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택주가 푸는 평화 살림] ② 우리는 해방을 맞았을까?
[변택주가 푸는 평화 살림] ② 우리는 해방을 맞았을까?
  • 변택주
  • 승인 2021.04.09 15: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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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광복절이라고 하지 않고 8·15라고 합니까? 6·25도 한국전쟁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지난 꼭지 글을 읽은 어떤 분이 던진 물음이다.

우리는 흔히 8·15에 억눌림에서 벗어났다거나 빛을 되찾았다고 얘기한다. 안타깝게도 이 말씀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1945년 9월 이 땅에 발을 디딘 미군은 조선 치안과 행정 편의를 구실로 내세워 일제에 힘을 보태던 이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썼다. 우리 겨레가 여든 해 가까운 세월 동안 식민 찌꺼기를 말끔히 털어내지 못한 바탕이다.

얼떨결에 맞은 해방, 우리가 치안을 맡을 힘이 있었겠느냐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다. 3·1혁명을 이끈 우리 겨레에겐 그럴만한 힘이 너끈했다.

여러분 몸가짐 하나, 말 한마디에 겨레가
기뻐하고 아파할 수 있음을 깊이 새겨라

1945년 8월 16일 서울에 전단이 하나 뿌려진다. “조선 동포여! 중대한 현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있기를 바란다. 우리 앞날에 빛이 있으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여러분 몸가짐 하나, 말 한마디에 겨레가 기뻐하고 아파할 수 있음을 깊이 새겨라. 마음을 굳게 다지고 지도층이 하는 말에 따르기를 바란다(요새 말로 다듬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뿌린 전단이다. 조선건국위원회는 독립운동가 여운형이 만든 동아리다. 일찍이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운형은 3·1혁명에 힘을 보태고, 상해임시정부를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조선으로 돌아와 ‘조선건국동맹’이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조선총독부는 일본 패전을 앞두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러르는 여운형에게 치안유지와 일본 사람을 지켜달라고 한다. 여운형은 194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마주앉아 ‘정치범 바로 석방’, ‘치안유지와 건국 정치운동에 끼어들지 말 것’ 따위를 내세워 조선총독부 뜻을 받아들인다. 돌아서서 동지를 모아 곧바로 세운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9월 2일 “국제 세력이 우리를 한때 지배할 것이나 우리를 도울지언정 방해치는 않을 것”이라면서 일본제국주의와 손잡고 겨레를 해롭게 한 반동 세력이 해방 조선 건설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어 얼거리를 내놓는다.

   “◎우리는 완전한 독립 국가를 세운다. ◎우리는 겨레 정치·경제·사회 기본요구를 갖출 민주주의 정권을 세운다. ◎우리는 과도기 질서를 스스로 지키며 대중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미군은 조선총독부를 넘겨받는 자리에도 조선 대표를 앉히지 않았을 만큼 조선을 일본제국주의 연장선에서 다스리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 중장이 이끄는 제24군단이 1945년 9월 8일 인천으로 들어올 때 점령군을 해방군이라 여겨 마중 나갔던 두 사람이 경찰복을 입은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선언문.



본관 권한 아래서 발포한 명령에 바로 복종해야
점령군에게 맞서는 모든 짓, 용서 없이 엄벌할 것

오키나와에 있던 제24군단 사령관 하지 중장은 9월 1일, 조선 주둔 일본군(제17방면군) 사령관과 통신에서 “일본군은 미군이 넘겨받을 때까지 북위 38도 남녘에서 치안을 지키면서 행정기관을 그대로 두라. 오늘 미군기가 조선 치안 포고 전단을 뿌렸다.”라면서 이 전단 내용을 남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려 달라고 한다. 이튿날 일본군 사령관은 덕분에 치안을 이어가기 좋다고 하면서 “미군이 들어올 때까지 일본군 사령관이 치안을 책임지며 약탈, 폭행, 소요, 파괴를 하는 이는 군율로 다스린다는 것을 민중에게 알려주길(전단을 뿌려) 바란다.” 하고 말한다. 이렇게 조선에 발을 내디딘 미군은 이튿날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올려 건다. 해방과 독립은 다 우리 마음에만 있었을 뿐 미군 머릿속에는 없었다는 얘기다. 미 태평양 방면 육군 사령관 맥아더가 9월 9일 내건 포고문을 살펴보면 미국 속셈을 낱낱이 알 수 있다.

