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조주세발(趙州洗鉢)
신무문관: 조주세발(趙州洗鉢)
  • 박영재
  • 승인 2021.11.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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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49.

성찰배경: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 선사와 제자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공안들이 <무문관>에 모두 9개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앞글에서 제1칙 ‘조주구자’, 제14칙 ‘남전참묘’, 칼럼글 ‘평상심으로 김영란법 돌파하기’에서 이미 제창한 조주 선사의 깨침 일화가 담긴 제19칙 ‘평상시도’, 제27칙 ‘불시심불’ 및 제34칙 ‘지불시도’를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아직 다루지 않은 제7칙 조주세발(趙州洗鉢), 제11칙 주감암주(州勘庵主), 제31칙 조주감파(趙州勘婆) 및 제37칙 정전백수(庭前柏樹) 공안들을 제창하고자 합니다. 

조주세발(趙州洗鉢)

본칙(本則): 조주 선사께 한 승려가 “제가 선원에 처음 왔는데, 잘 지도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 이에 선사께서 “자네 아침 죽은 먹었는가?”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이 승려가 “네, 죽을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선사께서 “그렇다면 지금 즉시 너의 식기[鉢盂]를 씻어라![洗鉢盂去]”라고 하셨다. 이때 이 승려가 깨쳤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조주 선사께서 입을 열어 쓸개를 보이시고 심장과 간까지 몽땅 드러내셨네. 그런데도 이 승려가 이를 듣고도 참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마치 종(鍾)을 항아리[옹(甕)]라고 부르는 것과 같구나.[喚鍾作甕.]’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다만 너무 분명하기에/ 도리어 깨닫기 어렵네./ 만일 등(燈)이 곧 불임을 재빠르게 알아차렸더라면/ 밥은 이미 된 지 오래일 텐데. [只爲分明極 飜令所得遲 早知燈是火 飯熟已多時.]

군더더기: 바른 스승 밑에서 제대로 점검을 받지 않고 무작정 떠돌면서 홀로 참선을 하다 보면, 마치 어둠 속에서 종과 항아리를 보는 것과 같아서 이들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다 생을 마치는 일들이 적지 않은 것을 무문 선사께서 평창을 통해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편 종달(宗達, 1905-1990) 선사께서는 그의 저서 <무문관>에서 “이 칙(則)은 간단하고 평범하나 선지(禪旨)로서는 다할 대로 다했으며, 천하의 대진리도 이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라고 제창하셨습니다. 그리고 종달 입적 이후 선도회 지도법사 직을 승계한 필자는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한 경계를 더욱 철저히 다지기 위해 숭산(崇山, 1927-2004) 선사께 두 차례 입실점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입실에서 이 화두를 점검 받았었는데 두 분의 견해가 100% 일치함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참고로 일본 임제종 남선사파(南禪寺派) 화산(華山, 1889-1945) 선사(종달 선사의 스승)의 사제(師弟)이신 시산(柴山, 1894-1974) 선사는 ‘그릇을 씻어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용공안을 새롭게 제창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릇을 씻어라!’의 진짜 의도를 꿰뚫어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손을 쓰지 말고 그릇을 씻어라!’[空手洗鉢盂]”.

주감암주(州勘庵主)

본칙(本則): 조주 선사께서 한 암주를 찾아가 “계십니까? 계십니까?”하고 불렀다. 그러자, 그 암주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조주 선사께서 “이곳은 물이 얕아서 배를 댈 수 없군!”이라고 응대하고 즉시 암자를 떠났다. 또 다른 암주를 찾아가서 “계십니까? 계십니까?”하고 불렀다. 
이 암주 역시 주먹을 치켜들었다. 조주 선사께서 “주기와 빼앗기, 죽이고 살리기를 능수능란하게 하는구나!”라고 칭찬하고는 곧 예배하였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둘 다 똑같이 주먹을 치켜들었는데 어찌하여 한 암주는 공부가 되었다며 극찬[肯定]을 하고 다른 암주는 폄하[不肯]하였는가?’라고 제창하셨다. 자! 일러 보아라. 폄하한 암주의 경우에 문제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만약 이에 대해 한 마디 바로 이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면 곧 조주 선사의 변설(辯舌)이 거침이 없어서 붙들어 일으켜 세우거나 내동댕이쳐 버림이 크게 자유자재함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조주 선사께서 말재주를 부리다가 도리어 두 암주에게 간파 당하였음을 어찌하랴! 만약 수행자가 두 암주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말한다면 아직 안목이 없다고 할 것이요, 또한 우열이 없다고 말한다하더라도 역시 안목이 없다고 할 것이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우열에 걸림 없는 자의 안목(眼目)은 유성(流星)과 같고/ 무분별지혜의 기지(機智)는 번갯불과 같아서,/ 살인도(殺人刀)를 휘둘러 죽일 놈[假我]은 죽이고/ 활인검(活人劍)을 휘둘러 살릴 놈[眞我]은 살리네![眼流星 機掣電 殺人刀 活人劍.]

군더더기: 무문 선사께서는 수행자들로 하여금 두 암주 사이의 우열 논쟁을 일으킨 조주 선사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우열불이(優劣不二)’를 온몸으로 체득해 막힘없는 안목을 갖출 것을 다그치고 있네요.

