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1.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제3부 1.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 혜범 스님
  • 승인 2021.08.0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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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미륵

“스님. 저놈들을 잡아, 놈들에게 시인 받고 자백 받을 수 있을까요?”

“……미행, 단지 뒤를 쫓는 미행,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비밀침해죄, 사생활침해죄의 성립요건이 성립되지 않아. 그러기에 놈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가 없어.”

“……그러면 어떻게 잡죠?”

“쫓아가서 몽둥이로 후려패고 손으로 그냥 콱 뒷덜미를 잡아 버릴까? 일단은. 우리가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추정할 뿐……. 우리가 실체를 밝힐 수 있는 단서, 연결고리라는 일 저 놈들이야. 증거는 하나도 없고. 그러니 분명 잡긴 잡아야 할 텐데.”

철근과 시멘트로 된 도시는 하얀 눈으로 조금씩 덮이고 있었다.

“우리 저놈들을 잡아 족쳐요.”

“침착하라고. 네 마음을 극복하지 못하면 남의 마음도 절대 이길 수 없어. 번뇌와 망상의 그 마음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거지.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는 거 아니잖아.”

“……네.”

“그런데 인간들이 정말 징그럽다.”

지명이 정우를 쓱 훑어보며 말했다.

“아…… 예.”

지명의 말에 정우가 입 꼬리를 올리며 가만히 대답하다 이마를 찌푸렸다. 정우가 긴장된 눈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가 훅 숨을 들이키다 ‘떨려요’ 발걸음을 떼었다.

“잡아야지 잡아서 족쳐보자고. 그냥 우리더러 좀 조용히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느냐 하는 거 같은데. 내 기분이 왜 이리도 엉망이 되어 가는 건지.”

머츰하던 눈이 다시 굵어졌다.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속을 걸었다. 추위로 슬슬 몸이 떨려오고. 침묵 속을 걷던 두 사람의 코에서 콧물이 저절로 흘러 내렸다. 바보처럼 헤벌어진 입술 틈으로 연신 하얀 입김이 쏟아져 나와 안경에 김이 서려 시야가 흐릿했다.

“우리가 시간을 너무 허비하는 거 같구나.”

“…….”

‘너희들이 해봐. 어디까지 다가올 수 있는지’ 앞을 막아서는 놈들이 위의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거 같았다. 소수가 지배하는 사회, 권력은 어떤 개인, 집단, 기구가 소유하는 실체가 아닌 관계망이겠지. ‘그래, 놈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들여다보고 있다 이거지.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어.’ 해보지만 ‘뒤를 좇는 너희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니? 권력? 그건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권한도 아니잖아. 감시? 한 사회의 복합적인 전략적 상황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야. 우리가 정의에 가까이 가게 되면 너희들이 가까이 올수록 뒤를 좇아와 뒤통수를 치겠다? 보이지 않는 형벌을 가하겠다? 으음, 감옥의 탄생이라! 젠장, 갑자기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네.’ 열린 감옥에 갇힌 듯 지명은 혼잣말인 듯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정우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다 불량배처럼 구는 지명을 쳐다보았다. 어디라도 좀 빨리 실내로 들어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여자가 입을 삐죽이다 말했다. 지명의 얼굴이 조금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여자가 입을 삐죽이는 게 습관인 모양이었다. 창문 밖으로 떠돌던 바람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창문 안 실내에까지 들려왔다. 여자는 입을 쩝쩝거렸는데 눈에 거슬렸다. 고개를 갸웃 도리도리 내젖는다거나 입을 쩝쩝거린다거나 실쭉 웃는다거나 그 습관이 어떤 이에게는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 지명에게는 눈이 거슬렸다. 기억력과 상상력을 펼쳐보니 냄새가 났다. 순간 정우와 지명의 눈이 마주쳤다.

“냄새가 난다.”

“무슨 냄새요?”

정우가 되물었다. 그러나 순간, 정우가 오른손 검지로 테이블을 탁탁 두 번 내려치는 게 보였다. ‘그러지 말라는’ 신호일 것이다. ‘조금만 더 밀어붙여 보세요’, 하는 눈빛이었다. 나름 혼자만의 감정에 빠져있던 정우는 평화를 찾은 얼굴이었다.

지명이 ‘산 겹겹 물 망망 세월을 건너왔는데 참나, 세상 것들’ 하며 씁쓰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얼마나 허겁지겁 고기를 먹었을까, 정우가 한참 먹다 말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행자들은 실내까지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그 동향을 살피고 있는 눈치였다.

창문이 크게 덜컹거렸다. 낡고 상처가 된 바람 어둠같은 것들이 출렁거리며 유리창 쪽으로 진군해 오고 있었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지는 않았어요.”

“……원망하며 살 때도 있어야지.”

지명이 속물처럼 말했고 식사가 끝나자 까맣게 속이 탄 얼굴을 하고 있는 정우가 대답했다.

“보살?”

“예?”

당연하고 당당하다는 듯 지명이 물었다. 주인여자의 전화 한 통으로 미행하던 이의 책임자가 최진석이라는 인물이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썩었군, 다 썩었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지 않은 곳이 없어. 오빠라는 이가 시내에서 모 백화점 운영하는 강백훈인가?”

“……옴마나……. 스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순간 묻는 지명의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욕망으로 치장한 여자의 소란스런 목소리가 싫었다.

“내가 잘 알지, 나이트 클럽도 운영하는 가짜 양주에 이 바닥에선 성공한 COE라며?”

