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22. 일상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22. 일상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1.08.09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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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다니던 길
막상 멀리 떠나면 그립 듯이
늘 가까이 곁에 있던 사람들
보지 못하면 그리울거야
 

만나면 또 할 말도 없으면서
익숙한 사람
익숙한 길도
처음엔 선보는 남녀처럼
낯설고 물 설었지
 

고향엔 낮 선 사람들이
낯선 모습으로 살고
수십 년을 살아도 이방인인 나라에서
익숙한 불편함을 안고.


#작가의변
오래된 일상과 마주하기
젊어서부터 치아도 없는 어머니는 여름이면 입맛이 더 떨어져 물에 말아 드시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냉장고 조차 없으니 밥을 해 놓으면 밥이 쉬기가 일쑤였다. 그럼 찬물에 헹구어서 찬물에 말아서 풋배추 겉절이 한쪽 올려서 먹거나 그마저도 입맛이 없으면 막걸리에 말아 드셨다. 냉장고도 없던 그 시절, 아궁이에 불을 피워서 검은 가마솥에 밥을 하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아침 일찍부터 밭으로 들로 일하러 다니다가 식사 때가 되면 집에 와서 쉬지도 못하고 식사준비를 하던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일만하다가 가셨다.

그런데 난 오히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머나 먼 타국에서 그 시절 그 음식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냉장고가 없어서 밥을 해 놓으면 금방 쉬어 버리던 그때, 쌀이 모자라 보리쌀을 먼저 삶아 밥에 보태던 그 시절의 그 보잘 것 없는 밥상에 올려진, 기교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순수했던 된장에 담장에서 따온 호박잎의 거친 식감까지도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보리가 많이 들어가서 보리밥처럼 보이지만 쌀이 들어가 조밥처럼 와르르 무너지지 않던 밥을 호박잎에 넣고 된장을 넣어 베어 물던 그 여름날 마루에서 먹던 점심시간에 건너다 본 앞산엔 매미들이 이명 때문에 날마다 들리는 매미소리와는 다른 청명한 소리를 하고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던 그 날들이 그리운 것이다.

가끔은 국수도 삶아서 풋 호박을 썰어 넣어 먹기도 하고 오이냉국에 찬밥 말아 먹던 그때 진한 콩국물이 그리워 마켓에서 콩 국물을 사서 국수에 말아 먹으니 숙제를 한 느낌은 드는데 그리움은 아쉬움으로 바뀌고 만다. SNS에서 고향의 초등학교 이름들을 듣는 순간 떠오른 초등학교시절 선그라스 끼고 멋지게 흑백사진을 장식했던 여선생의 모습이 뭉개진 기억으로 선그라스만 둥둥 떠다니는 기억으로 다가오고 등사실에서 모르고 등사를 해보니 시험지였던 날도, 전화가 울려 엉겹결에 집어 들었는데 거꾸로 들고 전화를 받던 일도 어제만 같은데 세월은 수십 년이 지나가 버렸다.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고향집들은 다 새로 지어져 내 어린 시절은 흔적도 없지만 마음속에선 아직도 어린 내가 부모님과 함께 쉰내가 나는 밥을 막걸리에 말아 먹던 그때로 돌아간다. 고기 구경하는 날은 동네서 돼지라도 잡는 날이거나 제삿날이나 되어야 가능했던 그시절엔 소금에 절인 간 고등어 지고 팔러 다니던 행상도, 팔이 하나 없다고 도와 달라 던 상이군인도 마을에 일상처럼 풍경이 된 시절이었다.

