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4. 허공에 말뚝을 박아라
제 1부 4. 허공에 말뚝을 박아라
  • 혜범 스님
  • 승인 2021.02.18 14: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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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미륵 4.

 “정우를 부탁하네.”
 “정우가, 누구에요?”
 사형은 지명을 건네 봤다.
 “지원사형의 아들이라네.”
 “지원스님이라면……. 아, 그 환속하셨다는?”
  사형은 웃음도 없고 다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미워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죽음을 살아내느라 정작 삶을 살아본 게 언제였는지 몰라. 지금은 비록 빈 껍질의 늙은이 되었지만. 참으로 어려운 지옥 같은 세월이었어. 그래도 절망은 하지 않았지. 사형과 같이 활동할 때가 좋았는데, 어설픈 세상, 물질주의와 자본주의가 판치는 이 땅의 구도자들에겐 젖과 꿀이 넘치는 꽃길 같은 곳은 없어. 가시밭길 그렇기에 이 사바, 피밭(血田)은 법은(法恩)에 가득 찬 장소인 게야. 그래, 스님은 지금도 자유를 깨달음, 해방을 욕망한다고? 욕망함으로써 스님은 곧 좌절하게 될 거야. 슬픔에 잠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잃어 본 적 많잖아. 쫓겨나고, 매 맞고, 군부독재에 부서진 자들의 마음을 스님은 누구보다 잘 잘 알잖아.”
 적빈(赤貧)의 사형은 회의론자처럼 말했다. 적빈(赤貧)이란 몹시 가난하다, 는 뜻인데, 그 벌거벗은 가난을 스님네들은 소욕지족이니 소확행, 무소유, 라 포장해서 신도들은 가난하게 하고 스님네들은 배가 불러 뚱뚱해져가는 게 불가였다. 
 “신도가 많진 않지만 여기서 그 아이나 키우며 살면 먹고는 살 수 있을 거야. 시골절 살림살이야 빤하지만. 그래도 천 평 밭이 있어. 나 같은 변두리 인생도 고추농사를 지으면 살만했어.”
 “……먹고 살려고 중 된 거 아닙니다.”
 “……그러니 내 부탁 좀 들어주시게.”
 “……….”
 “내가 죽는다 이 말이라고.”
 “……집도 절도 없는 제가 저 꼬맹이를 맡아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요?”
 “저 아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집도 절도 생기게 될 게야.”
 지운 사형은 지명이 알듯 모를 듯 한 웃음을 흘렸다. 보현사는 공찰이 아니라 사찰이었다.  
  “정우야.”
  “네?”
  소년이 지명을 올려다봤다. 지명은 소년을 부르는 말끝에 웃음을 달았지만 웃음 속에는 가시가 숨겨 있었다. 지명은 소년을 보기만 해도 먹먹해졌다. 시절이 혹독했던가. 가혹했을까. 사바는 불가해한 구석이 많았다.
  “지운스님이 너랑 같이 살자 하더냐?”
  “예. 보현사를 넘겨 줄 테니 같이 살자 했어요. 죽은 이모할머니랑 약속했다고요.”
  “그런데 왜?”
  “……전 아버지의 무죄를 밝혀야 해요.”
  소년이 말했다. 지명은 헛기침을 삼켰다. 
  “그런데 넌 왜 날 택했니?”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어요. 던져보니 아직도 도네요.”
 “………뭐 인마?”
 지명이 씩 웃었다. 
 “할머니랑 여기서 칼국수 장사를 했어요.”
 “그래서 여길 잘 아는구나. 안 춥냐?”
 그러나 소년이 안내한 맛있다는 백반 집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마침 그 옆에 국밥집이 문을 열고 있었다. 
 “그럼, 우리 국밥 먹을까?”
 소년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미안해했다.
 “고기 드셔도 되요?”
 소년이 얼른 화제를 틀었다.
 “죽이는 게 아니라 밥으로 먹는 건데 뭐.”
 소년이 지명의 말에 피식 웃었다.
 “이 집도 맛있어요.”
 소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포장마차로 들어가 앉자 돼지냄새가 코를 찔렀다. 
 “국밥 두 그릇이요.”
 “……왔니?”
 “예. 할머니. 안녕하세요?”
 국밥집 할머니가 아는 척을 했다.
 “다른 스님들은 돈도 많고 살도 찌고 재미지게 잘 사는데 스님은 왜?”
 “내가 잘 못 살아서 그런 게지 뭐?”
 “……네?”
 “들켰나 보네. 내가 못나서겠지. 너 나랑 함께 있으면 다칠 줄도 몰라.”
 늘 가다보면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 그때마다 살짝 죽음과는 비껴나곤 했다.
 “스님 상황파악이 안 되세요? 전 이미 다칠 거 이미 다 다 다쳤어요.”
 소년의 말에 이번엔 지명이 쿡 웃었다.
 “짜식 그렇다고 네놈이 위험해 보이지 않는 건 아냐. 그나저나 넌 커서 뭐가 될 거니?”
 “어른이 되겠죠. 그리고 검사가 되어 있는 거예요.”
 “검사……?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어. 하필이면 근데 왜?”
 “정의를 위해서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충격으로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정의라. 정의가 뭔데, 슈퍼 가면 근 달아서 파냐?”
 열네 살 소년의 입에서 정의라는 말이 나왔다. 순간 지명은 ‘고통이 벼락처럼 때릴 때 과연 나는 어디에 있었던가, 과연 나는 이 땅에 고통 받는 중생들의 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가르쳐 줘요.”
