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5. 허공에 말뚝을 박아라
제 1부 5. 허공에 말뚝을 박아라
  • 혜범 스님
  • 승인 2021.03.02 21: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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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미륵

  희끗희끗한 눈들이 대합실 밖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손에 들고 등에 삶을 지고 새벽으로 떠나려는 사람들 일색이었다. 대합실을 등지고 선 지명과 소년은 코로나로 첫차가 없어졌다는 걸 몰랐다. 한 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서로 눈을 마주쳤다.
 “홍성은 가봤어?”
 “······원주교도소는 가봤는데 면회는 못했어요.”
 “······눈땜에 가는 길이 결코 쉽지가 않을 거 같은데. 정우야, 그런데 바람은 또 왜 불고 지랄이냐?”
 “······스님은 인생에 있어서 제일 큰 고비, 고통은 뭐였어요?”
 “지금 너랑 이렇게 같이 있는 거.”
 “히이, 죄송해요. 중이 되셨으면 가끔은 보람된 수행생활도 하셔야죠. 성불하시려면.”
 “먹고 살기도 바쁜데 개코나 성불은.”
 지명의 말에 소년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핸드폰을 꺼내 홍성 가는 길을 검색해 보는 모양이었다. 그 모양을 보고 해인은 눈 속에 서서 담배연기를 푸 날렸다.
 새벽, 알전구들 반짝이는 모란 새벽시장. 사람들의 밤 속으로 걷다 개장 속의 개들을 그만 보고 말았다. 개들은 어둠 속에서 낑낑거리지도 울부짖지도 못한 채 갇혀있었다. 철창 속에는 세 마리 심지어 겨우 몸을 돌릴 수도 없이 수십 마리가 견종대로 집단을 이룬 채 갇혀있었다.   아침밥을 먹으려 했는데 밥맛이 싹 가셨다. 겨울인데도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닭똥냄새는 아니고 시체냄새도 아니고 코를 자극하는 시뻘건 피 냄새였다. 죽음을 앞둔 개들의 침묵을 보며 지명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들의 밤이 아니었다. 괴물들의 밤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던 지명은 누군가 갑자기 모가지를 비트는 것 같아 막막해졌다. 어두운 새벽의 현실, 정적 속에는 어둠속의 개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우쉬비치 포로수용소처럼 그 옆의 철창에는 닭들도 있었고 오리도 있었으며 거위도 있었다. ‘쟤네들은 저기에 있는데. 그런데 도대체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하는데 그 와중에 닭 한 마리가 정적을 깨며 꼬끼오, 하는 놈이 있었다. ‘저래서 닭대가리, 라고 했던가.’ 애절하게도 개들은 곧 죽을 목숨과 운명을 슬퍼하며 갇힌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흑염소들 옆 칸에서 지명이 지나가는 걸 철창에 갇힌 고양이들도 마냥 하염없이 내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눈을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을 것을. 그때, 그만 공포로 눈에서 안광, 불을 내뿜는 진도견 백구 한 마리랑 그만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소리치지도 못하는 저 애원.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서 솟아 나오는 비명. 멈춰선 지명은 소년을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나는 왜 저 아이들에게 나와라, 함께 가자’ 하지 못할까. 
 속이 차츰 메스꺼워지면서 머리가 띵해졌다. 귀가 시렸다. 그리고 온몸으로 울분과 전율 같은 것들이 슬금슬금 퍼져나갔다. 섬뜩한 비명 같은 소리 없는 체념. 그 번쩍이는 눈빛들의 울부짖음. ‘내 목숨을 빨리 끝내주세요, 이 고통에서 빨리 해방시켜 주세요,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고요’, 하는 도살당하는 새벽의  음산한 원한과 저주의 눈빛들로 가슴을 조여 왔다. 
