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20. 어느 여름 날의 꿈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20. 어느 여름 날의 꿈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1.07.26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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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한 여름 태양

하루가 피곤한 새들 쉬어 가고

태양 품은 푸른 갈대

바람에 일렁대면

수도승 같은 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작가의 변
의성 최치원문학관에서 실시한 맨발걷기 ‘우리 맨발로 걸어요’ 영상을 보고 자주 찾아 가던 리치몬드 해변에 가서 맨발로 걸었다. 평소 비가 오면 미끄러지기 쉬운 찰흙 같은 것이 있던 길이 뽀송뽀송 말라서 걷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사실은 아이오나 비치에서 맨발로 걷다가 깨진 유리조각이 너무 많아, 신발을 신고 걸었던 기억도 있다.

그루터기처럼 남아 있는 고목들에 왜가리들이 하나 씩 자리를 잡고 쉬고 있고, 그늘도 없이 이글거리는 태양을 오롯이 받아 내는 갈대 잎은 더욱 푸르기만 한 여름 대 낮이다. 바람이 불면 갈대가 흔들려서 햇빛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나고 나무에 앉은 왜가리는 수도승처럼 수도를 한다.

내가 어린 시절엔 타이어 표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당연히 양말이란 물건은 없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다 학교 끝나고 하교 길에 개울을 걸어서 집으로 오고는 했다. 물에 젖은 검정고무신은 물기를 머금고 찔그덕 댔다. 학교 끝나고 과외를 다니다가,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는 요즘 아이들하고는 다르게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과 개울에서 놀면서 집에 오면 소를 메어 놓은 곳에 가서 장소를 옮기거나, 소꼴을 베거나, 밭에 김 메러 간 어머니를 도와주거나 뭔가를 해야 했다. 그리고 숙제로 내준, 박카스 병 하나에 들기름을 담어 가져간다든가, 퇴비를 가져가는 숙제는 여름 방학이 끝나면 꼭 있었다. 학교에서도 고구마도 심고, 아주까리도 심고 농사를 지어서 화장실에 똥을 퍼서 고구마 밭에 뿌리는 일도 했다. 어머니는 산에 나무하러 가면 소나무 순 즉 새순을 낫으로 껍질을 깎아서 안에 줄기를 이빨로 끊어서 즙을 먹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군것질이 궁했던 아이들은 밤에 과수원 사과 서리도 하고 콩밭에 콩서리도 하고, 원두막 아래 수박서리는 달이 없는 어두운 밤에 했다.

인터넷이 없으면 뭔가 이빨 빠진 것처럼 허전한 요즘 같은 시대엔 꿈만 같은 나날들이 나의 어린 시절에 있었다. 당연히 변소는 집 밖에 있는 재래식이었고 그 곳에 빠져서 간신히 살아 났지만, 냄새가 정말 한 달 이상 간 것 같은 기억도 있다. 맨발로 걸으면서 지난 추억을 떠올린다. 문명의 시대에 살면서 비문명을 그리워한다. 맨발로 개울을 걷던 타이어 표 고무신을 신은 아이들. 운동화가 명품처럼 갖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라디오도 전기도 없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호롱불아래서 동아전과가 가정교사 노릇을 하고 비슷한 말 반대말을 공책에 베껴 쓰던 시절이 있었다. 지하수 우물을 퍼서 아버지 등에 물을 한 바가지 붓고 ‘어 시원하다!’ 말하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이젠 가족 중에 나만 기억한다. 등에 찬물이 부어 지면 짜릿한 시원함이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발을 한 번도 씻겨 드리지 못한 듯하다.