 “………왜?”
 “보아하니 스님은 제가 스님 품에 안겨 울어도 될 사람은 아닌 듯싶어서요.”
 “응, 맞아. 나 금세 너를 귀찮아 할 거야.”
 “……구걸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요. 그러니 막걸리나 한 잔 드시고 괜히 절 구박이나 하지 마세요. 할머니 여기 막걸리 한 잔요.” 
 소년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너……?”
 “스님, 막걸리 드시는 거 보았어요.”
 소년은 지명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조금은 불안스레 한참동안 지명의 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국밥집 할머니가 내미는 국밥 앞에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합장하는 지명과 소년을 건너보더니 잔과 작은 막걸리 통을 내밀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부족한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마음속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다만 여윈 육신을 지탱하는 양약으로 삼아
 깨침의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소년이 오관게를 외우는 눈치였다. 지명은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한 눈으로 보았다.  불교의 제도와 교리에 염증을 느끼던 지명에게는 그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명은 국밥은 반 정도 남겨 둔 채였는데 배가 고팠던지 소년은 이미 국밥을 다 비운 상태였다. 지명은 멋쩍은 웃음을 날리며 막걸리 한 잔을 쭉 따라 마셨다.
 “……여기 얼마에요?”
 “아니에요. 저 아이 할머니 죽었을 때 부조를 못했어요. 그냥 가시면 되요.”
 소년이 일어서더니 가슴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고개를 꾸벅 수그렸다. ‘또 오려무나’라는 국밥집 할머니의 소리를 들으며 소년과 지명은 밥집 포장마차를 나왔다. 
 “맞아. 나는 나 하나만도 감당하기 버거운 인간이란다.”
 “누가 뭐래요?”
 소년의 말에 ‘이놈 봐라, 맹랑하네’ 하며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너나 나나 무엇이 잘못된 거냐?”
 “정의는 공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악의 편이 아닌 선의 편, 정의의 편에 서서 그러신가 보죠?”
 말을 마친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지명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지명은 소년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운 사형이 쌀쌀맞고 까칠한 인간이라고 했다는 소년의 말에 지명은 희미하게 웃다 침을 꼴깍 침을 삼켰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니?”
 “……한 시간요.”
 올망졸망 시장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지명은 좋았다. 못난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좋다고 했던가. 여명으로 내리는 눈과 함께 오랜 만에 아침을 향해 살아있는 거 같아 지명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우리는 죽는다.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너무 애도하지 마라. 젊어서도 죽고 늙어서도 죽고, 죄를 져서도 죽고, 죄 없이도 죽고. 그래 나도 죽음으로 이렇게 안 왔나. 나가 봐라. 부탁한다. 똑똑한 아이라. 거 뭐라 카드라. 아이큐가 148이라 카던데. 멘사 회원이라더라. 정우란 놈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게다.”
 창백한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받는 사형스님이 여비하라며 봉투 하나를 내밀었던 것이다. 사형, 지운이 지명의 가슴에 확 불을 당기는 거 같았다. ‘내참’, 억눌린 신음 소리를 내던 지명도 호주머니에서 준비했던 봉투 하나를 방바닥에 내밀고 사형의 방을 나왔다.
 “너 핸드폰 있지?”
 “예.”
 “줘봐 봐.”
 “……예.”
 소년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지명에게 내밀었다. 
 “아버지 존함이 어떻게 돼?”
 “강자 천자 식자요.”
 “생년월일은 57년 3월 28일요.”
 “수형번호는?”
 “4357번요.”
 “사건번호는?”
 “……그건 몰라요.”
 “그래 알았다.”
  근심에 차 있던 소년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렇게 새벽에 길바닥에 서서 무기수의 면회를 가는 게 아니라면 얼마나 기쁜 인생이었을까. 터미널의 오고 가는 사람들, 눈을 씀벅이며 작은 가방 큰 가방을 든 플랫폼의 사람들을 바라보던 지명은 까만 눈을 반짝이는 소년을 애틋하게 내려다보았다. 지명은 천천히 핸드폰의 숫자들을 눌렀다. 얼마 만에 눌러보는 전화번호인지 몰랐다.
 “여보세요?”
 수화기 저쪽에서 막 잠에서 깨어 새벽부터 뭐야, 하는 달갑지 않다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오빠……? 오늘 엄마 제사 땜에 전화한 거야?”