여자가 놀란 눈으로 지명을 건네 봤다. 지명은 신경이 곤두섰지만 싱긋 웃음을 흘렸다. ‘그래 오빠는 잘 먹고 잘 살고 계시죠?’ 중얼거리던 지명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오는 그 어떤 감정에 말로 표현되지 못할 그 어떤 분노를 느꼈다. 정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그 양아치가 친 오빠야?”

“양아치라뇨? ……친 오빠는 아니고요.”

“그으래애? 그래. 그럼 때려잡자 나쁜 놈들. 나쁜 놈들 시켜 더 나쁜 놈들 한번 잡아볼까?”

정우가 고개를 그덕였다.

“좌우지간 너의 스폰서인지 오빤지 전화 함 해봐요.”

지명이 보살을 보고 말했다. 주눅이 든 여자가 전화번호를 눌러댔다.

저 멀리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쌓인 소나무 뒤로 보이는 바다를 힐끔 쳐다보던 지명은 잠시 고민하다 여자의 눈을 쏘아봤다. 휘늘어진 소나무 하나만 봐도 여자의 안목을 읽어낼 수 있었다.

여자는 거푸 마신 술로 조금 매무새가 흐트러졌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경박하게 굴지는 않았다. 놈은 주인 여자가 이혼했을 당시 유책사유로 남편의 부정, 불륜 장면을 미행감시해서 사진증거를 만들어 주었다 했다. 전직 경찰로 미아 찾기, 실종자 수색, 탐정이라 했지만 이혼하는 이들의 외도증거를 수집하는 게 주 업무인 흥신소, 남들의 뒤를 캐는 파렴치한 놈들일 뿐이었다. 지명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으음’하는데 이제 창밖은 보이지 않고 실내의 풍경들이 희미하게 유리창에 비쳤다.

“고향에 내려와 있다더니……. 전화해서 나 좀 바꿔줘 봐.”

지명은 대뜸 반말을 해댔다.

“……네?”

속살을 보인 듯 주인여자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오빠, 전데요, 여기 손님으로 오신 스님이 오빠를 바꿔 달라는 데요.”

앙탈을 부리듯 여자는 수화기 저쪽에 일러바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저 특수부에 있던 변동인 입니다.”

“아, 특수부요. 아, 예, 그 또라이 검사님?”

“예, 나 그 또라이 검사. 똘끼 만 렙, 똥검사 때려치우고 나 스님 되었습니다. 시주 좀 받을까 하고 왔는데. ……그나저나 여기가지 왔는데 얼굴 좀 한 번 봅시다. 부탁도 좀 있고.”

“아, 예. 소식 들었습니다. 영감님. 말씀이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갖다 바쳐야죠.”

“……영감땡감이 아니고, 스님이라고요, 스님. 지금 여기 밖에 얼쩡거리는 최진석 이라고 흥신소 한다는 사람이 저의 뒤를 좇고 있는 거 같은데 잡아서 누가 시켰는지 좀 알아봐 주셔야 할 거 같은데.”

인생이란 꿈같은 것, 덧없다는 듯 지명이 말했다.

“겁대가리 상실한 놈들이네요……. 감히 우리 스님을. 염려 마십시오. 제가 놈들 잡아다가 삼십분 이내 튀어 가겠습니다.”

“그렇다고 피떡이 되도록 족치지는 말고. 여기, 화이트 하우스라는 곳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네,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지명의 통화 내용을 듣던 주인여자와 정우가 눈을 마주치고 서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눈치를 보니 정우가 검찰 특별수사부를 검색하는 모양이었다.

“여기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방 하나 알아봐 줘. 아무도 없는 곳으로.”

“……저기 보이는 저 집 어때요? 화이트 하우스요.”

“아무렴 어떨까. 바람에 찢기고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저것도 제가 운영하는 펜션인데요. 날이 추워서 그런지 마침 손님이 하나도 없어요. 실내는 뜨끈뜨끈 할 거.”

“그래……요. 여기. 음식 값하고 차량번호 알아준 사람, 그리고 팬션에 내일 아침밥까지 해서 숙박비 계산해 줘요. 보살 팁 이십 만원 플러스 하고.”

“감사합니당.”

‘그럼 좋죠’ 하는 여자를 보고 ‘돈이 좋지’ 하며 솔직하게 ‘네, 전 돈이 제일 좋아요’ 하는 지명을 입맛을 다시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정우가 눈을 껌벅거렸다.

“가자, 오늘 밤은 우리 저곳에 가서 뒤집어 자기로 하자.”

“……네.”

“보살, 팬션 하루 빌리는 덴 얼마야?”

“이십 만원이요.”

여자가 모가지를 뽑으며 말했다. 두뇌회전이 빠른 지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관이나 여인숙엘 들어가면 오만원이면 될 텐데. 지명이 낮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아까 말한 팁까지 계산해.”

카드를 받은 주인여자가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우는 숨이 가쁜지 쌔액쌕 거리는 숨소리가 지명에게까지 들려왔다.

“자, 이것도 먹어. 소화제다. 먹고 우리 숙소로 가자.”

“…….”

보살이 영수증을 가지고 와 내밀다가 직접 안내를 하겠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 계속 -

혜범 스님

1976년 입산,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당선.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흙출판사),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청림출판사), 『천기를 누설한 여자』(흙출판사) 『반야심경』(밀알출판사), 『업보』(밀알출판사), 『남사당패』(태일출판사), 『시절인연』(밀알출판사), 『플랫폼에 서다』(북인) 등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도서출판 북인),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밀알출판사), 『달을 삼킨 개구리』(북갤럽),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북갤럽)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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