해 보다 나은 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젠 대한민국에서 자취를 감춘 호랑이해 호랑이도 부활해 포효하듯 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터널의 끝을 지나 행복 가득한 세상이 되길 소원한다. 지난 한 해 함께한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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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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