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 허공에 말뚝을 박아라
제 1부 6. 허공에 말뚝을 박아라
  • 혜범 스님
  • 승인 2021.03.1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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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미륵

대합실로 들어선 지명은 뇨기를 느꼈다.

“우리 화장실 갈까?”

“예.”

통화를 끝내고 지명은 습관처럼 머리를 득득 긁었다.

대합실의 사람들은 먼저 가려고 다투지도 않았다. 뒤처져 온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고 앞서 간다고 뽐내지도 않았다. 다음 차 탄다고 애탈 것도 없었다. 탈 없이 목적지를 가면 될 거라는 듯 이른 아침의 사람들은 유유자적해보였다.

두 시간 반.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두 사람은 소변기 앞에 나란히 섰다. 동그란 나프탈렌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변기 앞 화장실 창문 틀 위로 켜켜이 쌓인 먼지들 신장 삽니다, 라는 스티커, 애인구함이라는 낙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유지보수상태가 엉망이었다. 하얀 색 나프탈렌이 달려있는 소변기 앞에 서서 바지를 내리자 쭈글쭈글한 그걸 꺼내 지명은 찔끔거리는 오줌을 누었다. 힐끔 소년을 보니 빳빳하게 솟구친 게 제법 오줌발이 셌다. 대변은 목욕탕에서 본 눈치였다. 지명도 마찬가지였다.

“스님.”

“응?”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나요?”

자기와 함께 가면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될 거라던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응, 그렇지. 우리나라는 죄형법정주의니까.”

“······그럼 법꾸라지들. 나쁜 놈들은 누가 벌주나요?”

“부처님이 벌주지. 이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복잡하게 얽혀 하나가 전체를 이루고 있으니까, 때는 때대로 가고 물은 물 대로 흐르는 게 인과아닐까.”

“······인과요?”

“응. 먼저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복수는 없다.”

“너도 나도 해먹자고 덤벼드는 세상, 다 부셔버릴 건데요······.”

“아이고, 이놈아. 바다는 결코 비에 젖지 않는 법이야.”

“······.”

지명의 말에 소년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바다를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소년의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냐며 쳐다보았다.

“······스님, 그런데, 국가의 형벌권 발동권이 잘못 되었을 때는요.”

“······그렇다고 네놈이 혁명으로 현 체제를 뒤집거나 악의 무리들을 모조리 뿌리 뽑아 낼 정의로운 힘도 없지 않느냐?”

“아버지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살인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무기수로 옥살이 하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네놈이 성불해서 메시아, 미륵부처님이 되어 너의 아버지와 나를 구원해달라고.”

“······구원요? 과연 메시아가 우리들에게 와 주실까요? 다들 지극히 개인적인 불행일 따름이라 하던데요.”

“뭐? 인마? 그건 진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너의 아버지가 증거신청 및 증거조사 시, 증거동의의 의사표시를 확실히 했기 때문에 의해 재판부에서 그 사건의 성립이 증명되어 증거능력으로 인정된 거겠지.”

“······형법 제 250조 1항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는 아버지에 대한 판결, 무기징역의 적용은 잘못 판결 된 거라니까요.”

“······왜?”

“그날 제가 그 현장에 있었어요.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요. 아버지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요. 검은 옷에 검은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쓴 세 사람이 예리한 생선회 칼로 엄마와 그리고 스님 두 분을 칼로 목이며 복부를 수차례 찔러 사망케 했어요. 그중 한 놈의 목 등 쪽에는 뱀 문양의 문신을 했고요. 한 사람은 장갑을 낀 새끼손가락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는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요.”

“······그걸 진술했어?”

“······말했죠. 그런데 어리다고 심신미약상태라고 증언으로 채택되지 않았어요.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요.”

“······네가 잘못 본 건 아니고?”

“그래서 저도 착각이 아닌가, 하고 이모할머니에게 두 번 세 번 확인을 했어요. 더 확실한 증거는 사건 바로 그 전날 아버지는 알 수 없는 교통사고로 오른쪽 무릎골절, 무릎 관절 전방 십자인대, 후방 십자인대 파열에 쇄골 다발성 늑골골절 상황이었는데 병원기록들이 사라지고 아예 나중엔 그 병원조차 사라졌더라고요. 물론 수사기록 재판기록 사건기록은 소설 일 뿐 그 어디에도 그런 사실은 보이지 않았고요.”

“······병원이 아예 없어졌다고?”

“······예, 기가 막힐 노릇이더라고요.”

“5년 전이라. 병원이 문을 닫았다고 해서 증거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냐. 그 동네, 병원 이름이 뭐였어?”

