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치욕과 남한산성 성지순례길
북한산의 치욕과 남한산성 성지순례길
  • 법응 스님
  • 승인 2021.09.05 19: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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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 인조는 농성 59일 만인 1637년 2월 24일(정축년 음력 1월 30일)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예로 항복을 하니 국가적 망신은 물론이거니와 전쟁의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육당한 뒤에 이어 청으로 끌려간 백성의 고초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전투 중에 사망하고 부상당한 승군(僧軍)의 수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화엄사의 성능(聖能) 스님은 각황전 공사를 마치자마자 1711(숙종31)년 조정으로부터 입궐하라는 명을 받는다. 성능대사에게 숙종은 북한산성 건축의 총 책임을 위임하며 팔도도총섭(八道都總攝)의 직위를 부여했다. 성능 스님은 중흥사에 본부를 설치하고 남한산성의 승군과 각지의 스님들을 모아서 관군과 함께 불과 9개월 만에 축성을 완료하였으니 스님의 탁월한 토목 건축기술 그리고 관리의 능력을 보여준 한 사례일 것이다.

이후 스님은 중흥사에 기거하면서 북한산의 수비와 스님들의 거처를 위해 다수의 사찰을 건립하였는데, 이를 1745(영조21)년에 <북한지(北漢誌)>로 판각하여 내용은 물론 그림으로 기록하고 신임 도총섭인 서봉(瑞鳳) 스님에게 인계한 것이 현재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북한산성을 수비함에 있어 중흥사를 중심으로 스님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면, 남한산성은 왜란이나 호란 때마다 장경사(長慶寺)를 본부로 하는 스님들의 활약이 매우 컸다. 이후에도 산성수비는 스님들이 담당하였으니 그 사실은 기록과 유적, 이야기로 남겨져 오늘에까지 지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성능 스님이 북한산성 축성기를 기록한 ‘북한지’ 내의 북한도 일부. 중흥사 등이 보인다.



남한산성 자락인 춘궁동, 교산동 등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불교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근래 발굴로 인해 유적과 유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필자의 젊은시절 기억에도 남한산성 자락인 상사창리 산기슭에서 부도 군(群)을 목도한 적이 있다.

남한산성을 품고 있는 광주군 일대는 조선 도자기의 산실이기도 하다. 정부는 1985년 11월에 관음리 등에 소재한 가마터 76개소를 사적 제314호 「광주조선백자요지(廣州朝鮮白磁窯址)」로 지정했다. 남한산성은 조선불교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뿐더러 산성 주변 광주군 일대는 도자 역사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아래는 승군 [僧軍]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네이버>공개 자료에서 병자호란과 관련한 소개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남한산성 역사에서 불교와 스님들이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 때에는 각성(覺性)과 명조(明照) 등의 의승군이 활약하였다.각성은 1624년(인조 2) 팔도도총섭이 되어 남한산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였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3,000명의 의승을 모아 항마군이라 이름한 뒤 스스로 승대장이 되어 북상하였으나, 도중에 왕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진군을 중지하였다.
명조는 1627년 후금이 침략해 오자, 의승군 4,000명을 거느리고 안주(安州)에 진을 쳐서 크게 전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때에는 군량미를 모아서 전선에 보내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② 전란기 이후의 승군

병자호란 후에 승군들은 산성의 수축 및 수호에 주력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곳으로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두었던 남한치영(南漢緇營)과 북한치영(北漢緇營)을 들 수 있다.
각성이 감독하여 쌓은 남한산성 안의 남한치영은 각 도에서 의승을 불러서 번을 서게 하였고, 성 안의 9개 사찰 승군으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하였으며, 도총섭 1인 밑에 중군(中軍) 1인, 교령관 1인, 초관(哨官) 3인, 기패관(旗牌官) 1인, 성 안팎 10개 사찰의 원거승군(原居僧軍) 138명, 의승(義僧) 356인을 두었다.
북한치영은 1711년에 북한산성을 쌓음으로써 생겨나게 되었다. 주위 7,620보에 장대(將臺) 3곳, 대문 4곳, 암문(暗門) 10곳을 비롯하여 도총섭이 있는 중흥사(重興寺)를 중심으로 태고사·노적사·서암사·경흥사·국영사·원각사·부황사·보광사·보국사·용암사·봉성암 등의 사찰이 있었으며, 이들 사찰에 승군들이 머무르면서 산성을 수호하였다



15세기 광주군 광주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연적
성능 스님이 북한산성 축성기를 기록한 ‘북한지’ 내의 북한도 일부. 중흥사 등이 보인다.

남한산성 자락인 춘궁동, 교산동 등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불교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근래 발굴로 인해 유적과 유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필자의 젊은시절 기억에도 남한산성 자락인 상사창리 산기슭에서 부도 군(群)을 목도한 적이 있다.

