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7. 진흙소가 건너는 강
제2부 7. 진흙소가 건너는 강
  • 혜범 스님
  • 승인 2021.07.1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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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미륵

그렇게 지명과 정우는 점심을 먹기로 하고 고급 한우 집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누가 개입된 거지?’ 공소사실에 증거라고는 칼에 뭍은 혈흔과 고문으로 얻어낸 진술서 밖에 없었다. 증거로 제출된 칼의 손잡이 어디에도 4357의 지문이 없었다. 두 달을 불법 구금했으며 합당한 절차를 무시한 공권력에 의한 사건 조작이었다. 자백만으로는 유죄 입증이 되지 않았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진 사람을 폭행과 강압으로 4357을 살인범으로 만들은 법, 수사기록, 재판기록을 들여다보면 검찰과 경찰의 합작품이었다.

법집행은 공정하고 정의로 워야 했다. 판단 근거는 정의로 워야 한다. 멀쩡한 사람 살인범 만들고 어떠한 연관이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조항에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했다. 무엇 때문에 4357을 협박하고 가혹행위하고 고문했던 것일까. 진실은 과연 뭘까. 놈들이 계획하고 기획한 이유는. 4357의 죽음을 사주한 놈들은 왜 4357의 입을 막았을까.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었다. 국선 변호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겨진 진실을 과연 밝혀낼 수 있을까. 단서라고는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뿐이었다.

미행자들뿐이었지만 추적단서라고는 너무 미미할 뿐이었다. 그러나 분명 놈들이 개지랄 삽질 하다보면 반드시 증거 될 만한 것들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날조 조작된 사건들. 정의의 이름으로 능지처참 엄벌로 심판하리라. 형사소송법 255조에 따라 공소는 취소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추정 일뿐 확증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스님.”

“응?”

“놈들은 양심이 없나 봐요?”

표정도 어둡고 말수도 적은 정우가 물었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는지요?”

“……넌 잘못 없어.”

“그럼 우리 아버지는요?”

“…….”

“자본과 권력에 의해서 정의가 놈들 위주로 조작 되었어요.”

‘그건 모르지’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는데 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법치주의라. 과정도 결과도 정의로 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 같구나. 그래도 우리가 불법(不法)을 저지를 수 없으니 우리는 부처님 법(佛法)으로 가보자고. 이 땅에 정의가 살아서 숨 쉬게 하는 세상을 위해서.”

“……계획이 뭔데요?”

“계획 그딴 거 없어. 무슨 그런 걱정을 하냐? 닥치는 대로 하면 되는 거지.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 이놈아.”

지명의 말에 정우가 쿡 웃었다.

“아빠가 미안해. 끔찍했지, 갑갑했지? 억울했지? 불행했지?”

“……다른 건 다 떳떳했는데 너하고 너의 어머니에게만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구나. 미안하다. 수십 번 참회하고 백만 번 참회했다. 그런데 호시탐탐 놈들이 지금도 나를 노리고 있으니.”

“놈들이 여기까지 죄 없고 선량한 아빠를 죽이러 와요?”

면회 시 정우의 말에 4357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었다.

“목적을 위한 수단을 방편이라 한다, 며요. 그 방편을 어디까지 써도 돼요?”

지명과 정우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쳤는데 먼저 입을 연 건 정우였다.

“……불법적으로 얻은 증거는 재판에 못써먹어.”

“재판까지 안 가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어때요?”

“……그건 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야. 금지되어 있잖아 개인적으로 형벌을 주는 건.”

“놈들은 그러고 있는 데도요? 법이 약자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잖아요. 신빙성이 없는 살인 및 사체손괴 및 은닉의 혐의로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를 보세요. 법제도의 온전한 보호를 없는 이들은 왜 못 받아야 해요?”

“중립을 지키지 못했지……. 우리가 놈들과 다른 점이야. 모두의 꿈이야. 이거저거 다 꿈이 되었지만 말이야.”

