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4.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제3부 4.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 혜범 스님
  • 승인 2021.12.06 0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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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미륵

1인용 병실이었다. 시골 병원이었지만 아픈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잘 하고 있었다. 보험이 되는 4인용 6인용 병실이 없다며 1인용이나 2인용 병실에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급히 수술을 해야 했던 사형의 여동생, 자비행 보살은 병원비 걱정을 하지 말라며 1인용 병실을 고집했다. 1인용 병실이라면 지명과 정우가 병원 근처에 따로 방을 얻어 머물지 않아도 보호자로 함께 할 수 있다는 논지에서였다.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아요?”

“사건의 패턴으로 보아 교도관 한 명과 죄수 한 명이 죽어나가겠지.”

“…….”

지난 밤 정우가 묻기에 해준 말이었다.

번뇌, 업, 고통이라는 주제는 모두 마음의 문제로 귀결 된다. 욕망 때문인 것이다. 어린 티를 벗어난, 애늙은이 같은 정우만 보더라도 그랬다. 아버지로 인해 사는 것이 고달프고 고통스러워 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에게 고통을 덜어 줄 것인가.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물론 생이 끝나면 번뇌의 불길은 자연 소멸 될 것이다. 그 답은 정우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지명 자신에게도 있다는 걸 지명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무도 안 죽고 아무도 안 다치게 할 순 없나요?”

“관련자들은 이제 죽거나 실종될 거야.”

“……왜요?”

“내가 이 사건에 개입했기 때문이랄까? 고리를 자르려 하겠지.”

“이게 뭐예요? 별일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말을 던진 정우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순간, 지명은 달마를 찾아간 혜가를 떠올렸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불안한 이 마음을 없애주십시오.”

“그래? 불안한 마음이 있다면 나에게 그 마음을 가져 오너라?”

“조금 전까지 불안 하던 마음이 있었는데 찾아보니 없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냐?’는 어린 정우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고통은 없다. 몸과 마음이 번민에 시달려 괴롭고 고통스러워 할 뿐인 것이다. 이 길고 먼 항해에 고해의 파도를 멈추게 하는 게 아니라 고해의 파도를 타넘어 항구에 닿게 해주어야 하는 거였다.

그 어떤 사건이나 사고에도 계절이 있었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는 것이었다. 무너질 시간, 쌓을 시간. 그리고 침묵을 지킬 시간과 말을 해야 할 시간들이 따로 있었다. 계획은 그랬다. 딴에는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를 밝혀내려고 했다.

오라 가라 하지 않는 머물 곳이 필요했다. 주거부정의 무주처가 아닌, 주처를 꿈꾼다는 건 지명이나 정우나 이미 지쳐 있었다는 얘기였다. 강이 보이는 산골 언덕에 작은 암자, 암자라기보다 아쉬람(Ashram) 같은 초막을 짓고 살고 싶었다. 신도를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신도를 받고 부처님 팔아 호의호식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이미 정우랑 사형의 여동생, 자비행 보살이랑 그렇게 살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물려주신 논밭뙈기 그리고 서울에 살던 아파트까지 다 정리하니 분당에 제법 큰 평수의 아파트 하나를 분양받아 장만할 수 있었다. 그 아파트의 가격이 오르고 또 오르더니 충분히 외곽의 강가에 조그마한 새집 같은 집 한 채 지을 수 있겠다 여겼다. 평생 아끼고 산다면 이십 삼년 공무원 생활을 한 덕택에 많지 않은 연금만으로도 정우 교육시키고 먹고 사는 덴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요량이었다. 연금 받으려고 사표를 수없이 던지고 싶어도 그간 참아왔던 것이다.

“정우야.”

“네?”

"우리 처음의 마음을 잊지 말자."

“……예. 그런데요, 스님?”

“응?”

“촛불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빛을 주려면 먼저 타야 하니까요.”

“……뭐?”

아무것도 아니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마침내 소멸될 것이었다. 늙고 병들고 죽고. 잠깐일 것이다.

“부처님, 저희들 이 몸을 당신께 맡겨드리오니 당신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희를 어떻게 하시든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이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부처님의 뜻이 저희들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이 밖에 다른 건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

“저희들의 몸과 영혼을 갈가리 찢어 부처님, 당신을 위해 쓰게 하시고 저희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하소서.”

