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스님! 편히 가십시오
[전문] 스님! 편히 가십시오
  • 이혜조 기자
  • 승인 2021.05.11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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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담 스님이 고산 대선사 49재에 올리는 서첩
고산문중의 문장인 영담 스님(쌍계사 주지)이 10일 고산 대선사 49재 법회에서 서첩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1 불교닷컴



 

스님! 편히 가십시오.

1967년 여름 어느 날, 덕기 사형님의 인도로 첩첩산중 청암사 극락전 골짜기에서 스님을 처음 뵙고 반평생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3살이던 저는 종서 사형님의 뒤를 이어 극락전 공양주를 자청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가마솥에 밥하는 것이 서툴러 까만 숯을 만드는 바람에 피눈물이 나도록 혼이 났습니다. 오전에는 문강을 하시고 오후에는 운력 하시러 학인 들과 나가셨다가 어두워지면 들어오시는, 주경야독을 하시는 것이 스님의 일상이었습니다

스님!

생각나십니까?

겨울에 군불 땔감을 준비할 때면 도끼질 잘 하는 보광 사형님, 톱질 잘하는 해강 스님, 가벼운 것만 드는 동욱 스님, 저는 간식으로 라면 삶는다는 것이 풀죽을 만들어 모두 간식을 거르게 한 거 생각나시죠?

힘들었지만 저는 항상 행복했습니다. 그리고요, 스님! 군대 갔다가 제대하고 돌아온 덕민 사형님의 군대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우리가 이제는 보광 사형님, 덕민 사형님, 동욱 사형님만 남았습니다. 청암사 극락전에서의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스님, 기억나시죠? 노스님 열반하시고 청암사에 저 혼자 남겨두고 스님이 범어사로 떠나시던 날 저는 몇 날 며칠 슬프게 울었습니다.

그 후 54년, 반평생을 넘는 동안 스님 곁을 떠나지 않고 살았습니다.

스님 곁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졸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태양이 빛을 잃고 세상이 온통 어두운 밤이 되었습니다.

슬픔의 꽃비만 내리고 있습니다.

스님은

때로는 엄한 스승이었고, 때로는 따뜻한 어머니셨고,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 셨습니다. 스님 앞에서 저는 여전히 13살 임행자이고, 스님은 저에게 이 세상 전부이셨습니다.

어느 날은 새벽녘에 전화를 하시어 “가마솥이 없으니 오늘은 가마솥을 결어라”

어느 날은 “장독대를 만들고 김칫독을 묻어라” 하시었고, “내일 아침은 영하로 떨어지니 농사지은 배추를 잘 덮어 두어라” 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1975년에 쌍계사 주지로 부임하시어 밥 먹기도 어려웠던 이 도량을 가꾸기 위하여 서울로 부산으로 東奔西走 하시며 46년간 이 산중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니 쌍계도량 구석구석 어디에나 스님의 손길이 배어있습니다.

떠나실 것을 예견이라도 하신 듯, 몇 년 전 저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쌍계도량 구석구석 가르침을 주셔서 스님의 마음을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님, 너무 보고 싶은 우리 스님,

이제는 편안히 가십시오.

큰 나무 밑에는 나무가 자라지 않지만 큰 어른 밑에는 큰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위로는 든든한 사형님들이 계시고 아래로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아우님들이 있으니 가람수호는 저희들에게 맡기시고 편히 가십시오.

스님의 유지를 잘 받들겠습니다.

스님!

會者定離라는 말이 저에게는 다가오지 않으나 이제는

철없는 어린아이에서 깨어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死此生彼”라고 말씀하셨지요.

이 세상 어디엔가 태어나셔서 저희들을 지켜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반평생 간직했던 저의 사랑하는 마음은

이 한 권의 서첩에 스님의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불기2566(2021.5.10.)년 음3월29일

쌍계사 시자실에서 미제자 영담 분향구배



3월 27일 쌍계사에서 거행된 고산 대선사 영결식ⓒ2021 불교닷컴
고산문중의 문장인 영담 스님(쌍계사 주지)이 10일 고산 대선사 49재 법회에서 서첩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1 불교닷컴

 

스님! 편히 가십시오.

