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본위화폐] 18. 그림자 노동 shadow labor
[똥본위화폐] 18. 그림자 노동 shadow labor
  • 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 승인 2021.07.26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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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노동 가치 제대로 평가 못하면 불행
누군가는 주인공의 그림자가 되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 못지않게 우리가 중히 다루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림자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문제이다. 그림자 노동은 임금 또는 어떤 형태로든 돈을 받지 않지만 높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 노동을 말한다. 식당에서 반찬을 자신이 직접 떠서 먹고, 카페 키오스크에서 자신이 직접 주문하고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가져가는 셀프 서비스도 일종의 그림자 노동이라고 할 수는 있다. 먹고 난 후 그릇, 마신 후 컵, 쓰레기 등을 자신이 직접 정리하고 지정된 장소에 가져다 놓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은 음식, 커피, 음료 등의 가격 할인으로 이어져 어떤 형태로든 직간접적으로 돈으로 인정받는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 가족을 위해 일하는 주부의 그림자 노동은 어떠한가. 가정주부는 고되지만 가치 있는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받지 않는다. 즉, 식당이나 카페에서의 그림자 노동은 가정주부의 그림자 노동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가정주부의 그림자 노동은 집안 일, 즉 가사노동, 육아, 그리고, 자녀 교육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어떤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전문성과

깊은 지혜가 담긴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 뿐만 아니라 주부인 그림자 노동자 자신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일 뿐만 아니라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가정주부는 엄청난 노동을 담당하지만 임금을 받지 않는다. 가족을 위한 숭고한 일을 하기에 감히 돈을 지불할 수 없는 것이라 위안할 수도 있지만, 그럼 임금노동자는 숭고하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기 때문에 임금을 받는 것인가. 그림자 노동이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는 주인공이고 누군가는 주인공의 그림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주인공, 주역이 따로 없다면 그림자 노동도 없다. 주부에게 가족은 마음으로 늘 감사한다. 자녀들도 주부인 어머니 또는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그림자노동을 나누어 담당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무임금 그림자노동에 대한 감사함을 현재 경제 및 정치시스템에서 돈으로 지불할 수 없다면, 다른 차원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 돈이 만약 생긴다면 그것은 보통의 돈은 아닐 것이다. 그 돈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담을 수 있고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림자 노동하면 어릴적 어머니가 담너머 건네 주시던 도시락이 떠 오른다. 전업 주부의 노동을 어줍잖게 임금으로 계산하는 것보단 똥본위화폐에 담아 전혀 다른 가치 만들면 좋겠다.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를 직접 가져오고 반납하면 음료가격이 할인된다. 음료 가격에 이미 포함시킨 것이라, 그림자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일상 생활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생태계 생각하는 나의 작은 실천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똥본위화폐에 담고자 하는 노력이라면 그림자 노동일게다. 이렇듯 똥본위화폐는 상상하기에 따라서 사회 구석진 곳을 따뜻하게 비출 수 있다.



“공연예술가·거리 이야기꾼에게 지불할 디지털 대안화폐는”

거리의 예술가들도 임금을 받고 예술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버스킹 공연을 하는 거리의 가수들은 모자와 기타 가방에 돈을 받기는 하지만 임금은 아니고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감사의 표시다. 해운대 백사장, 대학로 거리에는 이런 버스킹 예술가들이 많다. 때론 노래를, 때론 마술을 보여주면서 우연이 만들어준 관객들과 만난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재밌는 얘기로 모여든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만들어준 거리의 이야기꾼도 만날 수 있다. 이런 예술가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감사의 시선을 보내고 박수를 치는 것과 적은 돈을 수줍게 모자와 기타 가방에 넣는 것이다. 내가 가진 항공마일리지, 철도마일리지, 서점 포인트 등을 거리의 예술가들에게 주기는 쉽지 않다. 시민들이 주고 싶고 예술가들이 받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주고받는 방법도 마땅치 않다. 지금의 돈도 아니고, 기존의 마일리지, 포인트는 아니지만, 스마트폰으로 쉽고 재미있게 힘내라고 예술가들에게, 거리의 이야기꾼에게 지불할 수 있는 디지털 대안화폐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의 좋아요 표현을 공연의 현장 거리에서 주고받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좋아요 표현을 대안적인 돈이 역할을 하고, 거리의 예술가들은 공연 후 근처 카페에서 커피, 주스를 사서 마실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디지털 사회의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아날로그적 감성인 셈이다.