“자혜정형외과요.”

“그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 같은데.”

“······왜요?”

소년은 마치 혁명의 특사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소년은 사건의 핵심을 꿰고 있었는데 보통 일반 아이들이 알고 있는 법률 상식을 뛰어넘고 있었다.

“슬 관절 전방 십자인대, 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면 동네 일반외과나 정형외과에서 치료가 불가능해. 십자인대 손상이라면 종합병원에 적어도 몇 달은 입원해야 할 증상이야.”

“네······?”

“5년 전이라고 했지? 너의 진술대로라면 오른쪽 무릎골절, 슬 관절 전방 십자인대, 후방 십자인대 파열에 쇄골, 안전벨트 착용으로 인한 다발성 늑골골절 상황이라면 두 팔, 두 다리 멀쩡한 세 사람들을 동일 장소도 아니고 그 넓은 사찰경내에서 살해했다? 이 수사기록은 다 뻥, 소설, 조작된 시나리오 밖에 안 되지. 그 상황에서 어떻게 세 명을 칼로 찔러 죽일 수 있겠냐? 병원이 없어졌다고 해도 국민건강보험, 관리공단에 보험적용 세부 내역서를 떼어 확인만 된다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

“다 갈아엎어야 해요······.”

지명은 소년의 말에 입맛을 쩝 다셨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송이 한 송이 눈들이 떨어지는 곳이 저마다 다른 곳으로 떨어지는 걸 보며 한숨을 푸 내쉬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지 마라. 그래, 재심은 신청해봤어?”

“이모할머니가 노력했는데 아버지가 사인을 하지 않으셨대요.”

“······정우야.”

“예?”

“······뭔가가 있는 거 같다. 그러니 그냥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해.”

“······예.”

“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천지사방팔방으로 들불처럼 번진단다.”

소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필연 무슨 기막힌 사연이 숨어 있다는 걸 지명은 확인할 수 있었다.

소년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나왔다. 그 뿜어지는 입김이 붉은 피 같았다. 소년이 허공으로 내뿜는 그 가쁜 숨결이 왜 그동안 괴롭히던 사이렌 소리 같은 이명으로 들려와 지명은 온통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우야?”

“네?”

“그런데 내가 왜 너하고 함께 동행해야 하는 거냐?”

“저랑 같이 하시면 한 세상 의지도 되시고 도움도 받으실 거예요.”

“제기랄, 네놈이 내게 퍽도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겠다. 과거에 매달지 말고. 미래를 원망하지도 말자. 과거에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지 않느냐?”

지명은 애틋하게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님?”

“왜?”

“고마워요.”

“…….”

“그동안 다치고 깨지고 상처받으면서 잘 자지도 못했고 잘 먹지도 못했으면서도 오늘만을 기다려 왔어요.”

“너나 나나 돌아갈 집이 없으니 더 간절하고 절실한 거겠지.”

목욕을 해서인지 초췌했던 소년의 얼굴은 발그스레 상기되어 있었다. 목욕탕을 나와도 이른 시간이라 조금 썰렁하지 않을까 하던 예상은 빗나갔다. 지은 지 오래되어 건물에 칠이 벗겨지고 곧 무너져 내릴 거 같은 흉물스런 외관, 불결해 보이는 내부였지만 모란 시외버스 터미널은 그래도 제법 사람들이 서성거렸다. 줄 서서 홍성 가는 표를 사고 12번 게이트를 확인한 두 사람은 대합실에 앉았다. 대합실 벽에 있는 시계를 보니 이제 출발 12분 전이었다.

“우리, 나가서 담배 한 대 태울까?”

“······예.”

“왜 이리 세상이 미쳐돌아가는 것인지.”

마음은 동요하기 쉬웠고 혼란스러웠으며 지키기 힘들었으며 억제하기도 힘들었다. 모두가 다 젊음, 욕망 때문이었다. 미오(迷悟)의 입장이라 말 못하는 입을 가진 까닭만은 아니었다. 다행이 불법을 만나 입득세간(入得世間)에 들어 잠시 무명업전(無明業田)속에 있지만. 마음 가는 대로(生心動念) 살지 못했다. 그래도 있다, 없다. 이렇다, 저렇다, 하고 결론 내린 적은 없었다. 입산 후 있어도 없는 듯 조용하게 살아왔다. 이거 저거 그게 다 악한 인연은 업보가 되고 고(苦)가 되는 것임을 지명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랜 세월 부질없는 것에 헛되이 청춘을 낭비하였는지. 번뇌가 보리인 것을.”

