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한국형 원전 증기발생기
'말 많고 탈 많은' 한국형 원전 증기발생기
  • 오마이뉴스 김혜경
  • 승인 2021.01.23 16: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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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팔로버디 원전의 증기발생기 슬라이딩베이스에는 8개의 앵커볼트가 존재한다. ⓒ 문인득 기술사

 
몇 년 전 논란의 한빛 핵발전소(원전) 4호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발전소 설계 수명에 비해 증기발생기 수명이 반도 안 된다는 것. 두 번째는 제작사 책임이 뒤따르는 하자보증기간이 터무니없이 짧다는 점이였다. 무상보증기간이 짧기 때문에 증기발생기 수명도 단축되는 것일까. 국내 원전 중 다른 노형에 비해 한국 표준형 원전의 증기발생기가 자주 교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형 원전 증기발생기에 대한 논란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 주도의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형 원전의 효시인 한빛 3‧4호기의 건설 전후 과정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 '안전 담보'로 거래한 저가계약

2017년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에서 금속 이물질들이 발견된 사건은 세간을 발칵 뒤집어놨다. 원자로, 터빈과 함께 발전소 3대 주요 설비 중 하나인 증기발생기는 핵연료에서 발생하는 열을 증기로 교환하는 역할을 한다. 약 20m 높이의 증기발생기 내부에는 1mm 두께의 세관 다발 수천개가 들어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8년. 후속 취재 과정에서 동일한 계약서 한 부를 놓고 벌어진 황당한 일은 한국 핵산업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국내 원전의 부품별 보증기간은 다르지만 증기발생기의 경우 통상 2년이다. 대다수 발전소의 설계 수명 40년에 비해 증기발생기는 고작 2년. 세탁기, 에어컨보다 짧은 셈이다. 해외의 경우 증기발생기 보증기간은 평균 10~20년으로 책정된다. 2012년 1월 미국 샌 오노프레 원전 3호기 증기발생기에서는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원전 사업자 측은 제작사인 미쓰비시중공업과 20년 보증계약을 맺어 4500만달러(한화 약 52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바 있다. 

보증기간이 늘어날 시 제작비도 증가하므로 사업자가 저가에 납품을 받기 위해 2년 시한으로 계약을 맺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보증기간이 짧아질수록 단가는 저렴해지고 보증기간이 만료되면 기기 제작사인 두산중공업의 책임은 자동 종료된다.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에 집중했던 한수원과 가벼운 책임을 원하는 두산중공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지적이다. 증기발생기 1대는 1500억원대로 알려졌다.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원전 특성을 고려한 보증기간 설정과 손해배상을 강력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당시 한수원 측은 후속 모델인 신고리 5·6호기 증기발생기의 경우 20년으로 보증기간을 대폭 늘렸다고 설명했다. 표면상으로는 타당한 조치인 듯 보였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2년 계약이 문제로 부각되니 면피용으로 제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계약을 맺은 쌍방은 물론 동일한 기관 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2017년 국감 당시 한 여당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보고받았던 신고리 5·6호기 증기발생기의 하자보증기간은 3년이었다. 이는 한수원이 본인에게 답변했던 내용과 완전 다르다. 계약 당사자들조차 말이 갈렸다. 두산중공업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증기발생기 기기 전체에 대한 하자보증기간은 2년임을 강조했다. 

계약서 공개 여부를 두고 실랑이가 이어진 가운데 한수원은 다시 답을 내놨다. '소통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전체 기기의 하자보증은 4년이고, 증기발생기 전열관에 대해서만 20년으로 별도 보증기간을 뒀다는 것. 당초 언급했던 20년은 일부 부품의 하자보증을 전체로 부풀린 셈이다. 전열관이 증기발생기 핵심이라는 것을 차지하고서라도 내용은 완전 다르다.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신고리 5·6호기의 증기발생기 하자보증기간은 전체 기기 대상 4년으로 밝혀졌다. 의원실의 경우 국감 당시 내용을 전달한 부서와 현재 보고받은 부서가 상이해 담당자가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관련 부서는 거짓말을 했거나 제대로 된 사실을 모른 채 답변을 했거나 둘 중 하나다. 국감을 대하는 원전 사업자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전열관 대상 부분 하자보증기간이 20년이라는 내용도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전열관 자체를 대상으로 한 하자보증은 아니였다. 정확히는 '전열관 관막음'에 대한 보증이다. 관막음이란 전열관에 균열이 발생하거나 용접 등의 정비가 불가능한 경우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해당 관을 막는 조치다. 현재 일부 원전의 경우 18%까지 결함이 생기더라도 관막음 조치를 한다면 원전 가동이 가능하다. 몇 년 전 허용치를 8%에서 18%로 상향 조정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관막음과 관련 없는 결함이 발견되거나 혹은 기준치를 높인다면 20년이라는 기간은 실효성이 없어진다. 