“기본소득, 그림자 노동 가치 인정하는 길”

임금노동은 임금을 주는 목적에 따라 일을 한다. 교육자는 교육을 하는 조건으로, 기업고용자는 기업이 요구하는 일을, 공무원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그들이 맡은 일을 함으로써 사회를 위해 책무를 다하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다. 하지만 그림자노동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그들이 판단하여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찾는다.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 주부들은 부인, 남편이 힘들어 하면 어떤 일이든 찾아내어 일한다. 부모로서,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자식이 있으면 아무런 조건 없이 돕는다. 그래서 부모들은 잔소리꾼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게 그들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다 큰 자식을 둔 부모에게서 잔소리와 걱정을 뺏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부모는 그렇게 그들의 그림자노동을 하고 있다. 누구의 간섭도, 기업, 조직, 단체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묵묵히 일을 하는 것이 그림자 노동자다. 그림자 노동 이야말로 자유롭고 가장 창의적인 행위이다. 기업시스템, 조직시스템, 심지어 국가시스템이 삐걱거릴 때 이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냉정한 판단을 어쩌면 많은 그림자노동이 담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자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순수한 노동에 마음으로 줄 수 있는 돈은 이 세상에는 아직 없는듯 하다. 그들이 사회의 빈 구석, 아픈 곳을 찾아 노동이라는 행위를 하듯 밝지 않은 그늘진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갈 수 있는 돈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버스킹 공연 예술가에게 똥본위화폐를 지불할 수 있고, 공연 마친 예술가는 근처 까페에서 음료를 즐긴다. 카페 주인은 똥본위화폐로 음원을 구입한다. 이렇듯 누군가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 오퍼하면 이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것도 내어 놓게 되어, 순환경제, 연대하는 경제 질서를 만들 수 있다. 최근 유니스트에서는 한의클리닉 센터에서 똥본위화폐 20꿀 지불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을 다 모아보면 세금 도움 없이도 가능한 비정부-순환-기본소득도 가능하다.



기본소득은 그림자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길 중 하나이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리 중 하나가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것에 대한 강한 반감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그림자 노동의 존재는 기본소득 도입의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듯 하다. 다만 기본소득은 그림자 노동자뿐만 아니라 임금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지불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가정주부와 같은 그림자 노동자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귀중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것에는 모자람이 있다. 모자람은 자연스럽게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 노동과 같은 귀중한 가치에 굳이 돈을 매겨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를 가질 수도 있다. 예민하고 복잡할 수도 있으나 의외로 간단한 답을 할 수 있다. 돈을 지불받고 있는 모든 소중한 임금노동과 마찬가지로 그림자 노동에 돈 을 지불하는 것이 이상할 것 없다. 다만 현재의 경제시스템 속에서 이를 고려할 수 없을 뿐이다.