  “조선 인민에게 고함 …… 본관은 본관에게 주어진 태평양 방면 미군 사령관으로서 여기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 주민에게 군정을 펴고 다음과 같은 점령 조건을 포고한다. …… 제2조, 정부·공공단체와 그밖에 명예직원과 고용인 그리고 공익사업 공공위생을 아우른 모든 공공사업기관에서 일하는 유급 또는 무급 직원과 고용인 또 다른 중요한 사업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은 새로운 명령이 있을 때까지 본디 맡은 바 일을 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지켜야 한다. 제3조, 주민은 본관과 본관 권한 아래서 발포한 명령에 바로 복종해야 한다. 점령군에게 맞서는 모든 짓, 또는 공공 안녕을 어지럽히는 짓을 한 사람은 용서 없이 엄벌할 것이다. ……”

제2조가 바로 일제 앞잡이들이 벌을 받기는커녕 힘을 고스란히 쓸 수 있는 바탕이었다. 이어 발표한 포고문 2호에서 ‘항복문서 조항 또는 미 태평양 방면 육군 최고 지휘관 권한 아래 내린 포고 명령 지시를 어긴 이, 미국 사람과 기타 연합국 사람 목숨 또는 소유물 또는 보안을 어그러뜨린 이, 공중치안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 정당한 행정을 방해하는 자, 연합군에게 고의로 적대하는 이는 점령군 군율 회의에서 죄로 결정한 뒤 사형 또는 형벌에 처한다’라고 했다. 이 글을 처음 보면서 ‘점령군’이라는 낱말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1945년 8월 24일 함흥에서 내놓은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포고문은 맥아더 포고문과 결이 사뭇 다르다.

  “조선 인민들에게! 조선 인민들이여! 붉은 군대와 동맹국 군대들은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들을 쫓아냈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새 조선 역사 첫 쪽일 뿐이다. …… 조선 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그대들 손안에 있다. 그대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 그대들에게 달렸다. 붉은 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고 새롭게 애쓸 만한 모든 바탕을 지어주었다. 조선 인민은 반드시 제 행복을 스스로 빚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

조선 사람을 믿지 않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해산시킨 미군정은 섣부른 쌀값 자유화로 물가를 치솟게 하고 토지개혁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뿐더러 사건·사고를 제대로 아우르지 못해 어지러움을 불러들인다. 북녘에 들어온 소련군은 어땠을까? 미군정과는 달리 북녘이 내세운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를 받아들여 행정을 안정시키고 물가도 잡는다.

미군이 여운형 선생이 만든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손잡고 일제 앞잡이들을 내쳤더라도 여태 친일 문제로 패가 갈려 옥신각신할까? 해방이라고 광복이라고 하기 어려운 까닭이 이 밖에도 몇 있으나 미군정이 점령군으로 우리를 억누르며 일제 앞잡이 기세를 살려준 것을 으뜸으로 꼽는다.

정전은 ‘전투를 아주 멈추는 것’ 휴전은
휴전, ‘적대 행위 쉬나 전쟁은 이어 진다

한국전쟁이나 한반도전쟁이라고 하지 않고 6·25라고 하는 까닭은 먼저 한국전쟁이나 한반도전쟁이라고 하면 북누리 사람들이 싫어하고, 조선전쟁이나 조선반도전쟁이라고 하면 남누리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휴전으로 막이 내렸을까 정전이 내렸을까?