“……권력의 상층부에 있다면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부가 있다면 부를 빼앗아 다 나누어 주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어요. 단 주범들은 법의 심판에 맡기기 전에 목숨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 손발은 잘라 주고 싶고요. 스님 그래도 돼요?”

“…….”

이번에는 지명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명은 이제 혼자 살아남은 정우의 떨림을 보았다. 살인교사, 살인지시한 사람은 누구고 실제 범인들은 누구일까. 밥값도 하지 못하는 늙어가는 이의 멸함과 이제 성장해가는 이와의 차이랄까 놈들과 싸워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지명의 마음과 무조건 악과 싸워서는 이길 수 있다는 정우의 입장이 다르다는 걸 지명은 빤히 알고 있었다.

홀에는 모든 테이블마다 커튼이 쳐져 있었고 샹들리에 때문에 더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시골구석에 이 정도 고급스런 인테리어라면 드나드는 이들도 좀 그럴 것이다. 투뿔 한 눈에 보아도 마블링이 기가 막혔다. 세 사람이 와서 조금 푸짐하다 싶게 먹으려면 큰 맘 먹어야 올 수 있는 서민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무궁화 다섯 개의 고급식당이었다.

지명은 속으로 ‘형법 250조 살인이라. 법과 원칙에 따른 재판이어야 했을 것을’ 끙 신음을 삼켰다. 안전하지 않은 대한민국,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건 같은 하나의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꼬리가 붙었다' 지명은 숨을 크게 들이켰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지명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위험하다. 조금 빨리 걸어 보았다. 놈들의 걸음도 빨라졌다. 모퉁이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따라오고 있다. 일부러 한 블록을 더 돌았는데 뒤따르는 놈들이 미행을 확인하는 줄도 모르고 따라붙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얘들아, 니들 꼬리가 너무 길어’ 하며 지명은 쓰게 웃었다. 놈들이 가까이 다가와 낚아 챌 것인가. 납치를 하려는 것인가. 칼을 들고 느닷없이 달려들어 심장을 푹 쑤실 것인가. 망치,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가. 손에 들고 있는 건 보이지 않았다. 눈치를 보니 그저 동향을 파악하는 거 같았다. 그러나 속단하기는 이르다. 잘못했다간 한 번에 훅 가는 수가 있을 것이다. 꼬리에 붙은 것들이 전문가들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온몸으로 소름이 쫙 퍼져 나갔다. 왜 이리 깝치는 것일까. 주변을 의식하며 지명은 이를 악물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두 근 반 세 근 반 지명은 스스로 긴장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도대체 너희들이 원하는 게 뭐뭔데’ 하며 지명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래 잘 따라붙어봐라'하며 주위 주변을 둘러보았다. 옷차림 눈 키 나이를 파악했다. 삼십 대로 생긴 게 울퉁불퉁한 한두 놈, 한 놈은 사십대로 차에 앉아 있는 놈은 검은 뿔테 안경을 꼈는데 돼지새끼같이 몸이 뚱뚱하다.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가. 맞붙어야 하는가. 아니면 모른 척 해야 하나. 아무도 다쳐서는 안 된다. 일단은 몸을 잘 챙기고 있어야 한다. 식당이나 카페로 들어가 뒷문으로 나와 따돌릴 것인가. 순간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놈들에 관한 정보가 아무 것도 없었다. 팽팽해진 긴장감으로 지명은 침을 꿀꺽 삼켰다. 놈들과의 간격을 두고 천천히 걸으며 놈들을 예리하게 주시했다. 가만히 보니 차로 들이 밀거나 놈들이 떼로 달려들어 공격을 할 생각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예견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러 지명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놈들을 유인했다. 겁주려는 건가? 놈들의 행동은 대담했다. 지명은 놈들을 눈치 챘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검은 색 그랜저 , 번호판을 확인한 지명은 ‘아이고 이놈들아, 미행을 하려면 티가 안 나게 해야지.’하며 나쁜 놈들의 부적절한 커넥션을 밝힐 수 있는 첫 단추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 제가 곡차 한 잔 올려도 되요?”