무임금 그림자 노동의 가치를 국가 차원에서 인정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육아휴직을 가질 수 있는 장치를 사회에 두는 것도 국가가 그림자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국가의 예술 문화 지원 사업도 우리 사회에서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는 많은 예술가들의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공동체 차원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그림자 노동에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다. 공동육아, 공동교육, 마을 울력을 통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그림자 노동들을 공동체 공동의 가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여러 차례 토의된 바와 같이 국가와 공동체의 역할이 강조되면 우리 사회는 국가와 공동체에 깊이 의지하게 되어 필요이상의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가와 공동체 자체가 때로는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도 그러하기는 하지만 국가는 그 정도가 심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자격증 제도 이용하는 전문가 시스템을 운영하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육아, 아동교육 대신 유치원, 방과 후 교육 등과 같은 시스템을 국가가 인정하는 라이선스를 가진 전문가들을 통해 운영한다. 보육시스템, 교육시스템에 정부는 예산 지원을 하는데 시스템 운영은 국가가 인정하는 라이선스를 가진 전문가가 담당한다. 이런 시스템에 잘못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 속에서 그림자 노동이 고려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돌볼 수 있는 애정과 의욕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지만, 임금을 받고 일할 수 있는 자격증과 돈이 한정하는 일자리 때문에 이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국가중심의 시스템 속에서 그림자노동 성격의 가치는 인정받기 힘든 이유이다.

“마음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는 화폐가 있다면”

임금 노동이 담당하기 힘든 다른 예도 있다. 집 떠나 외지에서 사는 젊은이들은 집밥이 먹고 싶다. 집 밥과 비슷한 맛 집을 찾아 돈을 지불하고 먹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자신의 자식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가끔 집 밥을 정성스럽게 해서 먹이고 싶은 사람, 특히 어르신들이 우리사회에는 분명 있을 것이다. 일종의 그림자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그림자 노동은 누군가 하더라도 돈을 받고 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마음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그런 화폐가 세상에 만약 있다면, 자식, 손주와도 같은 젊은이들에게 정성껏 식사를 제공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돈은 없다 치부해 버리기보다는 디지털시대 창의적인 상상을 해 보았으면 한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자신의 끼를, 예술성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예술가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지만 돈을 받고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적다. 이들을 위해 꼭 수익모델이 아니더라도 예술가들을 위한 아트비즈니스모델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즉, 젊은 예술가들이 계속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와 동력을 디지털시대 디지털 상상력으로 마련할 수 있는 모델 말이다. 디지털사회라고 해서 생활이 모두 디지털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디지털기술이 지금보다도 오히려 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디지털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가치의 기준을 근본적으로 인간관계에 두고 자연스러움이라는 특성을 가질 수 있다면, 디지털 화폐는 임금 중심의 사업, 정부의 도움과 조절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아이돌 봄, 집 밥, 예술 등을 우리 사회의 필요성과 연결시켜 자연스럽게 그리고 지금의 사회, 정부와는 다른 방향으로 해낼 수 있는 디지털 사회의 돈은 분명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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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노동하면 어릴적 어머니가 담너머 건네 주시던 도시락이 떠 오른다. 전업 주부의 노동을 어줍잖게 임금으로 계산하는 것보단 똥본위화폐에 담아 전혀 다른 가치 만들면 좋겠다.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를 직접 가져오고 반납하면 음료가격이 할인된다. 음료 가격에 이미 포함시킨 것이라, 그림자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일상 생활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생태계 생각하는 나의 작은 실천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똥본위화폐에 담고자 하는 노력이라면 그림자 노동일게다. 이렇듯 똥본위화폐는 상상하기에 따라서 사회 구석진 곳을 따뜻하게 비출 수 있다.

“공연예술가·거리 이야기꾼에게 지불할 디지털 대안화폐는”

