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4. 진흙소가 건너는 강
제 2부 4. 진흙소가 건너는 강
  • 혜범 스님
  • 승인 2021.05.24 11: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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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미륵

 지명은 비상등을 켰다. 그리고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과속위반, 신호위반 딱지, 과태료 낼 각오하셔야 할 거요. 보살은 법명이 뭐요?”
 “자비행이예요.”
 지명이 고개를 돌려 조수석을 보았다. 통증이 점점 더 심해져 가는 거 모양이었다.  
 “행하실 자비가 많으신 보양이죠?”
 지명이 농담을 던졌다. 보살의 얼굴은 창백했고 짙은 눈썹 아래 빛나는 눈동자에는 짙은 통증이 배어 있었다. 보살의 콧등이며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배어 있었다. 두 손으로 배를 싸잡고 있었고 몸을 자꾸 앞으로 구부렸다.
“법명만 그래요. 스님. 아, 아파요.”
“참아 봐요. 달리고 있으니까.”
말은 그랬지만 눈길이라 그리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지명은 바짝 신경을 끌어 모았다. 웃음대신 보살은 하얗게 뜬 얼굴로 신음을 내지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차, 잘못했다간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아파요. 아찔하고 기절할 것만 같아요. 여기.”
시간이 갈수록 보살이 절박한 표정을 지었다.  
 “급정거하면 위험하니······ 고개 들어요. 심호흡하고. 허리 펴라고.”
 “여기······. 핸드백 안에 지갑 있고 카드하고 신분증.”
 보살이 쥐어 짜 내는 신음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흘낏 자비행 보살을 본 지명은 이마를 찌푸렸다. 
 “스님이, 스님이 정우랑 옆에 있어 주세요. 카드로 병원 근처에 숙소를 잡으시고.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시고요.”
 보살이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정우야.”
 “네?”
 지명이 룸 밀러로 뒷좌석의 정우를 불렀다. 
 “114로 전화해서 병원에 전화해. 응급실로 전화해서 환자가 지금 가고 있다고 상황을 전해줘.”
 “네.”
 정우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정우도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직감한 듯 허둥대고 있었다. 지방도시라 거리는 빤하고 알량했다. 차량에 달려 있는 내비게이션으로는 이십 분은 더 달려야 병원 도착을 알리고 있었다. 다행이 그래도 차량소통이 적은 지라 지명은 도로를 질주할 수 있었다. 
 “자비행, 배가 어떻게 아파?”
 “오른쪽이 많이 아파요. 복통요. 오른쪽 아랫배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배꼽 주변에서 심하게 쥐어짜는 듯 한 통증요. 파도처럼 배 위에서 아래쪽으로요. 더부룩 하달까 메스껍기도 하고. 토할 거 같고 설사가 나올 것만 같아요.”
 “······.”
 “자꾸 어지럽고요.”
 “······증세로 보니 맹장염 같은데·····.”
 보살이 자꾸 신음소리를 내며 숨을 헐떡거렸다.
 지명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오랜만에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급함에 비상등을 켠 데다 경적음을 울리자 차들이 요리조리 피해주었다. 경황이 없는 가운데 지명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뜨거움이던가. 냉소적이고 냉정하고 신경질적이기만 했던 지명이었다. 
 경황없는 가운데에서도 지명은 한숨을 푸 내쉬었다. 어떻게 달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겨우 응급실에 다다른 지명은 나른한 피로가 몰려왔다. 통증으로 신음과 절규를 내뱉던 보살은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이동식 침대에 뉘여 CT실로 가는 동안 응급실 수납창구에 남은 지명과 정우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로 눈을 마주했다.
 백나영. 37세. 주소,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1가. 수납창구에서 하얗고 노란 영수증들을 받으며 피곤하고 지친 눈빛을 하고 있는데 정우가 불렀다.
 “스님, 이거.”
 그때, 정우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수납을 하고 두 사람은 응급실 뒤쪽 한적한 곳을 찾아 걸어 들어갔던 것이다. 

 -내 여동생은 잘 만나셨는가? 불쌍한 아이이니 잘 돌봐주시게. 지성의 무죄, 진실을 밝혀줄 것이네. 
사형 지운스님이 보낸 문자를 본 지명은 어깨의 힘이 싹 빠져 달아나는 거 같았다. 어쩐지 어디서 본 듯한 여자라는 기시감에 빠져 있었다.  