두산중공업은 끝까지 2년을 고수했다. 한수원에서 언급한 전열관 보증 20년도 '전열관 관막음'이라 표현해야 한다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 때 정비 차원일 뿐이지 하자보증에 포함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단순 '착오'인지 민감한 부분이 있었던 것인지 아직까지 베일에 쌓여있다. 

◇ 한국형 원전 증기발생기에는 누락된 '앵커볼트'

한국 표준형 원전은 약 30년 전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사의 시스템(System)80 모델을 원형으로 탄생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팔로버디(Palo verde) 원전은 최초의 한국형 원전인 한빛 3·4호기의 참조 발전소다. CE 모델을 개량해 한빛 3·4호기와 한울 3~6호기,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 등 1000MW급 OPR1000 모델과 신고리 3~6호기, UAE 바라카 원전 등 1400MW급 APR1400 모델이 만들어졌다. 한빛 1‧2호기와 월성 1~4호기, 고리 1~4호, 한울 1‧2호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CE형이다. 

CE형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증기발생기의 형태다.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와 캔두(CANDU)-6 모델 등에 적용된 증기발생기는 매달아두는 형태로, 하부지지대는 H빔(Beam) 형태로 콘크리트 구조물에 매입된 철물과 앵커볼트로 결합된 구조다. CE 모델은 판형/동체형 지지대 구조로, 매달아두는 형태가 아닌 바닥에 지지대를 받쳐서 고정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하부구조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 WH형인 고리 1호기와 프랑스 프라마톰(Framatome) 모델인 한울 1,2호기를 제외하고 증기발생기가 교체됐거나 예정된 원전 6곳은 모두 CE형이다. ⓒ 2019 원자력안전규제정보회의

 
한국 표준형 원전의 증기발생기는 다른 모델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다. 설계수명(40년)의 절반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체되는 점이 그동안 문제로 지적됐다. WH형인 고리 1호기(상업운전 시작: 1978년 4월/1998년 9월 교체)와 프랑스 프라마톰(Framatome) 모델인 한울 1호기(상업운전 시작: 1988년 9월/2012년 5월 교체), 한울 2호기(상업운전 시작: 1989년 9월/2011년 11월 교체)를 제외하고 증기발생기가 교체됐거나 예정된 원전 6곳은 모두 CE형이다. CE형의 경우 가동된지 13~16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교체됐다. 

지난 2017년 논란이 됐던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의 경우 이물질 발견으로 기기를 교체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수원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당시 한수원 관계자는 "이미 교체 완료된 한울 3·4호기를 포함해 한빛 3·4호기도 원래 교체 계획이 있었고 4호기의 경우 2개월 정도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라면서 "이물질 문제 때문이 아닌 Alloy600 재질로 만든 증기발생기가 약 10년이 지나니 문제가 생겨 이번에 Alloy690으로 바꿔 구 증기발생기 대비 안전성을 높인다는 취지"라고 설명한 바 있다. 

CE형 증기발생기를 둘러싼 의문들은 수년째 이어졌다. 설비상 단점인데도 재질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닌지 혹은 CE형 고유의 문제점인지 말이다. 동일한 CE형인 미국 팔로버디 원전과 한국 표준형 원전 증기발생기를 살펴보면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다. 팔로버디 증기발생기 하부 슬라이딩베이스에는 직경 약 14cm 크기의 앵커볼트 8개가 있는 반면 OPR1000과 APR1400에는 앵커볼트가 누락됐다. 앵커볼트의 역할은 무엇이며 왜 한국형 원전에는 없을까. 

