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시민역량과 불교윤리] 5. 맺음말을 대신하여
[디지털 시대의 시민역량과 불교윤리] 5. 맺음말을 대신하여
  •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교수,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
  • 승인 2021.12.2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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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시민역량 함양과 불교윤리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시민역량을 주체성과 관계성, 창의성을 중심으로 설정하는데 동의할 수 있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이런 역량들이 어떻게 시민과 시민사회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된다. 우선 시민의 인성(人性), 즉 시민성 속에 이 세 역량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각자와 시민사회는 동시에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적 과제가 부각되고, 바로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가정과 학교 시민교육의 역할로 구체화된다. 가정은 단순한 생존단위의 위상과 역할을 넘어서 일정하게는 시민교육의 장으로서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하고, 이 가정 시민교육의 연장선에서 보다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학교 시민교육이 자리하게 된다. 우리 학교도 조선왕조의 신민(臣民)과 식민지를 전제로 하는 황국신민[國民]을 넘어 1980년대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시민(市民)을 공식적인 교육적 이상과 목표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인 목표 설정은 입시 위주의 각자도생이라는 교육풍토 속에서 형식적인 문서수준의 성과만을 지속적으로 쌓아가는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다. 이 학교 시민교육을 뒷받침해야 하는 시민사회에 몇 가지 형태의 시민교육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념편향성 논란 등을 불러일으키며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우리 시민사회가 이른바 진보와 보수진영으로 나뉘어 정치권과의 결탁을 전제로 하는 적대적인 공생을 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 기대하기 어려운지 모른다. 예를 들어 인성교육은 박근혜정권의 것이고, 민주시민교육은 문재인정권의 것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이 넓은 의미의 시민교육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인식틀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불교 시민사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을 우리 논의의 맥락으로 재구성한다면, 불교 시민사회는 디지털 시대에 요청되는 시민의 역량들인 주체성과 관계성, 창의성을 함양하는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로 바꿀 수 있다. 특정 종교를 배경으로 하는 시민사회는 그 종교의 기반 위에 서있다는 점에서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지닌다. 그 종교가 특히 제도종교인 경우 불교와 같이 이른바 권승(權僧)과의 관계 문제로 소모전을 치를 수도 있고, 개신교의 경우와 같이 이단논쟁이나 정치권과의 관계설정 문제 등으로 활동범위가 위축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가톨릭의 경우도 신부들의 도덕적 타락이 만천하에 공개됨으로써 이른바 성직자 위주의 제도종교가 지니는 한계가 시민사회 속으로 깊게 파고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제도종교 기반의 시민사회는 그 종교가 현실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관한 성찰과 비판을 토대로 시민들과 본래 지향점을 공유하면서 시민의 역량 함양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종교윤리 문제를 떠올려야 하고, 각 종교의 특수한 윤리와 함께 모든 종교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지향의 종교윤리를 함께 모색해갈 수도 있다.

불교의 경우 디지털 시대의 시민에게 요구되는 역량 중에서 특히 관계성 함양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붓다가 발견한 진리가 연기법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동시에 불교가 지니고 있는 자연주의적 속성으로 인해 현대 과학과의 접점 모색에서도 비교적 유리한 지점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붓다가 진리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라는 사실이 그 자연주의적 기반이 되고, 그렇게 발견한 진리가 연기법이라는 사실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필연적인 연기성(緣起性), 즉 관계적 의존을 밝혀주는 토대가 된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이 연기(緣起)는 참으로 심오하고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난다. 아난다여, 이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베 짜는 사람의 실타래처럼 헝클어지고 문자 풀처럼 엉기어서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연기법에 관한 현대적 해석과 함께 현실적인 삶의 국면에서 그 연기의 실타래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함께살아감[共存]’의 지혜를 나눠줄 수 있다면, 불교 시민사회는 그 자체로 사회적 차원의 시민교육 장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일반 시민사회는 물론 가정과 학교로 이어져 보다 성숙한 시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불교윤리는 연기성을 토대로 하는 관계성만을 중시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전제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일 또한 불교철학과 윤리의 중요한 과제이다. 붓다가 열반에 들 것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했음에도 일 겁을 더 머물러달라고 간청하는 아난다를 향해 그 스승은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말씀을 남기고 있다.

“아난다여, 그대는 좀 떨어져 있어라. 이제 그럴 시간이 된 것 같구나”

우리 인간에게 연기성과 독존성(獨存性)은 살아있는 동안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두 지향이다. 인간의 뇌가 지닌 특수성, 즉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조직하는 뇌를 가진 인간은 숙명처럼 이 두 지향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욕구는 바로 애착 대상과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독립심과 자유를 함께 충족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 기본욕구들은 뇌 안에 단단히 고정되어 우리와 평생을 함께하게 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과 같은 연기적 독존(緣起的 獨存)의 미학이 뇌과학의 연구성과를 통해 확인되는 장면이라고 할 만하다. 따라서 우리는 불교의 토대 위에서 관계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 관계성을 기반으로 하는 주체성에도 충분히 주목할 수 있어야 하고, 바로 그 지점에서 나와 남은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하나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걸림없음[無碍]를 추구하는 불교윤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창의성을 생각해 보자. 진정한 창의성은 성격이 괴팍한 천재의 것이 아니라 공감 기반의 협력을 통해 등장한다는 현대 창의성론의 일반적인 가설에 따르면, 창의성 또한 관계성과 주체성 사이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가능해진다. 누구나 숙명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그 줄다리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공동의 경험과 훈련, 체계적인 교육 등을 통해 시민의 창의성 함양이라는 어려운 과제가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창의성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고 그 힘은 일상의 이야기를 바꿈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내러티브적 접근을 불교적 관점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 불교를 일상을 상(相)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중생들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자 하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노력이라고 정의해 본다면, 붓다의 깨달음 이야기들은 오늘날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삶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이야기로 재해석되어 활용될 수 있고, 그것은 곧 시민의 창의성 함양이라는 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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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교수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윤리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했고,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철학과 계율을 공부했다.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생명윤리교육평가전문위원회 위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전문위원,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회장으로 2015 초· 중·고 도덕과 교육과정 개정 연구를 총괄했다. 주요 저서로 《윤리학과 도덕교육 1·2》(공저)《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윤리》, 《직업과 윤리》. 《아동인격교육론》, 《도덕심리학의 전통과 새로운 동향》,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문광부우수학술도서),《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딸과 함께 철학자의 길을 걷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등이 있다. 역서로 《철학의 과업》(공역),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공역), 《보살의 뇌》(공역), 《윤리적 자연주의》(공역), 《도덕적 감정과 직관》(공역) 등이 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이자 종합교육연수원장을 맡고 있으며, 정의평화불교연대 고문이자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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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라 2021-12-31 1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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