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묘지명으로 본 조선시대 세계관
어느 묘지명으로 본 조선시대 세계관
  • 법응 스님
  • 승인 2021.02.15 16: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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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응 스님/불교정책연구소

필자는 지난 2020년 12월 16일 <불교닷컴>에 ‘고 이건희 회장 사십구재와 후손의 몫’이라는 글을 통해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상감초화문편병(국보172호)’ 등 몇 점의 편병과 문양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삼성가가 수집한 유물의 공개를 제안했다.

옛 문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고구려 고분 등에서 연꽃 문양이 나타나고 있어서 그 연유가 무엇일까 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몇 해 전부터 의혹이 해소되고 있다. 지난번 글에 이어서 같은 번호의 국보인 묘지판을 소개하고자 한다.

1971년 경남 거창군 북상면에 있는 한 사방공사장(토사방지 조림)에서 인부들이 진양군 영인 정씨의 무덤을 개묘했고 여기서 몇 점의 백자가 출토되었다. 자세한 이동 경로는 알 수 없으나 이 유물들은 최종적으로 삼성가에 들어가게 되었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석 점이 국보172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물의 주인공인 진양군 영인 정씨는 1466년(성화2년)에 언양현에서 사망했고 유물이 발견된 곳은 거창군 북상면임을 알 수 있다. 백자상감묘지(白磁象嵌墓誌)는 세로 38.6㎝, 가로 20.4㎝이며, 사찰의 위패 모양으로 아래는 연꽃, 상부는 연엽 또는 구름무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묘지판에는 어떠한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고사정빙지녀거단성
庫使鄭憑之女居丹城

고사(庫使)를 지낸 정빙(鄭憑)의 딸이 단성(丹城)에서 살다가

적판사김공효로
適判事金公孝老

판사(判事)를 지낸 김효로(金孝老)에게 시집을 갔으며

생이남사여
生二男四女

24녀를 낳았다.

기일녀왈겸예문봉교김구처
其一女曰兼藝文奉敎金龜妻

1녀는 예문봉교(兼藝文奉敎)를 지낸 김구(金龜)의 아내이다.

기일남왈부사당
其一男曰副使溏

1남은 부사(副使)를 지낸 김당(金溏)이다.

기이녀왈통찬이수산처
其二女曰通贊李壽山妻

2녀는 통찬(通贊)을 지낸 이수산(李壽山)의 아내다.

기이남왈언양현감윤
其二男曰彦陽縣監潤

2남은 언양현감을 지낸 김윤(金潤)이다.

기삼녀왈신녕현감박윤빈처
其三女曰新寧縣監朴允斌妻

3녀는 신령현감을 지낸 박윤빈(朴允斌)의 아내다.

기사녀왈대경정수덕처
其四女曰大卿鄭守德妻

4녀는 대경(大卿)을 지낸 정수덕(鄭守德)의 아내다.

세재성화병술
歲在成化丙戌

때는 성화(成化) 병술년으로

윤위언양재종래
潤爲彦陽宰從來

김윤(金潤)이 언양의 수령이 되니 같이 와서

시년십일월이십일일기축
是年十一月二十一日己丑

이해 1121(기축)일에

이병졸우시읍장우차
以病卒于是邑葬于此

병으로 이 읍에서 돌아가시어 여기에 장사를 지내다.

김씨즉가락김수로지후예야
金氏則駕洛金首露之後裔也

(남편)김씨는 가락 김수로의 후예이다.

 

고 최순우 선생은 그의 전집 중 ‘국보172호 진양군 영인정씨묘 출토 유물’ 부분에서 묘지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 이 묘지판(墓誌板)은 성화(成化)2년 겨울에 당시의 언양 현감 김윤(彦陽 縣監 金潤)이 자기관하(自己管下)의 언양(彦陽) 가마에 주문해서 구워 냈으리라는 것은 그 격조있는 양식이나 당시 묘지(墓誌)로서는 보통 이상의 큰 칫수 등으로 미루어 능히 짐작이 간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그 해 섣달 까지 구원 낼 겨를이 없었다면 늦어도 이듬해 청명(淸明) 사초 때 까지는 이것이 구워 졌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 끝 구절에 ‘김씨즉가락김수로지후예야(金氏則駕洛金首露之後裔也)’ 를 첨가한 것을 보면 이것은 아마도 정씨(鄭氏)의 남편 김효노(金孝老)가 먼저 죽어서 고향에 있는 김효노의 무덤에 부장(附葬)했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이 묘지(墓誌)가 출토된 곳이 거창군(居昌郡)인 것을 보면 거창(居昌)에 그 집안 선영(先塋)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최순우 전집)

이 묘지명을 보면 아들 딸 구별 없이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을 했고, 영인 정씨는 막내 김윤(金潤)이 언양 현감으로 부임하자 부임지에 같이 와서 살다가 병환으로 사망했으며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장남이 아닌 차남이 어머니를 모셨다.

