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도둑 키운 ‘선의취득’ 규정 개선될까
문화재 도둑 키운 ‘선의취득’ 규정 개선될까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1.01.2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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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주 의원 등 국회의원 13명 문화재보호법 개정안 발의
출처·입수경위 등 문화재청장 확인해야 선의취득 인정
문화재 손상·은닉 등 죄 공소시효 특례규정 마련 나서

도난 문화재를 사들여도 ‘선의취득’ 규정 때문에 면죄부를 받는 일이 차단될지 주목된다. 도난문화재의 상당수가 불교문화재인 점을 감안하면 조계종 등 불교계의 관심은 더욱 높다. 많은 도난문화재가 장물처럼 거래되지만 출처나 입수 경위를 밝히지 않고 선의취득을 주장해 법적 처벌을 피하는 사례가 빈번해 문화재보호법의 ‘선의취득’은 ‘문화재 도둑’을 키우는 ‘원흉’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때문에 오랫동안 문화재보호법에 선의취득 부분에 예외조항을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회에서 선의취득 문제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유정주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13명의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12월24일 문화재보호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도난 문화재를 은닉한 자가 그 출처 및 취득경위 등에 대한 자료를 제출해 문화재청장의 확인을 받은 경우에만 선의 취득을 인정해준다’는 것이 골자다. 박정·조승래·이광재·서동용·맹성규·김병욱·전용기·신동근·도종환·박재호·고영인(이상 더불어민주당)·양정숙(무소속) 의원이 함께 발의했다.

과거에도 선의취득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에서 관련 법개정이 추진됐지만, 무산됐다. 2006년 당시 윤원호 의원(당시 열린우리당)은 “모든 지정문화재와 도난 문화재를 문화재청 및 지자체에 공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 나가겠다”면서 선의취득 예외규정을 신설해 도난 문화재를 애초 소유자에게 반환하도록 규정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었지만 불발에 그쳤다.

2001년 12월 도난당한 뒤 지난해 되찾은 구례 화엄사의 시왕도. 1862년 제작된 화엄사 시왕도는 돌돌 말려져 보관돼 온 탓에 완전히 편 상태에서도 굵은 주름이 잡히는 등 불화로서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사진=문화재청)
2001년 12월 도난당한 뒤 지난해 되찾은 구례 화엄사의 시왕도. 1862년 제작된 화엄사 시왕도는 돌돌 말려져 보관돼 온 탓에 완전히 편 상태에서도 굵은 주름이 잡히는 등 불화로서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사진=문화재청)

유정주 의원 등이 발의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은 “도난 문화재라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소유했다면 ‘선의(善意) 취득’으로 인정해 왔던 관행을 그치게 만들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어서 관심이 모아진다.

현행법 문화재보호법은 도난 문화재를 은닉한 자가 문화재를 선의로 취득한 경우에는 문화재 몰수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장물인 도난문화재를 매입하거나 매각해도 선의취득을 주장하면 처벌 받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선의취득을 입증할 요건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아 선의 취득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

현행 문화재 손상 또는 은닉 등의 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관련법에 따라 10년으로 정해져 있다. 이로 인해 공소시효를 의식하여 도난 문화재를 장기간 은닉했다가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에 유통시키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유 의원 등이 발의한 문화재보호법 일부 개정안은 “도난 문화재를 은닉한 자가 그 출처 및 취득경위 등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여 문화재청장의 확인을 받은 경우에는 선의로 취득한 것으로 추정하여 문화재 몰수의 예외로 인정하도록 하는 안”이다. 이를 통해 문화재 손상 또는 은닉 등의 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특례규정을 둬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발의한 개정안은 문화재보호법(제92조에 제6항)을 “은닉 행위자가 취득한 문화재의 출처 및 취득경위 등의 자료를 제출하여 문화재청장의 확인을 받은 때에는 해당 문화재를 선의로 취득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신설한다.

또 국가지정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는 제외한다) 등의 지정문화재, 임시지정문화재(건조물은 제외한다)를 손상, 절취 또는 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죄를 범한 경우에는 10년의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또 일반동산문화재를 손상, 절취 또는 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죄를 범한 경우에는 공소시효의 기간을 25년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장물이나 도난 문화재 인 줄 모르고 구입했더라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문화재, 도난물품 또는 유실품인 사실이 공고된 문화재, 출처를 알 수 있는 부분이나 기록을 인위적으로 훼손한 문화재는 선의취득에서 제외됐다. 장문이나 도난문화재인줄 모르고 구입했더라도 해당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도난문화재를 은닉한 후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에 내놔 매각하면서 공소시효가 문화재 범죄를 부치기는 모순을 낳았다.