집착이 그리움을 낳는 것은 아니까? 떨쳐 버리려 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는 것들은 방금 전에 한 일도 자주 잊어버리는 건망증에 비해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서 어쩌면 기억이란 것도 좋아하는 마음처럼 대신 기억으로 자리한 것이리라. 돌아가신지 벌써 오래된 부모님이 툇마루에 같이 앉아 막걸리에 말은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초등학교에 대한 기억도 어쩌면 일상과 추억이 뒤섞여진 영화 같은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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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다니던 길
막상 멀리 떠나면 그립 듯이
늘 가까이 곁에 있던 사람들
보지 못하면 그리울거야
 

만나면 또 할 말도 없으면서
익숙한 사람
익숙한 길도
처음엔 선보는 남녀처럼
낯설고 물 설었지
 

고향엔 낮 선 사람들이
낯선 모습으로 살고
수십 년을 살아도 이방인인 나라에서
익숙한 불편함을 안고.

#작가의변
오래된 일상과 마주하기
젊어서부터 치아도 없는 어머니는 여름이면 입맛이 더 떨어져 물에 말아 드시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냉장고 조차 없으니 밥을 해 놓으면 밥이 쉬기가 일쑤였다. 그럼 찬물에 헹구어서 찬물에 말아서 풋배추 겉절이 한쪽 올려서 먹거나 그마저도 입맛이 없으면 막걸리에 말아 드셨다. 냉장고도 없던 그 시절, 아궁이에 불을 피워서 검은 가마솥에 밥을 하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아침 일찍부터 밭으로 들로 일하러 다니다가 식사 때가 되면 집에 와서 쉬지도 못하고 식사준비를 하던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일만하다가 가셨다.

그런데 난 오히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머나 먼 타국에서 그 시절 그 음식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냉장고가 없어서 밥을 해 놓으면 금방 쉬어 버리던 그때, 쌀이 모자라 보리쌀을 먼저 삶아 밥에 보태던 그 시절의 그 보잘 것 없는 밥상에 올려진, 기교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순수했던 된장에 담장에서 따온 호박잎의 거친 식감까지도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보리가 많이 들어가서 보리밥처럼 보이지만 쌀이 들어가 조밥처럼 와르르 무너지지 않던 밥을 호박잎에 넣고 된장을 넣어 베어 물던 그 여름날 마루에서 먹던 점심시간에 건너다 본 앞산엔 매미들이 이명 때문에 날마다 들리는 매미소리와는 다른 청명한 소리를 하고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던 그 날들이 그리운 것이다.

가끔은 국수도 삶아서 풋 호박을 썰어 넣어 먹기도 하고 오이냉국에 찬밥 말아 먹던 그때 진한 콩국물이 그리워 마켓에서 콩 국물을 사서 국수에 말아 먹으니 숙제를 한 느낌은 드는데 그리움은 아쉬움으로 바뀌고 만다. SNS에서 고향의 초등학교 이름들을 듣는 순간 떠오른 초등학교시절 선그라스 끼고 멋지게 흑백사진을 장식했던 여선생의 모습이 뭉개진 기억으로 선그라스만 둥둥 떠다니는 기억으로 다가오고 등사실에서 모르고 등사를 해보니 시험지였던 날도, 전화가 울려 엉겹결에 집어 들었는데 거꾸로 들고 전화를 받던 일도 어제만 같은데 세월은 수십 년이 지나가 버렸다.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고향집들은 다 새로 지어져 내 어린 시절은 흔적도 없지만 마음속에선 아직도 어린 내가 부모님과 함께 쉰내가 나는 밥을 막걸리에 말아 먹던 그때로 돌아간다. 고기 구경하는 날은 동네서 돼지라도 잡는 날이거나 제삿날이나 되어야 가능했던 그시절엔 소금에 절인 간 고등어 지고 팔러 다니던 행상도, 팔이 하나 없다고 도와 달라 던 상이군인도 마을에 일상처럼 풍경이 된 시절이었다.

집착이 그리움을 낳는 것은 아니까? 떨쳐 버리려 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는 것들은 방금 전에 한 일도 자주 잊어버리는 건망증에 비해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서 어쩌면 기억이란 것도 좋아하는 마음처럼 대신 기억으로 자리한 것이리라. 돌아가신지 벌써 오래된 부모님이 툇마루에 같이 앉아 막걸리에 말은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초등학교에 대한 기억도 어쩌면 일상과 추억이 뒤섞여진 영화 같은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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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멀리 떠나면 그립 듯이
늘 가까이 곁에 있던 사람들
보지 못하면 그리울거야
 

만나면 또 할 말도 없으면서
익숙한 사람
익숙한 길도
처음엔 선보는 남녀처럼
낯설고 물 설었지
 

고향엔 낮 선 사람들이
낯선 모습으로 살고
수십 년을 살아도 이방인인 나라에서
익숙한 불편함을 안고.


