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1. 마음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1. 마음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1.05.24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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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널 종잡을 수가 없어

어떤 이는 간장 종지만 하다 하고

어떤 이는 바다처럼 넓다고도 하지

난 널 알 수가 없어

어떤 이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아

난 널 알 수가 없어

사람들은 네가 가슴에 있다지만

가슴에 없고

사람들은 네가 생각 속에 있다지만

꾸겨진 종이 같은 뇌에도 없고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고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으니 말이지

마음이 아프면

사람이 아프고

사람이 아프면

마음이 아픈 길에서.
 

#작가의 변
세상에서 가장 알기 힘든 것이 마음이다. 마음에 대한 이론도 세상엔 정말로 많다. 마음은 영어로 심장인 Heart로 표현한다. 마음이면 당연히 Mind로 표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머리로 생각하고 표현을 하니 당연히 마음도 머리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차갑게 머리로 계산하고 생각만 하여 뜨거운 열정이 담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정보나 지식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불교공부를 하는 것을 다른 말로 마음공부를 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불교경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불경을 공부하는 일반 사람들과 스님, 사부대중이 얼마나 heart로 마음공부를 할지는 의문이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다는 말장난 같은 책을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말꼬리만 잡는 느낌이 든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절에 다니면서 불교를 믿은 것은 내 자식 잘되고, 우리 가정 잘되라는 기도와 소원 때문에 힘들게 지은 농사의 결과인 농산물을 이고 지고 절을 찾아 갔다. 나라가 어찌되든 민족이 어찌되든 그런 거 나는 모른다. 난 나의 자식과 가족이 건강하고 무탈하길 빌 뿐이다. 그런 심정 말이다.

그런 그것이 어느 순간 기복신앙이고 대승적 불교의 기본이 아니다. 윤회를 끊어 내려면 해탈을 하여 부처님처럼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사상이나 여러 이론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불교가 사찰 안에서만 머물렀기 때문에 노비와 상놈 등 피지배계층에게는 사는 것이 지옥이었고 지배계층에겐 사는 것이 천국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을 모를 때가 더 많고 딸이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마음공부를 한다고 해도 이론과 틀려서 정말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제대로 된 치료방책을 내놓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사는 것이 지옥인 사람에게 순간순간이 늘 가시밭길인 사람에게 마음은 늘 외줄을 타는 심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숨쉬기 운동을 권한다. 길게 숨을 들이 쉬고 숨을 멈췄다 날숨을 쉬라고 말이다. 우린 살면서 길게 숨 쉴 틈도 없이 달리고 있다. 무얼 위해서. 그것조차 모른 채.

소위 마인드풀이나 많은 정신수양프로그램도 다들 거기서 거기다. 사람을 안아 주지도 못하니 나무 안기부터 가르친다. 순수했던 어린 아이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없고 두려움만 남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자꾸만 닫으려 한다.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만 비우려 하면 할수록 마음엔 켜켜이 쌓였던 울분이 화산처럼 폭발해 나온다.

한땐 스님처럼 날마다 경을 외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스님이라고 날마다 때마다 경만 외우고 있지는 않을 터이고 기도가 습관이 되어 마음에도 없는 기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님 사회도 집단생활이니 스트레스가 없을 수도 없는 일이고, 다양한 부대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남이 어찌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까? 마음공부는 현대인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잠시 줄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눈을 가리고 달리는 말처럼 달리지는 않았는지, 누굴 위해 달리고 있는지 들여다 볼 일이다. 밤길에 만나는 동물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말은 이젠 낮에도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특히 외국에서 생활하다보니 느닷없이 무작정 인종차별적 언어폭력이나 신체적 폭행을 가하는 사람이 많아 더욱 그렇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저 수단이나, 도구로만 보는데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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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널 종잡을 수가 없어

어떤 이는 간장 종지만 하다 하고

어떤 이는 바다처럼 넓다고도 하지

난 널 알 수가 없어

어떤 이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아

난 널 알 수가 없어

사람들은 네가 가슴에 있다지만

가슴에 없고

사람들은 네가 생각 속에 있다지만

꾸겨진 종이 같은 뇌에도 없고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고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으니 말이지

마음이 아프면

사람이 아프고

사람이 아프면

마음이 아픈 길에서.
 

#작가의 변
세상에서 가장 알기 힘든 것이 마음이다. 마음에 대한 이론도 세상엔 정말로 많다. 마음은 영어로 심장인 Heart로 표현한다. 마음이면 당연히 Mind로 표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머리로 생각하고 표현을 하니 당연히 마음도 머리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차갑게 머리로 계산하고 생각만 하여 뜨거운 열정이 담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정보나 지식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불교공부를 하는 것을 다른 말로 마음공부를 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불교경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불경을 공부하는 일반 사람들과 스님, 사부대중이 얼마나 heart로 마음공부를 할지는 의문이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다는 말장난 같은 책을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말꼬리만 잡는 느낌이 든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절에 다니면서 불교를 믿은 것은 내 자식 잘되고, 우리 가정 잘되라는 기도와 소원 때문에 힘들게 지은 농사의 결과인 농산물을 이고 지고 절을 찾아 갔다. 나라가 어찌되든 민족이 어찌되든 그런 거 나는 모른다. 난 나의 자식과 가족이 건강하고 무탈하길 빌 뿐이다. 그런 심정 말이다.

