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3. 진흙소가 건너는 강
제 2부 3. 진흙소가 건너는 강
  • 혜범 스님
  • 승인 2021.04.21 16: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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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미륵

 “아빠를 만나는 동안 가슴이 쿵쿵 뛰고 숨이 턱턱 막혔어요. 말도 안돼요. 법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반드시 법에게 사과 받을 거예요.”
 “법이 아니라 권력과 재물 욕망에 휘둘려 법을 다루는 법조인들, 법꾸라지들이 문제겠지. 그래, 정의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해.”
 지명이 ‘수사검사가 누구였지?’하니까 ‘서병주 검사요’라고 정우가 대답했다. 순간 지명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이내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법을 악용하는 무리 법따까리들. 법의 잣대가 돈과 권력의 중심에서의 법이 아니라 인간 사람 중심의 법질서가 형성되어야 하거늘.
 “춥지?”
 “추워요. 그런데 고마워요.”
 
지명은 합장을 하고 허리를 숙이는 정우에게서 눈을 돌려 눈 덮인 길가의 논들을 보았다. 지명은 그런 정우를 외면한 채 뚜벅뚜벅 걸었다. 센 척 강한 척했지만 두 번 세 번 고맙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 정우는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관세음보살을 찾으며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수없이 기도했어요.”  
 정우의 눈이 촉촉했다. 
 “그래 아빠랑 어떤 비밀대화를 나누었어?”
 “그렇게 훅 들어오시면 어떻게 해요……? …… 알고 계셨군요.”
 “이놈아, 귀신을 속여라.” 
 “면회실을 나가 홍성 쪽으로 걸어 걸어 가다보면 누군가가 우리를 케어해 줄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했어요. 믿어야 될지 모르겠지만요.”
 “케어? 크으 우리가 갑자기 미아가 된 기분이다. 그치?”
 “그 사람이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이놈의 욕계화택(欲界火宅). 좌우간 기대해보자고. 지리멸렬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교도소 나온 지 삼십 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게 가능할까? 좌우간 개봉박두 될 우리들의 미래가 재밌어 지는데.”

 지명과 정우가 마주보고 하얗게 웃었다. 
 순간, 지명은 들실과 날실처럼 뒤엉켜 있는 듯한 4357의 주름진 이마 그리고 눈빛을 떠올렸다. 눈치를 보아서는 반드시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명은 매 순간 버겁고 힘들었다. 뻔뻔한 죄인들로 답답했고 늘 먹먹했다. 진흙탕 똥바다, 세상을 바꿔보자, 했는데 바꾸지 못하고 계급만 상승된 채 돈과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살았다. 그런데 머리가 시끄러웠다. 승복으로 옷만 바꿔 입었을 뿐, 여전히 그 습(習)을 버리지 못한 지명이었다. 욕망(欲望)의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내지 못했다. 빈손 그래도 운수납자로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잤다. 금물 돈 칠한 부처님들한테 몰리고 쏠리지 않았다. 
 “일러 보거라.”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을 한 은사스님이 물었다.
 “…….”
 “네놈이 누구냐(拖尸者誰)?)”
 “…….”
 “그 송장을 끌고 다니는 네놈이 누구인가(拖死屍的是誰) 말이다?”
 “…….”
 “타사시구자(拖死屍句子), 즉 무엇이 너의 송장을 끌고 왔느냐? 이놈아, 왜 대답을 하지 못하느냐 말이다.”

 깨닫지 못한 입으로는 개구즉착(開口卽錯), 문답무용(問答無用)이었다. 은사스님이 소리치며 죽비로 지명의 머리며 어깨죽지를 마구 내려쳤다.
 지명이 목적하는 부처, 깨달음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산은 높고 골은 깊었지만 어둡고 답답한 사바세계와 다를 바 없었다. 부처와 중생이 하나인지 둘인지, 생사와 적멸이 과연 둘인지 하나인지. 두루 깨우쳐 부처가 되어 걸림도 막힘도 없이 두 팔 흔들며 진리를 깨달아 유람이나 하며 살자던 지명이었다. 그러나 분별이었고 차별이었으며 대립이었고 상극일 뿐이었다. 그 모순 속에 꿈 같고 허깨비 같고 그림자 같고 번갯불만 같았다.