주인집 여자가 다가와 앉으며 살랑거리며 물었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첫눈에 반할 미모의 스타일이었다.

“그럼요, 우리 살아있음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웃음을 띄우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명은 몸살기운으로 머리가 띵해 있었다. 웃음을 띠는 주인여자가 천사가 아니라 악녀로 보였다. 사람들은 사람을 잘못 만나 고통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옷은 물론 여자는 명품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제가 이렇게 손님들 테이블에 와서 직접 이러지 않는데. 정우라고 했나? 묘하네요. 이렇게 끌려본 적이 없는데.”

여자가 지명의 옆자리에 앉으며 눈가에 웃음의 꼬리를 달았다. 아무리 예뻤어도 잔주름은 세월을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찌질 하지는 않죠. 착하게 살아서 그렇지. 자, 제게 주었으니 보살도 한 잔 받으셔야지.”

“……참 이상도 해요. 스님에게선 묘하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풍겨나요.”

가게 주인여자가 소주 한 잔을 마시고 그 잔을 지명에게 내밀었다. 실내에는 잔잔히 샹송풍의 포크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 나오는 게 쥬뗌므, 사랑합니다, 라는 노랜가. 난 정미조가 부른 개여울이란 샹송풍의 노래가 좋던데……. 보살?”
“……예, 그러셨어요?”

“보살이 옛날에 배우였어요?”

“아뇨, 통기타 가수였어요. 조금 있으면 개여울, 그 노래 나올 거예요.”

“TV에서 본 것도 같아요. 그나저나 보살, 이혼한지 얼마나 됐어요?”

“이제 3년 6개 월요. 그나저나 어떻게……?”

“관상에 그렇게 쓰여 있는데 뭐. 그런데 왜 이혼했어요?”

“……남편이 바람을 피웠어요.”

순간 지명은 ‘잡아넣어야 할 비극의 주범들은 변호인들과 검사 판사들의 비호로 증거를 확 쓸어버리고 범죄를 입증 못하고 못 잡아넣고 풀어줘야 할 사람들만 잡아넣었죠.’ 하며 쿡 웃었다. 남편바람, 외도 증거 확보. 심부름센터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외제 차 하나를 떠올렸다.

“보살, 어차피 조진 인생들 보살은 과부, 나는 홀아비. 이참에 우리 그냥 확 같이 살아버릴까? 어때?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지?”

“……좋죠.”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기도 하지만 생명과 죽음을 잇는 유일한 다리이기도 하지…… 그럼 오늘 우리 밤에 속궁합을 맞춰보는 건 어떨까?”

지명의 농담에 여자는 ‘스님은?’ 하고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가볍게 지명의 어깨를 살짝 쳤다. 끼가 발동했는지 주인여자의 눈빛에서 희미하게 무엇인가가 빛나고 있었다. 그걸 놓칠 지명이 아니었다.

“이런 장사를 하려면 손님들 중에 높은 사람들 많이 아시겠네.”

순간 지명이 목소리 톤을 바꾸어 물었다.

“……뭐 바닥이 워낙 좁아서.”

“그렇죠. 운명은 기회가 아니라 선택이고. 그나저나 여기 가게 앞의 CCTV 녹화되고 있죠?”

“그걸 어떻게? 현관 앞의 입간판을 누가 돌로 깨서 이 쪽 저 쪽에 또 입구에 길 건너편 쪽 가게에도 부탁해서 카메라를 설치했어요.”

“······사실 이 아이에게 고기 먹일 생각도 있었지만 이리 들어오게 된 게 그 자가 방범 녹화 장면을 보고 좀 확인하려고. 부탁 좀 하려고.”

“······뭘요?”

“······핸드폰 좀 가지고 와 보라고.”