 순간 지명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누구 에랄 것도 없는 분노가 점점 격앙되어 가고 있었다. 저놈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순간 가게 안의 둥그렇고 높이가 한 이십오 센티미터는 될 통나무를 잘라낸 나무 도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놓여 있는 네모난 커다란 시퍼런 칼. 봄이 오는 길목 차디찬 어귀에 잡혀온 짐승들의 목덜미를 들끓던 바람들이 옭아매고 있었다. 
 “우리 신세랑 다를 거 하나도 없네.”
 지명의 말에 소년이 입을 실룩이다 ‘······빨리 가요’하고 팔꿈치를 끌었다. 순간 지명은 못 같은 것들이 몸속으로 점점 깊이 박혀 들어오는 거 같았다. 두 사람은 비척거리며  어두운 아침 속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었다. 마치 어둠이 알처럼 품어주고 있는 거 같았다. 잠시 코를 훌쩍이던 지명은 자신도 모르게 호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 태워물었다. 
 “정우야, 나까지 괴물이 된 기분이다. 괴물이 나냐, 너냐? 넌 언제부터 괴물이 된 거니?”
 뒤죽박죽이 된 기분에 담배연기를 푸 내뿜는 지명을 보고 소년이 멈춰 서서 ‘스님이 담배는?’하고 못마땅한지 어눌한 목소리로 궁시렁대고 있었다. 
 “스님은 상처가 없으셔서 그럴 거예요. 원과 한, 상처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들은 갇혀있는 짐승들을 봐도 요동치지 않아요.”
 “······내가 바보라는 얘기지?”
 지명이 급하게 소년의 말을 자르며 어깃장을 놓아 보지만 소년의 눈은 여전히 맑고 빛났다. 이상했다. 소년이 무슨 짓을 해도 밉지 않았다. 도대체 사형이었다는 지원스님.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세상일 안 보고 안 듣고 끼어들지 않은지 오 년이나 지나 있었다.  실상은 무엇일까. 도대체 무슨 사연이기에 무기수가 된 것이지. 선병질적인데다 깡마른 지명은 침을 탁 뱉었다.
 어차피 각자의 선택으로,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 온 것이다. 정해진 법도 없고 어떤 것이 좋다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냥 각자의 업(業)으로 살아갈 뿐인 것을.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랬다. 그랬다고 여겼다.’ 하지만 소년의 눈빛이 너무 간절했다. 그리고 절실했다. 원한만 남은 어린 해골바가지, 눈에는 천추의 한이 서려있었다. 
 “도저히 내가 바로 잡을 수가 없었어. 배후에 사숙스님이 있어. 그래서 내 이 업보를 받는 모양이네, 다 너절한 핑계겠지만.”
 “정직한 마음(直心)이 보살의 정토라고 하였습니다.”
 “······살아보려는 마음에 정직한 마음을 보고도 외면했었네.”
 “저는 온 정성을 다하여 불법(佛法)을 믿고 따를 따름입니다.”
 추운데서 자서 그런지 삭신이 욱신욱신 쑤셔왔다.
 “한 시간 반 남았다 했지?”
 “예.”
 “그래, 우리 목욕탕가기로 했지. 그럼 목욕탕에나 가서 마음 좀 씻어 볼까?”
소년이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으면 마음도 씻겨요’라고 되물었지만 그저 픽 웃었다. 마침 터미널 건너편에 사우나탕이 눈에 보였던 것이다. 
 지명은 숨을 나지막하게 들이 쉬었다. 소년이 카르마, 업(業)을 이해할 리 없었다. 지명이 좋은 건 적어도 소년과 이야기 할 때는 위선 위악 가면을 쓸 필요가 없어서 더 좋았는지 몰랐다.
 욕탕에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다. 가자, 하고 욕탕에 걸린 시계를 보고 나와 몸을 말릴 때 지명은  그만 보고 말았다. 욕탕에 있을 땐 서로 저만치 거리를 두고 앉았다. 욕탕 밖으로 나오자 소년의 하얀 속옷에 송송 구멍이 나 있었다. 지명은 입맛을 쩝 다셨다. 추울까 봐 구멍 난 속옷을 입고 그 위에 미색 티를 입고 검은 색 모자가 달린 오리털 점퍼를 입고 있었다. 바람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나뭇잎의 움직임으로 그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콩알만 하게 구멍이 난 속옷이었지만 깨끗하게 빨아 하얗게 입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도 소년이 구멍 난 속옷을 입고 있다는 걸 모를 것이다. 
