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조선일보가 공개한 '현각 스님이 한글로 쓴 이메일'
[전문] 조선일보가 공개한 '현각 스님이 한글로 쓴 이메일'
  • 현각 스님
  • 승인 2020.12.30 09:3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각 스님은 지난해 12월 계룡산 무상사에서 엄수된 대진당 무심 스님 다비에서 무심 스님의 법구를 이운하며 누구보다 크게 슬퍼했다 (불교닷컴 자료사진)
현각 스님은 2015년 12월 계룡산 무상사에서 엄수된 대진당 무심 스님 다비에서 무심 스님의 법구를 이운하며 누구보다 크게 슬퍼했다 (불교닷컴 자료사진)

 

현각 스님이 <조선일보> 기자의 칼럼을 보고 해명하는 글을 썼다. 스님은 혜민 스님과의 일을 200자 원고 30장이 넘는 분량으로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스님의 입장을 단독 보도하면서, 스님의 글도 함께 공개했다.

다음은 <조선일보>가 공개한 현각 스님의 글 전문이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신지요?

해마다 처럼, 저는 현재 독일 불이선원에서 동안거 결재 수행 중입니다. 요즘에는 코로나 락다운(봉쇄)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안거 수련에 직접 참여할 수가 없어서 대신 제가 안거 수행을 실시간 라이브로 방송하고 있는데, 이것으로나마 이 어려운 봉쇄 상황에 계신 분들의 수행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한국 불교 역사상 첫 실시간 온라인 수행 방송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 어떤 분이 제게 “혜민 스님과의 일”에 대한 기자님의 칼럼을 전달해주셨습니다. 저는 이번 공개적 일에 대해 더 반응하지 않고 지나가도록 했지만 – 그것에 대해 재차 수정하는 것이 별로 도움이 안 되거나 불필요한 일인 경우가 종종 있어 – 이번 기자님의 칼럼에 대해서 다음의 견해와 수정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성찰들을 전함으로써 기자님과 독자분들이 제가 의도했던 중요한 가르침의 핵심에 대해 놓치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칼럼 내용 발췌 excerpt from the column

“깨달음을 놓고 겨룬 것도 아닌 이 과정이 불교적이라고 볼 수는 있을까. 불교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긍정적 이미지를 전달해온 ‘스타 스님들’이기에 불교계가 입은 타격도 크다. 이번 공방에선 모두가 패자(敗者)인 듯하다. 혜민도 현각도 불교도.”

칼럼에서 기자님은 저와 혜민 스님 모두가 “패자”인 듯하다고 말씀하셨지요. 어떤 면에서 그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영적 여정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갈등이나 불협화음이 나타나게 되면 사람들은 더욱 충격을 받거나 놀라거나 실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갈등이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 사이에서 또는 스포츠, 연예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설령 영적 수행자들 사이에서 그런 불협화음이 일어날지라도 우리는 그런 부조화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받아들입니다. 한 가지 측면에서 기자님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미묘한 관점 또한 독자분들께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돈을 번 사람들과 사업가들을 몰아내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는 그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테이블을 뒤집고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그들을 때리기도 합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한복음 2:15) 예수는 그들의 사업을 매우 날카롭게 비판했고, 저의 하버드대 신학과 교수님은 예수가 아마도 그들을 저주하고 때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이야기만 본다면, 당신은 예수가 나쁜 사람이고,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가 피해만을 주고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뒷이야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왜 이 모든 폭력적인 혼란과 거친 말들을 했을까요? 예수님이 때리고 있는 이 사람들은 굶주린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 왜 예수는 그들에게서 이런 생계를 빼앗았을까요? 왜 예수님이 그런 분노 폭발과 혼란을 일으키셨을까? 예수님은 분명 무언가에 대해 화가 나셨을 겁니다. – 그게 뭐였죠?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은 영적 수행과 사랑을 증진시키는 순수한 방법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상업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화가 나셨습니다. 그는 가르침의 수행이 “사고팔기”위해 오염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이런 사업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 예수님은 그렇게 많이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행위를 성전 안에서, 종교적인 수행을 하는 신성한 공간에서 하고 있었고,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챙겼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영적 경험에는 아무런 보탬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격분시켰고, 그럴 만한 이유였습니다.

** 칼럼 내용 발췌 excerpt from the column

“현각 스님은 전날 혜민 스님에 대해 “진정한 참선 경험이 전혀 없다” “부처님 가르침 팔아먹는 기생충” 등 독설을 퍼부은 데 대해선 생각을 바꿨는지,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이 없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했기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재평가하게 됐는지도 설명이 없다.”

처음 글을 쓴 후에, 바로 다음 날 제가 글을 쓴 것처럼요. “내 아우님 혜민은 (한 명의 개인으로서) 좋은 사람이고, (한 명의 인간 존재로서) 좋은 인간이자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매우 사랑합니다.”

지난 10년 또는 12년 동안 혜민 스님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듯이 공공 활동에서 “오프 코스”를 밟았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점점 더 책을 팔거나 비싼 힐링 여행을 하는 것, 콘서트 티켓을 파는 것과 자신을 과도한 금액을 받는 강연자로 파는 일들에 연관되어 갔고 그 돈들은 상가(수행공동체)를 위해 사용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목적을 위해 소유되었습니다. 이는 오직 혜민 스님이 내린 결정이지, 우리들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우신 상가(수행공동체)가 내리신 결정이 아닙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혜민 스님과 이야기해보려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한국에서 “유명한 스님”으로서 겪었던 어려운 경험들을 공유함으로써 혜민 스님의 그러한 문제들이나 실수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그의 은사 스님도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시려고 했지만 혜민 스님은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는 불교를 자신의 경제 사업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배경으로 사용하면서 더 많은 책들과 강연과 비싼 투어를 팔기 위해 최신 미디어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그건 그의 일이다. 내가 보기에 마음이 아프긴 해도.”라고 생각하며 저는 수년 동안 그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의 혜민 스님의 가르침이 영어로 번역되기 시작했어요. 또한 그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몇몇 콘텐츠들 영문으로 공유했고, 이는 그를 읽기 시작한 서양 사람들에게 혼란을 초래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지난 몇 년 동안 서양의 많은 사람들이 혜민 스님의 낯선 아이디어와 의아한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저에게 찾아오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것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느끼는 것에 대해 매우 지쳤습니다. 저는 그것 때문에 화가 났을 뿐이에요.