나무에 앉아서 수도하는 왜가리처럼, 나도 그늘에 앉아서 먼 하늘과 갈대를 바라보며 지난 날들을 떠올린다. 기억을 공유할 사람도 이젠 점점 사라져 간다. 점점 시니어란 구역으로 들어가는 삶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해 버린 세상처럼 아주 멀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와 잠시 영상처럼 말하고 떠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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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한 여름 태양

하루가 피곤한 새들 쉬어 가고

태양 품은 푸른 갈대

바람에 일렁대면

수도승 같은 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작가의 변
의성 최치원문학관에서 실시한 맨발걷기 ‘우리 맨발로 걸어요’ 영상을 보고 자주 찾아 가던 리치몬드 해변에 가서 맨발로 걸었다. 평소 비가 오면 미끄러지기 쉬운 찰흙 같은 것이 있던 길이 뽀송뽀송 말라서 걷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사실은 아이오나 비치에서 맨발로 걷다가 깨진 유리조각이 너무 많아, 신발을 신고 걸었던 기억도 있다.

그루터기처럼 남아 있는 고목들에 왜가리들이 하나 씩 자리를 잡고 쉬고 있고, 그늘도 없이 이글거리는 태양을 오롯이 받아 내는 갈대 잎은 더욱 푸르기만 한 여름 대 낮이다. 바람이 불면 갈대가 흔들려서 햇빛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나고 나무에 앉은 왜가리는 수도승처럼 수도를 한다.

내가 어린 시절엔 타이어 표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당연히 양말이란 물건은 없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다 학교 끝나고 하교 길에 개울을 걸어서 집으로 오고는 했다. 물에 젖은 검정고무신은 물기를 머금고 찔그덕 댔다. 학교 끝나고 과외를 다니다가,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는 요즘 아이들하고는 다르게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과 개울에서 놀면서 집에 오면 소를 메어 놓은 곳에 가서 장소를 옮기거나, 소꼴을 베거나, 밭에 김 메러 간 어머니를 도와주거나 뭔가를 해야 했다. 그리고 숙제로 내준, 박카스 병 하나에 들기름을 담어 가져간다든가, 퇴비를 가져가는 숙제는 여름 방학이 끝나면 꼭 있었다. 학교에서도 고구마도 심고, 아주까리도 심고 농사를 지어서 화장실에 똥을 퍼서 고구마 밭에 뿌리는 일도 했다. 어머니는 산에 나무하러 가면 소나무 순 즉 새순을 낫으로 껍질을 깎아서 안에 줄기를 이빨로 끊어서 즙을 먹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군것질이 궁했던 아이들은 밤에 과수원 사과 서리도 하고 콩밭에 콩서리도 하고, 원두막 아래 수박서리는 달이 없는 어두운 밤에 했다.

인터넷이 없으면 뭔가 이빨 빠진 것처럼 허전한 요즘 같은 시대엔 꿈만 같은 나날들이 나의 어린 시절에 있었다. 당연히 변소는 집 밖에 있는 재래식이었고 그 곳에 빠져서 간신히 살아 났지만, 냄새가 정말 한 달 이상 간 것 같은 기억도 있다. 맨발로 걸으면서 지난 추억을 떠올린다. 문명의 시대에 살면서 비문명을 그리워한다. 맨발로 개울을 걷던 타이어 표 고무신을 신은 아이들. 운동화가 명품처럼 갖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라디오도 전기도 없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호롱불아래서 동아전과가 가정교사 노릇을 하고 비슷한 말 반대말을 공책에 베껴 쓰던 시절이 있었다. 지하수 우물을 퍼서 아버지 등에 물을 한 바가지 붓고 ‘어 시원하다!’ 말하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이젠 가족 중에 나만 기억한다. 등에 찬물이 부어 지면 짜릿한 시원함이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발을 한 번도 씻겨 드리지 못한 듯하다.