기분 좋은 말, 듣기 좋은 말로 일관하던 여자가 혹시 손해되는 건 없나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그러죠, 뭐’하며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만이 남았다.

“일단은······. 교도소 측과 경찰서 측이 사건처리를 어떻게 하나 보자고. 그나저나 누가 연루되었을까? 놈들의 타깃은 뭘까?”

“스님?”

“응?”
“놈들을 잡을 수 있어요?”

“놈들이라니?”

“우리 아빠를 죽인 놈들이요.”

“어떻게?”

“…….”

미행을 먼저 감지한 건 정우였다.

“정의의 이름으로 네놈이 한 번 잡아봐.”

“스님, 저놈들을 잡아줘 봐요.”

창밖에는 어둠이 일제히 아우성치며 바닷바람과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마른가지 마른 잎 마른나무 위에는 소복이 눈이 쌓여있었다.

“사건의 배경은 뭘까. 의도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 너희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분명 그랬잖아 일 안 벌이고 조용히 있겠다고. 군사정권이 끝나면 항소 하겠다, 했잖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요.”

“응 억울하게 고통받다보니 감이 오냐?”

“네. 그 자살했다는 수형자요. 제가 보았을 땐, 두 번 째 자살한 사람도 타살일 거 같아요.”

“타살······. 왜?”

아직도 안정이 되지 않는지 손을 떠는 정우가 안쓰러웠다. 순간 지명은 아들은 지 아버지의 운명을 닮는다는 말을 떠올렸다. 4357을 보았을 때 왠지 지명은 눈을 끔쩍거렸다.

“아버지를 만나지 않아도 아버지가 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희망이 솟구쳤어요.”

지명은 분명히 어린 소년 정우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도소 내에는 사방에 CCTV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심지어 열화상 카메라까지 그런데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그 사각지대를 아는 건 수형자와 교도관들뿐인데 수형자들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불가능하거든요. 고로 교도소 측과 반드시 연관관계가 있을 거라 추측하는 거죠. 작업장 화장실이라면 혹 녹화 테이프가 있을 수도 있고요. 분명, 교도관들이 잘 해주었으면 살인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고요. 둘 다 살릴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정우가 무척 안타까워하는 눈치였는데 주인여자의 등장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끊겼다.

“슬픔이 있는 곳에는 늘 거룩함이 함께 해 슬픔이 고통이 너를 키울 것이야.”

“…….”

법도 법의 집행도, 심지어 교도소 내에서도 정의롭지 못했다. 한 사람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됐다.

“왜 재심을 하려들지 않죠?”

“…….”

“백번 천 번 더 재심을 청구하고 싶었겠지만 놈들이 정우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했나요?”

“…….”

접견 시 4357은 대답하지 못했다.

미쳐야 사는데 미치지 못했다. 狂이 아닌 得을 위하여 아니 부처를 위해서도 말과 글을 따라다니지 않으려 애썼다. 미오(迷悟), 말 못하는 입을 가진 까닭도 아니었다. 다행이 불법을 만나 입득세간(入得世間)에 들어 무명업전(無明業田)을 갈아먹고 살았다. 마음가는대로(生心動念), 사는 주제에 뱀의 꼬리 같은 말들, 있다, 없다, 이렇다, 저렇다, 할 주제가 되지 못했다. 물러나면서 아니라고 돌아서면서 살았다. 인과에 얽히지 않으려고 악한 인연이 아니라도 인연이 고(苦)가 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도대체 무슨 일로 오랜 세월 헛되이 청춘을 낭비하였는지. 지명은 사구(死句) 씹듯 한숨을 낮게 내질렀다.

“스님, 무슨 생각하세요?”

“내 아버지가 누구였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버지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느냐는 것이다.”

“…….”
정우를 건네 보자 고통 그리고 슬픈 미래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죄가 없는 이들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데 잡아가둬야 하는 사건 당시로 돌아가 보면 증거도 조작하고 증인도 조작해 실제 범행을 교사하고 가담했던 나쁜 새끼들이 한통속이 되어 알콩달콩 잘 먹고 잘 살고들 있을 것이다.