예수님이 성전에서 보았던 부패처럼, 성전에서 상인들과 환전상 등을 청소하는 일은 벌써부터 행해졌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이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셨다고 확신합니다 – 저는 예수님이 그들이 자신들의 입에 음식을 넣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 종교를 팔아야 했음에만 슬픔과 연민을 느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제가 한 일과 제가 매우 적나라한 표현들을 사용했던 것에 대해 자랑스럽다거나 만족스러운 일이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때가 마침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청소하기에 적기였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상당히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자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음 날, 혜민 스님이 전화로 제게 연락했어요. 그는 완전히 충격에 빠진 상태였어요. 수화기에서의 혜민 스님의 목소리는 떨렸고 거의 우는 듯했습니다.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혼란과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또한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기본적인 인간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그가 완전히 고통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떨고, 떨고, 떨고 있었습니다. 제 가슴은 “그에게로 갔어요.” 비록 저는 그가 개인적인 이익과 개인적인 풍요를 위해 다르마(부처님의 법)를 오용한 것에는 화가 났지만, 저는 또한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가 고통받고 있는 것에 너무나 크나큰 슬픔을 느꼈어요.

기독교에서는 “우리는 죄는 미워할 수 있지만, 죄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음 날 제가 빠르게 그에 대한 글을 올린 이유이고, 제가 혜민 스님의 기본적인 선함을 믿고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올린 두 번째 글을 잘못 해석한 것 같아요. 그들은 제가 “마음을 바꿨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혜민 스님이 제게 돈을 주겠다고 해서 “마음을 바꿨다”라고 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하하!! 이보다 더 진실과 동떨어진 얘기는 없을 거예요.

저는 이 고대의 마음의 기술을 상업화해서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그의 죄가 미웠습니다. 저는 자신의 풍요를 위해 저의 수행을 팔아먹는 그의 죄가 보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큰 그림을 보는 시야까지 잃지는 않았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한 인간으로서 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할지라도, 제가 매우 공개적으로 “성전 청소”를 했기 때문에, 제가 혜민 스님이 스스로 자신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에 대한 저의 사랑과 연민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저의 은사 스님이신 숭산 스님께서는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실수하는 것이 인간이다. 어떻게 이 실수를 ‘올바르게’ 만드느냐, 그것이 그의 지혜이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께서 지적하신 대로 저의 첫 번째 공개 표현에는 많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붙잡지 않는 수행자로서, 그것을 “올바르게” 만드는 것이 지혜의 증명입니다. 다음날 저는, 아주 빠르게, 사람들에게 제가 여전히 혜민 스님을 사랑하며 스님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저의 대중적인 “실수”를 바로잡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기자님을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오해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매우 큰 폭풍이 지나간 후, 하늘은 항상 더할 나위 없이 맑습니다. 텅 빈 하늘은 격렬한 폭풍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고, 끔찍한 전쟁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으며, 원자폭탄의 폭발에도 방해받지 않습니다! 이 “텅 빈 하늘의 마음”이 우리의 수행 목표입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목표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때때로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는 세상에서도 우리의 맑고 동요되지 않는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때때로 아이들이 잘못된 일을 할 때, 부모로서 아이들을 바로 잡아주어야 하는 일은 모두가 아는 인지상정입니다. 이것은 어떤 어렵거나 위대한 종교적인 수준을 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부모의 입장 또는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들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듣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땐 더욱 강하게 훈계할 수도 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체벌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사랑에서 오는 것이며 그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이에 대한 순간적인 실망이나 분노에 연연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훈계 후 가능한 한 빨리 그 아이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사랑이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으며, 작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이것이 제가 저의 모든 행동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논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인터뷰도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문제를 다시 일깨워서 사람들의 마음에 또 다른 흥밋거리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부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행동은 아주 분명한 기능이 있었고, 이제 그 기능은 – 적어도 저에게는 – 마무리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저의 사랑하는 동생인 혜민 스님, 아우님이 그것을 소화해서 더 좋고 강한 사람이 되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이 너무 시끄러운 혼란의 초래했고, 많은 분들이 제가 바로 다음 날 그러한 글을 올리게된 사유에 오해하고 있기에, 저는 이 편지를 제 개인 블로그(blog.mirrorofzen.com)에 공개적으로 게시하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 편지가 공개될 것이기 때문에 기자님께서도 이 편지를 공개적으로 발표할 의향이 있으시다면 그럴 권리와 저의 동의가 있다는 점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 실수를 합니다. 저와 가까운 사람들은 저의 수많은 실수를 인내해주었습니다. 제가 저의 실수를 비로소 바로잡을 때, 저를 고쳐주셨던 분들도 제가 혜민 스님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처럼 사랑과 연민, 그리고 이해심으로 보듬어주시길 바랍니다.

현각 합장

독일 레겐스부르크 불이선원

2020 성탄일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마하 2021-01-10 12:32:30
늦게나마 현각스님의 좋은 글로 오해가 풀려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글은 많은 유트버들이 인용하지 않네요.
그래서 처음 대응을 잘 했어야 하는데...아쉽네요.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