1953년 7월 27일 맺은 협정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한쪽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쪽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 협정>이다. 영문으로는 <Agreement between the Commander-in-Chief, United Nations Command, on the one hand, and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Korean People’s Army and the Commander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on the other hand, concerning a military armistice in Korea>다. 줄여서 정전협정이라 부른다.

휴전과 정전은 다르다. 정전은 ‘전투를 아주 멈추는 것’으로 맞싸우는 나라들이 정치 합의를 이룰 수 없어 전투만 멈추는 것을 가리킨다. 맞싸우는 나라 사이에 뜻이 크게 달라서 국제기구가 나설 때 정전이라고 쓴다. 휴전은 ‘적대 행위, 잠깐 쉬나 전쟁은 이어지는 것’을 일컫는다. 휴전이라고 하면 흔히 전쟁 끝내기로 하는 강화 또는 평화조약 앞 단계로, 국제법에서는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니 6·25가 멈추면서 맺은 협정은 정전협정이다. 정치 합의가 없이 국제연합군이 협정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휴전협정이라고 한다. 왜 그랬을까?

물어야 한다. 누가 어째서 정전협정을 휴전협정이라고 풀고 남북 경계를 휴전선이라고 했는지? 북누리 한 해 예산을 넘는 국방비를 쓰며 국방력이 세계 6위라는 우리가 어째서 전시작전권을 미군 손에 맡겨야 하는지? 우리가 미워해 마지않는 일본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어째서 북누리와는 오고 가지 못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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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준비위원회 선언문.

본관 권한 아래서 발포한 명령에 바로 복종해야
점령군에게 맞서는 모든 짓, 용서 없이 엄벌할 것

오키나와에 있던 제24군단 사령관 하지 중장은 9월 1일, 조선 주둔 일본군(제17방면군) 사령관과 통신에서 “일본군은 미군이 넘겨받을 때까지 북위 38도 남녘에서 치안을 지키면서 행정기관을 그대로 두라. 오늘 미군기가 조선 치안 포고 전단을 뿌렸다.”라면서 이 전단 내용을 남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려 달라고 한다. 이튿날 일본군 사령관은 덕분에 치안을 이어가기 좋다고 하면서 “미군이 들어올 때까지 일본군 사령관이 치안을 책임지며 약탈, 폭행, 소요, 파괴를 하는 이는 군율로 다스린다는 것을 민중에게 알려주길(전단을 뿌려) 바란다.” 하고 말한다. 이렇게 조선에 발을 내디딘 미군은 이튿날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올려 건다. 해방과 독립은 다 우리 마음에만 있었을 뿐 미군 머릿속에는 없었다는 얘기다. 미 태평양 방면 육군 사령관 맥아더가 9월 9일 내건 포고문을 살펴보면 미국 속셈을 낱낱이 알 수 있다.

  “조선 인민에게 고함 …… 본관은 본관에게 주어진 태평양 방면 미군 사령관으로서 여기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 주민에게 군정을 펴고 다음과 같은 점령 조건을 포고한다. …… 제2조, 정부·공공단체와 그밖에 명예직원과 고용인 그리고 공익사업 공공위생을 아우른 모든 공공사업기관에서 일하는 유급 또는 무급 직원과 고용인 또 다른 중요한 사업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은 새로운 명령이 있을 때까지 본디 맡은 바 일을 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지켜야 한다. 제3조, 주민은 본관과 본관 권한 아래서 발포한 명령에 바로 복종해야 한다. 점령군에게 맞서는 모든 짓, 또는 공공 안녕을 어지럽히는 짓을 한 사람은 용서 없이 엄벌할 것이다. ……”

제2조가 바로 일제 앞잡이들이 벌을 받기는커녕 힘을 고스란히 쓸 수 있는 바탕이었다. 이어 발표한 포고문 2호에서 ‘항복문서 조항 또는 미 태평양 방면 육군 최고 지휘관 권한 아래 내린 포고 명령 지시를 어긴 이, 미국 사람과 기타 연합국 사람 목숨 또는 소유물 또는 보안을 어그러뜨린 이, 공중치안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 정당한 행정을 방해하는 자, 연합군에게 고의로 적대하는 이는 점령군 군율 회의에서 죄로 결정한 뒤 사형 또는 형벌에 처한다’라고 했다. 이 글을 처음 보면서 ‘점령군’이라는 낱말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1945년 8월 24일 함흥에서 내놓은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포고문은 맥아더 포고문과 결이 사뭇 다르다.