그런 그것이 어느 순간 기복신앙이고 대승적 불교의 기본이 아니다. 윤회를 끊어 내려면 해탈을 하여 부처님처럼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사상이나 여러 이론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불교가 사찰 안에서만 머물렀기 때문에 노비와 상놈 등 피지배계층에게는 사는 것이 지옥이었고 지배계층에겐 사는 것이 천국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을 모를 때가 더 많고 딸이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마음공부를 한다고 해도 이론과 틀려서 정말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제대로 된 치료방책을 내놓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사는 것이 지옥인 사람에게 순간순간이 늘 가시밭길인 사람에게 마음은 늘 외줄을 타는 심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숨쉬기 운동을 권한다. 길게 숨을 들이 쉬고 숨을 멈췄다 날숨을 쉬라고 말이다. 우린 살면서 길게 숨 쉴 틈도 없이 달리고 있다. 무얼 위해서. 그것조차 모른 채.

소위 마인드풀이나 많은 정신수양프로그램도 다들 거기서 거기다. 사람을 안아 주지도 못하니 나무 안기부터 가르친다. 순수했던 어린 아이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없고 두려움만 남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자꾸만 닫으려 한다.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만 비우려 하면 할수록 마음엔 켜켜이 쌓였던 울분이 화산처럼 폭발해 나온다.

한땐 스님처럼 날마다 경을 외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스님이라고 날마다 때마다 경만 외우고 있지는 않을 터이고 기도가 습관이 되어 마음에도 없는 기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님 사회도 집단생활이니 스트레스가 없을 수도 없는 일이고, 다양한 부대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남이 어찌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까? 마음공부는 현대인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잠시 줄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눈을 가리고 달리는 말처럼 달리지는 않았는지, 누굴 위해 달리고 있는지 들여다 볼 일이다. 밤길에 만나는 동물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말은 이젠 낮에도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특히 외국에서 생활하다보니 느닷없이 무작정 인종차별적 언어폭력이나 신체적 폭행을 가하는 사람이 많아 더욱 그렇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저 수단이나, 도구로만 보는데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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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간장 종지만 하다 하고

어떤 이는 바다처럼 넓다고도 하지

난 널 알 수가 없어

어떤 이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아

난 널 알 수가 없어

사람들은 네가 가슴에 있다지만

가슴에 없고

사람들은 네가 생각 속에 있다지만

꾸겨진 종이 같은 뇌에도 없고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고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으니 말이지

마음이 아프면

사람이 아프고

사람이 아프면

마음이 아픈 길에서.
 

#작가의 변
세상에서 가장 알기 힘든 것이 마음이다. 마음에 대한 이론도 세상엔 정말로 많다. 마음은 영어로 심장인 Heart로 표현한다. 마음이면 당연히 Mind로 표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머리로 생각하고 표현을 하니 당연히 마음도 머리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차갑게 머리로 계산하고 생각만 하여 뜨거운 열정이 담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정보나 지식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불교공부를 하는 것을 다른 말로 마음공부를 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불교경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불경을 공부하는 일반 사람들과 스님, 사부대중이 얼마나 heart로 마음공부를 할지는 의문이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다는 말장난 같은 책을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말꼬리만 잡는 느낌이 든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절에 다니면서 불교를 믿은 것은 내 자식 잘되고, 우리 가정 잘되라는 기도와 소원 때문에 힘들게 지은 농사의 결과인 농산물을 이고 지고 절을 찾아 갔다. 나라가 어찌되든 민족이 어찌되든 그런 거 나는 모른다. 난 나의 자식과 가족이 건강하고 무탈하길 빌 뿐이다. 그런 심정 말이다.

그런 그것이 어느 순간 기복신앙이고 대승적 불교의 기본이 아니다. 윤회를 끊어 내려면 해탈을 하여 부처님처럼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사상이나 여러 이론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불교가 사찰 안에서만 머물렀기 때문에 노비와 상놈 등 피지배계층에게는 사는 것이 지옥이었고 지배계층에겐 사는 것이 천국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을 모를 때가 더 많고 딸이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마음공부를 한다고 해도 이론과 틀려서 정말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제대로 된 치료방책을 내놓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사는 것이 지옥인 사람에게 순간순간이 늘 가시밭길인 사람에게 마음은 늘 외줄을 타는 심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숨쉬기 운동을 권한다. 길게 숨을 들이 쉬고 숨을 멈췄다 날숨을 쉬라고 말이다. 우린 살면서 길게 숨 쉴 틈도 없이 달리고 있다. 무얼 위해서. 그것조차 모른 채.

소위 마인드풀이나 많은 정신수양프로그램도 다들 거기서 거기다. 사람을 안아 주지도 못하니 나무 안기부터 가르친다. 순수했던 어린 아이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없고 두려움만 남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자꾸만 닫으려 한다.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만 비우려 하면 할수록 마음엔 켜켜이 쌓였던 울분이 화산처럼 폭발해 나온다.

한땐 스님처럼 날마다 경을 외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스님이라고 날마다 때마다 경만 외우고 있지는 않을 터이고 기도가 습관이 되어 마음에도 없는 기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님 사회도 집단생활이니 스트레스가 없을 수도 없는 일이고, 다양한 부대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남이 어찌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까? 마음공부는 현대인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잠시 줄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눈을 가리고 달리는 말처럼 달리지는 않았는지, 누굴 위해 달리고 있는지 들여다 볼 일이다. 밤길에 만나는 동물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말은 이젠 낮에도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특히 외국에서 생활하다보니 느닷없이 무작정 인종차별적 언어폭력이나 신체적 폭행을 가하는 사람이 많아 더욱 그렇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저 수단이나, 도구로만 보는데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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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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