 부족함도 남음도 조건(緣)에 의해 생기(生起)하는 거였다. 연기(緣起)라 했다. 형상은 스스로 지은 것도 아니고 남이 지은 것도 아니다. 인연이 모이면 생기고 인연이 흩어지면 사라질 것이다. 살아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고 위태 위태로운 일. 세상의 모든 씨앗이 땅을 의지하여 생성되는 것처럼 인연이 화합하면 모이고 인연이 다하면 하늘로 흩어질 것을.
 “그래, 갈 때까지 가보자. 이 미친 세상으로. 얼어버린 사바로.”
 “······.”
 “그나저나 그 가방 속에는 뭐가 들었냐?”
 소년의 등에 맨 가방이 무거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가방 안의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 이건 생떽쥐베리가 쓴 어린 왕자요.”
 영어와 한글로 된 두 권의 소설을 꺼내더니 이번에는 비닐이 씌워져 있는 두툼한 국어사전, 영한사전, 옥편을 꺼냈다. 그리고는 분홍색 보자기에 싸인 두툼한 서류들을 꺼냈다.
 “뭐야?”
 “돌아가신 엄마가 사주신 것들 중에서 제가 평생 지녀야 할 것들로 추렸어요.”
 “······.”
 “아까, 말씀 드리질 못했어요.”
 소년이 보자기에 싸인 걸 푸는데 지명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복사한 복사지였는데 페이지 곳곳에 노란 찾아보기표로 소년이 무언가 또박또박 적어 붙여놓은 사건기록들이었다. 지명은 순간 끙 신음을 삼켰다. 구차하고 한스런 삶일지라도 그동안 소년이 눈물겹고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거······.”
 “뭔데?”
 “······이모할머니께서 모시던 호신불이예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이 부처님의 미소만 보면 힘든 게 싹 풀려요.”
 “······.”
 소년이 근 삼십 센티미터의 복주머니를 열어 보이는 순간, 지명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지명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아무도 없는 목욕탕 가운데 평상에 놓인 형광등 불빛을 받고 있는 금동 미륵 반가사유상은 알 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이젠 스님이 모시세요.”
 “······.”
 소년이 더 이상 자신을 탓하고 원망하고 저주하지 않겠다는 듯 불상을 들고 지명에게 내밀었다.
 “됐다, 그래라. 너나 해라. 이놈아. 불상 좋아하면 불쌍해져. 그나저나 너 이 불상의 가치를 아니?”
 “값으로 하자면……. 150억에서 200억쯤요. 아마 부르는 게 값일 걸요.”
 “······가자.”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상. 지명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미세하고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들쑤셨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 불상이 아니었다. 
 머리에는 삼 면이 둥근 산 모양을 한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었다. 앞으로 숙인 둥근 얼굴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에 밝은 미소를 띠고 있어 소년과 같은 신선함이 느껴졌다. 목에는 가는 음각선의 삼도(三道)가 있었고 상체에는 두 줄로 도드라진 목걸이 이외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는데, 팔과 몸체는 비만하지 않으면서도 미묘하게 근육이 묘사되어 사실감이 돋보였다. 허리에 걸친 상의는 매우 얇아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며 특히 반가한 오른쪽 무릎이 힘 있게 솟아오른 부분에는 옷주름이 생략되어 상 전체에 강한 생동감을 주고 있었다.