정우와 지명은 그렇게 발원하고 기도하지 않았던가. 지명은 낮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월든 같은 산속의 초막이 지어진다면

하루 종일 빈둥거리고 싶었다. 반승반속(半僧半俗).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고

참선하고 싶으면 참선하고

사시예불 하고 싶으면 목탁치고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이번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가끔 정우가 지각을 한다면

차로 학교에 데려다 줄 마음도 있었다.

“스님, 그럼 암자 이름도 지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러지. 뭐라고 지을까? 아뿔싸, 어떠냐? 나 我자, 부처 佛자 절 寺자.”

자비행과 정우가 입을 삐쭉거리고 웃었다.

“왜요, 그럴싸로 하시지?”

자비행의 말에 세 사람이 환하게 웃었다.

“만일에 불사를 한다면 내가 지어놓은 이름이 하나 있지.”

“뭔데요?”

이번엔 정우가 물었다.

“금몽암(禁夢庵) 어때??”

“무슨 뜻이에요?”

“꿈을 꾸지 않는 암자.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는…….”

“와아, 끝내주네요. 금몽암 주지스님. 제가 스님 늙으시면 시봉해 드릴 게요.”

“크으. 너 이놈 날더러 빨리 늙으라는 거 같구나.”

“히히, 그럼 전 스님하고 정우 평생 밥 지어드리고 마지 준비하는 공양주보살 해 드릴 게요.”

“와아. 복 쪼가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내가 오늘은 완전히 복이 터졌네. 말만 들어도 와 이리 행복하나?”

그러던 정우와 자비행 보살이었다.

“스님.”

“응?”

“응징하고 싶어요.”

자비행 보살도 이미 정우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눈빛이었다.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빌미로 경계를 허문 자비행은 어색하고 불편해 하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반드시 놈들을 혼쭐내야 한다는 눈빛이었다.

“왜?”

“다시는 이 땅에 저 같은 불행한 아이가 생겨나서는 안 되잖아요.”

“네놈이 뭘 할 수 있는데? 왜 못 알아들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치던 순간 지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벌 받을 게요. 벌 받고 나온다고 스님이 절 상좌로 안 받아주실 거 아니잖아요.”

“뭐?”

정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자비행이 외마디 비명을 삼켰다. 창백한 낯빛, 짙은 눈썹이 곱상하고 음전해 보이는 외모로 정우에게는 마치 엄마라도 되듯 응, 응 사근거리고 있었는데 은연중에 우아함의 자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명도 속으로는 정우가 불쌍하다, 안됐다, 하던 감정에서 어느새 동료애를 느끼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벌이라 해봐야 정보통신법 제70조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거나 잠재적 테러 위험분자로 소년원에 가게 될 거예요. 먼저, 비리 교도관을 찾아보았어요.”

“…….”

지명이 가소롭다는 눈으로 전전긍긍하는 정우를 내려다보았다.

“정 못 믿으시겠다면……. 제 실력을 보여드릴까요?”

“그래 함 보자.”

자비행 보살도 왜 그리 찌질하게 구느냐는 눈초리였다.

대부분의 갈등과 긴장의 시작은 말 때문이었다. 말 뒤의 행동들 마음보다 툭 던져진 잘못된 말로 인해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 함 보자’ 해놓고 아차 싶었다. 지명은 머리를 득득 긁었다.

지체 없이 정우는 보물처럼 메고 다니던 백팩(backpack)을 찾았다. 테이블 위에 백팩을 놓은 정우는 검정 백팩을 앞에 두고 합장을 해보였다. 이미 그곳에는 손바닥만 한 미륵불상과 어머니의 그리고 할머니의 뼛가루가 들어있는 것을 지명도 알고 있었다.

지명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정우가 백팩에서 유분 상자 두 개를 꺼내 놓더니 그 앞에 작은 미륵을 놓았다. 그리고 일어서더니 합장 배례를 한 다음에야 노트북과 외장하드를 꺼내는 거였다. 그 의식과도 같은 엄숙한 정우의 돌발행동에 지명과 자비행 보살의 눈이 반짝거렸다.