묘지명의 크기나 그 형식 및 내용이 고위직을 지낸 남성의 것 이상으로 제작했고 작품성이 탁월한 편병까지 부장을 했다. 또 남편에 대해 ‘김씨즉가락김수로지후예야(金氏則駕洛金首露之後裔也)’라 하여 김수로왕의 후손임을 밝혔다.

고 최순우 선생의 의견과 같이 겨울철이고 제작에 15일 이상 걸리는 묘지명이라는 점에서 사후에 제작해서 이듬해 사초 시에 무덤에 넣었고 이후에 언젠가 거창군으로 이장을 했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문장 가운데 ‘병으로 이 읍에서 돌아가시어 여기에 장사를 지내다(以病卒于是邑葬于此)’라는 내용이 나온다.

승려인 필자가 굳이 이 유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묘지판의 상하 장식이 연꽃무늬의 위패 모양으로 되어 있어 망자가 불자이거나 유족이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조선 초 민가에서도 불교문양을 사용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소위 복위(伏爲)로서 자녀들에 대한 상세한 나열도 주목의 대상이다. 편병을 재차 살펴보기로 한다.
 

△국보172호 진양군 영인정씨묘 출토 유물 - 상감초화문편병, 묘지판, 양이잔(출처:문화재청)
△국보172호 진양군 영인정씨묘 출토 유물 - 상감초화문편병, 묘지판, 양이잔(출처:문화재청)

위 사진 중앙의 백자상감초화문편병(국보172호 / 삼성문화재단소장 / 사진출처 : 문화재청))에 대한 문화재청의 소개를 보면 “흑색 상감으로 모란과 덩굴무늬를 그려 넣었다”라 하고 있으나, 중앙에 겹으로 된 원 안에 있는 무늬가 넝쿨로 보기에는 어딘지 미흡하다.

이 분야를 연구한 소수 학자의 글을 바탕으로 해서 해석을 해 보면 중앙의 겹원은 천문(天門)을 나타내며 그 안쪽의 세 개의 원은 구름이 생성되는 과정을 나타낸다. 천문을 뚫고 위쪽을 향해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빠져나간 실선은 마치 식물줄기의 모양과 같다. 그 안에 대기 중인 두 개의 원도 종국에는 천문을 뚫고 나와서 구름 혹은 모란이나 풀잎이 되는데, 이를 일각에서는 영기화생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외곽에도 원을 겹으로 그려서 우주(하늘)를 표현했다. 그 천문에서는 큰 기(氣/구름)가 넝쿨모양으로 이미 생성되었다.

△ 진가(眞假)불명의 다른 영인 정씨 묘지명(墓誌壺)항아리
△ 진가(眞假)불명의 다른 영인 정씨 묘지명(墓誌壺)항아리

리움미술관 소장은 ‘令人’으로 돼 있는데 본 항아리에는 ‘人’자가 ‘大’로 표기되어 있으며,‘適判事金公孝老生’이란 글귀가 본 항아리에는 ‘適判事公金孝老’라 해서 ‘金’자와 ‘公’자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또한 리움미술관 소장본에 있는 마지막 글귀 ‘金氏則駕洛金首露之後裔也’가 없는 것이 상이점이다.

옛 사람들은 세상을 경계가 없는 커다란 하나의 그릇으로 인식했다고 보는데, 도자 그릇에도 그러한 의미에서 문양을 새기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본다. 아직은 대대적으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론이나 편병 자체가 하늘과 땅이라면 이 문양은 구름(비)과 만물의 생성을 의미한다 하겠다. 그러고 보면 민족 고유의 원시 세계관과 망자의 극락왕생 등 내세를 발원하는 불교적 세계관이 혼재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이 국보 석 점이 애초의 발굴지 관할인 거창군박물관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모든 유물을 사회에 환원하라는 것이 아니다. 1971년에 발굴된 것으로 불과 50여 년 전 일이고 그 출처가 확실하기에 거창군으로 돌아갈시 고인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적 이야기가 전개되는 등 지역문화의 활성화에도 큰 기여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백일 제사를 지낸 고 이건희 회장의 이름으로 거창군에 기증을 한다면 삼성과 리움미술관의 아름다운 기증이 될 것이며 사회적 평가도 긍정적일 것이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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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초화문평변 외 2점 2021-02-19 13:20:50
거창군의 박물관에 아름다운 기부 하였으면
좋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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