미행자는 총 세 명이었다. 세 사람이 핸드폰 속에 펼쳐지는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추운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지명이 식당을 두고 골목을 교차점으로 해서 한 바퀴 돌아왔는데 길 건너편에서 본 세 사람의 손에 핸드폰을 들고 서서히 움직이는 차량이 지명과 정우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쫓는 두 명에게 명령을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우야, 세 사람 얼굴하고 차량번호 캡처 할 수 있니?”

“스님은 어째서 우리 아버지의 무죄를 확증할 수 있어요?”

“……응, 사건 수사기록, 재판기록을 보면 증거로 제시된 부검사진에서. 피해자 사진을 보면 칼자국들이 여럿 있는데 그 칼의 깊이 넓이로 보아 같은 칼이 아니라, 두, 개의 칼이야. 가해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지. 너희 아버지의 건강공단의 진료비 수급 관계를 살펴보지 않아도.”
“오브코스죠. 놈들에게 백배 천배 갚아줄 거예요.”

그제야 정우의 목소리가 갈라지고 터졌다. 세상이 삶이 소름끼치도록 싫다던 정우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황망해 했었는데 제법 차분히 가라앉은 것 같았다. 정우가 화면을 멈추고 자신의 카메라로 그 화면을 찍었다. 감기약을 먹어서인지 추운데 있다가 들어와서인지 소주 두 잔에 지명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지명이 미행하는 장면들을 주인집 여자의 핸드폰으로 파일로 만드는 모습을 새삼스레 정우를 쳐다보았다. 지명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주인 여자가 재떨이를 내밀었다. 담배연기를 뱃속 깊숙이 빨아 당기던 지명이 담배연기를 한숨과 함께 푸 내뿜었다. 순간, 지명은 얼핏 또다시 바람에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뭐해?”

“파일로 만들어서 보관하려고요.”

숨을 몰아쉬던 정우가 꿍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눈빛에는 광기가 번들거렸다.

화면을 확대해보니 놈들의 손에 들고 있는 건 핸드폰이 아니었다. LTE 망으로 사용하는 키패드형 무전기였다. 지명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씩 웃었다. 정보과나 그 이상의 팀이라면 이어폰과 마이크가 있어 워키토키가 고급 가능한 전문장비를 사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미행실력으로 보아 그쪽 계통의 출신인 이들임을 금세 간파할 수 있었다.

“보살?”

“네?”

지명이 주연여자에게 소주잔을 내밀며 다부진 눈빛을 주었다. 지명은 연거푸 소주잔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정우가 그런 지명을 걱정스런 눈으로 건네 봤다.

수사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지명은 먼저 미행하는 이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었다. 지명은 고기를 집어 지명의 접시에 놓아주는 주인여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당차고 영악한 모습이었지만 약빠른 눈으로 여느 스님과는 다른, 고압조의 분위기를 내뿜는 지명 앞에서 고분고분했다.

지명이 소주잔을 입에다 털어 넣으며 물었다.

“전화 한 통화로 이 차량 번호 조회해서 소유주가 누군지 알아내 줄 사람 있겠어?”

다 알고 있다는 양 툭 던진 지명의 말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돈이 좀 드는 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 이래봬도 내가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사람이니까.”

타인의 자동차의 정보, 즉 미행 차량소유자의 정보를 알려면 자동차등록원부를 열람하면 되는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 계속 -

혜범 스님

1976년 입산,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당선.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흙출판사),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청림출판사), 『천기를 누설한 여자』(흙출판사) 『반야심경』(밀알출판사), 『업보』(밀알출판사), 『남사당패』(태일출판사), 『시절인연』(밀알출판사), 『플랫폼에 서다』(북인) 등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도서출판 북인),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밀알출판사), 『달을 삼킨 개구리』(북갤럽),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북갤럽)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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