“자아 그럼 저의 위대한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천진난만한 한 얼굴이었다. 정우가 자비행과 정우에게 장난기 있게 합장을 해보였다.

“몸은 어때요?”

“……참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

“제 심장이 졸아 들었어요.”

“왜요?”

“수술을 하다 암세포를 발견했대요. 다행히 초기라 수술하면 된대요. 대장에 용정이 암인 것 같대요. 한 한 달 넘게 입원해 있어야 한 대요.”

“……슬퍼하지 마라. 네가 잃은 것은 어떤 것이든 다른 형태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다, 라는 잘라루딘 루미의 시가 떠오르네요.”

“…….”

“정우 아버지 시신을 인도받으려면 한 보름에서 이십 일은 족히 걸릴 거예요.”

“…….”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형(死刑)을 포함해 교정 시설에서 수용자가 사망한 경우 즉시 가족, 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다른 친족에게 통지된다. 이후 교정 시설은 사망한 수용자의 친족 또는 특별한 연고 관계에 있는 사람이 청구하면 시신, 유골 유품을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사망 통지를 받은 이후 정해진 기간 내에 친족 등이 시신을 인수하지 않거나, 인수할 사람이 없다면 임시로 매장하거나 화장(火葬) 후 봉안하게 된다. 이후 2년이 지나도록 시신 인도를 청구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 화장 후 자연장(自然葬)을 하거나 일정한 장소에 집단으로 매장한다는 거였다.

그때 병실로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백경이 님.”

“네.”

문이 열리고 남자간호사가 들어왔다.

“MRI 찍으러 가실 게요.”

“정우야, 우리 갔다 올 게.”

“네, ……다녀오세요.”

지명은 극심한 성장통(成長痛)을 겪을 까 봐 궁상을 떠는 정우에게 말을 조심했다. 아버지로 인해 얼마나 후유증을 앓았던가.

“중생제도 하셔야죠.”

“전 성불이나 중생제도 할 생각이 없어요.”

지명의 말에 자비행은 침대에 실려 가며 시틋한 눈으로 이동식 침대를 따라 걷는 지명을 올려다 보다 살포시 미소 지었다.

한 삼십 분이 소요되었을까, 병실로 돌아와 보니 정우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노트북 화면을 디밀었다. 지명과 자비행은 한순간 입에서 와, 하는 구겨진 감탄사를 내뱉었다.

교도소는 국가중요시설이며 웹 지도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위성사진에도 아무 표시가 없었다. 교도소라는 곳은 들어가면 마음대로 나오지 못했다. 소내로 들어가면 문에는 문문마다 잠금장치가 있어 교도관이 카드로 찍고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 곳이었다.

각 방을 CCTV로 24시간 감시하고 있으며 방, 복도, 화장실, 각 작업장, 운동장 너나할 것 없이 어디든 감시되고 있었다. 사각지대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문 역시 쇠창살로 봉쇄되어 있었고, 지나갈 때마다 지문을 찍고 비밀번호를 눌러가며 문을 여는 구조로 중요한 문문 복도마다가 교도관들의 근무지가 되는 곳이었다. 잘 때에도 불을 끄지 못한다. 불을 끄고 어둡게 하면 자해할 우려가 있어 감시하기 위해 켜 놓는다고 했다. 운동장에서라면 모를까 그 이외의 장소에서의 살인은 그렇다 해도 수감방 외에서의 살인은 교도관의 개입 내지는 동조 없이 살인은 불가능한 것이다. 수용자들의 이동에는 반드시 교도관들이 동행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홍원 교도소 내에서 범인들과 공조한 교도관을 먼저 찾았어요."”

“어떻게?”

“홍원교도소는 17만3263㎡ 부지로 전체면적 4만1761㎡ 규모로 1100명을 수용할 수 있어요. 무엇이 오고 가는가를 보면 되겠죠.”

“…….”

“홍원시 법무부 소속직원과 경비교도대원들의 입출금 내역을 들여다보았어요.”

“돈의 흐름을 본다?”

“어떻게?”

“제가 본 홍원시는 대부분 음산하고 디스토피아 적이에요. 짜증이 나요.”