#작가의변
오래된 일상과 마주하기
젊어서부터 치아도 없는 어머니는 여름이면 입맛이 더 떨어져 물에 말아 드시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냉장고 조차 없으니 밥을 해 놓으면 밥이 쉬기가 일쑤였다. 그럼 찬물에 헹구어서 찬물에 말아서 풋배추 겉절이 한쪽 올려서 먹거나 그마저도 입맛이 없으면 막걸리에 말아 드셨다. 냉장고도 없던 그 시절, 아궁이에 불을 피워서 검은 가마솥에 밥을 하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아침 일찍부터 밭으로 들로 일하러 다니다가 식사 때가 되면 집에 와서 쉬지도 못하고 식사준비를 하던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일만하다가 가셨다.

그런데 난 오히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머나 먼 타국에서 그 시절 그 음식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냉장고가 없어서 밥을 해 놓으면 금방 쉬어 버리던 그때, 쌀이 모자라 보리쌀을 먼저 삶아 밥에 보태던 그 시절의 그 보잘 것 없는 밥상에 올려진, 기교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순수했던 된장에 담장에서 따온 호박잎의 거친 식감까지도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보리가 많이 들어가서 보리밥처럼 보이지만 쌀이 들어가 조밥처럼 와르르 무너지지 않던 밥을 호박잎에 넣고 된장을 넣어 베어 물던 그 여름날 마루에서 먹던 점심시간에 건너다 본 앞산엔 매미들이 이명 때문에 날마다 들리는 매미소리와는 다른 청명한 소리를 하고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던 그 날들이 그리운 것이다.

가끔은 국수도 삶아서 풋 호박을 썰어 넣어 먹기도 하고 오이냉국에 찬밥 말아 먹던 그때 진한 콩국물이 그리워 마켓에서 콩 국물을 사서 국수에 말아 먹으니 숙제를 한 느낌은 드는데 그리움은 아쉬움으로 바뀌고 만다. SNS에서 고향의 초등학교 이름들을 듣는 순간 떠오른 초등학교시절 선그라스 끼고 멋지게 흑백사진을 장식했던 여선생의 모습이 뭉개진 기억으로 선그라스만 둥둥 떠다니는 기억으로 다가오고 등사실에서 모르고 등사를 해보니 시험지였던 날도, 전화가 울려 엉겹결에 집어 들었는데 거꾸로 들고 전화를 받던 일도 어제만 같은데 세월은 수십 년이 지나가 버렸다.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고향집들은 다 새로 지어져 내 어린 시절은 흔적도 없지만 마음속에선 아직도 어린 내가 부모님과 함께 쉰내가 나는 밥을 막걸리에 말아 먹던 그때로 돌아간다. 고기 구경하는 날은 동네서 돼지라도 잡는 날이거나 제삿날이나 되어야 가능했던 그시절엔 소금에 절인 간 고등어 지고 팔러 다니던 행상도, 팔이 하나 없다고 도와 달라 던 상이군인도 마을에 일상처럼 풍경이 된 시절이었다.

집착이 그리움을 낳는 것은 아니까? 떨쳐 버리려 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는 것들은 방금 전에 한 일도 자주 잊어버리는 건망증에 비해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서 어쩌면 기억이란 것도 좋아하는 마음처럼 대신 기억으로 자리한 것이리라. 돌아가신지 벌써 오래된 부모님이 툇마루에 같이 앉아 막걸리에 말은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초등학교에 대한 기억도 어쩌면 일상과 추억이 뒤섞여진 영화 같은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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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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