 한낱 꿈이요 환상, 이슬이자 물거품, 그림자이거나 한순간 번쩍하고 사라지는 번개와 같다고 했던가. 붉게 얼굴이 상기된 지명은 응급실 뒤뜰, 화단에 앉아 담배를 태워 물고 앉아 한숨을 푸 내쉬었다.
 지명이 자비행, 사형 지운스님의 여동생을 본 순간, 한동안 멍했었다.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 환시(幻視) 아닌가, 했다. 차를 세우고 ‘스님 도와주세요.’ 하는데 환청(幻聽)인 줄 알았다. 보살의 차, 운전석에 앉았을 때 그 냄새가 환후(幻嗅)인 줄 알았다. 
 그렇게 속의 생각들로 복잡해졌을 때 무슨 일이냐는 듯한 정우의 애틋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정우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울었다. 정우가 내미는 핸드폰을 받았다. 
 “스님?”
 “응?”
 “전화 좀 받아보시죠.”
 “전화?”
 지명은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털어내며 지명은 정우가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았다.
 “선배님. 저 장성민입니다.”
 “장성민요······? 누구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저 아까 뵈었던 홍성교도소 이사관 장성민입니다.”
 “아, 예······. 아까는 고마웠습니다.”
 “저 그런데 죄송합니다.”
 “······뭐가요?”
 “4357이 자살했답니다.”
 “뭐요? 우리가 교도소를 나온 지 두 시간밖에 되지 않는데······.”
 지명은 자신도 모르게 냅다 소리를 내질렀다. 입에서 ‘관세음보살’이라는 불명호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아닌데, 이건 아닌데. 뭐, 이딴 세상이 다 있어?’하며 지명이 눈을 부릅뜨자 하늘에서 다시 눈발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을 비통하게 바라다보던 지명은 ‘아아’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시선을 정우에게로 옮겼다. ‘너희들 누구냐? 왜 이러는 거야? 나 때문이냐? 야, 세상아. 왜 함부로 그러느냐?’ 지명은 혼잣말을 하며 온몸으로 소름이 쫙 번져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면 다야?”
 지명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상대가 눈을 번뜩이는 지명의 푸른 서슬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성을 내서 미안합니다. 그만 하도 어기가 없어서.”
 “명백하고 확실하게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만 고약한 성질이 돋아 큰소리를 내긴 했지만 뒤늦게 후배에게 미안한 기색을 내보였다. 
 장갑도 없는 시린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작만지작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서 있던 정우는 무슨 일인가 하고 슬그머니 지명의 기색을 살피다 추운지 목을 움츠렸다. 안 좋은 일들은 한 번에 밀려온다더니, 지명은 황망함에 끙 신음을 삼켰다.
 “무슨 일이세요?”
 “······.”
 갑자기 머리가 백지장이 되는 거 같았다. 털썩 주저앉은 지명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두루마기에서 다시 담뱃갑을 꺼내 담배를 뽑아 물었다. 담배를 태워 문 지명은 입을 헤벌렸다. ‘면회를 괜히 갔나?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는 말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같은 게 쳐댔다. 얼마나 지명이 허공을 노려보았을까. 눈은 멈추고 희멀게진 허공에서 맵찬 바람이 불어왔다. 정말 더러운 날씨였다. 털썩 주저앉은 지명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미안하다, 정우야.”
 “······뭐가 미안해요?”
 머뭇거리다 입을 여는 지명의 낭패한 기색을 읽어내던 정우가 불안한 눈빛으로 어물쩍이듯 되물었다. 가슴이 사정없이 뛰었다. 핑그르르 머리가 도는 게 정신까지 몽롱해졌다.
 “너의 아버지가······.”
 “······.”
 “돌아가셨단다.”
 “······네에?”
 정우가 ‘설마요? 아까 뵈었는데요’ 하며 황당하다는 듯 올려다보았다. 한동안 멍청히 서있던 정우가 휘청하더니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정말요?’하던 정우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지명을 보고는 결국은 무너지듯 주저앉는 거였다. 지명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소년이 고개를 살래살래 내젖다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만났다고 아버지를 손에 잡았다고 품었다고 그렇게 두 번 세 번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허리를 굽혀 고맙다고 인사를 하던 소년은 설움이 복받쳐 오르는지 부들부들 몸까지 떨고 있었다. 
 화농처럼 곪았던 울음, 그렇게 울었는데. 소년이 또 울고 있었다. 싸르륵 눈이 내리는 응급실 뒤뜰은 적막하기만 했다. 찬바람이 목덜미를 통해 가슴 속까지 파고 들어왔다. 속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마음까지 들끓기 시작했다. 소년의 울음에 지명은 가슴이 저미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살펴봐 달라고 할 걸. 속에서 뜨거운 것들이 올라와 볼멘소리가 저절로 튀어 나왔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던 지명은 ‘이제 어떻게 하니, 니 인생?’ 하는 눈으로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 소년을 건네 봤다. 정우가 발버둥치리란 예상은 빗나갔다.
 “백나영 씨 보호자 분?”
 그때, 간호사가 이승과 저승사이에 선 듯 망연히 서있는 두 사람을 찾아 호명했다.
 “······네.”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셔야 하는 데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간호사가 뒤뜰까지 나와 빨리 서둘러 달라고 재촉했다.
 “춥다, 일단 들어가자.”
 지명이 소년의 등을 다독이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
 “······네.”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먹이는 목소리였지만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눈에 눈물을 코에 콧물을 달고 있던 정우는 손등으로 눈물과 콧물을 쓱 닦으며 지명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부딪혔다. 여전히 맵찬 바람이 두 사람의 눈을 할퀴어대고 있었다. 순간 쭈르르 새로운 눈물을 흘리던 정우가 숨이 막힌다는 양 파르르 몸을 떨었다. 한숨을 포옥 내지르던 지명은 소년의 몸을 두 손으로 일으켰다. 
 콧물이 흘러나왔다. 지명은 코를 훌쩍였다. 그리고 소년의 어깨를 잡고 응급실로 걷기 시작했다. 순간 지명은 콜록콜록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소년이 등에 매고 다니는 가방 속에 지 어미의 유골과 할머니의 유골, 거기다 지 아비의 유골을 더할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거였다. 

혜범 스님

1976년 입산,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당선.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흙출판사),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청림출판사), 『천기를 누설한 여자』(흙출판사) 『반야심경』(밀알출판사), 『업보』(밀알출판사), 『남사당패』(태일출판사), 『시절인연』(밀알출판사), 『플랫폼에 서다』(북인) 등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도서출판 북인),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밀알출판사), 『달을 삼킨 개구리』(북갤럽),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북갤럽)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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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2021-06-13 18:02:29
진각

덕윤화 2021-06-05 21:51:08
'얼굴이 밝은 성직자는 가짜다'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종교에 대한 상식을 180도 뒤집는 내용이며 불교에 대한 예리한 분석도 들어있습니다. 불자들은 읽어보시고 불교의 핵심 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물론 올바른 성직자를 구별하는 혜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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