“…….”

“저 범인을 잡고 난 이후에 벌 받을 게요. 정보통신법요. 교정본부 사이트들은 초고속 국가통합 단일 전산망과 법무부 인터넷 독립망을 함께 쓰고 있어요.”

지명은 정우의 말에 숨이 꽉 막혔다. 권역을 통합시킨 게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지명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넌 나보다 더 이상한 놈이구나. 그래, 해킹은 언제 배운 거냐?”

“네. 세계 청소년 해킹대회에 나가 세계 1위도 했었어요. 저보다 스님보다 세상 사람들이 더 기괴하고 결함이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 더 많아요. 같은 사람들끼리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건 교도소 내 월패드를 해킹한 거예요. 수준급 애들은 금세 뚫어요. 해킹만 하지 나쁜 짓들은 안 해요. 그리고 취약점을 메일로 보내줘요.”

“……그러게 말이다. 이게 진짜로 가능하네. 그런데 이놈아, 네놈이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만만한줄 알지?”

지명의 입가에는 냉소적인 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세상이라는 무대, 모든 장소는 입구와 출구가 있어요. 그 쪽을 들여다보면 누가 들락거리는지 다 나와요. 지옥의 명경대라 할까요?”

정우가 이번에는 교도소 내 종합상황실 CC-tv 모니터 영상을 보여주는 거였다.

“와아, 대단한데. 대체 이걸 어떻게?”

하지만 자비행 보살이 혀를 차며 정우에게 물었다.

“교도소 내 '월패드'에 접속한 거예요. 메인 서버에 설치된 시스템의 방화벽이 외부 공격에만 대응하기 때문에 교도소 자체 내의 해킹엔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다시 말해 교도관 한 사람이 들고 다니는 노트북만 해킹해도 전체가 다 공용망을 통해 이렇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죠.”

“네가 교도소에 들어간 거야?”

“……아뇨. 아버지 면회 갔을 때, 교도소 내 IP time, 면회실에서 공용 와이 파이(Public Wi-Fi) 근거리 무선망을 쓰는 직원이 노트북에 비밀번호를 치는 걸 보고 알아낸 거죠.”

“무서운…… 세상이로구나.”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고 쉽게 설명하면 마음만 먹으면 제가 접속한 사람들의 비번을 바꾸고 아이디를 훔치고, 은행계좌를 다 털어낼 수도 있어요. 마찬가지로 해서 Slotboom의 네트워크에서 그런 보안도구를 무능화 시킨 거죠.”

지명은 끙 신음을 삼켰다. 창문 밖으로 먹구름 떼가 뭉클거리며 밀려오고 있었다. 여간내기가 아닌 줄은 알고 있었다. ‘어떤 놈이 돈을 받아먹은 놈인지는 어떻게 알아낼 거야? 네놈 주제에.’했었다. 계좌추적의 방법은 지명도 알고 있었다.

“돈 먹은 놈은 어떻게 잡았어?”

자비행 보살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지명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다 손으로 입을 막았다.

“고액현금 거래 보고제도(CTR)라는 게 있어요.”

“은행에서 천만 원 이상 인출 및 입금 하면 금융분석정보원(FIU)에 보고가 되요. 요즘엔 계좌 이체나 외국 송금 그리고 공과금 수납, 수표입출금 등까지요. 그게 말이죠, 프로그램으로 자동으로 걸러지게 되는 거예요. 따로 막 뽑고 그러는 게 아니라. 세무서에서는 탈루 수사관들은 범죄로 인한 자금인지 필요한 의심되는 계좌만 추적해서 따로 뽑기도 하지만요. 그 프로그램에 들어간 거죠.”

“그래서?”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보호해 주시던 분에게 무조건 자살 당하지 않게 살려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자비행 보살이 심상찮은 걸 느꼈던지 끼어들어 물었다.

“스님 말대로 이미 어제 집행이 되었대요.”

“뭐?”

이번에는 자비행 보살이 ‘뭐’ 라고 물었다.

“교도관과 죄수 한 사람이 죽게 될 거라는 얘기를 제가 어젯밤에 스님한테 들었잖아요. 그런데 어젯밤엔 허락을 받질 못해서 제가 알아보질 못했던 거예요. 어제 허락만 받았어도…….”

