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택주가 푸는 평화 살림] ① 전쟁 앓이 하지 않는 나라를 꿈꾸며
[변택주가 푸는 평화 살림] ① 전쟁 앓이 하지 않는 나라를 꿈꾸며
  • 변택주
  • 승인 2021.03.26 17: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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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중립협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2013년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이 내게 던진 말씀이다. 선생은 미국·중국·러시아·일본처럼 거칠고 드센 나라들 틈바구니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우리나라가 영세중립국으로 가지 않고선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씀했다.

2차 세계대전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운다고 여긴 미국과 영국, 중국 지도자가 카이로에 모였다. 무릎을 꿇은 일본을 어떻게 다룰지 뜻을 모으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카이로 선언이 나왔다. 이 선언문에 “조선 인민이 노예 처지에 놓여 있다는 걸 살펴”란 말이 담겼다. ‘조선 독립’이나 ‘조선 인민이 노예 처지’란 말은 넣어야 한다고 한 사람은 장제스다. 이 뒤엔 온 마음을 다해 장제스에게 조선이 독립해야 하는 까닭을 알린 김구 선생이 있다.

선언문 초안에는 조선을 ‘되도록 가까운 날에’(at the earliest possible moment) 독립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 들어있었다. 그걸 루스벨트가 ‘알맞을 때’(at the proper moment)로 비틀고, 처칠이 ‘인 듀 코스’(in due course)라 덧붙인다. 우리말로는 ‘알맞을 때 절차를 밟아’라 풀 수 있을 것이다. ‘알맞을 때 절차를 밟아’란 말에는 ‘우리 입맛에 맞도록 쥐락펴락할 수 있을 때’라는 속내가 담겼다. 이 얘기를 꺼낸 까닭은 우리가 70년이 넘는 세월을 남북으로 갈려 앓고 있는 까닭이 이 속내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되도록 가까운 날에’를 에두르고 뒤틀어
‘알맞을 때 절차를 밟아’로 해 겪는 앓이

그러면 삼팔선은 누가 그었으며 그 까닭은 무엇일까? 8.15를 며칠 앞두고 미국 국방성 대령 두 사람이 잡지에 그려진 세계 지도에서 조선지도를 찾아 위도 38에 맞춰 펜으로 금을 긋는다. 삼팔선이다. 금을 그은 이는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이다. 미국은 어째서 서둘러 삼팔선을 그었을까?

일본이 항복하겠다는 뜻을 알린 것은 1945년 8월 10일 밤. 그때 소련군은 이미 조선 땅에 발을 들어놓았다. 그러나 미군은 조선에서 1,000㎞나 떨어진 오키나와에 있었다. 소련이 더 넓은 땅에 주둔하고 나면 닭 쫓던 개가 될 수도 있다고 여긴 미국은 서둘러 삼팔선을 긋고 북녘에는 소련군이 남녘에는 미군이 들어가자고 알린 것이다.

나라와 나라를 가르든 마을과 마을을 가르든 경계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강이나 산 또는 길이 생긴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경계가 있고, 땅 생김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쭉 금을 그어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것이 인공 경계이다. 인위로 가르는 경계는 거기 사는 사람이 어떤 일을 겪을지 내 알 바 아니라며 힘을 가진 이들이 억누를 때 긋는다.

이 땅에 미군과 소련군이 발을 디딘 까닭은 일본 항복을 받아들여 질서 잡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행정 구역에 맞춰 경계를 그어야 했다. 그건 나 몰라라 하고 똑바로 그었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목적, 질서 잡기에 덧붙여 다른 속셈이 있었다는 얘기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우리 땅이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 영토다. 한라산에 살아도, 백두산에 살아도, 나는 우리 땅에서 산다. 

인위로 가르는 경계는 거기 사는 사람이
겪는 일, 알 바 아니라며 억누를 때 그어

문제는 갑작스럽게 그어진 삼팔선 남북으로 갈린 사람들이 오갈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처음엔 드러내놓고 지나다니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러나 은근히 억눌러 겁에 질린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편지도 주고받지 못하도록 한 사실이 담긴 기사가 있다.