거리의 예술가들도 임금을 받고 예술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버스킹 공연을 하는 거리의 가수들은 모자와 기타 가방에 돈을 받기는 하지만 임금은 아니고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감사의 표시다. 해운대 백사장, 대학로 거리에는 이런 버스킹 예술가들이 많다. 때론 노래를, 때론 마술을 보여주면서 우연이 만들어준 관객들과 만난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재밌는 얘기로 모여든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만들어준 거리의 이야기꾼도 만날 수 있다. 이런 예술가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감사의 시선을 보내고 박수를 치는 것과 적은 돈을 수줍게 모자와 기타 가방에 넣는 것이다. 내가 가진 항공마일리지, 철도마일리지, 서점 포인트 등을 거리의 예술가들에게 주기는 쉽지 않다. 시민들이 주고 싶고 예술가들이 받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주고받는 방법도 마땅치 않다. 지금의 돈도 아니고, 기존의 마일리지, 포인트는 아니지만, 스마트폰으로 쉽고 재미있게 힘내라고 예술가들에게, 거리의 이야기꾼에게 지불할 수 있는 디지털 대안화폐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의 좋아요 표현을 공연의 현장 거리에서 주고받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좋아요 표현을 대안적인 돈이 역할을 하고, 거리의 예술가들은 공연 후 근처 카페에서 커피, 주스를 사서 마실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디지털 사회의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아날로그적 감성인 셈이다.

“기본소득, 그림자 노동 가치 인정하는 길”

임금노동은 임금을 주는 목적에 따라 일을 한다. 교육자는 교육을 하는 조건으로, 기업고용자는 기업이 요구하는 일을, 공무원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그들이 맡은 일을 함으로써 사회를 위해 책무를 다하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다. 하지만 그림자노동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그들이 판단하여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찾는다.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 주부들은 부인, 남편이 힘들어 하면 어떤 일이든 찾아내어 일한다. 부모로서,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자식이 있으면 아무런 조건 없이 돕는다. 그래서 부모들은 잔소리꾼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게 그들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다 큰 자식을 둔 부모에게서 잔소리와 걱정을 뺏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부모는 그렇게 그들의 그림자노동을 하고 있다. 누구의 간섭도, 기업, 조직, 단체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묵묵히 일을 하는 것이 그림자 노동자다. 그림자 노동 이야말로 자유롭고 가장 창의적인 행위이다. 기업시스템, 조직시스템, 심지어 국가시스템이 삐걱거릴 때 이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냉정한 판단을 어쩌면 많은 그림자노동이 담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자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순수한 노동에 마음으로 줄 수 있는 돈은 이 세상에는 아직 없는듯 하다. 그들이 사회의 빈 구석, 아픈 곳을 찾아 노동이라는 행위를 하듯 밝지 않은 그늘진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갈 수 있는 돈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버스킹 공연 예술가에게 똥본위화폐를 지불할 수 있고, 공연 마친 예술가는 근처 까페에서 음료를 즐긴다. 카페 주인은 똥본위화폐로 음원을 구입한다. 이렇듯 누군가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 오퍼하면 이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것도 내어 놓게 되어, 순환경제, 연대하는 경제 질서를 만들 수 있다. 최근 유니스트에서는 한의클리닉 센터에서 똥본위화폐 20꿀 지불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을 다 모아보면 세금 도움 없이도 가능한 비정부-순환-기본소득도 가능하다.
버스킹 공연 예술가에게 똥본위화폐를 지불할 수 있고, 공연 마친 예술가는 근처 까페에서 음료를 즐긴다. 카페 주인은 똥본위화폐로 음원을 구입한다. 이렇듯 누군가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 오퍼하면 이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것도 내어 놓게 되어, 순환경제, 연대하는 경제 질서를 만들 수 있다. 최근 유니스트에서는 한의클리닉 센터에서 똥본위화폐 20꿀 지불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을 다 모아보면 세금 도움 없이도 가능한 비정부-순환-기본소득도 가능하다.

기본소득은 그림자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길 중 하나이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리 중 하나가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것에 대한 강한 반감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그림자 노동의 존재는 기본소득 도입의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듯 하다. 다만 기본소득은 그림자 노동자뿐만 아니라 임금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지불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가정주부와 같은 그림자 노동자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귀중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것에는 모자람이 있다. 모자람은 자연스럽게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 노동과 같은 귀중한 가치에 굳이 돈을 매겨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를 가질 수도 있다. 예민하고 복잡할 수도 있으나 의외로 간단한 답을 할 수 있다. 돈을 지불받고 있는 모든 소중한 임금노동과 마찬가지로 그림자 노동에 돈 을 지불하는 것이 이상할 것 없다. 다만 현재의 경제시스템 속에서 이를 고려할 수 없을 뿐이다.