“그 교도관을 살려서 꼬리를 캐려 했다? 그 교도관을 살리려 했던 사람은 누구야?”

“조금 있으면 이리로 오실 거예요. 만나보시면 스님도 잘 아실 거라던데요.”

그때 자비행 보살과 정우가 눈을 맞추고 서로 쳐다보며 웃는 눈치였다.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뭐……. 정우야?”

“예.”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우리 모든 걸 다 덮자.”

“스님……. 그건 아니죠?”

잔뜩 풀죽은 정우가 항변했다. 자비행 보살도 정우의 편을 들으며 끼어들었다. 야릇한 압박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왔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자괴감이 드는지 이번엔 정우가 심장이 멈출 것 같다는 듯 말까지 더듬거리며 지명을 쏘아봤다. 정우의 몸이 와들와들 덜리고 있었다.

“너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위험해.”

“스님. 저 ……죽어도 좋아요. 도대체 아버지가 누구시기에 다들 이 난리인지 알고 싶다고요.”

“인마, 너의 아버지는 너를 살리려고 돌아가신 거잖아.”

지명도 갑자기 열이 얼굴에 확 올라왔다.

“여기서 덮으면요, 진실은 정의는요?”

낮게 신음을 토하던 정우가 애써 숨을 고르더니 결국에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는 듯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거였다. 그러자 콧날이며 턱의 선을 세운 자비행 보살도 한숨을 내지으며 지명을 쌩하니 흘겨보았다.

“정의? 우선 살고 봐야지. 정의는 무슨 말라비틀어진 정의냐?”

“가슴이 막 요동쳐요, 그런데 저 ……겁쟁이는 되고 싶지 않아요.”

“…….”

“덮으면…… 그러면 비겁한 거잖아요. 스님, 스님을 만나 뵙기까지 저에겐 결코 쉽지 않은 삶이었어요. 스님을 만나 뵙고 전 부처님께 감사기도 올렸어요. 전 누구보다 용감하고 강인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 덮게 된다면 억울해서 저 평생 후회하게 될 거 같아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죽을 때까지 제 가슴에 한이 되어 남게 될 거 같다고요.”

찌부러진 정우의 말이 지명을 결정적으로 움직이게 한 말이었다.

“희망을 잃지 마, 너의 마음, 기적은 보이지 않는 곳에 항상 있다고. 행복도 네가 만들고 불행도 네가 만드는 거야.”

지명은 말을 해놓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한동안 지명은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그때, ‘스님 저거 봐요.’하며 자비행 보살이 혼자 떠들고 있던 TV 뉴스 속 아나운서의 말을 크게 틀었다.

지난 7월 18일 경기도 홍원시 인적 드문 한 야산에서 교정직 공무원 최 모 씨가 자신의 차량 운전석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최 씨가 있던 승용차 안에선 A4용지 크기의 3장짜리 평상시 최 씨는 도박과 음주로 많은 빚을 지고 있었으며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최 씨의 유서와 현장 감식 결과, 통신 기록 등을 토대로 단순 자살로 결론 내렸습니다. 최 씨의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연구원은 사인을 '일산화탄소에 의한 질식사'라고 소견을 냈습니다. 경찰은 변사 현장이 훼손되거나 증거가 조작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단순 자살 사건이라는 것으로 보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뉴스를 보는 순간,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죽나 사나 한 번 붙어보자는 태도의 정우와 정우의 말대로 도대체 정우의 아버지가 누구이기에 이리 요란이란 말인가, 하는데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이윽고 창 밖에서 겨울비가 떨어져내려 창문에 빗물이 번지고 있었다.

- 계속 -

혜범 스님

1976년 입산,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당선.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흙출판사),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청림출판사), 『천기를 누설한 여자』(흙출판사) 『반야심경』(밀알출판사), 『업보』(밀알출판사), 『남사당패』(태일출판사), 『시절인연』(밀알출판사), 『플랫폼에 서다』(북인) 등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도서출판 북인),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밀알출판사), 『달을 삼킨 개구리』(북갤럽),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북갤럽)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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