 지명은 씩 웃었다. 업(業)이었다. ‘그래 사형이 나를 뭐라더냐?’하니까 ‘나쁜 놈들에게는 잔인하고 냉혹하시다 들었어요. 또 재밌고 무서우신 분이라고요.’ 하던 정우의 말을 떠올렸다.
 속세의 문제들은 여전히 유산이니 어머니 제사니 해서 안팎을 치고 때렸고 수행으로 앉아있는 시간보다 번뇌망상으로 멍 때리는 시간들이 더 길었다. 차츰차츰 관계 맺는 일들이 복잡해지고 힘들어졌다. 아찔했다. 나락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는데 마침 사형으로 부터 연락이 왔고 소년 정우를 만났다.

그때, 고급 승용차, 어울림 모터스에서 나온 파란색 뱅가리가 비상깜빡이를 켜고  다가왔다.
 “스님 저 좀 도와주세요.”
 유리창 창문이 열리고 운전석에 앉은 여자가 검은 색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한눈에 보아도 미인이었다. 똑똑하고 예쁜 여자들은 대학 다닐 때, 또 연수원에서 수 없이 보았다. 그러나 돈 많고 똑똑한 애들은 살결도 고와 얼굴도 뽀얗고 예뻤지만 밥맛 없었다. 메마른 입술, 입술을 꼭 깨물고 있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배를 움켜잡고 있었다. 교정, 연수원이나 법원에서 보았던 여자들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뭘?”
 설명되어지지 않는 숫기가 발동했다.
 “운전 좀…….”

 여자가 겸연쩍은 듯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수식이 없는 간절한 표정이었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갸름한 달걀형의 얼굴, 미간이 넓다. 그런데 눈빛이 다소곳했다. 아름답지만 우울이랄까 슬픔이 배어있는 눈이었다. 목이 길고 눈썹이 반달형이었다. 미인이다. 조금 저항적인 것도 같고 여염집 보통 여자는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운전한 지가 꽤 되는데……. 거기다 이런 고급차는 몰아보질 않아서.”
 지명이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다를 거 하나도 없어요. 스님, 아파, 너무 아파요.”
 갑자기 여자가 죽을 상을 했다. 
 “어디 병원으로?”
 “여기는 저도 잘 몰라요.”
 “정우야, 검색해봐. 여기서 가장 가까운 큰 병원?”
 “보령까지 가야겠는데요. 시간은 한 오십여 분요.”

 다시 눈이 후득후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정우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고는 네비게이션을 켜 운전석에 앉은 지명에게 내밀었다. 이윽고 운전대를 잡은 지명은 비상등을 켜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스님은 어디로 가시는 길이었어요?”
 “살러.”
 “어디로?”
 “강.”
 “강이요?”
 “강가에 빈 집이 하나 있다 하길래요. 그나저나 보살은?”
 “아, 예. 답답해 차를 끌고 나왔는데 그만 광천 아버지 묘소까지 와 있더라고요. 국도로 국도로 해서 서울로 올라가려는데 갑자기.”
 “……. 팔자가 좋으시군요.”
 “그런 것도 아니에요……. 저도 거기 꼽사리 길 순 없나요? 그런데 스님. 배가 많이 아파요.”
 아름답다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허투루 몸을 굴렸을 그런 여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참아보세요. 아마 과속으로 벌금딱지가 좀 나올 거예요. 감수하세요. 누구 연락하실 때는?”
 “딱히. 스님, 스님.”
 “예?”
 “강에 가시는 거 급한 거예요?”
 “아뇨.”
 “저 불자에요. 서울 길상사에 다녀요. 법명은 보련화구요.”
 “그런데?”
 “보호자 좀 해 주세요. 저 아무도 없어요.”

 순간, 룸 밀러로 정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묵언의 약속을 확인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우가 바라던 대로 여자였다. 그런데 여자의 눈을 보자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어디서 보았을까.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뒷좌석 보살 옆에 앉아있던 정우가 보살을 소리쳐 불렀다. 운전을 하는 해인의 귀로까지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지명은 입술을 꾹 다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군부와 천민자본주의 시장권력, 토건자본이 국가를 장악하는 반동의 세월이었지.”
 사형의 말이 떠올랐다.
 교도소를 나온 지 이제 겨우 삼십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교도소 안에 있던 이가 어떻게 교도소 밖의 사람에게 연락을 했을까. 지명은 쩝 입맛을 다셨다. 항상 최선의 삶,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했지만 인생은 자꾸 입구와 출구가 있는 문을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곤 했다.
 “무슨 생각해?”
 그녀가 죽기 전 병실로 갔을 때 그녀가 물었다.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사랑했던가? 둘러쌌던 모든 것들을 돌아보았다. 위태롭지는 않았다. 다만 정신적 기근 속에서 자주자주 화를 냈을 뿐이었다.