 “……홍성 지법에 연수원동기가 있는 걸로 아는데 누구지?”
  “……올 거냐고?”
 대합실 앞에는 먹물처럼 번져있던 어둠이 어느 정도 가셔져 있었다. 이미 홍성으로 가는 시외버스 표는 구입했다. 수화기 저쪽에서 지명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쟁쟁거렸다. 어머니의 제사라는 말에 ‘그래?’했던 지명은 헛기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적어봐. 이름 강천식. 생년월일은 57년 3월 28일. 수형번호, 4357번. 홍성교도소. 내가 지금 홍성으로 가고 있거든. 특별면회 신청 좀 해줘봐봐. 그리고 재판기록, 수사기록 좀 내가 볼 수 있게 복사해서 사진 찍어 메일로 보내주고.”
 “……오빠. 난 오빠라는 인간, 목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왜 그렇게 사니?”
 전화도 티브이도 없고 신문도 오지 않는 새소리 물소리만 적막한 산속만 찾아 돌아다녔다. 수화기 저쪽에서 발 동동 구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내 여동생 미정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수화기 이쪽으로 타고 넘어왔다. 지명은 슬몃 미소가 입술로 번져나갔다.
 “알았어. 잘 살고 있으니까, 지금 이 전화번호로 결과를 통보해줘. 지금 홍성으로 가는 길이야.”
 “……오빠, 참 못됐다.”
 여동생, 미정이 무슨 개소리, 냐는 듯 핏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지 않아도 눈썹을 파르르 떨고 있으리라.
 “지금 내가 너한테 잔소리 들어야 하는 거니?”
 지명은 대합실 밖으로 나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태워 물었다.
 “……강천식. 특별면회. 생년월일은 57년 3월 28일. 수형번호, 4357. 홍성교도소. 면회자는?”
 “그래,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지 않는구먼. 면회자는 나하고 14세, 만 13세, 강정우. 좌우간 부탁한다."
 “…….”
 소년이 뭘 어쩌자는 것인지, 하는 눈빛과 귀를 쫑긋거리며 지명의 기색을 살폈다. 통화를 끝내고 지명은 습관처럼 머리를 득득 긁었다. 
 “한 시간 남았다 했지? 그럼 저기 보이는 목욕탕, 삼십 분만 목욕탕엘 갔다가 가자.”
 “……예, 스님.”
 자꾸만 눈을 깜박이던 소년이 핸드폰을 받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내가 왜 너랑 함께 가야 하는데?”
 “저는 잘 생긴데다 똑똑합니다. 거기다 성실하기 까지 합니다. 함께 해주신다면 스님의 노후는 보장되실 겁니다.”
 “뭐 인마……? 야, 다른 건 다 인정하는 데 잘생겼다는 건 좀.”
 “……스님 제가 못생기지는 않았죠?”
 “그건 그렇지만.” 
 “……사지 멀쩡하고 정신 똑바로 박히고 그럼 잘 생긴 겁니다.”
 소년의 재치 있는 말에 웃음을 흘렸다. 지명은 마침 휴지통을 보고 담배꽁초를 비벼 껐다. 그리고 꽁초를 휴지통에 넣다 길게 한숨을 뽑았다.
 “아버지 무죄만 밝혀주시면 제가 평생 스님을 시봉해 드릴 게요.”
 “……뭐 인마?”
 “정말 이라니까요. 저 그렇게 철부지처럼 아버질 원망하고 탓하고 한풀이 하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꼭 진실을 밝힐 거예요.”
 “진실이라. ……불편할 텐데.”
 “…….”
 이윽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득한 눈발들은 바람을 타고 도로 하늘로 올라가려는 듯 비쳤다. 그래도 결국 눈발들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낮은 곳 사바로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들을 보며 지명은 ‘그래도 봄은 오겠지?’하고 중얼거렸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연녹색 잎사귀들 버드나무 가지 위로 종달새 하늘 높이에서 그 울음을 떨어뜨리는 봄. 
 

계속...

 

혜범 스님

1976년 입산,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당선.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흙출판사),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청림출판사), 『천기를 누설한 여자』(흙출판사) 『반야심경』(밀알출판사), 『업보』(밀알출판사), 『남사당패』(태일출판사), 『시절인연』(밀알출판사), 『플랫폼에 서다』(북인) 등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도서출판 북인),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밀알출판사), 『달을 삼킨 개구리』(북갤럽),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북갤럽)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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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2021-02-18 18:52:04
잘 읽었습니다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