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말뚝을 박아라
허공에 말뚝을 박아라
  • 혜범 스님
  • 승인 2021.01.22 10:4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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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미륵 1

 한눈에 보아도 집을 나온 아이는 아니었다. 호리호리하게 마른 소년은 가냘팠다. 동병상련이라고 행색만 보면 알 수 있었다. 갈 곳이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외면했다. 저 아이의 生에 끼어들어 내가 무얼 해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소년은 이미 할 말은 다했다는 듯 지명을 건네 보고 주시하고 있었다.

 소년은 어둠속에 서있었다. 답답함과 암울함처럼 소년의 뒤에는 안개와 어둠에 휩싸인 산 밑 마을이 잠들어 있었다. 부처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다. 번뇌를 다 끊고 중생을 다 건지겠다 했던가. 산속에 파묻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문득 지명은 그런 생각을 했다. 

 버스 정류장 멀리 밭에서는 부부인 듯 멀찌감치 서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낫으로 콩을 거두고 있었다. 이미 논의 벼들을 수확하고 난 이후였다. 
 이제는 떠나는 마당에 이곳을 다시 찾지는 않게 될 것이다. 마지막이다. 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무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라는 은사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스님들은 돌아서면 끝이었다. 한 번 살았던 절은 다시 가지 않는다. 다시 돌아올 이유가 없다. 아마 사형이 죽는다 해도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랬군. 나무아미타불’ 할 뿐 장례를 집전 한다거나 사십구재를 보아줄 염(念)같은건 눈곱 만큼도 없었다.

 참 열심히들 사는구나. 모든 게 그렇군. 그런데 난 뭐지? 난 변한 게 하나도 없네. 법문을 다 배우고 부처의 가르침을 이루고자 하지 않았던가. 속으로 지명은 다시 중얼거렸다. 맡고 있던 절의 부전자리에서 쫓겨나 발길 닿는 대로 가보자, 제기랄. 하고 걸망을 맨 채 새벽부터 안개 낀 무서리 내린 밭의 콩들을 거두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던 새벽 첫날이었다. 

 가고 싶은 곳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열정만 앞세우고 달려왔던 지난날들이었다. 안개 어슴푸레한 산길을 돌아보면 여전히 황량했다. 슬픔은 언제나 기쁨 뒤에 있었다. 失戀을 해서 중이 된 것도 아니고 못 배워 중이 된 것도 아니었다. 새벽이 되면 종을 치려고 중이 된 것도 아니고 못 먹고 못 살아서 중이 된 것도 아니었다. 소년을 보니 살아 있다는 게 짐 같아 다시 암암해졌다. 

 지명은 걸망을 풀고 앉아 있는데 소년은 배낭 가방을 등에 맨 채였다. 한결차고 이악스러워보였다. 혹여 라도 지명이 가려는 버스를 되잡아 잽싸게 올라타고 바이바이 라도 하면 곧 바로 쫓아와 버스를 잡아 탈 기색이었다. 놈은 이미 공동운명체라도 된 듯 산 밑에서 기다리다 강아지모냥 졸졸 따라붙은 거였다.  

 시골 새벽버스가 꽁무니에 안개와 먼지를 달고 소년과 지명을 보고 멈춰 섰다. 그러나 지명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명이 꼼짝 않자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안 타요?’ 기사가 문을 열고 물어보았다. 지명은 그냥 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기사는 ‘뭐야?’하며 다시 문을 닫고 가버렸다.  이제 삼십 분은 더 기다려야 버스는 다시 올 것이다. 두려운 건 없었다. 지난 밤 퍼마신 소주로 목이 깔깔하고 조갈이 들었다. 무엇을 할지. 결정한 것도 없었기에. 그러나 알고 있었다. 마음을 떠나면 육진 경계도 사라진다는 것을. 어찌 이 경계를 넘어서야 할 것인가.

 “스님 도와주세요.”
 “뭘?”
 “…….”

 사는 게 거짓말 같았다. 쉬운 것을 하지 말고 옳은 것을 하라, 했던가. 쉬운 건 어렵게. 어려운 문제는 쉽게. 그러나 은산철벽, 보통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새벽 찬 바람에 소년이 추운지 빵모자를 귀 밑까지 끄집어 내려덮으며 말했다. 소년의 말을 듣자 지명은 막막해졌다. 얼치기중인 자신을 앞세우고 어쩌자는 것인지. 놈은 마치 지명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듯한 눈빛이었다. 놈이 외로워서 죽거나 굶어서 죽거나 세상에 왕따 당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서 은일(隱逸), 은둔의 날들이 미망과 함께 끝장나는 건 아니었다. 