지명은 마음속에서 사구(死句)들을 씹었다. 그래도 지금은 마음의 때 벗겨지고 가슴 씻기어

심안의 꽃이 활짝 필 활구를 위하여 지금 사구들을 후회 없이 사랑하고 싶었다.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얼마나 좋은가. 이 고통의 통증이. 곧 너도 나도 나고 죽음이 없는 세상으로 갈 터인데.

“바다로 나아가는 나비 꽃을 피우지 못한들 어떠하리.”

“……예?”

“그래, 너의 눈에는……뭐가 보이냐?”

“가는 사람들, 오는 사람들요.”

“춥지는 않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명도 그러지 않는 척 하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잘린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눈병이 났는지 눈에 안대를 한 사람,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님. 특별면회가 뭐예요?”

소년이 천연덕스레 물었다. 그러나 소년의 얼굴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가보면 알아.”

소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처음에 소년을 보았을 때 숨이 턱턱 막혔다. 죽으려고 덤비는 게 아닌 건 알 고 있었다. 어쩌다 저 지경까지 되었을까. 마치 거울을 보는 듯 했다. 그래도 징징대는 거 보다는 나았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해결해보려는 절대 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소년을 보고 지명은 갑자기 그래, 붙어보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얼마나 막막했을까. 가슴은 찢어지는 거 같았고 주먹을 쥐어 보아도 눈물은 연신 흐르고 상처 입은 새처럼 할딱였을 것이다. 외로움에 괴로움에 몸을 흔들어대고 몸부림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명을 찾아 헤매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도 스님, 수행자셨다고 했어요.”

“······수행자?”

원망 속에 있으면서도 원망하지 않으며 근심 속에 있으면서도 근심하지 않고 욕심 속에 있으면서도 욕심내지 않는.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이라 하고 진실인 것을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진실을 진실이라 하고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 아니라 하는 이는 불멸의 진리에 도달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헛된 것이니 구태여 가지려 허덕이지 마라. 또 잃었다 하면 번민하지 말라, 소년은 이 말에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지명은 마음이 짠했다.

소년과 지명은 홍성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올라탔다. 소년이 먼저 탔고 좌석번호에 소년이 창가 쪽이었는데 지명에게 먼저 들어가 앉으라는 눈빛을 했다. 바랑은 손에 들고 있던 지명은 소년의 가방가지 의자 위 짐칸에 바랑과 가방을 넣고 지명은 소년이 바라던 대로 창가쪽 좌석에 등을 푹 파묻듯 기대고 앉았다. 일주일 만에 한 목욕인지라 몸이 노곤해졌다. 버스는 검표를 끝내고도 한참을 꾸물대더니 미적미적 출발하고 있었다.

“특별 면회가 뭐에요?”

“……응, 가름막 없이 직접 만날 수 있는 면회.”

“……고맙습니다.”

승객이라고는 달랑 세 사람 뿐이었다.

“스님?”

“응?”

“저 쫌만 자도 되요?”

“피곤하지?”

“……예.”

따스한 히터 때문에 졸린 모양이었다.

“응. 가방에 재판기록 좀 나를 꺼내주고.”

“……네.”

4357. 소년의 아버지가 그저 서너 살 위쯤이라고 여겼다. 확인해보니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이 오십에 갖은 아이라. 주민등록번호를 들어 놓고도 생각을 못했다. 꿈만 같았다. 세상이 꿈인가. 꿈속이 세상인가.

“망할 놈의 세상.”

지명은 그 누구에랄 것도 없는 혼잣말을 내뱉다가 최루탄을 맞은 듯 갑자기 재채기를 토해냈다.

“제기랄.”

한 번 터진 재채기는 한동안 그칠 줄 몰랐다. 재채기가 끝나자 지명은 머리에 현기증이 일기까지 했다. 지명은 한숨을 삼켰다. ‘다시 내가 뜨거워질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봄은 한참 멀 텐데.’ 지명은 창밖의 내려 쌓이는 눈들이 만들어 놓는 고만고만한 논과 밭들의 새벽풍경을 바라보다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사형이라는 작자, 소년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계속-

혜범 스님

1976년 입산,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당선.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흙출판사),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청림출판사), 『천기를 누설한 여자』(흙출판사) 『반야심경』(밀알출판사), 『업보』(밀알출판사), 『남사당패』(태일출판사), 『시절인연』(밀알출판사), 『플랫폼에 서다』(북인) 등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도서출판 북인),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밀알출판사), 『달을 삼킨 개구리』(북갤럽),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북갤럽)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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