 

▲ 좌측은 미국 팔로버디(Palo Verde) 원전, 우측은 신고리 3호기의 증기발생기 슬라이딩베이스 모습이다. 팔로버디는 8개의 앵커볼트(노란색 테이프 부분)가 있지만 이를 모델로 한 신고리 3호기는 없다. ⓒ 문인득 기술사

 
팔로버디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와 백텔(Bechtel)사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객사 엔지니어링 문서 등에서는 슬라이딩베이스 앵커볼트의 역할을 내진설계용으로 분류하고 있다. 지진 시 위로 들리거나 냉각수 유출 사고(LOCA)를 방지할 목적이라는 것. 앵커볼트가 증기발생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국형 원전에서만 앵커볼트가 누락된 점에 대해 일각에서는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는 한국형 원전 증기발생기의 잦은 교체 이유를 안전해석결과값 설계 변조와 하부지지구조 변형 및 내진설계 누락으로 보고있다. 

두산중공업에서 한울 원전 현장에 파견됐던 문인득 기술사는 "앵커볼트는 증기발생기의 열팽창시에는 팽창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살짝 얹혀있도록 하고 지진이 왔을 때는 오버터닝되는(뒤틀리는) 것을 억제하는 용도"라면서 "슬라이딩베이스 열변형을 억제하는 부수적인 기능도 있다"고 주장했다. 문 기술사는 울진 3·4호기 증기발생기 교체사업과 신고리 3·4호기 건설 공사 당시 기계기술책임자로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앵커볼트가 누락된 경위는 분명치 않다. 이 누락으로 슬라이딩베이스가 열 응력으로 변형돼 증기발생기가 수직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기울여져 주변 구조물과 접촉돼 장시간 진동이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이같은 영향이 증기발생기 내부로 전달돼 전열관 마모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앵커볼트가 있었더라면 증기발생기 하부지지구조의 열변형이 억제돼 진동도 줄어들 것이고 전열관 마모도 적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증기발생기 세관 마모 원인은 재질 문제와 유체유발진동으로 보는 경향이 컸다. 문 기술사가 주장하는 구조적 진동 현상은 여태껏 제기된 적 없는 새로운 주장이다. 그렇다면 한국 표준형 원전 증기발생기에는 왜 앵커볼트가 없을까. 공학적으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까. 

앵커볼트 제거 이유에 대해 각 기관들은 '파단전 누설(LBB)' 개념 도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LBB는 원자로시설 기술기준에 관한 규칙 제 15조에 따라 가상배관 파단 설계 면제를 위해 수행되는 평가다. 가동 중 배관에서 '양단순간파단' 현상이 일어나기 전 작은 누설이 시작되므로 이같은 파단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한 설계다. 팔로버디 원전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던 LBB 개념이 한빛 3·4호기 설계 단계에서 적용되면서 앵커볼트가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LBB는 이미 가동 중인 원전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원자력안전기술원(킨스) 관계자는 "지진하중과 주증기배관 파단하중 등이 증기발생기 설계에 동시에 고려되며 설계요건(ASME B&PV CODE Sec III)을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기술 관계자는 "CE80 증기발생기 앵커볼트는 주냉각재배관의 가상배관 파단 시 증기발생기를 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됐다"면서 "앵커볼트를 제거한 상태에서 2차계통 주증기배관 파단으로 발생하는 하중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증기발생기 제작사인 두산중공업 측은 ABB-CE사로부터 이미 앵커볼트가 없는 설계를 전달받았다고 답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증기발생기 지지대의 앵커볼트 설계 유무는 계통설계자인 한전기술에서 계통설계 단계에서 수행한다"면서 "한전기술이 제공한 설계시방서와 ASME 코드에 따라 지지대 제작 및 구조건선성 평가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LBB 관련 언급은 지난 2013년 1월 통합공정회의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원설계도면과 다르게 제작해야 하는 경우 발주처의 승인이 필요한데 이를 SDDR이라고 부른다. 당시 회의 문서 20쪽에는 '슬라이딩베이스 설계-팔로버디 시공 방안과 다른 시공방안은 없는가'라는 내용이 있다.
 