한편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의 어록에 보면 선사께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살인도를 가지고 있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자는 활인검을 가지고 있지![殺人自有殺人刀 活人自有活人劍]”라고 제창하고 있습니다. 사실 수행자에게 있어 활인검은 선지식[스승]들의 가르침을 답습이나 모방이 아닌 자신만의 유일무이한, 중생을 부처로 전환시키는 ‘일전어(一轉語)’라 할 수 있겠지요.

조주감파(趙州勘婆)

본칙(本則): 조주 선사께서 활약하던 어느 때 오대산을 순례하던 한 승려가 근처 길가에서 장사하던 노파에게 “오대산을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갑니까?”하고 물었다. 노파가 ‘곧장 가세요.’라고 일러주었다. 이 승려가 일러준 쪽으로 서너 걸음을 옮겨놓자, 노파가 ‘허우대가 멀쩡한 승려가 또 저렇게 가는구나.’라고 비웃었다. 후에 노파에게 당했던 한 승려가 이 일을 조주 선사께 알렸다. 그러자 조주 선사께서 ‘기대(期待)하게. 내가 직접 가서 그대들을 위하여 이 노파를 감정하겠노라.’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조주 스님께서 이 노파를 찾아가 다른 승려들과 똑같이 오대산 가는 길을 물었더니, 노파 역시 똑같이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주 선사께서 선원으로 돌아와 대중들에게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 오대산 노파를 감정(勘定)하고 돌아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노파가 군대 막사[유악帷幄] 속에 앉아서 작전 계획을 세울 줄은 알았어도 도적이 숨어들 줄은 몰랐네. 그런데 조주 늙은이가 비록 몰래 잠입해 요새를 유린하는 기지를 잘 발휘하였으나 이 또한 대인이 할 짓은 아니었네. 이 과정을 세밀히 점검해 보면 두 분 모두 허물이 있느니라.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자! 일러 보아라. 어디가 조주 선사께서 이 노파를 감정한 곳인가?’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물음이 똑같으니/ 대답 또한 같네./ (하지만 조주 선사의 물음에는 마치) 밥 속에 모래가 들어 있고/ 진흙 속에 가시가 있는 것과 같네.[問既一般 答亦相似. 飯裏有砂 泥中有刺.]

군더더기: 임제종 황룡파의 개산조인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 선사는 처음에 운문종의 늑담회징(泐潭懷澄) 선사 밑에서 법기(法器)를 인정받고 한동안 깨달았다는 착각 속에 설법을 했었습니다. 뒤에 이를 인지하고는 석상초원(石霜楚圓, 986-1040) 선사 문하에서 창피를 무릅쓰며 ‘조주감파’를 점검받고 철저히 깨달은 다음 지은, 아래 게송을 이런 배경 속에서 깊이 음미해 보면 좋겠습니다. 

총림의 걸출한 조주 선사님!/ 노파를 감정한 일, 이유 있었네./ 지금 온 천하가 거울처럼 맑으니/ 수행자가 이제 망신스럽게 길 묻는 일 없게 되었네.[傑出叢林是趙州 老婆勘破有來由 而今四海淸如鏡 行人莫與路爲讐]

정전백수(庭前柏樹)

본칙(本則): 조주 선사께 어느 때 한 승려가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조주 선사께서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라고 응대하셨다.

평창(評唱): 이에 대해 무문 선사께서 ‘만일 조주 스님의 답처(答處)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그의 출생 이전에 인간다운 삶에 대한 본보기를 보이셨던 과거의 석가세존도 필요 없고, 그의 사후 역시 믿고 의지할 미래의 미륵불 또한 필요 없으리라![前無釋迦 後無彌勒.]’이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말로는 깨침에 관한 일을 표현할 수 없고/ 글로는 무문별 지혜의 대활약을 드러낼 수 없네./ 말을 쫓는 자는 목숨을 잃고/ 글에 걸리는 자는 미혹하리라.[言無展事 語不投機. 承言者喪 滯句者迷.]

군더더기: ‘전무석가(前無釋迦) 후무미륵(後無彌勒)’은 불교 가운데에서도 오직 불경죄(不敬罪)에서조차 자유로운 선종(禪宗)에서만이 가능한 선어(禪語)입니다! 즉, 석가세존이나 미륵불이나 역대조사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그 누구에게도 집착해 걸리지 않는 경계를 체득하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어불투기(語不投機)’와 유사한 ‘화불투기(話不投機)’란 표현이 <명심보감>의 언어편(言語篇)에 다음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술은 벗[知己]을 만나서 마시면 천(千) 잔이라도 적고, 말은 지혜롭게 조짐을 파악해 때를 맞추지 못하면 단 한 마디도 많네.[酒逢知己千鍾少 話不投機一句多]’

끝으로 언론을 통해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인들이 의도적이 건 의도적이 아니건 경거망동하며 한순간의 말실수로 곤욕을 치르는 일들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비단 정치인들 뿐만이 아니라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도 역시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비록 형편상 날마다 치열하게 선 수행을 이어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거울삼아 신중하게 세 번 생각한 후 조심스럽게 한 번 말을 하라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의 가르침을 뼛속 깊이 새기며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교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 차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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