 “얘야. 극락은 저 하늘에도 저 바다에도 여기저기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그렇게 네가 극락은 어디에 있어요? 라고 묻는 네 마음속에 극락이 있단다.”

 열네 살, 소년에게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지나가는 차들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이 힐끔 서른둘인 지명을 건네다 봤다. 더 이상 울지 않겠다는 몸부림치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지명보다 네댓 걸음 떨어져 앉아 부르르 진저리치고 있었다. 등에 맨 가방 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칫솔, 치약. 수건 옷따위? 누가 부처 아닌 것이 없듯이 화두 아닌 것도 없다, 했던가. 순간 지명은 알맞은 거리로 서서 경계를 서성이다 북극에서 몰아온 한파로 추운지 몸을 바르르 떠는 은행나무 가지들을 보았다.

 “너희들도 지금 경계에 서성이고 있구나.”

 경계란 그랬다. 무엇, 사물과 대상의 경계를 보면, 보는 것 뿐 다른 것이 없고, 보지 않으면 보지 않는 것 뿐, 다른 것이 없는 마음을 자각해야, 보는 대상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것이거늘.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절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내려오는데 이미 어두운 안개에 끄달렸다. 속세의 사람들과는 이미 거리를 두고 살았다. 한 걸음 내딛으면 낭떠러지, 절벽. 地球를 삼켜버릴 듯 하던 안개. 이미 지명은 그 안개 속에 달아나던 고라니새끼의 기척에 놀라 어둠속의 하늘에 놀란 숨소리를 채우며 소름이 돋은 걸음을 멈추고 검은 얼굴을 하지 않았던가.

 “어쩌라고?”
 “아버지 면회 좀 하게 해줘요.”

 소년이 절간으로 찾아온 건 지난밤이었다. 으스대는 듯 한 소리로 근엄한 헛기침을 해보지만 조심스런 소년 앞에서는 그저 가래 끓는 소리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어디 있는데?”
 “가막소에요.”
 “……미성년자도 면회 되는데.”
 “거절당했어요. 열세 살. 이제 중학교 들어가는데……. 저를 증명할 수 있는 게 세상엔 아무 것도 없네요.”
 “쯩이 없다. 호적등본을 떼어 갔으면 됐을 텐데. 그나저나……. 나 내일이면 여길 떠날 텐데.”
 “왜, 전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넌 어린 아이니까.”

 흘낏 훔쳐보던 지명의 말에 순간 소년의 표정이 굳어졌다.
 까치집처럼 부스스한 머리칼을 한 소년을 만난 건 보름 전이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소년이 길거리에서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은행 알을 줍고 있었다. 한사코 예쁘고 귀염스런 멋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시골길, 똥내 나는 은행 알을 푸대에 주워 담던 소년의 뒷모습이 오버랩 됐다. 

 “내일 같이 떠나면 되겠네요. 새벽예불 끝내고 가실 거죠? 산 밑에서 기다릴 게요.”

 다시 밝아진 소년이 어깨를 우쭐해 보이더니 말했다.
 “……뭐 인마?”

 무엇을 걱정하느냐는 듯 악착스런 소년의 말에 지명은 쿡 웃으며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면 손으로 바람을 잡아 오너라. 그러면 내 가마.”
 “그딴 장난은 스님이나 하시고 난 아부지를 꼭 만나야 해요.”

 소년이 시시하기 짝이 없다는 듯 새침때기처럼 말했다. 똑똑하고 야무져 보였다. ‘상처에 반창고나 붙이고는 살 수 없다. 제법 궁합이 잘 맞겠는데. 묘한 매력이 있는 놈이네.’ 하고 허리춤을 추켜올리며 중얼거리던 지명이 입맛을 쩝 다셨다.
                                              

혜범 스님

1976년 입산,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당선.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흙출판사),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청림출판사), 『천기를 누설한 여자』(흙출판사) 『반야심경』(밀알출판사), 『업보』(밀알출판사), 『남사당패』(태일출판사), 『시절인연』(밀알출판사), 『플랫폼에 서다』(북인) 등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도서출판 북인),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밀알출판사), 『달을 삼킨 개구리』(북갤럽),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북갤럽)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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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 2021-01-24 00:09:20
스님 글이신박하십니다.
왠만한 조실.방장 법어보다
훨씬 좋습니다.

웹툰 웹소설도 2021-01-22 12:11:38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웹툰 웹소설 연재도 기대합니다 ^^

도반 2021-01-22 11:51:30
불교닷컴의 신선한 시도 응원합니다. 혜범 스님 소설을 여기서 접하게 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