무임금 그림자 노동의 가치를 국가 차원에서 인정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육아휴직을 가질 수 있는 장치를 사회에 두는 것도 국가가 그림자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국가의 예술 문화 지원 사업도 우리 사회에서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는 많은 예술가들의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공동체 차원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그림자 노동에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다. 공동육아, 공동교육, 마을 울력을 통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그림자 노동들을 공동체 공동의 가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여러 차례 토의된 바와 같이 국가와 공동체의 역할이 강조되면 우리 사회는 국가와 공동체에 깊이 의지하게 되어 필요이상의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가와 공동체 자체가 때로는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도 그러하기는 하지만 국가는 그 정도가 심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자격증 제도 이용하는 전문가 시스템을 운영하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육아, 아동교육 대신 유치원, 방과 후 교육 등과 같은 시스템을 국가가 인정하는 라이선스를 가진 전문가들을 통해 운영한다. 보육시스템, 교육시스템에 정부는 예산 지원을 하는데 시스템 운영은 국가가 인정하는 라이선스를 가진 전문가가 담당한다. 이런 시스템에 잘못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 속에서 그림자 노동이 고려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돌볼 수 있는 애정과 의욕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지만, 임금을 받고 일할 수 있는 자격증과 돈이 한정하는 일자리 때문에 이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국가중심의 시스템 속에서 그림자노동 성격의 가치는 인정받기 힘든 이유이다.

“마음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는 화폐가 있다면”

임금 노동이 담당하기 힘든 다른 예도 있다. 집 떠나 외지에서 사는 젊은이들은 집밥이 먹고 싶다. 집 밥과 비슷한 맛 집을 찾아 돈을 지불하고 먹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자신의 자식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가끔 집 밥을 정성스럽게 해서 먹이고 싶은 사람, 특히 어르신들이 우리사회에는 분명 있을 것이다. 일종의 그림자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그림자 노동은 누군가 하더라도 돈을 받고 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마음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그런 화폐가 세상에 만약 있다면, 자식, 손주와도 같은 젊은이들에게 정성껏 식사를 제공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돈은 없다 치부해 버리기보다는 디지털시대 창의적인 상상을 해 보았으면 한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자신의 끼를, 예술성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예술가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지만 돈을 받고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적다. 이들을 위해 꼭 수익모델이 아니더라도 예술가들을 위한 아트비즈니스모델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즉, 젊은 예술가들이 계속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와 동력을 디지털시대 디지털 상상력으로 마련할 수 있는 모델 말이다. 디지털사회라고 해서 생활이 모두 디지털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디지털기술이 지금보다도 오히려 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디지털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가치의 기준을 근본적으로 인간관계에 두고 자연스러움이라는 특성을 가질 수 있다면, 디지털 화폐는 임금 중심의 사업, 정부의 도움과 조절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아이돌 봄, 집 밥, 예술 등을 우리 사회의 필요성과 연결시켜 자연스럽게 그리고 지금의 사회, 정부와는 다른 방향으로 해낼 수 있는 디지털 사회의 돈은 분명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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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명은 원광(圓光).
과학예술융합 연구센터 사이언스월든 센터장을 2015년 이후 맡고 있다. 2016년, 2017년 씽크탱크 Edge 재단에 ‘똥본위화폐’, ‘중용의 비움’ 에세이를 발표했다. 통일부 (사)북한물문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쁜 작은 마을에 전기없이도 안전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옹달샘’ 정수기 공급프로젝트를 2006년 이후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2021년, 개마고원)과 <금간 거울 산산조각 내기>(2020년, 파티)가 있다. 사이언스월든 센터 웹: ScienceWald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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