  “조선 인민들에게! 조선 인민들이여! 붉은 군대와 동맹국 군대들은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들을 쫓아냈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새 조선 역사 첫 쪽일 뿐이다. …… 조선 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그대들 손안에 있다. 그대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 그대들에게 달렸다. 붉은 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고 새롭게 애쓸 만한 모든 바탕을 지어주었다. 조선 인민은 반드시 제 행복을 스스로 빚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

조선 사람을 믿지 않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해산시킨 미군정은 섣부른 쌀값 자유화로 물가를 치솟게 하고 토지개혁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뿐더러 사건·사고를 제대로 아우르지 못해 어지러움을 불러들인다. 북녘에 들어온 소련군은 어땠을까? 미군정과는 달리 북녘이 내세운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를 받아들여 행정을 안정시키고 물가도 잡는다.

미군이 여운형 선생이 만든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손잡고 일제 앞잡이들을 내쳤더라도 여태 친일 문제로 패가 갈려 옥신각신할까? 해방이라고 광복이라고 하기 어려운 까닭이 이 밖에도 몇 있으나 미군정이 점령군으로 우리를 억누르며 일제 앞잡이 기세를 살려준 것을 으뜸으로 꼽는다.

정전은 ‘전투를 아주 멈추는 것’ 휴전은
휴전, ‘적대 행위 쉬나 전쟁은 이어 진다

한국전쟁이나 한반도전쟁이라고 하지 않고 6·25라고 하는 까닭은 먼저 한국전쟁이나 한반도전쟁이라고 하면 북누리 사람들이 싫어하고, 조선전쟁이나 조선반도전쟁이라고 하면 남누리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휴전으로 막이 내렸을까 정전이 내렸을까?

1953년 7월 27일 맺은 협정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한쪽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쪽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 협정>이다. 영문으로는 <Agreement between the Commander-in-Chief, United Nations Command, on the one hand, and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Korean People’s Army and the Commander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on the other hand, concerning a military armistice in Korea>다. 줄여서 정전협정이라 부른다.

휴전과 정전은 다르다. 정전은 ‘전투를 아주 멈추는 것’으로 맞싸우는 나라들이 정치 합의를 이룰 수 없어 전투만 멈추는 것을 가리킨다. 맞싸우는 나라 사이에 뜻이 크게 달라서 국제기구가 나설 때 정전이라고 쓴다. 휴전은 ‘적대 행위, 잠깐 쉬나 전쟁은 이어지는 것’을 일컫는다. 휴전이라고 하면 흔히 전쟁 끝내기로 하는 강화 또는 평화조약 앞 단계로, 국제법에서는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니 6·25가 멈추면서 맺은 협정은 정전협정이다. 정치 합의가 없이 국제연합군이 협정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휴전협정이라고 한다. 왜 그랬을까?

물어야 한다. 누가 어째서 정전협정을 휴전협정이라고 풀고 남북 경계를 휴전선이라고 했는지? 북누리 한 해 예산을 넘는 국방비를 쓰며 국방력이 세계 6위라는 우리가 어째서 전시작전권을 미군 손에 맡겨야 하는지? 우리가 미워해 마지않는 일본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어째서 북누리와는 오고 가지 못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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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택주
“배운 걸 세상에 돌리지 않으면 제구실하지 않는 것”이란 법정 스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면서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에 몸담고 있다. 나라 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한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평화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기 놀이하면서 쉬운 겨레말 쓰기 놀이도 한다. 법명은 지광(智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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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2021-04-12 23:43:39
불교는 평화를 노래해야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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