문제의 38선은 과연 어느 때나 터질까. 사람의 왕래는 물론 편지조차 한 나라 안에서 못 보내는 심사야 어떠하랴. 이제는 외국이 된 일본에도 편지가 왕래되고 있는데 우리 국내에서 편지가 왜 통하지 못할까. 현재 서울중앙우편국에 쌓여 있는 38이북 5도에 보낼 우편물은 실로 산더미 같다. 보통 우편이 80만 통, 서류 우편이 1만5000통, 이 많은 우편물이 지금 창고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그렇건만 매일 각 지방국으로부터 모여드는 38이북 행 편지는 매일 2~300통씩 쇄도하고 있어 그 정리만을 하면서 개통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동아일보> 1946년 2월 18일)

기사를 보니 우리 처지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우리에게 그토록 밉살스럽게 구는 일본에는 한 해에 많을 때는 팔백만 가까이 적어도 오백만이 넘는 우리나라 사람이 오가는데 우리 어버이와 자식, 언니·아우가 보고파도 북누리에는 갈 수 없다니….

그해 3월부터 가까스로 편지는 한 달에 두 차례 주고받을 수 있었으나 5월 초 미군정이 삼팔선을 다시 막는다. 억누를 때마다 소련 때문이라고 둘러댔으나 이번엔 그러지도 않았으니 미군정이 단단히 벼르고 막은 것이다. 사람과 물자 흐름을 억누르다 보니 황해도·경기도 앞바다에서는 밀수가 줄을 잇고 해적이 기승부린다. 그러자 1947년 4월, 미군정은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겠다고 나선다. 멀쩡히 눈 뜨고도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은 이렇게 생겨난다. 그래도 사람들은 조금만 기다리면 미군과 소련군이 물러가고 어버이와 자식, 언니와 아우, 아끼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바람일 뿐이었다. 6.25를 거치면서 남북 경계는 아예 넘을 수 없는 담이 되고 겨레 피눈물은 녹슨 철조망에 딱지지고 말았다.

백두에 사는 아이도 한라에 사는 아이도
우리나라 사람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다

“내 나이 여덟 살 때 6.25가 일어났다. 7월에서 9월에 이르는 두 달 남짓 사이에 아버지는 자식 여섯을 잃었다. 그 뒤로 어머니는 그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앓다가 내 나이 열두 살 때 돌아가시고, 일곱 째 형은 어린 나이에 몹쓸 사람들 손에 주리를 틀리고 난 뒤에 마음에 병을 얻어 나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윤구병 선생 말씀이다. 얼마나 애달픈 전쟁 앓이인가.

다시는 이 땅이 전쟁 앓이 하지 않고 남누리 북누리 사람들이 오갈 수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내디딘 걸음. 몇몇이 머리 맞대고 평화와 중립을 배우며 빚은 동아리가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다. 어째서 코리아인가? 한국이라고 하면 북누리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고 조선이라고 하면 남누리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니 고려가 좋겠다는 생각에서 코리아라고 했다.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 사람들은 그동안 “백두에 사는 아이도 한라에 사는 아이도 우리나라 사람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한데 어울려 어깨동무하고 강강술래 하며 살아야 한다.”란 말머리를 들고 걸어왔다.

어째서 우리나라가 영세중립국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지 몇 차례에 걸쳐 되도록 중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운 겨레말로 말씀드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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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택주
“배운 걸 세상에 돌리지 않으면 제구실하지 않는 것”이란 법정 스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면서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에 몸담고 있다. 나라 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한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평화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기 놀이하면서 쉬운 겨레말 쓰기 놀이도 한다. 법명은 지광(智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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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1-04-09 22:34:49
쉬운 겨례말로 풀어쓴 우리의 역사 한눈에
쏙 들어옵니다.
읽는 내내 우리가 처한 현실이 가슴 아프네요.
백두에서 한라까지 길이 열리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빌어봅니다.
그날을 위해 행동하는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