또 선의취득이 인정된 문화재를 회수하려면 피해자 또는 유실자는 선의취득한 자에게 애가를 변상해야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점도 문제가 되어 왔다.

조계종은 지난해 경찰과 협력해 1988∼2004년 도난된 불교 문화재 32점을 회수했다.

조계종은 지난해 1월 국내·외 경매시장을 대상으로 도난 불교 문화재가 있는지를 집중 점검을 하다 한 경매사에 도난 문화재로 등재된 포항 보경사 불화 2점이 나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신고했다.

경찰은 해당 불화를 압수하고 지난해 7월에는 경찰과 조계종 문화재 담당자가 함께 도난 문화재 은닉처를 확인했고, 이곳에서 도난 문화재 총 32점을 회수했다.

당시 조계종은 회수된 문화재 중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이 다수 포함돼 있다면서 도난 이후 적절하게 보존되지 못한 탓에 불화의 경우 딱딱하게 굳어 제대로 펼 수 없거나 채색이 떨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1862년 제작된 구례 화엄사의 시왕도는 2001년 12월 도난당한 뒤 돌돌 말려져 보관돼 온 탓에 완전히 편 상태에서도 굵은 주름이 잡히는 등 불화로서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 불화 하단에 기재하는 화기(畵記·제작 시기와 봉안처를 적어둔 기록)가 아예 잘려져 있거나 사찰명이 지워져 있는 등 도난 문화재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훼손한 예도 확인됐다.

1978년 전남 순천의 선암사에서 도난당한 삼심삼조사도. 2007년 6월에는 태고종 선암사가 사찰에서 도난당한 탱화를 돌려달라며 제약업체 대표 A(70)씨와 B(56)씨를 상대로 낸 동산인도 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선의취득'이 인정해 당시 소유주들은 처벌을 면했다.
1978년 전남 순천의 선암사에서 도난당한 삼심삼조사도. 2007년 6월에는 태고종 선암사가 사찰에서 도난당한 탱화를 돌려달라며 제약업체 대표 A(70)씨와 B(56)씨를 상대로 낸 동산인도 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선의취득'이 인정해 당시 소유주들은 처벌을 면했다.

2007년 6월에는 태고종 선암사가 사찰에서 도난당한 탱화를 돌려달라며 제약업체 대표 A(70)씨와 B(56)씨를 상대로 낸 동산인도 청구소송에서 패한 일이 있었다. A씨가 갖고 있던 탱화는 1753년 제작된 `삼십삼조사도(三十三祖師圖)' 3점이고 , B씨가 보유하던 것은 1780년 그려진 `팔상전팔상도 사문유관상(八相殿八相圖 四門遊觀相)'과 `팔상전팔상도 설산수도상(八相殿八相圖 雪山修道相)'이다.

A씨는 삼십삼조사도 3폭을 1987년 답십리 골동품점에서 4천500만원을 주고 샀고, B씨는 팔상전팔상도 2폭을 1981년 청계천 골동품점에서 1천만원에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가 1989년 삼십삼조사도의 표구를 완료하고 2006년 경찰이 압수할 때까지 사무실에 보관해 왔기 때문에 소유의 의사로 평온ㆍ공연하게 점유해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A씨는 10년이 지난 1999년 이 그림을 시효취득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B씨도 1981년 도난품이란 사실을 모르고 골동품 가게에서 적법하게 팔상도를 매입해 2006년까지 점유해왔기 때문에 선의취득과 시효취득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1978년 전남 순천의 선암사에서 도난당한 삼심삼조사도와 팔상전팔상도는 A씨와 B씨가 2006년 2월 ‘서울옥션 100회 기념경매’에 출품하면서 28년 만에 나타났지만 도난품인 사실이 확인됐다.

A씨와 B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지만 도난품이란 걸 몰랐다는 사실이 인정돼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선의취득과 시효취득을 이유로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불교문화재는 재화의 성격으로 개인이 소유하는 물품이 아닌 불자들의 신행을 위한 성보인 만큼 돈으로 환산돼 개인 간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차단할 필요성이 크다. 유정주 의원 등이 발의한 문화재보호법 일부 개정안이 개정되면 도난문화재 등 장물의 취득이 한결 어려워지고, 취득경위나 출처를 밝히지 못할 경우 해당 문화재를 몰수하는 데 어려움이 한결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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