남한산성을 품고 있는 광주군 일대는 조선 도자기의 산실이기도 하다. 정부는 1985년 11월에 관음리 등에 소재한 가마터 76개소를 사적 제314호 「광주조선백자요지(廣州朝鮮白磁窯址)」로 지정했다. 남한산성은 조선불교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뿐더러 산성 주변 광주군 일대는 도자 역사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아래는 승군 [僧軍]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네이버>공개 자료에서 병자호란과 관련한 소개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남한산성 역사에서 불교와 스님들이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 때에는 각성(覺性)과 명조(明照) 등의 의승군이 활약하였다.각성은 1624년(인조 2) 팔도도총섭이 되어 남한산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였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3,000명의 의승을 모아 항마군이라 이름한 뒤 스스로 승대장이 되어 북상하였으나, 도중에 왕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진군을 중지하였다.
명조는 1627년 후금이 침략해 오자, 의승군 4,000명을 거느리고 안주(安州)에 진을 쳐서 크게 전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때에는 군량미를 모아서 전선에 보내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② 전란기 이후의 승군

병자호란 후에 승군들은 산성의 수축 및 수호에 주력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곳으로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두었던 남한치영(南漢緇營)과 북한치영(北漢緇營)을 들 수 있다.
각성이 감독하여 쌓은 남한산성 안의 남한치영은 각 도에서 의승을 불러서 번을 서게 하였고, 성 안의 9개 사찰 승군으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하였으며, 도총섭 1인 밑에 중군(中軍) 1인, 교령관 1인, 초관(哨官) 3인, 기패관(旗牌官) 1인, 성 안팎 10개 사찰의 원거승군(原居僧軍) 138명, 의승(義僧) 356인을 두었다.
북한치영은 1711년에 북한산성을 쌓음으로써 생겨나게 되었다. 주위 7,620보에 장대(將臺) 3곳, 대문 4곳, 암문(暗門) 10곳을 비롯하여 도총섭이 있는 중흥사(重興寺)를 중심으로 태고사·노적사·서암사·경흥사·국영사·원각사·부황사·보광사·보국사·용암사·봉성암 등의 사찰이 있었으며, 이들 사찰에 승군들이 머무르면서 산성을 수호하였다

15세기 광주군 광주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연적
15세기 광주군 광주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연적

“천진암(天眞菴)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1203에 있는 천주교 성지다. 조선시대 이곳에 있던 암자에 피신해 온 초기 천주교인들을 스님들이 피신시켜주고 보호해 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스님이 희생되었다. 바로 이런 역사가 있는 천진암에서 한국 천주교 역사가 시작되었다. 2007년 현재는 암자터만 남아 있고 이 일대는 천주교에서 성당을 세우는 등 성역으로 개발중이다. 이곳에는 천주교를 창립하는 데 공헌한 다섯 사람의 무덤이 있다.” <위키백과>에 올려진 경기도 퇴촌면 관음리 천진암에 대한 설명이다.

설명과 같이 천진암에서 스님들이 천주교인들을 피신, 보호해 주고 희생당한 역사적 사실을 잘 기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그 동안 여러 인사들이 글로써 발표하였으므로 재론은 번거롭고 구차할 뿐이다.

근래 경기도 광주시(시장 신동헌)가 천주교 수원교구와 ‘천진암 성지 광주 성지 순례길’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만일 광주시가 천진암과 남산산성 일대를 연결하는 ‘천진암 성지 광주 성지 순례길’을 최종 확정하고 개발한다면 불교계는 문화적으로나 그 존재감에 있어서나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특정 방식으로 이름이 지어지고 공포된다는 것은 그 특정의 역사와 문화가 지역사회가 더 오랫동안 공유해온 원질적인 역사를 덮고 지역을 새로운 방식으로 문화화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광주군 남한산성 일대의 역사와 문화를 매장함과 다르지 않다.

무수한 역사적 증거를 갖고서도 지자체라는 공적인 힘의 지원을 받은 타종교에 기억되어야 할 역사와 문화적 사실이 묻혀버리도록 만든다면 이 또한 앞으로의 불교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게 될 것이다. 광주시도 문제이거니와 광주 불교계와 종단의 대응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존재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수년 전 불교계는 북한산 자연환경을 지키는데 실패 했다. 남한산에서 또다시 치욕이 예상된다. 코로나19의 추이를 주시하면서 남한산성에서 희생당한 승군 이전에 스님이었던 선사들의 종사영반이라도 거창하게 올렸으면 한다.

法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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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 2021-09-06 07:42:26
범계권승들이 종단을 장악한 결과다
청정수행자들이 불교의 주인이 되었어봐라
어디감히 타종교와 정부지자체가 불교를 업신여기고
타종교 순례길을 만들겠냐
오히려 불교 순례길을 만들고 불교 성역화에 앞장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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