1967년 여름 어느 날, 덕기 사형님의 인도로 첩첩산중 청암사 극락전 골짜기에서 스님을 처음 뵙고 반평생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3살이던 저는 종서 사형님의 뒤를 이어 극락전 공양주를 자청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가마솥에 밥하는 것이 서툴러 까만 숯을 만드는 바람에 피눈물이 나도록 혼이 났습니다. 오전에는 문강을 하시고 오후에는 운력 하시러 학인 들과 나가셨다가 어두워지면 들어오시는, 주경야독을 하시는 것이 스님의 일상이었습니다

스님!

생각나십니까?

겨울에 군불 땔감을 준비할 때면 도끼질 잘 하는 보광 사형님, 톱질 잘하는 해강 스님, 가벼운 것만 드는 동욱 스님, 저는 간식으로 라면 삶는다는 것이 풀죽을 만들어 모두 간식을 거르게 한 거 생각나시죠?

힘들었지만 저는 항상 행복했습니다. 그리고요, 스님! 군대 갔다가 제대하고 돌아온 덕민 사형님의 군대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우리가 이제는 보광 사형님, 덕민 사형님, 동욱 사형님만 남았습니다. 청암사 극락전에서의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스님, 기억나시죠? 노스님 열반하시고 청암사에 저 혼자 남겨두고 스님이 범어사로 떠나시던 날 저는 몇 날 며칠 슬프게 울었습니다.

그 후 54년, 반평생을 넘는 동안 스님 곁을 떠나지 않고 살았습니다.

스님 곁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졸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태양이 빛을 잃고 세상이 온통 어두운 밤이 되었습니다.

슬픔의 꽃비만 내리고 있습니다.

스님은

때로는 엄한 스승이었고, 때로는 따뜻한 어머니셨고,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 셨습니다. 스님 앞에서 저는 여전히 13살 임행자이고, 스님은 저에게 이 세상 전부이셨습니다.

어느 날은 새벽녘에 전화를 하시어 “가마솥이 없으니 오늘은 가마솥을 결어라”

어느 날은 “장독대를 만들고 김칫독을 묻어라” 하시었고, “내일 아침은 영하로 떨어지니 농사지은 배추를 잘 덮어 두어라” 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1975년에 쌍계사 주지로 부임하시어 밥 먹기도 어려웠던 이 도량을 가꾸기 위하여 서울로 부산으로 東奔西走 하시며 46년간 이 산중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니 쌍계도량 구석구석 어디에나 스님의 손길이 배어있습니다.

떠나실 것을 예견이라도 하신 듯, 몇 년 전 저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쌍계도량 구석구석 가르침을 주셔서 스님의 마음을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님, 너무 보고 싶은 우리 스님,

이제는 편안히 가십시오.

큰 나무 밑에는 나무가 자라지 않지만 큰 어른 밑에는 큰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위로는 든든한 사형님들이 계시고 아래로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아우님들이 있으니 가람수호는 저희들에게 맡기시고 편히 가십시오.

스님의 유지를 잘 받들겠습니다.

스님!

會者定離라는 말이 저에게는 다가오지 않으나 이제는

철없는 어린아이에서 깨어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死此生彼”라고 말씀하셨지요.

이 세상 어디엔가 태어나셔서 저희들을 지켜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반평생 간직했던 저의 사랑하는 마음은

이 한 권의 서첩에 스님의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불기2566(2021.5.10.)년 음3월29일

쌍계사 시자실에서 미제자 영담 분향구배

3월 27일 쌍계사에서 거행된 고산 대선사 영결식ⓒ2021 불교닷컴
3월 27일 쌍계사에서 거행된 고산 대선사 영결식ⓒ2021 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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