나무에 앉아서 수도하는 왜가리처럼, 나도 그늘에 앉아서 먼 하늘과 갈대를 바라보며 지난 날들을 떠올린다. 기억을 공유할 사람도 이젠 점점 사라져 간다. 점점 시니어란 구역으로 들어가는 삶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해 버린 세상처럼 아주 멀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와 잠시 영상처럼 말하고 떠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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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피곤한 새들 쉬어 가고

태양 품은 푸른 갈대

바람에 일렁대면

수도승 같은 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작가의 변
의성 최치원문학관에서 실시한 맨발걷기 ‘우리 맨발로 걸어요’ 영상을 보고 자주 찾아 가던 리치몬드 해변에 가서 맨발로 걸었다. 평소 비가 오면 미끄러지기 쉬운 찰흙 같은 것이 있던 길이 뽀송뽀송 말라서 걷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사실은 아이오나 비치에서 맨발로 걷다가 깨진 유리조각이 너무 많아, 신발을 신고 걸었던 기억도 있다.

그루터기처럼 남아 있는 고목들에 왜가리들이 하나 씩 자리를 잡고 쉬고 있고, 그늘도 없이 이글거리는 태양을 오롯이 받아 내는 갈대 잎은 더욱 푸르기만 한 여름 대 낮이다. 바람이 불면 갈대가 흔들려서 햇빛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나고 나무에 앉은 왜가리는 수도승처럼 수도를 한다.

내가 어린 시절엔 타이어 표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당연히 양말이란 물건은 없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다 학교 끝나고 하교 길에 개울을 걸어서 집으로 오고는 했다. 물에 젖은 검정고무신은 물기를 머금고 찔그덕 댔다. 학교 끝나고 과외를 다니다가,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는 요즘 아이들하고는 다르게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과 개울에서 놀면서 집에 오면 소를 메어 놓은 곳에 가서 장소를 옮기거나, 소꼴을 베거나, 밭에 김 메러 간 어머니를 도와주거나 뭔가를 해야 했다. 그리고 숙제로 내준, 박카스 병 하나에 들기름을 담어 가져간다든가, 퇴비를 가져가는 숙제는 여름 방학이 끝나면 꼭 있었다. 학교에서도 고구마도 심고, 아주까리도 심고 농사를 지어서 화장실에 똥을 퍼서 고구마 밭에 뿌리는 일도 했다. 어머니는 산에 나무하러 가면 소나무 순 즉 새순을 낫으로 껍질을 깎아서 안에 줄기를 이빨로 끊어서 즙을 먹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군것질이 궁했던 아이들은 밤에 과수원 사과 서리도 하고 콩밭에 콩서리도 하고, 원두막 아래 수박서리는 달이 없는 어두운 밤에 했다.

인터넷이 없으면 뭔가 이빨 빠진 것처럼 허전한 요즘 같은 시대엔 꿈만 같은 나날들이 나의 어린 시절에 있었다. 당연히 변소는 집 밖에 있는 재래식이었고 그 곳에 빠져서 간신히 살아 났지만, 냄새가 정말 한 달 이상 간 것 같은 기억도 있다. 맨발로 걸으면서 지난 추억을 떠올린다. 문명의 시대에 살면서 비문명을 그리워한다. 맨발로 개울을 걷던 타이어 표 고무신을 신은 아이들. 운동화가 명품처럼 갖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라디오도 전기도 없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호롱불아래서 동아전과가 가정교사 노릇을 하고 비슷한 말 반대말을 공책에 베껴 쓰던 시절이 있었다. 지하수 우물을 퍼서 아버지 등에 물을 한 바가지 붓고 ‘어 시원하다!’ 말하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이젠 가족 중에 나만 기억한다. 등에 찬물이 부어 지면 짜릿한 시원함이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발을 한 번도 씻겨 드리지 못한 듯하다.

나무에 앉아서 수도하는 왜가리처럼, 나도 그늘에 앉아서 먼 하늘과 갈대를 바라보며 지난 날들을 떠올린다. 기억을 공유할 사람도 이젠 점점 사라져 간다. 점점 시니어란 구역으로 들어가는 삶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해 버린 세상처럼 아주 멀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와 잠시 영상처럼 말하고 떠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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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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