▲ 증기발생기 슬라이딩베이스 앵커볼트와 LBB 관련 언급은 지난 2013년 1월 각 기관들이 모인 통합공정회의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 문인득 기술사

 
이 부분이 언급된 이유는 2012년 11월 한울 4호기 증기발생기 슬라이딩베이스 변형을 조사하던 문 기술사가 팔로버디 원전 증기발생기 사진을 포함시켜 한수원에 알렸기 때문이다. 이후 한수원 측이 한전기술에 설계 차이 질문을 했고 관련 내용이 해당 회의에서 등장했다. LBB 적용으로 앵커볼트를 없앴다는 것. 그렇다면 원전 운영사인 한수원은 당시 이 같은 답변이 정말 타당하다고 여겼을까. 수긍하고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을까.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앵커볼트를 제거한 이유가 LBB와 관련있는지 혹은 타당한지 여부다. 증기발생기 지지대는 내진범주 1등급 설비로 분류된다. 만약 앵커볼트를 제거한 방식이 결과적으로 안전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안전해석과 관련 절차를 밟았는지도 중요하다. 팔로버디 원전처럼 증기발생기 슬라이딩베이스에 앵커볼트를 넣는 것은 까다로운 작업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앵커볼트를 누락시킨 주체가 과연 ABB-CE사가 맞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CE 모델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기술 기준이 변경됐거나 미국 규제기관(NRC)에서 특정 기준을 제시했을 경우 설계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참조 기준을 무엇으로 했는지, 해당 기준이 허용된 시점은 언제인지 그리고 관련 기술보고서가 명확히 언제 작성됐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 

문 기술사는 "앵커볼트가 통과하는 부위는 건축구조물과 증기발생기 하부지지대 사이의 상호 인터페이스 영역"이라며 "증기발생기를 포함한 주기기 설계는 두산중공업이, 구조물 설계는 한국전력기술이 담당했다. 두산중공업이 기술 이전 받은 부분은 핵증기공급계통(NSSS) 주기기의 기계 장치에 국한된다. CE사로서는 앵커볼트가 있는 설계도를 제공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구조물에 대한 내진해석은 토목 부문에서 수행하고, 해당 결과를 주기기 공급자에게 제공한다. 주기기 공급자는 해당 결과를 받은 후 기기 해석을 수행하고 해석 결과를 다시 토목에 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기기 공급자가 주기기 해석을 통해 슬라이딩베이스를 포함한 정착부에 대한 상세한 기준을 설정하는데 지진하중이나 배관파단에 의한 외력은 모두 기계적 하중에 포함된다"면서 "기계적 하중에 의해 앵커볼트가 필요하게 되면 주기기 해석에 이 부분이 포함되는데 한전기술 측에서 받은 주기기해석보고서에는 이같은 요건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원자력산업계와 NRC는 배관파단구속장치(Pipe Whip Restraint), 제트충돌벽과 같은 배관파단완화 기구들이 고에너지 배관계통에 과도하게 설치될 때 배관이 지나치게 구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 같은 지지물들은 설치와 제작 비용이 클 뿐 아니라 운전 중 검사 및 보수 시 배관 접근을 방해해 방사선 피폭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판단했다. 

NRC는 1984년 발전소 설계 시 LBB 개념 적용에 대한 기술지침서(NUREG 1061 Vol.3)를 발간했다. 이후 1986년 미연방규제법(10 CFR 50 App. A GDC-4) 개정으로 PWR 1차 냉각계통 배관에 LBB를 적용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가했다. 양단순간파단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파괴역학적으로 입증할 경우 설계 시 LBB 개념을 적용토록 한 것이다. 2004년 국내에서 열린 원자력안전기술정보회의에 따르면 1987년을 기점으로 LBB 적용이 허용됐다. 