 대좌를 덮어 내린 상의의 옷자락은 두 단의 주름을 형성했는데 조각이 깊고 사실적이었다. 그밖에 몸 옆으로 내려온 허리띠나 둥근 옥장식, 둥근 대좌의 표현이 모두 섬세하면서도 정제된 완성미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이 예리하면서 장식적이고 기교적인 조형미를 보여준다면 소년이 보여준 불상은 간소하고 자연스러운 조형미를 통하여 생동감을 주고 있었다. 순간, 지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가끔 꽉 막힌 사람들을 보면 운명 팔자라는 걸 생각하곤 했다. 기가 막힌 사건과 사고에 얽혀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스름한 새벽에도 살아보자 생사의 족쇄에 묶인 채 유령처럼 나타나 꿈틀대는 사람들. 어둠의 가지에 매달린 여린 하얀 연꽃잎들 같았다. 갑자기 지명은 현기증이 일었다. 
 “나쁜 놈들. 악마들 진실과 정의, 법 위에서 법을 쥐락펴락 권력을 휘두르는 놈들.”
 “…….”
 “가장 깨끗해야 하는 종교집단, 말로는 청정승가라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괴물이 되어 온 게 아닐까. 깨달음과 해방, 자유를 위해 산다지만  다 그렇게 산다고, 원래 그런 거라고, 불의와 부정부패, 받아들이고 순응하고 타협하고. 이게 뭐가 문제냐고? 조건을 받아들이고, 한계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받아들이고, 계급을 받아들이고, 나에게 돌려진 조금의 자본과 권력을 누리며 나보다 높은 계급의 사람을 참아내며. 살아내기 위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우리는 만들어진 세상살이의 진부함 틀 속에서 아, 어쩌나, 이 억압과 착취, 하며 긴장감 혹은 적대감을 보이기도 하면서 결국엔 허우적대다가 비슷비슷한 상투성만을 나누게 되는 거지. 점점 더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때는 시작할 때는 새처럼 자유로워지려 하다 위험한 흉기, 괴물이 되어가며 조악한 관습의 틀 속에서 딱 그만큼의 사고를 하다 그만큼의 삶을 살다가 처음보다 더 편협하고 좁은 사고방식 속에서 고정관념과 생활 습관에 묻혀 그것이 운명이고 팔자인양 하다 죽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판도 아니고 사판도 아니고 짬뽕불교 속에서 차츰차츰 장삼이사 포기하고 추레하게 늙어가는 게 아닐까?”
 장황한 사형의 말에 지명은 동의하지 않았다. 검은색과 흰색 사이엔 회색만 있지 않다, 던 어떤 한 회의론자의 소란스런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형, 지운스님을 혐오의 눈으로 보지는 않았다. 다만 비겁자 찌질이로 보았을 뿐이었다. 지명은 소년의 앞에서 사형, 지운의 말을 떠올리며 길게 한숨을 토해놓고 말았다. 
  
 

 

혜범 스님

1976년 입산,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당선.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흙출판사),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청림출판사), 『천기를 누설한 여자』(흙출판사) 『반야심경』(밀알출판사), 『업보』(밀알출판사), 『남사당패』(태일출판사), 『시절인연』(밀알출판사), 『플랫폼에 서다』(북인) 등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도서출판 북인),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밀알출판사), 『달을 삼킨 개구리』(북갤럽),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북갤럽)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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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 2021-03-12 10:18:14
오래전 어느 불교 소설을 읽었을때의 그 때 ㆍㆍ 희몰아 치던 충격. 격정. 온갖 감정들이
떠오르네요
그분은 아니 그분의 글 어떤부분이 그렇게 사람 의 의식을 확 잡아 끌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저 무의식 깊은곳의 어둠. 혼돈. 그림자 등등 현대사회의 금기시한 것들을 과감하게 햇볕아래로
끌어올 려 강렬하게 선과 악을 대비 시켜 자꾸 호기심을 유발 시킨게 아닐까? 생각
전 그래요
처음 도입부분에 독자에게 충격 주지 못하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라는 생각합니다
하공에 말뚝 ㆍㆍ 이 좀 지루하게 이어진다는 느낌 드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참고로 어느불교소설가는 한승 원씨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