 매일, 54초마다 발생하는 살인강도 강간추행 절도 폭력 지능범들, 마약사범들 교도소로 보내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죄와 벌. 빵잽이와 마개비들. 배정된 죄인들은 했니, 안 했니? 증거가 있는데 그래도 발뺌을 했다. 징역을 적게 먹으려고 변호사를 사고 거짓말을 하고 온갖 뒷배들을 동원하곤 했다. 그 꼴이 싫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리고 일주일 후 그녀가 죽자 지명은 미련없이 사표를 내던졌다. 
 “스님.”
 “응.”
 “검경 수사권 조종시행으로 이제 6대범죄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해야 한대요.”
 “…….”
 “너는 이놈아 한참 뛰어 놀아야 할 아이놈이. ……그래 그 6대 범죄가 뭔지나 아냐?”
 “왜 그러세요, 스님……. 그렇게 절 무시하는 건 모욕죄에 속해요……. 크.”
 “그럼……. 그 죄목을 어디 함 읊어봐.”
 “음 재산범죄는 사기횡령 5억 미만의 배임 강도 절도 손괴. 신체범죄는 살인 상해 폭행 체포 감금 강간추행요. 직무범죄는 교통 업무방해 권리행사방해. 위증, 분등이고요 공직자범조죄는 뇌물수수 3천만원 이하, 뇌물공여구요. 인격범죄는 명예훼손, 무고, 주거침입, 협박 모욕이고요. 여섯번째는 기타 특별법 아닌가요?”

 지명은 정우의 말에 입을 딱 다물었다. 그제서야 정우가 멘사회원이라던 말을 떠올렸다. 집안에 한 사람 죄인이 있으면 다들 가족이 법 전문가가 된다던 말을 떠올리며 지명은 쓰게 웃었다.
 “야, 너 재수없다 야. 난 단무지인데.”
 차창 밖으로는 바람이 불었다. 그때 여자가 입술을 움직여 끼어들었다. 거침이 없는 여자였다. 구김살이 없다할까. 이상하게도 여자에게선 지명과 정우를 무장해제하게 해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순간 지명은 정우를 소개해준 지광 사형의 눈빛을 떠올렸다. 
 “단무지가 뭐야, 정우야?”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 같다는 말의 약자요.”

 정우의 말에 지명이 피식 웃었다. 상황은 바뀌어도 인간존재의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왜 저한테 안 묻고 쟤한테 물어요?”
 그때 또다시 여자가 끼어들었다.
 “아프시다니까.”
 여자가 배시시 웃었다.
 “직업이 뭐예요?”
 짙은 눈썹과 오뚝한 콧날 막막한 외로움에 쌓이게 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지명이 어눌하게 물었다. 가냘픈 몸매와 더불어 연약한 그러나 강해보이는 동양적 이미지였다.
 “배우에요.”
 “배우?”
 “예, 각본대로 연기하는. 이제는 은퇴한.”
 여자가 입술을 샐그러뜨리며 말했다. 긴장이 조금 풀린 듯 한 표정이었다.
 “은퇴?”

 습하고 축축한 목소리다. 지명은 숨을 낮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 없이 안락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은 없을까. 내가 무얼 하고 살아온 걸까?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를 계급장처럼 달고 다녔던 세월이었다. 고민을 했고 취해서 목청껏 소리도 높여보았다. 그리하여 내렸던 결론은 자괴감을 극복하지 위한 입산이었다. 그러나 불가 또한 깊숙한 늪이었다.

혜범 스님

1976년 입산,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당선.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흙출판사),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청림출판사), 『천기를 누설한 여자』(흙출판사) 『반야심경』(밀알출판사), 『업보』(밀알출판사), 『남사당패』(태일출판사), 『시절인연』(밀알출판사), 『플랫폼에 서다』(북인) 등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도서출판 북인),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밀알출판사), 『달을 삼킨 개구리』(북갤럽),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북갤럽)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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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2021-06-13 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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