문 기술사는 "LBB를 이유로 앵커볼트를 누락시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그 증거로 신고리 3‧4호기 발전용량과 팔로버디 발전용량은 거의 유사한데 두 발전소의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안전정지지진(SSE)과 운전하중을 동시에 받았을 경우 팔로버디 수직지지대 하부는 설계여유도가 300%인 반면 앵커볼트가 없는 신고리 3‧4호기는 8%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1994년 원자력연구원의 <가압기 밀림관 LBB>에 따르면 LBB 사용이 공식적으로 허용됨에 따라 영광 3·4호기에서 LBB 개념을 적용한 배관은 △원자로 냉각재 계통 배관 △가압기 밀림관 △안전주입 계통 배관 △정지 냉각 계통 배관이다. 다만 주증기 계통 배관의 경우 "LBB 적용 선례가 없어 국내 규제기관의 승인이 아직 미확정적인 상황에 있다"고 기재돼있다.

또 다른 킨스 보고서에는 "주증기배관 LBB 적용이 한빛 3~6호기 설계 단계에서 시도됐지만 안전여유도가 낮게 평가돼 미적용됐다"는 내용이 있다. 만약 ABB-CE사가 LBB를 이유로 앵커볼트를 제거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주증기배관 LBB 적용 여부를 두고서는 왜 국내 규제기관이 판단했는지 의문이다. 

1994년 원자력연구원의 <가압기밀림관 LBB>에 따르면 고리 3‧4호기의 경우 각종 배관에 PWR 설치 완료 단계에 접어들때쯤 NRC의 LBB 개념 허용이 공시됐다. WH형인 고리 3‧4호기의 공사기간은 1979년 4월부터 1986년 4월까지였다. 당시 102개의 PWR 중 약 30여개가 제거 가능한 것으로 판단됐지만 건설 중에는 제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고리 3‧4호기는 한빛 3‧4호기보다 먼저 건설된 발전소지만 LBB 개념이 적용되지 않고 설계됐다. 팔로버디 원전의 공사기간은 각각 △1호기 1976년 5월~1986년 1월 △2호기 1976년 6월~1986년 1월 △3호기 1976년 6월~1988년 1월이다. 고리 3‧4호기와 팔로버디 원전의 건설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앵커볼트가 있는 팔로버디에는 LBB가 적용되지 않은 것일까. 

문 기술사는 "원자로 배관과 증기발생기 2차측 스팀 배관은 고에너지 배관으로 파단시 배관 끝단이 휘날리면서 주변 장치에 손상을 입히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며 "증기발생기와 원자로, 원자로냉각재펌프 연결 용접부 부근에 배관파단구속장치(PWR)를 이용해 파단으로 인해 2차 피해를 방지하는 설계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팔로버디부터 원자로 배관에 PWR을 제거했지만 주증기 배관에는 PWR이 존재하고 있고 한국도 주증기 배관에는 PWR이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LBB를 이유로 증기발생기에서 앵커볼트를 누락시켰다는 설명은 오히려 의문만 증폭시킨다는 지적이다. 국내 한 원자력 전문가는 "CE형 모델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설계 변경이 있었다면 구체적인 기준이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라며 "LBB 적용으로 앵커볼트를 제외했다는 내용은 좀 더 사실관계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1994년 원자력연구원의 <열성층화현상 및 LBB를 고려한 영광 3·4호기 가압기 밀림관의 설계에 대한 분석>에는 "한빛 3‧4호기 사업자가 제시한 방법은 웨스팅하우스에서 공급한 발전소에서 적용한 방법이다. 이를 영광 3·4호기에 적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과 이 발전소에 대한 LBB 평가(1987년 1월 보고서 제출)가 현재 LBB 개념의 적용 타당성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미국 NRC의 SRP 3.6.3 Draft(1987년 3월)가 공식 공개되기 전에 수행되었다는 점과 또 밸리 유닛2의 LBB 적용과 관련해 NRC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기재돼있다.

문 기술사는 "한전기술과 두산중공업이 역무 중첩영역에서 심도있게 검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모든 도면이 그 당시 계통설계자(System Designer, SD)였던 원자력연구원(현재 SD는 한전기술)과 종합설계자(Architect Engineering, AE)인 한전기술, 기기제작자(Component Designer, CD)인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한국전력(현 한수원) 이름으로 발행된 것으로 미뤄봤을 때 정부 부처와 국내 기관들이 그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은 제휴매체인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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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21-01-23 20:38:35
엄청 상세하게 취재한 기사네요~
원전 위험은 아무리 걱정해도 모자랍니다.
노고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